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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미술관을 세우신 정조문 선생님입니다. 돌아가시기 1년 전 고려미술관 개관 당시 모습입니다.
 고려미술관을 세우신 정조문 선생님입니다. 돌아가시기 1년 전 고려미술관 개관 당시 모습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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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금요일 오전 교토시 북쪽 기타구에 있는 고려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원인은 화요일 <한겨레>에 난 기사 때문입니다. 지난 8일 <한겨레> 인터넷판에는 고려 미술관에서 한반도 81년 전 모습이 동영상으로 상영되고 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이 기사를 본 아는 사람이 직접 가서 확인해보고 알려달라는 부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고려미술관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고, 가까운 미술관에서 고려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화각장을 빌려서 전시한 것을 본적이 있어서 '언젠가 가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미뤄 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부탁 때문에 그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고려미술관에서는 4월 1일부터 6월 3일까지 아리미츠 교이치 교수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고려미술관을 세운 분은 정조문 선생님

고려미술관 정문입니다. 문 양쪽에 석상이 서있습니다. 석상의 원래 목적대로 오래도록 잘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고려미술관 정문입니다. 문 양쪽에 석상이 서있습니다. 석상의 원래 목적대로 오래도록 잘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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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미술관은 1988년 10월 25일 문을 열었습니다. 고려미술관을 세우신 분은 정조문(1918~1989) 선생님입니다. 정 선생님은 1918년 경북 예천군 풍양면 낙동강 강가 마을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일본에 건너왔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국에도 돌아갈 수 없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학교 공부는 초등학교 4학년에서 6학년까지 3년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빠징코 사업과 식당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이후 학교를 세우는 등 후세 교육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철제 여래좌상입니다. 뒤에 보이는 탁본은 김유신 장군 무덤 둘레 12지 신상 가운데 용과 뱀입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철제 여래좌상입니다. 뒤에 보이는 탁본은 김유신 장군 무덤 둘레 12지 신상 가운데 용과 뱀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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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생님이 37세 되던 어느 날, 고물상에서 우연히 조선 백자 항아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처음 백자 항아리를 본 순간, 이것은 조선 것이라는 영감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국이 하나가 되면 이것을 들고 한반도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백자를 샀다고 합니다.

이후 정 선생님은 한반도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한반도 관련 골동품을 수집했습니다. 정 선생님은 일본에서 자라 우리 문화를 알지 못하는 후세들에게 우리 문화를 느끼게 하고 알려주기 위한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일본인 가운데 한반도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친교를 하면서 지식을 키웠습니다.

고려미술관 2층 한쪽에 조선시대 선비 방을 재연해 놓았습니다.
 고려미술관 2층 한쪽에 조선시대 선비 방을 재연해 놓았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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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문 선생님이 수집한 서화, 가구, 도자기, 석물 등이 1700점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1988년 자신이 살던 집을 헐고 고려미술관을 세웠습니다. 더 많은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를 느끼게 하고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정조문 선생님은 끝내 평생 그리던 조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미술관이 문을 연 다음 해인 1989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정조문 선생님의 노력으로 세워진 고려미술관은 한반도 밖에 있는 유일한 한반도 전용미술관으로 소장품 역시 국보급 미술품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미술품들은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유명 미술관에 대여·전시되기도 합니다.

일본 패망 후에도 한국에 남아 있던 일본인

고려 시대 범종입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고려시대 것입니다. 맨 가운데 범종에는 1225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려 시대 범종입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고려시대 것입니다. 맨 가운데 범종에는 1225년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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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문 선생님과 뜻을 같이하면서 고려미술관연구소 소장으로 일하셨던 아리미츠(有光 敎一) 교수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리미츠 교수님은 1931년 교토대학 대학원생 신분으로 조선총독부 박물관 주임으로 경주에 부임해 한반도의 여러 유적 발굴에 참여하게 됩니다.

1945년 8월 해방과 더불어 모든 일본인이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단 한 분 일본으로 가지 않고 초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신 김재원 선생님과 더불어 경주 호우총 고분을 발굴조사 했던 분입니다.  

12각 개다리 소반입니다. 소반은 밥상이라고도 합니다. 밥상이 많이 사용될 때는 해주반, 나주반, 통영반이 유명했습니다.
 12각 개다리 소반입니다. 소반은 밥상이라고도 합니다. 밥상이 많이 사용될 때는 해주반, 나주반, 통영반이 유명했습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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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미츠 교수님은 1946년 일본으로 돌아와 교토대학 교수로 부임하셨습니다. 그 후 아리미츠 선생님이 한반도 발굴 과정에서 수집한 고고유물은 대부분 교토대학 박물관에 기증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리미츠 교수님이 소장하고 있던 일 만 권이 넘는 장서와 일부 유물을 고려미술관에 기증하셨습니다.

'식민사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민족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왜곡된 역사 인식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역사학자들이 벌인 치졸한 짓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당시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역사·민속·지리들을 현지 조사해 기초자료로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조선총독부에서 만들었거나 그때 일본 사람들이 쓴 기록은 섣불리 인용하기가 망설여집니다.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 조각입니다. 아리미츠 교수님은 한반도에서 수집하신 빗살무늬토기 조각을 수집 정리하여 1962년 조선즐목문토기의 연구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부산 동삼동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 조각입니다. 아리미츠 교수님은 한반도에서 수집하신 빗살무늬토기 조각을 수집 정리하여 1962년 조선즐목문토기의 연구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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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은 일본뿐만 아니고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 되어있던 영국 등에서도 있었습니다.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영국 선교사들이 자신이 현지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글로 적어서 영국에 보내고 그것을 편집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 프레이저가 쓴 <황금의 가지>입니다.

