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른새벽 루앙프라방의 거리는 '딱밧수행'으로 넘실거린다
▲ 새벽 풍경 이른새벽 루앙프라방의 거리는 '딱밧수행'으로 넘실거린다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루앙프라방은 라오스의 고도(古都)다. 도시는 고풍스러움으로 그윽하면서도 세계에서 몰려든 다양한 피부색의 여행자들로 인해 북적이는 자유로움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것이 여행학교의 아이들을 들뜨게 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이국의 도시에 대한 어떠한 두려움도 주저함도 없어 보였다. 낯선 골목길에서도 한국에서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녔고 또 그러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에도 개의치 않았다. 길을 가다가도 옷가게든 여행사든 불쑥불쑥 드나들었고, 짝을 지어 늦은 밤 야시장을 겁도 없이 돌아다녔다.

'오래된 여행자'가 보기에도 과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방콕에서부터 기차를 17시간, 버스를 7시간, 슬로우 보트를 장장 1박2일 동안이나 타고 이곳 루앙프라방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아이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 험난한 여정에서 '살아남았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도착한 첫날 저녁에 이 도시에서 머무는 3일 동안 쓸 돈을 아이들에게 한꺼번에 나누어 주었다. 그것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모둠별로가 아니라 열네 살 막내들까지 포함해서 각자 개개인이 관리하도록 했다. 그만큼 그들이 감당할 책임도 자유도 늘어난 것이다.

그러고는 다음날 밤에 조장들만 잠깐 모이기로 하고 전체적으로는 교외로 자전거 투어를 떠나는 이틀 후 아침에야 만나기로 함으로써, 우리 부부의 자유도 동시에 늘어난 셈이었다.

...
▲ 한낮의 루앙프라방 거리 ...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
▲ 루앙프라방의 사원 & 구름하늘 ..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그들의 사진을 잊지 않고 건네다

그렇게 오랜만에 아이들로부터 자유(?)를 거머쥔 아내와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고, 거리로 나섰다. 익숙한 골목을 돌고 돌아 지난번 여행에서 묵었었던 게스트하우스에 들렀다. 미소가 아름다운 그곳 여주인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매일 새벽이면 게스트하우스 앞 골목에서 대나무밥통을 놓고 앉아 '딱밧'을 하던 그녀의 사진을 한국에서 인화해온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리를 비우고 그녀와 똑같이 생긴 언니가 프런트를 지키고 있었다. 언니는 사진을 보고는 동생만큼이나 아름다운 함박웃음을 짓더니, 동생은 오후에 온다고 몇 번이나 일러주었다.

다시 발걸음을 시장으로 옮겼다. 또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사진에는 한 꼬마가 손수레 가득 바게트 빵을 싣고서 웃고 서 있다. 지난여름 우리부부는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나흘 동안 매일 아침 그 꼬마로부터 구수하고 따뜻한 빵을 사 먹었다.

하지만 아침시간이 지난 관계로 그 아이를 찾을 수가 없어, 장터에서 바나나껍질에 코코아 밥을 싸서 팔고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며 꼬마의 행방을 물었다. 그녀는 사진을 옆자리의 할머니께 보여 드리면서 서로 환하게 웃다가 우리 부부에게도 그 웃음을 나누어준다.

사원 안과 밖에서 자유로움을 즐기는 여행자
▲ 맨발의 여행자 사원 안과 밖에서 자유로움을 즐기는 여행자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화려한 금장식이 아름답다
▲ 와트 시엥 통의 여행자 화려한 금장식이 아름답다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그러고는 뭐라고 설명을 하는 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결국 아주머니는 사진을 주머니에 넣는 시늉을 하고 눈을 지그시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진은 꼬마에게 잘 전해주겠으니 걱정 말라는 뜻이다.

지난여름 여행자부부에게 고소한 빵과 함께 단순하면서도 평화로운 삶의 냄새를 가득 선물했던 그 아이를 또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그가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아가면서도 사진 속 미소처럼 늘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전해지면 좋겠다.  

그 길로 시장을 나와 박물관과 왕궁 쪽으로 향했다. 아내도 나도 새로 생긴 버릇처럼 자꾸만 길을 걸으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혹시라도 여행학교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해서다. 녀석들은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한 모둠 정도는 만날 법도 한데 흔적도 없다.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는 건 아닐 테지….

쓸 데 없는 생각을 털어버리고자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지난 여행 때에 가보지 못했던 푸시 산을 오르기로 한다. 고양이 한 마리가 사뿐사뿐 계단을 오르며 우리 앞길을 안내한다.

푸시 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사원
▲ 타트 촘 푸시 푸시 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사원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은 어디를 돌고 있을까?'

정상에는 작은 사원이 있고, 정성을 드려 기도를 하는 젊은 남녀 한 쌍이 있다. 그 간절함에 이끌려 한참을 지켜보다가, 사원을 돌아가며 발아래로 펼쳐진 루앙프라방의 전경을 내려 보았다.

순한 눈빛으로 길게 흐르는 메콩 강과 그 강을 따라 늘어선 골목들과 숲과 새들과 새처럼 날개를 퍼덕이는 사원들이, 참 아름다웠다. 가이드북이나 루앙프라방을 알리는 홍보사진 속에서 흔히 보고는 했던 풍경이 거기에 놓여있었다. 가만히 그 풍경 속을 들여다보는데, 아내가 말한다. 

"아이들이 저 아래를 돌아다니고 있겠지?"

...
▲ 푸시 산에서 내려다 본 루앙프라방 ...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
▲ 푸시 산에서 내려다 본 루앙프라방2 ..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 아래 어디쯤에서 땀을 흘리며 투덜대고 걷는 녀석이 있을 테고,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녀석도 있을 테다. 또 그러다가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이나 예쁜 풍경 하나에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좋아하기도 할 것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웃음이 맺힌다.

