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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 마지막 장면 - 스파르타쿠스(정영재 분)의 죽음과 아내 프리기아(김리회 분)의 오열. 역동성과 화려한 군무,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남성발레의 지존이다.
 국립발레단 '스파르타쿠스' 마지막 장면 - 스파르타쿠스(정영재 분)의 죽음과 아내 프리기아(김리회 분)의 오열. 역동성과 화려한 군무,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남성발레의 지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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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하면 부드럽고 우아하고 하얀색, 푸른색, 노란색 조명 아래 비단 같은 물결의 움직임이 연상된다. 하지만, 이 발레는 달랐다. 발레 <스파르타쿠스>.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국립발레단(예술감독 최태지 단장)의 <스파르타쿠스>는 수많은 발레관객들의 열광적인 기립박수와 찬사를 이끌어내며, 한국발레의 또 한번의 도약을 보여주었다.

3막 12장 9개의 독백으로 구성된 이 발레는 우선 무대부터가 다르다. 우선 1막 1장 '침략'에서 로마 장군 크랏수스의 빌라는 노란 조명 아래 내부는 은색, 금색 보석 문양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반면, 1막 2장 '노예시장'에서 노예영웅인 스파르타쿠스의 장면은 붉은색 조명의 강렬함과 함께 검투사들의 막사를 표현하며 불운과 집념의 내면을 그려낸다. 귀족의 전형인 로마 장군 크랏수스와 그의 애첩인 팜므파탈 예기나, 노예들의 영웅인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헌신적인 아내인 프리기아의 대비를 발레대결로 감상하는 것 또한 이 발레의 묘미라고 하겠다.

2001년 국립발레단이 아시아 최초로 초연했고 2007년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발레 <스파르타쿠스>는 보통 동작이 무척 정제되어 있는 기존의 발레에서 오랜만에 원없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며 발레팬들을 뜨겁게 달구었다. 또한 하차투리안의 음악도 한몫하였다. 서정적이라기 보다는 서사적으로 장면을 서술하면서 빠른 역동성을 묘사하는 음악은 귀족풍의 당당함과 동시에 노예의 힘과 투지를 느끼게 해준다.

2막 4장 중 스파르타쿠스와(정영재 분) 크랏수스(김기완 분)의 대결- 스파르타쿠스가 승리하지만 그는 크랏수스를 놓아주어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
 2막 4장 중 스파르타쿠스와(정영재 분) 크랏수스(김기완 분)의 대결- 스파르타쿠스가 승리하지만 그는 크랏수스를 놓아주어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
ⓒ 문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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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으로 척척 뻗어내는 발동작으로 로마 병사들의 위용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솔로나 듀엣, 특히 군무에서 일사불란하게 뻗어내는 발동작의 진군, 이것이 구 소비에트 연방의 용맹함을 떨쳐 보이려는 당시의 의도에 따라 1968년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첫 연출한 남성 발레의 상징이다. 한마디로 남성으로 대변되는 거칠것 없는 '용맹스러움'. 1막에서 트라키아를 정복한 로마 군대의 위용을 쭉쭉 뻗는 발동작으로 표현하여 첫 시작부터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에서 보아왔던 전형적인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오히려 각 인물별 9개의 '독백' 장면은 더욱 인물내면 심리를 심도있게 묘사하며 러시아 특유의 우수어린 감성과 더할 수 없는 우아함을 선사한다. 인간의 내면을 잘 그려낸 이 발레는 크랏수스와 스파르타쿠스 사이의 선과 악의 구분이 의도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이 발레에서는 보는 관점에 따라 선과 악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도로 했기 때문이다.

1막 2장 노예시장에서 스파르타쿠스와 이별한 프리기아의 처절함과 두려움, 1막 3장 의지와 상관없이 노예 검투사가 되어 싸워야 하는 스파르타쿠스의 저항심과 분노 등이 공간을 휘두르는 의지의 손짓과 몸짓, 그리고 표정 연기로 보여진다. 3막 1장에서는 사랑하는 크랏수스를 위해 스파르타쿠스 암살 계략을 꾸밀 예기나의 야심과 사랑이 유혹적이고 매서운 춤으로 표현된다. 3막 3장에서는 자신을 욕보인 스파르타쿠스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복수심에 불타는 크랏수스가 표현되며, 전체적으로 독백부분의 인간심리 표현의 극적 압축미와 무용적 표현미가 아름답다.

