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로봇 교육전문가, 사단법인 대한로봇교육문화협회 강원지회장 김정수씨.
원주시 명륜동에 위치한 따뚜공연장은 지역을 대표하는 장소다. 연중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이곳에서 치러지고, 주변에 체육시설이 함께 있어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봄꽃이 만발했던 지난 4월 마지막 주말에는 2012 원주로봇대축제가 열려 관심을 모았다. 축제의 일환으로 제4회 청소년 로봇경진대회가 따뚜공연장 실내에서 전국에서 모인 유아·초·중학생 및 시민 등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하루 동안 다양한 종목의 경기로 치러졌다.
이날 대회는 지역민에게 로봇의 무한한 개발 가능성을 인식시키고, 창조적인 도전 정신을 기를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개최했다. 원주시가 주최하고, (사)대한로봇교육문화협회 강원지회와 지능로봇교육연구회 원주시지부 공동주관으로 진행됐다. 창작부문을 비롯해 프로그램 라인트레이싱, 폭탄제거, 서바이벌 로봇 등 모두 8개 부문에서 300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해 열띤 경연을 벌였으며 이중 65명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날 대회에는 주말을 맞아 가족단위의 참가자가 많았으며, 미래 주역인 어린이의 로봇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원주에서 로봇 경진대회가 열린 것은 올해로 네 번째이지만, 시에서 주최하여 대회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까지는 적지 않은 사람의 수고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바로 이번 대회의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김정수씨(46)로, 대회를 주관했던 사단법인 대한로봇교육문화협회 강원지회장이다.
김정수씨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준비하고 치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아 진행하여 로봇전문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시작하고 끝나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로봇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이가 특히 원주지역에서는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원주시는 2010년에 특허청에서 지정한 지식재산도시로 선정되어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로봇관련 사업은 타 지역에 비해 낙후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로봇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고, 지식재산도시로의 면모를 갖추는데 기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해, 로봇대축제에 걸 맞는 행사들을 다양하게 준비할 예정입니다." 양양 출신으로 지난 2011년 원주로 이주해 온 김정수씨는 국내 로봇 1세대로 10여 년 동안 자작로봇 교육전문가로 활동해 오고 있다. 로봇은 국가 신성장동력산업의 하나이자 미래의 주요한 키워드다. 때문에 로봇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로봇 교육도 활성화되었지만, 로봇 교육은 조립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공교육 현장에서 방과 후 교육을 통해 로봇교육이 활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특성화 고에서조차 조립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로봇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교육 현장에서도 로봇교육을 하고 있는 업체는 많지만 모두 비슷한 수준. 때문에 김씨가 하고 있는 자작로봇 교육은 그 중요성이 클 수밖에 없다.
기존의 로봇교육은 미리 만들어진 구조물에 전자회로를 조립하고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실행시키는 단순 조립과정이라면, 김씨가 하고 있는 교육과정은 차원이 다르다. 알루미늄 판으로 직접 구조물을 만들고 여러 가지 전자부품을 이용해 전자회로를 만든다. 그런 뒤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실행시켜 로봇의 움직임을 제어한다. 이는 단순조립 수준에서 벗어나 로봇의 기초 원리부터 제작과정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놀라운 것은 로봇을 전공하지 않은 김씨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련의 과정을 독학으로 이뤄냈다는 사실이다. 컴퓨터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학원을 경영해 오긴 했지만 로봇에 대한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로봇에 문외한이었던 그가 지금의 로봇 전문가가 되기까지 쏟았던 남다른 열정과 애정은 눈물겹다. 아는 것은 컴퓨터밖에 없던 그가 로봇교육전문가로서 우뚝 서기까지 그 원동력은 어린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김씨가 어릴 때 철공소를 운영하셨던 부친의 영향이 매우 크다. 기술습득을 강조하셨던 부친의 뜻에 의해 많은 기계들과 가까이 지냈던 김씨는 어릴 때부터 철공소를 놀이터 삼아 지냈다. 철공소는 당시 7살이었던 그에게 유일한 놀이터이자,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주는 신기한 장소였다. 육남매 중 유독 아버지를 따랐던 김씨는 철공소에서 다양한 기계를 만지며 놀았고, 부친의 작업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기계와 친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저를 많이 아끼셨던 터라 늘 데리고 다니셨어요. 덕분에 아버지 일을 도와 드리며, 자연스럽게 각종 기계들을 만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요. 아버지께선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자식들에게 한 가지 이상 기술을 익히라고 말씀하셨지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스스로 원리를 익힐 수 있었답니다."
