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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강원도 춘천시에는 일단의 '몽상가'들이 있었다. 꿈꾸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그들, 어느 날 춘천시를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가꾸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꿈은 춘천시를 '스위스의 제네바나 독일의 프라이부르그, 중국의 리장과 같은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건설하는 것이다. 대개의 몽상가들이 그렇듯이 그들 또한 그 꿈을 청사진으로 만들면서 실현 가능성과 사업 타당성 같은 건 그렇게 면밀하게 따져 보지 않았다.

그냥 꿈만 꾸다 말았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들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 지나치게 무리한 욕심을 부렸다. 수많은 반대를 뿌리치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 박차를 가했다. 그래서 그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들이 꾼 꿈은 말이 좋아 몽상이지, 사실은 망상에 가까운 발상이었다. 현실은 시민들의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들이 그 모진 꿈을 꾸고 난 대가가 무려 61억 원이다.

그 61억 원도 그 전에 멈췄으니 망정이지, 그보다 더 멀리 나갔다면 지금쯤 어떤 결과로 돌아왔을지 알 수 없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보다 앞서 그들 몽상가들이 중심이 돼 추진한 또 다른 사업인 '알펜시아 리조트 조성사업'은 현재 1조 원에 육박하는 손실을 낳고 있다. 그 부실덩어리를 해결하지 못해 매일 1억1100만 원이라는 억대 이자를 물어야 하는 현실에 봉착해 있다. 빚이 빚을 낳는 바람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춘천시를 세계적인 명품 도시로 만들겠다던 꿈은 그 규모가 알펜시아 리조트 조성사업을 훨씬 능가한다. 예산만 3, 4배다. 만약에 그 어리석은 몽상가들이 도중에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그 꿈같은 사업을 계속해서 밀어붙였다면, 그 손실 또한 알펜시아 리조트 조성사업을 가볍게 뛰어넘었을 것이다. 비록 꿈은 무산됐지만, 그 꿈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는 여전히 해결이 나지 않은 상태다. 이 원대한 꿈이 한낱 일장춘몽으로 끝나는 과정을 되짚어 봤다.

G5 프로젝트 개발 지역 전체 조감도.
 G5 프로젝트 개발 지역 전체 조감도.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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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명품도시, 세계적인 친수공간, 세계적인 몽상

강원도와 춘천시 당국은 2005년 2월 25일 "춘천시를 세계적인 명품도시로 가꾸기 위해 '춘천 G5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발표한다. 사업시행 주체는 강원도개발공사로 정했다. 여기서 'G5'의 'G'는 'Geneva of Asia' 'Great Chuncheon' 'Green Chuncheon'을 상징하고 '5'는 사업 대상 부지로 정해진 '삼천동' '근화동' '중도' '미군기지인 캠프 페이지' '동내면' 등 5개 지역을 뜻한다. 그러니까 G5 프로젝트는 춘천시 내 5개 지역을 개발해 춘천시를 제네바와 같은 자연친화형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당시 강원도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동내면에는 357만㎡ 부지에 주택규모 1만3천호에 달하는 '미래형 신도시'를 개발하고, 중도에는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월드클래스가든'을 조성하는 한편, 나머지 지역에는 세계적인 친환경 친수공간인 '워터프런트'와 '근화동생태공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때만 해도 강원도는 G5 프로젝트가 완료되는 시점인 2010년 이후에는 지역에 10조 원의 경제 파급효과와 연간 1만4천 명을 고용하는 효과가 발생하는 한편, 동내면에 인구 3만 명 이상이 늘어나는 동시에 중도에만 연간 관광객이 200만 명 이상이 유입되는 효과 등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형적인 장밋빛 청사진이다. 그 꿈 하나만은 정말 세계적이다.

당시 이 계획을 추진한 몽상가들은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류종수 춘천시장, 박세훈 강원도개발공사 사장 등이다. 류 춘천시장은 2006년 6월로 임기를 마치고, 그 뒤를 이광준 춘천시장이 이어받는다. 이들 모두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지자체장이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무리가 돼 움직인다. 이광준 춘천시장은 시장으로 당선된 뒤, 강원도개발공사의 불투명한 사업비 조달 계획과 개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이유로 들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는 않는다.

