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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탐식가들> 표지
 <조선의 탐식가들> 표지
ⓒ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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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미식 문화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수많은 이들이 맛집을 찾아다니며 그 맛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음식과 역사를 함께 알아가려 하거나 그 음식이 가진 영양학적 가치까지 함께 내다보려고 한다. 그러기에 이제 음식은 단순히 먹는다는 의미를 떠나서 교육이나 철학의 영역과도 맞닿아 있다 할 것이다.

게다가 음식은 사회의 변화도 더불어서 가져왔다. 몇 년 전만 해도 낯선 직업군이었던 음식칼럼니스트, 푸드코디네이터 같은 직업들이 보다 대중적으로 다가왔고, 이들을 통해 우리는 음식이 주는 인문학적 소양과 미적인 부분까지 감지하며 음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책은 그 같은 점에 주목해서 우리 역사 속의 음식문화와 그것을 즐겼던 미식가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조선시대의 미식가는 주로 사대부들이었다. 이들은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음식을 통해 세상을 보고, 시의 소재로 삼고, 토론의 주제로도 연결시켰다. <조선의 탐식가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정약용, 이익, 권균 같은 사대부들이 음식을 대하는 자세와 가치관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특히 여러 음식 중에서 두부를 다룬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지금 우리에게 두부는 매우 저렴한 음식 중 하나로 인식되는 데 비해서 조선시대에는 매우 귀한 음식이었다. 특히 두부의 전래와 발전이 궁궐을 기점으로 진행됐다는 점은 매우 이색적이고, 궁녀들이 능침사(陵寢寺) 승려에게 두부제조 기술을 배웠다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나 두부는 궁궐의 제사상에 오르는 음식이었기에 매우 극진히 다루었다는 것도 특이하다. 두부 제조에 사용되는 간수는 각종 오물이 뒤섞인 물이므로 제사상에 적합하지 않다 여겨서 사용을 금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진귀한 두부였기에 서민들이 먹기 힘든 음식이기도 했다. 콩을 갈고 콩물을 짜는 것이 힘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제조법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두부를 만들 때 요하는 섬세한 공정들, 이를테면 온도와 시간 그리고 불세기 조절법의 까다로움도 서민들이 두부를 가까이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기에 두부는 오로지 사대부의 음식이었고, 그들 서로가 친교를 다지기 위한 선물로서 기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시가집 권40에 보면 두부를 예찬하는 시가 나오는데, 고기 섭취를 끊은 그에게 한 승려가 두부를 선물하자 불가의 음식이란 의미로 '소순'이라 부르며 두부의 맛과 향을 예찬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또한 두부가 사대부가에 널리 퍼진 것도 이것을 제사상에 놓으면서부터다. '천자에게는 소를 올리고, 제후에는 돼지, 사대부에게는 두부를 올린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그간에 불교 음식이란 이미지를 벗고 두부는 유교 음식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른 것이다.

더 나아가 오미(五味)를 갖춘 음식으로 칭송되면서 맛이 부드럽고 좋으며, 은은한 향이 일품이고, 색과 광택과 모양이 아름답다는 것, 먹기에 편하다는 것은 두부가 가진 5덕으로 작용하여 그 인기의 원인이 되었다. 그저 부드러움과 영양 정도로만 두부를 표현하는 지금의 우리에 비해 향까지 거론한 선조의 시각이 매우 섬세하게 느껴진다.

권근(權近, 1352~1409)도 두부 애호가 중 하나였다. 그의 저서 양촌집(陽村集) 권10에는 두부의 빛깔과 간편함을 예찬한 시가 나오는데, 평생 소박하게 살았던 그가 두부를 즐길 수 있었던 연유는 왕실의 공상으로 받은 때문이 아닐까 학자들은 추정한다.

한편 다산 정약용이 오랜 유배를 끝내고 귀향해서 쓴 <아언각비(雅言覺非)>에도 두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잘못 쓰여진 말을 바로 잡는다'는 취지로 쓴 이 어원 연구서에서 "'두부'는 '숙유'를 의미하며, 원래 이름은 '백아순(白雅馴)'이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다산은 '두부'라는 단어 대신 '숙유'로 부르자 했지만 아무도 따르지 않았다. 그만큼 그 시대에 두부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이미 흔들림 없는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두부는 사대부들의 연회에서도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연포회'라 불리는 이 연회에서 사대부들은 꼬치에 꿴 두부를 닭고기 삶은 물에 천천히 끓여먹었다. 이 음식은 연포탕이라 불리었는데, 그 주재료인 두부를 구하려고 절간으로 달려가는 양반들이 속출하는 신풍속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만약 두부가 없다하면 승려들을 족쳐서라도 그것을 만들어내라 했으니 실로 '두부전쟁'이라 할 만하다. 요즘의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이곳저곳 맛집을 기웃거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심히 웃음이 나오는 구절이다.

한편 두부 애호가로서 이익도 빼놓을 수 없다. 소신파이면서 소식가로도 유명했던 그는 소박함의 상징인 명아주국을 예찬한 학자였다. 그런 그가 당시의 귀한 음식인 두부를 즐겼다는 것은 매우 이색적인 일이며, 백성을 살릴 음식으로서 두부를 예찬했다는 것도 특이하다. 콩죽, 콩장, 콩나물 등의 콩 음식이 가진 '질보다 양'이라는 의미를 반영해서, 두부는 가난한 백성을 배불리 먹일 음식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더 나아가 두부의 찌꺼기인 비지에도 애착을 가졌다.

이 시대에 우리는 왜 음식을 탐하는 것일까?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자가용이나 기차를 타고 전국을 누비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내는 집이 있다고 하면 몇 시간 씩 줄을 서서 그 한 그릇을 먹으려고 애를 쓰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더구나 그것이 장난스런 블로거가 만든 주관적인 맛집 순위 데이터라고 한들 관여치 않고 언론은 따라 하기 바쁘고, 이에 편승해서 소비자는 음식 먹는 것을 하나의 유행처럼 열심히 받아들인다.

굳이 두부와 관련한 사대부들의 풍류나 문화만이 아니라도 이제 음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대를 읽을 수 있는 화두가 되었다. 입에 달콤하지만 해로운 것보다는 조금 쓰고 거칠더라도 몸에 좋은 것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고, 한식의 세계화 같은 명제를 통해 세계화를 앞당기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더욱이 이 책에서 밝힌 두부는 웰빙이란 화두와 엮여서 더 각별하게 한국인을 사로잡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각종 사찰의 입구에서 손 두부는 하나의 관광 음식이 되었지만 왜 절에서 두부를 팔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문 것도 현실이다. 이제 이 책을 통해 두부의 가치를 다시금 새기며 이것을 바라보는 시각이 좀 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누렇게 익은 콩이 눈같이 하얀 물을 뿜어

펄펄 끓는 가마솥 불을 정성들여 거둔다

기름에 번지르르한 동이 뚜껑을 열고

옥같이 자른 것이 밥상에 가득 쌓인다.
- 권근의 <양촌집> 중에서 (두부 만드는 모습을 노래함)

덧붙이는 글 | <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씀, 따비 펴냄, 2012년 2월, 330쪽, 1만5000원



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지음, 따비(2012)


태그:#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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