그렇게 하루의 시간이 갔다. 하루 종일 아이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던 우리 부부는 그들만의 하루가 궁금했다.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이야기가 생겨났을까. 해가 저물고 조장들이 모이기로 한 'Big Tree Cafe'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자니, 윤미와 희경이가 먼저 나타났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둘이서 번갈아가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쏟아낸다.

"이모, 삼촌, 우리 조는요, 오늘 코끼리 탔어요!"
"대빵 재미있었어요!"
"비용이 좀 비쌌지만, 그래도 많이 깎았어요."
"그런데 망했어요. 우리 내일부터 굶어야 돼요."
"뭐, 까짓 거 그래도 괜찮아요."

푸시 산 정상에서
▲ 타트 촘 푸시 사원에서 바라본 메콩강 푸시 산 정상에서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이틀 치의 비용을 코끼리 투어에 써버리는 과감함이라니!

참 대단하다. 녀석들은 어디에서 코끼리 투어를 찾아낸 걸까. 우리부부도 루앙프라방에 그런 투어가 있는지 몰랐던 일이다.

속사포처럼 쏟아놓는 두 아이의 무용담을 들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녀석들이 여행을 즐기고 있구나'하는 생각때문일 것이다. 원래부터 밝은 친구들이었지만, 이제 어깻죽지 위로 날개 하나를 더 단 것처럼 맘껏 비상하려고 하고 있다.

사흘 치의 비용 중에서 자그마치 이틀 치에 해당하는 밥값을 털어 코끼리 투어를 해버리는 그 과감함이라니! 그 대가로 나머지 이틀 동안 빵으로만 때우게 생겼는데도 그저 좋은 모양이다. 그러고도 처음 타 본 코끼리의 등짝과 폭포수 같던 울음소리에 대해서, 또 자기들 스스로가 내린 용감한 결정에 대해서 자랑하기에 바쁘다. 아내와 나는 그들의 결정을 기쁘게 인정해주기로 한다. 

"그래 그것도 여행의 한 방법이지. 다만 책임이 따르는 법. 알지?"

그날은 여행을 떠나온 지 10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제 아이들은 자신감이 생기면서 점점 더 과감해지고 있었다. 우리부부가 예상한 선들을 훌쩍 넘어서는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말하지 않아도 숙소부터 물색하는 것도 그렇고, 겁도 없이 야시장을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밥 대신에 코끼리를 선택한 것도 그렇다.  

..
▲ 빅트리카페에서 바라본 메콩강 ..
ⓒ 양학용

관련사진보기


조금 늦게 하영이과 상훈이가 왔다. 두 모둠은 발바닥에 땀나게 워킹투어를 한 모양이다. 왕궁과 대나무 다리를 넘어 작은 섬에 다녀온 일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런데 하영이네 모둠의 나운이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전날 한국음식을 좀 많이 먹는다 했더니, 그것이 체한 것이다.

그들의 게스트하우스로 가보았다. 게스트하우스 앞 골목에는 그이들 모둠만이 아니라, 다른 모둠의 아이들까지 다 모여 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숙소에 누워 쉬었던 나운이는 이제 괜찮다고 했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그래서일까. 하루 사이에 나운이가 훌쩍 커버린 얼굴이다. 일삼아 나운이의 방을 들여다보고 나오는데, 웬일인지 다른 아이들도 하루 만에 조금씩 더 큰 것 같은 얼굴들이다. 왜일까.    

<아이들의 일기>

"처음으로 코끼리를 타보았다. 큰 맘 먹고 15만 낍으로 30분 뚝뚝이를 타고 10분 정도 보트를 탄 다음 코끼리를 타고 산도 둘러보았다. 코끼리를 처음 탈 때는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 계속 타다보니 옛날 인도에 코끼리 타고 전쟁하던 그런 느낌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코끼리가 뱀을 만났을 때이다. TV로 보던 코끼리 울음소리를 듣다니… 소름이 돋았다. 코끼리 콧바람도 맞아보고 먹이도 줘보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이었다. 다만 단점이라면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내일 굶을지도…" -성호(열일곱 살)

"이번 계획이 성공적이라는 것에 뿌듯했다. 돌아와 한국인이 하는 식당 BIG TREE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고 왔는데 이번 돈이 모레 저녁까지 써야 됨을 알았다. (중략) 그야말로 망함. 내일 세끼를 석류 세알씩으로 먹겠다는 다짐을 하며 희경이와 엄청 웃으며 돌아왔다." -윤미(열여덟 살)

"박물관도 가고 사원도 가기도 하고 지도도 직접 보고 찾아가기도 하고 볼 것도 많아서 재밌었다. (중략) 숙소가 야시장이랑 가까워서 막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35달러를 281,000낍으로 환전도 해서 5시간 정도를 돌아다녔는데, 지름신이 내렸는지 이쁜 게 너무 많아서 충동구매도 했다. ♡처음으로 여기 와서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동생, 엄마 선물을 샀는데 내일은 아빠, 언니 선물을 사러갈 것이다! >_< 아!!! 그리고 오늘부터 각자 가계부를 쓰는데 돈이 딱 알맞을 때마다 너무 뿌듯했다♡" - 서희(열네 살)

덧붙이는 글 | 본 연재 기사는 <제민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기사내용은 김향미 & 양학용 여행작가 부부가 지난 겨울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명의 청소년과 2명의 대학생과 함께 라오스로 한 달 동안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저서로는 967일 동안의 세계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묶은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예담)와 라오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 등이 있습니다.



태그:#라오스여행학교, #루앙프라방, #시속4킬로미터의행복, #길은사람사이로흐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