이 프로젝트는 그 계획이 공개되는 순간부터 논란에 휩싸인다. 가장 먼저 제기된 문제가 '사업비'다. 이 사업에 들어가는 사업비는 총 5조6200억 원이다. 이 금액은 당시 도 전체 예산의 두 배가 훨씬 넘는 것이다. 사업 계획이 발표되자 이 막대한 사업비를 어떤 방식으로 조달할 것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강원도는 '이번 사업은 강원도개발공사가 시행하며 초기투자 비용은 채권발행 등으로, 전체 사업비는 조성된 터 분양을 통해 회수하고 신도시개발 부분은 추후 정부와 협의할 계획이어서 재정조달 문제는 없다(<연합뉴스> 2005. 2. 25)'고 설명한다.

그러고 나서도 강원도개발공사가 계획한 재원조달 방안에 의문이 가라앉지 않자, 이틀 뒤 이번에는 '이 프로젝트가 2, 3년 전부터 명망 있는 외부 전문가의 참여 아래 검토를 거친 사업이며 강원도나 춘천시가 직접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치단체의 재정부담은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특히 용지보상비 등 초기투자비용만 소요되고 전체 사업비는 조성 부지의 분양 매각 등으로 재원조달에 문제가 없는 데다 사업시행 주체인 강원도개발공사의 법적 재원조달능력이 2조4천억 원에 이른다고 강조(<연합뉴스> 2005. 2. 27)'하고 나선다.

G5 프로젝트, 동내면 미래형 신도시 조감도.
 G5 프로젝트, 동내면 미래형 신도시 조감도.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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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낙관적인 재원조달 방식, "실현가능성이 작다"

그러나, 사업비를 마련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강원도의 주장에도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않을 거라는 의구심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당시 언론은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을 경우 그 부담은 결과적으로 주민들에게 돌아온다. 이 같은 우려를 없애기 위해 민간·외국투자자의 참여도 고려한다지만 민자 유치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수익성이 불투명할 경우, 사업시행이 대책 없이 늦어져 세월만 허송하는 사례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강원일보> 2005. 3. 2)'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때도 몽상가들은 이런 비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프로젝트 대상 지역 중에 하나인 동내면 주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주민들은 그해 3월 15일 신도시개발 사업설명회 장소를 봉쇄해 설명회를 무산시키고 "강원도와 춘천시가 주민들의 의견수렴 없이 밀실행정을 추진해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게 생겼다"고 호소했다. 그들은 "30년간 묶여 있던 개발제한구역을 겨우 해제해 놨더니 신도시를 개발한다며 다시 개발제한 구역을 설정, 재산권을 박탈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이 지역 주민들은 2010년 12월 이 사업이 백지화될 때까지 6년이 가까운 기간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고통을 받는다.

사업비를 조달하는 문제를 비롯해 이 사업이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이번에는 류종수 춘천시장이 직접 나서 논란을 불식시키려고 애쓴다. 류 시장은 2005년 4월 19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G5 계획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힌다. 그때 류 시장은 사업비와 관련해서는 "춘천시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강원도개발공사가 도시기반조성비로 7300여 억 원 정도만 투자하면 되고 나머지는 기업들이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시민들의 불안을 달래려는 시도였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류 시장의 해명에도 강원도개발공사의 자금 조달 계획은 여전히 신뢰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는다. 그해 10월 5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열린 강원도 국정감사에서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은 "강원도의 올해 예산이 2조4080억 원이며 재정자립도는 32.5%에 불과한데 5조6200억 원 규모의 춘천 G5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2002년부터 도 예산의 10배에 달하는 20조1781억 원 규모의 대규모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그런 반면에 "도시빈민과 농민 등 서민층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국정감사에 참석한 일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또한 "국비 확보와 지방재정이 충분치 못하면 주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줄 수 있다"거나 "실현가능성이 작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와 정치권의 이런 저런 비판에도 강원도와 춘천시는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이런 강원도와 춘천시를 두고 '이 사업을 2006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용으로 추진하고 있다'거나 '자치단체장들이 치적을 쌓기 위해 이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G5 프로젝트 전체 사업 일정.
 G5 프로젝트 전체 사업 일정.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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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G5 프로젝트 백지화' 선언하는 이광재 도지사

이 프로젝트는 2006년 춘천시장으로 새로 부임한 이광준 시장마저 의문을 제기한다. 이광준 춘천시장은 그해 9월 1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개발공사 측이 정확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일을 추진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한다. 그리고 "사업의 추진을 위해서는 수조 원이 넘는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사후 계획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당연히 선행돼야 한다"며 "이러한 일들이 해결돼야 구체적인 설계 작업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다(<경향신문> 2006. 9. 13).