아리미츠 교수님은 조선총독부 직원으로 근무하면서도 식민사관에 사로잡히지 않고 한반도의 고대사를 내 손으로 정리해보겠다는 학자의 양심으로 고고학 발굴조사를 하고. 조사보고서를 작성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리미츠 교수님의 이러한 노력은 지금 그대로 국립 중앙박물관으로 계승되고 있다고 합니다. 

80여 년 전 조선이 눈앞에 펼쳐지네

사진 왼쪽은 고려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다뉴뇌광문경(多紐雷光文鏡)이고 오른쪽은 우리나라 국보 141호로 지정된 다뉴세문경입니다. 한반도 여러 곳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은 다뉴라고 하여 청동거울 뒤에 고리가 두 개 달려있고 기하학적 무늬가 많습니다. 중국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은 고리가 한 개이고 풍경이나 동물 무늬가 많습니다. 다뉴세문경의 성분은 구리가 62%, 주석이 32% 납이 5%라고 합니다.
 사진 왼쪽은 고려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다뉴뇌광문경(多紐雷光文鏡)이고 오른쪽은 우리나라 국보 141호로 지정된 다뉴세문경입니다. 한반도 여러 곳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은 다뉴라고 하여 청동거울 뒤에 고리가 두 개 달려있고 기하학적 무늬가 많습니다. 중국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은 고리가 한 개이고 풍경이나 동물 무늬가 많습니다. 다뉴세문경의 성분은 구리가 62%, 주석이 32% 납이 5%라고 합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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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3세의 나이로 운명하신 아리미츠 교수님을 추모하는 특별전이 지금 고려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아리미츠 교수님이 한반도에 처음 부임한 때가 1931년입니다. 그런데 마침 1931년 찍은 영상자료가 교토에 있어서 그것도 같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영상물은 1931년 교토후리츠(京都府立)제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한반도와 만주 등을 둘러보는 수학여행 과정을 찍은 것입니다. 이 영상물은 교토를 출발해서 부산, 경주, 서울, 평양, 만주 등 여행 전 과정을 찍은 40분 짜리 기록입니다. 이번에 상영되고 있는 것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편집된 15분 짜리 동영상입니다.

1931년 교토후리츠제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경주 수학여행 때 찍은 동영상 일부입니다.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사이에 올라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른쪽으로 다보탑 일부가 보입니다.
 1931년 교토후리츠제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경주 수학여행 때 찍은 동영상 일부입니다.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사이에 올라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른쪽으로 다보탑 일부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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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후리츠제일여자고등학교는 1872년 4월 일본에 처음 생긴 여자 학교입니다. 처음에는 신영학급급여홍장(新英學級及女紅場)이었으나 1904년 교토후리츠제일여자고등학교로 학교 이름이 바뀌었고, 다시 1948년에는 교토오키(京都鴨沂)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뒤 남녀공학이 됐습니다.

1931년 찍은 영상물은 수학여행을 하는 학생들이 방문하는 여러 곳을 찍은 흑백 동영상입니다. 이번에 보여주는 부분은 서울과 평양의 여러 명승지와 유적 그리고 경주의 포석정, 석굴암, 첨성대, 분황사, 김유신 무덤 등 명승지와 시장 풍경, 이동하면서 본 소 쟁기질하는 모습, 시장풍경 등입니다. 당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족의 얼을 되새기는 마당, 고려미술관

1931년 교토후리츠제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경주 수학여행 때 찍은 동영상 일부입니다. 멀리 석굴암 입구가 보입니다. 지금은 석굴암 입구에 전각을 지어서 석굴암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1931년 교토후리츠제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경주 수학여행 때 찍은 동영상 일부입니다. 멀리 석굴암 입구가 보입니다. 지금은 석굴암 입구에 전각을 지어서 석굴암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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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인 정조문 선생님의 불우한 환경, 고난 극복의 일생, 민족과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오늘 고려미술관을 만든 원동력이 됐습니다. 처음 후손들에게 우리 민족의 정기를 심어주고 알리기 위해서 만든 고려미술관은 우리 민족보다도 일본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는 듯합니다.

최근 나라 밖에 우리문화를 알리고, 선전하기 위해서 정부나 기업들이 외국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우리 문화 방을 만드는데 많은 노력과 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조문 선생님은 이미 60여 년 전 우리 도자기를 보고 우리 민족의 얼을 발견하고 그것을 후손들에게 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수집했습니다. 앞으로 고려미술관이 더욱 발전하고 나라 안팎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민족의 얼을 되새기는 좋은 마당이 되면 좋겠습니다.

고려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조선 백자입니다. 맨 왼쪽 백자 항아리가 고려미술관 창립자이신 정조문 선생님이 처음 구입하신 작품입니다.
 고려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조선 백자입니다. 맨 왼쪽 백자 항아리가 고려미술관 창립자이신 정조문 선생님이 처음 구입하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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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미술관 이층 베란다에 전시되어 있는 맷돌입니다.
 고려미술관 이층 베란다에 전시되어 있는 맷돌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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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고려미술관 가는 법 : 교토역 앞에서 9번 버스를 타고 40 분 쯤 가서 가모가와(加茂川)중학교 앞에서 내리면 바로 옆에 있습니다.
박현국(朴炫國) 기자는 류코쿠(Ryukoku, 龍谷) 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를 작성하는 데 고려미술관연구소 연구원이신 이수혜 선생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태그:#고려미술관, #정조문 선생님, #다뉴뇌광문경, #고려범종, #아리미츠 교이치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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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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