이렇듯, 컴퓨터를 전공한 김씨가 기계와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화가가 꿈이었지만,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이 취미였던 그에게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컴퓨터교육을 해왔던 그가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한 기회의 일이다.
학원장들의 모임인 전국IT커리연구회에서 조립용 로봇에 대한 세미나를 듣게 되었고, 마침 새로운 돌파구를 찾던 김씨에게 로봇은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다가왔다.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로봇에 빠져들었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교구를 구입해 직접 배워 나갔다. 그러나 조립로봇으로는 체계적인 교육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로봇의 기본 원리부터 배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로봇을 배우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학문을 섭렵해야 하는데, 제가 아는 것이라곤 컴퓨터밖에 없었어요. 기계나 전자공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지요."수소문 끝에 만나게 된 사람이 울산에 거주하는 이재창씨(50)다. 이재창씨는 울산공업고등학교의 교사로, 2007년 교육분야에서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었다. 이씨는 지능형 로봇과 기반기술인 자동제어 기술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교사로서 관련 분야를 연구하고, 로봇과 자동제어에 관련된 교재를 직접 저술하여 전문계 고교 학생들의 교육기반을 마련한 주인공이다. 김씨는 이교사로부터 로봇의 미래에 대해 강연을 듣고 로봇에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고.
"로봇을 구성하는 전자회로를 처음 배울 때 저항의 역할이 무엇인지, 옴의 법칙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참 답답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가장 기초적인 내용이었는데…. 이재창 선생님께서 저술하신 책을 보며 전자회로에 대해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김씨는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험에 몰두했다. 수백 수천 번의 실험을 거듭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며 모르는 것이 생길 때마다 이교사와 통화하며 배워나갔다. 2년이 넘도록 매일 두 시간 이상씩 전화통화에 매달린 결과, 전자회로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경동대학의 이태희 교수도 잊을 수 없는 은인이다.
"교수님은 자작 로봇에 박차를 가해주신 분이십니다. 제가 어려움에 빠져 있을 때면 언제든 기꺼이 달려와 도와주셨지요. 로봇을 전공하신 분이 가까이 계셔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로봇에 대한 김씨의 열정에 반해 그를 도와주는 지인들이 많았다. 그의 열정은 그를 통해 배출된 학생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씨에게서 로봇을 배운 많은 학생들이 각종 로봇경진대회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였으며, 대덕대를 비롯한 관련대학과 관련 학과에 진학해 로봇전문가로서 산업현장에서 제몫을 다하고 있다.
10여 년 동안 로봇연구와 교육에만 매달리면서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돈버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비까지 털어 로봇연구에만 매달리는 남편을 김씨의 아내는 늘 말없이 응원해 주었다.
"가장으로 제대로 된 월급을 가져다주지 못한 때도 많았어요.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 할 것 같군요." 로봇 교육을 하면서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지금도 떠올리면 아찔하기만 한 일이 있다. 시골 작은 학교에 있는 학생들을 가르쳐 대회에 출전한 일이 있었는데 대회당일, 자동차 와이퍼가 망가지는 바람에 억수처럼 쏟아지는 폭우 속을, 창문을 열고 대회장까지 이동한 적이 있었다.
"휴일이라 자동차를 수리할 수 있는 곳이 없어 도로가 보이지 않는 상태로 운전을 해야 했지요. 모든 장비가 차에 실려 있던 터라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차가 없는 새벽시간이라 천만다행이었지….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네요."이처럼 김씨는 학생들을 위해서 자신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김씨는 "로봇 제작에 재능이 있는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여 로봇산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재목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또 초보자가 보더라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로봇 교재를 집필하는 것이 소망이라며, 마땅한 교재가 없어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배우는 학생들이 겪지 않도록 해 주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로봇 제작 교육은 전자회로, 기계과학, 기구학, 디자인,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학문이 만나서 이루어진 종합학문의 결정체라고 생각합니다. 로봇 시대를 살아갈 어린 학생들이 로봇에 관심을 갖고 탐구하여 국내 로봇산업을 발전시켜나갔으면 좋겠습니다."로봇에 대한 무한한 애착을 가진 그를 바라보며 미소가 지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로봇의 매력에 빠져 매일 밤을 새우며 실험하고 연구했던 그의 열정이, 미래 세대를 위한 밑거름으로 그 역할에 만족한다는 소박한 바람이, 우리 로봇산업에 보이지 않는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