4일간 펼쳐진 공연에서는 1막부터 계속되는 힘이 넘치는 군무와 독백, 그리고 듀엣을 두 조로 나뉜 배역간 비교를 하며 감상하는 것 또한 의미있었다. 우선 크랏수스역은 이재우가 큰 키와 탄탄한 몸에서 오는 우아함과 당당함이 로마 장군다웠다면 김기완 역시 큰키에 더욱 빠른 회전과 날렵하고 정확한 동작의 감칠맛으로 타락한 로마장군의 방정맞음을 더욱 잘 드러내며, 상대역인 애첩 예기나역의 박슬기와의 호흡 또한 돋보였다.

스파르타쿠스(정영재 분)와 프리기아(김리회 분)의 사랑의 파드되는 남편을 전장에 보내는 여인의 고뇌와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스파르타쿠스(정영재 분)와 프리기아(김리회 분)의 사랑의 파드되는 남편을 전장에 보내는 여인의 고뇌와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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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은 막사를 탈출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스파르타쿠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스파르타쿠스 역의 이동훈은 1막에서는 귀공자 타입의 그가 갑자기 붉은색의 노예 역할에 수염이라니 다소간 어색하였다. 하지만 2막, 3막으로 진행될수록 그의 연기적 몰입도가 높았고, 3막에서는 특히 고도의 점프 동작과 프리기아와의 파드되에서 한손으로 프리기아를 높이 들어올려 관객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이끌어내며 그동안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은 스파르타쿠스 역의 이영철은 1막에서 이동훈보다는 더욱 카리스마있고 노예 영웅의 남성다움이 물씬 풍겼다. 박력있는 동작과 눈빛 연기, 그리고 3막의 리프트 동작은 이동훈과 마찬가지로 일품이었다. 하지만, 2막 3막에서는 15일 저녁 공연인 이유에서인지, 여전히 영웅다운 박력과 발레동작의 정확성은 있었지만 1막에서 보여준 집중감은 다소 떨어져 보였다.

예기나(박슬기 분)의 독백 - 크랏수스를 통한 신분상승과 사랑의 야욕을 지닌 예기나의 내면이 요염하게 묘사되고 있다.
 예기나(박슬기 분)의 독백 - 크랏수스를 통한 신분상승과 사랑의 야욕을 지닌 예기나의 내면이 요염하게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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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15일 낮공연의 이동훈은 1막의 부족함이 2막 3막으로 갈수록 보완되며 날렵한 모습과 고난이도 점프동작 등 관객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다. 한편 정영재는 발목 부상으로 인해 프레스 리허설에서만 당초 예정이었던 스파르타쿠스로 출연하고 남은 공연 일정에서는 스파르타쿠스의 검투사 상대역으로 투구를 쓴 모습안에서도 열연하는 좋은 인상을 보여주었다.

여성무용수들의 대결도 볼거리였다. 크랏수스의 애첩인 예기나 역의 경우, 이은원의 큰눈과 아름다운 외모와 정확한 동작의 예기나도 좋았지만, 박슬기의 좀더 요염하고 날렵한 예기나도 공감을 얻었다.

프리기아 역은 베테랑 김지영의 우아하고 선적인 동작과 신예 김리회의 야무진 연기로 각자의 논리를 펼쳐나가고 있었다. 김지영은 상대역인 이동훈을 시종일관 배려하며 넘치지 않게 단아하고 내면적인 숭고함의 프리기아를 연기하였다. 특히 3막의 독백에서 고뇌에 찬 여인의 모습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1, 2막에서는 화려한 예기나의 안무때문에 눈에 띄지 않았던 프리기아 내면의 모습을 유감없이 표현해 주었다.

마지막 '스파르타쿠스의 죽음' 장면(아래)은 산 피에트르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의 성모'(위)를 연상시킨다.
 마지막 '스파르타쿠스의 죽음' 장면(아래)은 산 피에트르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의 성모'(위)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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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 마지막 장면은 종교적인 색채가 물씬 풍긴다. 크랏수스의 애첩 예기나의 계략으로
결국 스파르타쿠스는 크랏수스의 검에 죽게 된다. 프리기아가 죽은 스파르타쿠스를 안고 오열하는 장면은 로마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의 성모>와 무척 닮아있다. 기독교의 숭고를 상징하는 영웅 스파르타쿠스와 이교도를 상징하는 로마장군 크랏수스의 대비도 느껴볼 만하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는 충만한 에너지와 기쁨을 안겨주며 한편 또 언제 다시 이 공연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을 이끌어내며 전원 기립박수와 커튼콜로 3일 공연의 짧지만 멋들어진 대장정을 마무리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KNS서울뉴스(http://www.knsseoulnews.com)에도 함께 송고됩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하여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국립발레단, #이은원, #이동훈, #이재우,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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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전공하고 작곡과 사운드아트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대학강의 및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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