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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를 담은 모판이 싹을 틔우기 위해 가지런히 정렬해 있다.
▲ 모판 볍씨를 담은 모판이 싹을 틔우기 위해 가지런히 정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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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끼오~~~'

우렁찬 수탉의 울음소리가 어슴푸레한 산골의 여명을 깨워주는 새벽녘. 어제 마을 포도밭 설치작업을 한 탓인지 온몸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고랭지 포도로 유명한 경북 상주 화서면 일대는 요즘 포도밭 설치와 논농사 못자리 작업이 한창이다.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생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쌀농사가 천대를 받고 있는 시대지만, 농부들은 한숨을 털어내고 숙명처럼 농토를 어루만진다. 예부터 논농사는 남자의 농사로 불렸다. 아낙들이 허리를 굽혀 밭일을 할 때, 남자들은 뒷짐을 지고 논두렁이나 어슬렁거려, 논농사를 '통 큰 농사'라 부른다는 우스개도 있다.

과연 그럴까? 무슨 일이든 타자의 시각에서 보면 가볍게 보이고 짐짓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논농사가 아무리 기계화되었다고 해도 사람의 손길 없이는 불가능한 농사임을 안 것은 내가 직접 논농사를 지어본 뒤였다.

기껏해야 두 필지, 500여 평의 논농사를 지어 봤는데,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는 농사가 아니었다. 우선 볍씨를 불리고 못자리 상토를 담고, 다시 볍씨를 뿌리고 흙을 얹어 논에 고이 모셔두고 임시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싹을 틔우는 못자리 작업을 해야 한다. 이후 5월~6월 중엔 모내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풀 관리에 논둑 풀 깎기, 물꼬 작업, 가을 추수작업, 나락 포대에 넣고 다시 며칠간 햇볕에 잘 말린 후 다시 포대에 넣으면 겨우 숨을 돌리는 게 벼농사다. 논에 물대고 모터 설치하기, 인한 풀 뽑기 작업(절반은 우렁이 농법으로 했다), 논둑 관리 등등 초보 농부에겐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오랜만의 못자리 작업에서 두레의 즐거움을 맛보다

모판 작업에 여념이 없는 이장님
▲ 이래도 이장님 모판 작업에 여념이 없는 이장님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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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봉촌리 마을 이래도(60) 이장님은 논농사만 4만여 평을 짓는다. 절반은 임대를 해서, 절반은 본인의 논인데 화서면뿐 아니라 상주시 전체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농이다. 50여 마리의 한우까지 키우는 이장님은 마을에서 아직까지 장정으로 불리는 일꾼 중의 일꾼이다. 살아온 삶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장님은 30여 년 전 이 마을로 들어와 그야말로 빈손으로 시작해 오늘 날의 기반을 이룬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최근 마을 이장님 못자리 마무리 작업을 했다. 이미 지난번에 2500장의 못자리 작업을 끝냈고, 나머지 모판을 논으로 옮기는 날이었다. 물론 수천 년 동안 내려오던 공동체 두레, 품앗이가 거의 사라져버렸지만, 그나마 공동으로 작업하며 두레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때가 못자리 작업을 할 때다. 기계가 아무리 발달해도 못자리 작업만큼은 사람의 손길과 땀이 필요한 일이다.

이웃 주민들이 손길을 모아 모판 만들기 작업을 하고 있다.
▲ 모판작업 이웃 주민들이 손길을 모아 모판 만들기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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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못자리를 위한 모판 완성 작업에 창고 안이 분주해진다. 창고에 쌓아놓은 모판을 옮겨 씨를 뿌리고 흙을 덮는 기계에 투입하면 불과 몇 초 사이에 완성된 모판이 나온다. 모판은 다시 사람의 손에 들려 이동 차량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

최소 5명의 손길이 쉼 없이 움직여야 하는데, 단 몇 초라도 한눈을 팔면 공정은 여지없이 흐트러진다. 9시께 국수로 새참을 먹은 뒤 모판을 가득 실은 차량들을 논으로 옮긴다. 트랙터로 모판 놓을 자리를 갈고, 다시 사람의 손과 손이 이어주는 릴레이 모판 놓기 작업이 시작된다.

산들 산들 봄바람이 불어오는 따사로운 시골의 넓은 들녘, 고요한 적막을 깨는 농부들의 "전달, 전다알~~"이라는 고함소리와 함께 모판은 차량에서 논바닥으로 옮겨진다.

다리가 아프다며 앉아서 작업을 지시하는 할머니, 소주 한잔이 있어야 힘이 난다는 주당 형님, 일을 정석대로 하지 않는다며 투덜대는 노총각 장정, 콧노래를 흥얼대는 한량 등 저마다 개성은 달라도 한마음으로 못자리 작업에 열중한다.

"조금씩 농사지으면서 같이 일 할 때가 가장 좋았어"

주민들이 줄을 서서 모판을 전달하고 있다.
▲ 못자리 작업 주민들이 줄을 서서 모판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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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2천여 장의 모판이 논바닥에 길게 정렬해 누웠고 보온 효과를 위한 임시 비닐하우스 만들기가 시작됐다. 익숙해진 손놀림과 떠드는 소리에 비닐하우스 4동이 만들어지고, 못자리-모내기-수확의 3대 공정 중 첫 번째 과정이 막을 내린다. 

모두들 "애 썼다"며 덕담을 건네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두 차례에 걸친 두레 작업을 통해 못자리 놓는 것을 끝낸 이장님은 점심식사와 성주봉 휴양림 사우나, 저녁식사까지 푸짐하게 대접하며 감사를 표했다.

해질녘, 서로가 '고맙다'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문득 수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귀농한 지 2년이 지났을 때 쯤,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지금의 이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때 인연으로 지금의 터전에 집을 짓고, 이장님이 선뜻 임대해 준 논에 포도 농사를 짓게 되었다. 나 역시 논농사는 기계로 짓기에 별로 힘들 게 없다는 말만 듣고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포도농사가 정말로 할 일이 많은 농사 같아요."
"그 정도 평수 갖고 힘들어 하면 안 되지."
"그래도 논농사 몇 만평보다는 포도 천 평이 더 할 일이 많다면서요."
"음... 그건 그렇지..."

주민들의 손길과 손길로 비닐까지 씌워 완성된 못자리
▲ 못자리 주민들의 손길과 손길로 비닐까지 씌워 완성된 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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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설프게 알고 함부로 말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뜨거워진다. 농사를 지어보니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없었다. 처음이 쉬우면 나중이 힘들었고, 처음이 힘들면 나중이 비교적 수월한 정도였지, 자연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반드시 땀과 수고를 요구했다.

지금의 쌀농사는 기계가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기계 의존도가 높다. 대규모 논농사에 필수 기계인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세대의 가격이 1억 원에 육박한다. 사람의 손길을 엄청나게 덜어주는 대가로 농민들은 엄청난 자본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곧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경제적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기 쉽다.

한미FTA로 불투명해진 식량주권의 미래가 농촌에 짙게 드리워진 참담한 시대에 여든이 넘은 농부의 혼잣말이 귀에 어른거린다.

"조금씩 농사지으면서 같이 일 할 때가 가장 좋았어." 


태그:#못자리,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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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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