하지만 이광준 춘천시장은 그런 정황을 파악하고 나서도 선뜻 사업 중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결국 김진선 도지사와 이광준 시장은 당장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있는 동내면 지역 개발을 제외하고 나머지 지역에서 우선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한다. 2007년 4월 11일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이광준 춘천시장은 최종 협의를 거쳐 '가칭 G5 프로젝트추진협의회'라는 상설협의체를 구성한다. 이 협의체에서 춘천시는 사업주관을 맡고, 강원도는 사업지원을, 그리고 강원도개발공사는 사업시행을 맡기로 하는 등 3개 기관이 서로 역할을 나눈다.

그러고 나서 동내면 지역은 지역주민과 협의가 끝나는 대로 사업에 착수하기로 하고, 나머지 지역은 2008년 말부터 지역별로 사업 착공을 추진하기로 결정한다. 그렇지만 그 후로도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2008년 8월에는 언론을 통해 사업이 백지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다. 강원도개발공사가 동내면 지역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도시개발구역지정을 신청하지만 춘천시는 주민협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사업 추진을 계속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도개발공사는 그때까지 이 프로젝트에 '삽질'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상태였다.

이광준 시장이 이처럼 G5 프로젝트 추진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강원도개발공사가 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우려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강원도개발공사는 알펜시아 리조트 미분양 사태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런 상황을 단지 설계를 변경하는 등의 미봉책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자 2009년 초부터는 언론을 통해 이 사업이 용두사미로 전락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사업은 처음부터 답보 상태였다. 하지만 2009년 이후에도 프로젝트를 중단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로부터 1년이 더 넘은 2010년 6월, 김진선 도지사가 물러나고 그 자리에 이광재 도지사가 부임한 이후가 돼서야 비로소 G5 프로젝트를 백지화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0년 12월 30일, 마침내 강원도와 춘천시, 강원도개발공사 등 3개 기관은 'G5 프로젝트 종합추진계획'을 종결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프로젝트 발표 이후 꼬박 6년이 돼가는 시점이다.

G5 프로젝트, 사업 완료 후 기대효과.
 G5 프로젝트, 사업 완료 후 기대효과.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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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사업 추진, 공중분해 된 사업비 61억 원은 누가 책임지나?

2011년을 이틀 앞두고 프로젝트는 겨우 중단됐다. 하지만 이 사업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도 아니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공기관들이 이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는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온갖 논란 속에 6년에 가까운 시간을 허비한 결과를 놓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넘어갈 수는 없다. 이런 일이 다시 되풀이해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그런 일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한 책임은 어디에 있는지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강원도 감사관실은 지난 17일, 강원도개발공사를 특별 감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강원도개발공사가 G5 프로젝트와 관련해 그동안 총 61억 원의 비용을 투입했으나 2010년 말 이 사업이 종결된 이후에도 이 비용을 징수할 대책을 세우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강원도개발공사에 이 61억 원을 회수할 대책을 강구하라고 요구했다. 겉보기에는 과거 G5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에 무언가 제재를 가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뿐이다. 징수 대책을 세워 손실을 보전하라는 것 말고,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 것과 관련해 그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거나 그 사람을 어떻게 조치하겠다는 내용이 없다.

징수 대책이라는 것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징수 방법은 이 일에 관련이 되어 있는 강원도와 춘천시와 강원도개발공사 3개 기관이 함께 모이는 협의체에서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는데, 그 자리에서 합의를 보는 일 또한 과거 G5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처럼 공론을 거듭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개 기관 중에 그 손실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기관이 없다. 그 돈은 이 프로젝트를 무리하게 추진한 데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게서 징수하는 게 마땅하겠지만 그런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몽상가들이 그 허무맹랑한 꿈을 꾼 대가가 무려 61억 원이다. 그 돈이 물 쓰듯이 사라졌다. 이제 그 돈의 상당 부분이 혈세로 충당될 예정이다. 그런데도 그 어마어마한 돈을 공중 분해시킨 일단의 몽상가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건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지난 17일자 성명에서 이번 특별감사 결과를 두고 "김진선 전 도지사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의도된 시나리오"라고 주장한 것은 뼈아픈 지적이다. 김 전 도지사는 현재 부실덩어리로 전락한 알펜시아 리조트 조성사업에도 깊이 관여했다. 김 전 도지사는 현재 2018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태그:#G5프로젝트, #춘천, #김진선, #류종수, #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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