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부터 날씨가 흐린 것이 비가 올려나 보다. 학회 때문에 서울 다녀온 딸과 하은이가 걱정되어 오늘은 일찍 집을 나섰다. 새벽의 거리는 고즈넉하다.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의  발걸음만이 바쁘게 움직인다.

    새벽 일찍 폐지를 줍거나 재활용품 수집에 바쁜 서민들의 일상을 보면  생기가 넘친다
▲ 폐지 수거 새벽 일찍 폐지를 줍거나 재활용품 수집에 바쁜 서민들의 일상을 보면 생기가 넘친다
ⓒ 문운주

관련사진보기


집에서 딸 집까지는 약 오분 거리다. 이 고을의 오랜 역사가 있는 농장다리가 있고 너머에는 굴다리가 보인다. 지금은 푸른 길로 가꾸어 산책로지만 서민의 애환과 슬픈 추억의 길이다.

여름에는푸른길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 푸른길 산책 여름에는푸른길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북새통을 이룬다
ⓒ 문운주

관련사진보기


언제나처럼 하은이는 출근준비에 여념이 없는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칭얼대고 있다. 이제 하은이와의 아이스브레이킹 시작이다.

"하은아! 아빠가 선물 뭐 사줬어? 하부지 선물은 뭐야?"

칭얼대던 하은의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장남감 의사 놀이 기구와 자동차, 굴착기 등을 손에 들고 자랑하기 시작한다.

"아빠가 사줬어"

아빠가 사준 장난감을 갖고 즐거워 한다.
▲ 의사놀이 아빠가 사준 장난감을 갖고 즐거워 한다.
ⓒ 문운주

관련사진보기


"하부지 선물은?" 하고 묻자 "홈플러스에서 사줄게"라고 대답한다. 서울에 갈 때 하은이 귀에 대고 아빠에게 "하부지 선물 사달라"하라고 반복 연습을 시킨 탓이다.

이렇게 가슴이 열리고 나면 하루가 편안하다. 기분이 좋은 하은이는 엄마에게 배웅 인사를 한다. "왼손, 오른손, 배꼽손. 다녀오세요!" 그리고 엄마와 뽀뽀를 하고 하부지와의 생활이 시작된다. 사과를 깎아서 나누어 먹고 아침밥을 먹인다. 아침밥은 이유식이다. 이유식은 하은이 돌 이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쌀을 한 종기 물에 담가 놓고 쇠고기 한 덩어리를 물에 끓인다. 그 사이에 당근 한 개, 고구마 한 개, 감자 한 개, 브로콜리 등을 채로 썰어 준비한다. 쇠고기 끓는 물에서는 기름기를 건저 낸다. 그리고 쌀과 채로 썬 부재료 등을 함께 넣어 5분간 끓인 뒤에 뚜껑을 덮어 놓았다가 두세 시간 지난 후 밀폐 용기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한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아빠가 사준 장남감과 블록으로 소꿉장난을 하고 논다. 같이 놀다 보니 조금씩 방법이 생긴다. 식탁 위에 밥을 차리고 김치와 국도 담는다. 하은이가 차려준 밥상으로 맛있게 식사를 한다. 장남감이 밥도 되고 수저도 되고 젓가락도 된다. 냠냠 맛있게 먹어 주면 된다.

오늘은 하은이가 빨리 싫증이 난 모양이다. 아빠는 서울에 있고 엄마는 일찍 출근한 탓에남들처럼 사랑받지 못하는데 대한 측은한 감정을 갖고 있기도 하다. 문화센터도 가고 어린이집도 다니는 하은이보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던 터였다.

"안아줘, 안아줘" 하고 보챈다. 훨씬 어렸을 때도 걷기를 좋아하던 하은이다. 이곳에서 이마트까지 걸어 다니던 하은이다. 그러던 하은이가 서울 동생 서현이를 보고부터 달라졌다. "안아줘, 안아줘"가 습관적이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측은한 감정을 갖고 있는 터라 안아주면 어쩌랴 싶어 안아주곤 했다. 그리고 우유병을 들고 무릎에 뉘어 먹여 주라고 한다. 하은이는 아이가 아닌데 하면 "아니야, 하은이도 아이야"하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은 뽀로로 동영상을 보여 달라고 보챈다. 발을 구르고 뒤로 넘어진다. 뽀로로는 좋은 동영상이다. 교육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상들은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마약과도 같아서 시신경에 연결되어 어른들도 눈을 떼지 못한다. 따라서 TV나 컴퓨터 등을 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발을 구르고 소리 지른다고 보여줄 수는 없다.

하은이는 발을 동동 구르고 방바닥을 발로 찬다. 아래층에 미안한 생각으로 달래곤 했는데 오늘은 냉정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그대로 못 본 척 하고 책을 읽은 척 했다. 조금 울더라도 달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참을 울더니 "하부지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하고 통곡을 한다.

손을 내미니 한걸음에 달려와 품에 안긴다. 가슴속으로 파고 들면서 "하부지 미안해" 그리고 과자 하나를 입에 너 주며 말한다.

"천천히 먹어."

손녀를 돌보는 것도 노후 즐거움중의 하나다.
▲ 나비야 놀자 손녀를 돌보는 것도 노후 즐거움중의 하나다.
ⓒ 문운주

관련사진보기



태그:#퇴직후손녀돌보기, #노후생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