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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이강택)은 2011년 12월 16일 오후 4시30분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일보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의원에게 부산일보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이강택)은 2011년 12월 16일 오후 4시30분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일보 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의원에게 부산일보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 전국언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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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독재정권의 대표적 장물'로 지목되는 정수재단의 사회 환원 문제로 총선 전 뜨거운 관심을 샀던 <부산일보>가 총선이 끝나자마자 징계 후폭풍에 휩싸여 다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부산일보> 사측은 18일 이정호 편집국장에 대한 재징계를 통해 '대기발령'을 결정했다.

신문사는 이날 사규상 포상징계위 규정을 적용한 징계위원회를 열어 9명의 사측 징계위원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를 소집하고 이같이 결정한 것. 사측은 징계사유로 지난해 11월 첫 징계 때 적용된 '상사명령 불복종·회사 명예훼손'과 함께 '지면 논조의 편향성 및 사장 폄훼' 등을 추가로 제시했다.

주된 징계사유로 보도방향과 경영진에 대한 비협조를 문제 삼았다. 이는 편집국 장악의지를 더욱 노골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사측의 이날 징계결정은 앞서 사측이 이정호 국장에게 내린 징계에 대한 가처분 소송에서 패소한 뒤에 나온 것이어서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비판기사 삭제하지 않았다고 또 징계?

<부산일보> 4월 18일 편집국장 징계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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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일보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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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 5개월 사이에 같은 편집국장을 두 번이나 대기발령 한 초유의 사태가 PK지역 유력 언론사인 <부산일보>에서 발생했다. 그것도 총선 직후라는 점, 또 대선을 앞둔 시점이다.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럴 만한 두 이유가 짙게 깔려 있다.  

첫 번째는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신문사 지면 사유화 의지가 총선 직후 더욱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 필요성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음을 암시해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두 번째는 <부산일보> 노조(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등 내부 구성원들의 끈질긴 정수장학회(정수재단) 사회 환원 요구와 편집권 독립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편집국장을 재차 징계한 것은 사측에 반하는 비판 논조의 싹을 미리 자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예사롭지 않은 일련의 사례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우선 편집국장 징계 사유에서 읽힌다. '정수재단 비판기사를 삭제하라는 경영진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점과 '여당에 비판적인 지면에 따른 독자 불만으로 인한 절독'이 주된 징계 사유라는 이유에선 독선과 오만이 가득 묻어난다. 

<부산일보> 사측은 지난해 11월에도 정수재단 비판기사 삭제 지시를 거부한 이 국장에게 대기발령 징계를 내려 강제로 끌어내리려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국장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보전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부산일보> 경영진, 왜 편집국장 집요하게 끌어내리려 하나

정수재단 문제 등을 둘러싼 골 깊은 노사갈등으로 발행되지 못한 <부산일보> 2011년 11월 30일 1면
 정수재단 문제 등을 둘러싼 골 깊은 노사갈등으로 발행되지 못한 <부산일보> 2011년 11월 30일 1면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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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쩍은 대목은 또 있다. 이번 편집국장의 징계절차에서 의도성이 묻어난다는 점이다. 사측이 편집국장을 재징계하기 위해 단협상의 '징계위원회'가 아닌 사문화된 규정인 사규상의 '포상징계위원회'를 소집하고 나와 노조로부터 '꼼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산일보> 노조에 따르면 포상징계위는 신문사 노사가 단협을 체결한 1988년 이후 징계에 적용된 적이 없다는 점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게 한다.

<부산일보>는 그동안 사원에 대한 징계의 경우 노사가 참여하는 단협상의 징계위원회를 구성해 처리해왔다. 지난해 11월 30일 이 국장에 대한 첫 징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징계처분은 이 국장이 승소하면서 효력을 상실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측이 노조의 동의 없이 징계규정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개정했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징계위원회를 통한 징계가 불가능해지자 사측이 찾은 것이 사규상의 포상징계위 규정이다. 편집국장은 노조원이 아니기 때문에 포상징계위 규정을 적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사측의 입장이다. 그러나 포상징계위는 노조를 배제한 채 임원과 국·실장만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사측의 의도를 관철하기 쉽다.

<부산일보> 노조가 끈질기게 주장해온 재단의 사회 환원은 편집권의 독립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어왔다. 정치권은 물론 전 언론계의 초미 관심사로 부각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부산일보> 지분을 100% 소유한 정수재단의 원주인은 정수재단이 아닌 부산의 향토기업이었던 삼화고무(고 김지태씨 소유)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강제로 찬탈돼 지금의 <부산일보> 대주주에 이르고 있다. 박근혜 위원장이 한때 정수재단 이사장직을 맡은 것도 이런 인연 때문이다.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과 공정한 언론기능 수행을 위한 정수재단 사회 환원 요구가 내부에서 줄기차게 이어져 온 이유는 바로 신문사를 100% 소유한 재단 측에서 사장 선임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부산일보>가 박근혜 위원장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게 노조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의 시각이다.

이번 징계에 대해 이정호 편집국장은 "징계 자체가 부당하게 내려진 만큼 법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똑같은 사안을 놓고 계속 반복되는 재단 또는 사측과의 갈등 원인을 "'불의'와 한데 섞일 수 없는 '불편부당'"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편 업무질서 문란 등의 이유로 해고된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 위원장은 해고 5개월 만에 복직 결정을 받았다. 이 지부장은 지난해 11월 29일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고 이후 법원에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최근 조정 과정에서 노사에 복직을 제안했고 18일 노사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복직에 합의하게 됐다. 이날 조정에서는 또 노사가 쌍방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고발도 모두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총선 전 경영진과 재단 이사장 만난 후 징계... 무슨 말 오갔기에?

그럼에도 <부산일보> 노조는 "정수재단의 편집권 침탈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재단의 앵무새 역할을 자처하는 경영진들에 대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한다"는 방침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과 전국언론노조 등 단체들도 이번 <부산일보> 편집국장 징계를 그냥 묵과할 수 없는 중대 사안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한국기자협회 부산일보지부는 18일 이 국장의 징계가 내려지자마자 즉각 성명을 내어 "절차상 하자가 있는 사측의 징계가 무효"라고 전제하면서 "노조가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려는 때 또 다시 사태를 악화시키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성명은 "징계를 철회하고 대화와 타협의 자리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민언련도 19일 '부산일보는 이정호 편집국장의 재징계를 철회하라'란 성명에서 "<부산일보>사측은 이 국장을 징계하는 과정에서 지난 20여 년간 노동조합이 징계위원회에 참여해 온 절차를 무시하고 사측위원들로만 구성된 포상징계위를 열어 일방적으로 재징계 결정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며 "징계위 절차를 무시하고, 법원의 결정을 불복하는 몰상식한 행태를 보이며 이 국장을 또다시 징계한 것은 눈엣가시 같은 이 국장을 쫓아내고 편집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성명은 "더 나아가 편집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오는 12월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무관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공교롭게도 총선 전날인 지난 10일 <부산일보> 이명관 사장과 김진환 상무이사가 서울에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만났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성명은 이어 "박근혜 위원장도 더 이상 수수방관하지 말고 사회 환원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며 "그렇지 않다면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 문제는 끊임없이 박 위원장을 괴롭히는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20일 성명에서 박근혜 위원장을 겨냥했다. 언론노조는 성명에서 "총선 이후 드디어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자신의 대선 가도를 위해 언론장악 기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며 <부산일보>의 편집국장 징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 위원장도 "경영진이 최 이사장을 만나고 온 뒤 편집국장 징계에 나선 것은 정치적 배경이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노조를 배제한 채 사측 위원으로만 이뤄진 징계위를 여는 등 절차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회사의 편집국장 징계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제 박근혜 위원장이 답할 차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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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한다. 사주나 특정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신문의 편집권은 사주 개인의 것이 아니라 기자들의 것이며, 나아가 독자, 즉 국민의 것이다. 그런데도 <부산일보> 사측이 유독 편집국장에 대한 징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데는 정수재단 사회 환원 투쟁을 5개월째 진행 중인 구성원들을 더욱 옥죄고 중대 선거인 대선을 앞두고 야당에 유리한 기사를 더 이상 보도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짙게 배어 있다.

"정수재단과 더 이상 관련이 없다"는 박근혜 위원장의 해명과는 달리 여전히 <부산일보>에 대한 100% 경영권을 가진 정수재단이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 인사와 편집권에까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것만으로도 이를 잘 증명해준다.

정수재단과 신문사 사측이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 여세를 몰아 <부산일보> 편집권을 장악해 대선까지 이어가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다. 사측의 기사 편향성 문제제기는 정수재단의 압박으로부터 나온 것이란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편집국장 징계에 대한 하자가 있었다는 법원의 결정에도, 다른 꼼수를 동원해 재징계를 가하려는 것에서부터 의심을 사고 있다.

<부산일보> 구성원들이 나서 정수재단이 신문사 사장을 일방적으로 선임하는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나, 유력 대권 후보인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정수재단과의 완전한 분리를 위해 정수재단의 사회 환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공정성과 언론직필을 생명으로 해야 할 언론인으로서 당연한 사명이다.

그런데도 4·11 총선 이후 박 위원장은 분에 넘치는 승리의 포만감에 도취해 있는 듯하다. 언죽번죽 박 위원장은 총선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불법사찰방지법 제정을 비롯해 선거과정에서 제기됐던 문제들을 바로잡고, 다시는 국민의 삶과 관계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있다. 수 년째 이어오고 있는 <부산일보> 언론독립을 향한 구성원들의 처절한 절규와 몸부림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부산일보> 독자들과 많은 국민은 박근혜 위원장의 <부산일보> 사태에 대한 무책임한 방관을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제 박 위원장이 답할 차례다.


태그:#정수장학회, #박근혜,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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