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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월 18일 금.

* new york, NY - kenilworth, NJ
29.4 mile ≒ 47.3 km

"Pulaski skyway? OMG!(풀라스키 스카이웨이? 오 마이 갓)."

뉴와크(New wark)에서 만난 미국인 부부. 인상 좋은 아저씨는 내가 거쳐온 길을 듣고는 경악했다. 오늘 아침에 출발할 때만 해도 이런 경험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틀간 머물렀던 리코 와싱턴의 집. 뉴욕을 그냥 떠나기 아쉬워 미적미적 거리자 리코는 나에게 'winging(계획이 없는)'이라며 놀렸지만 막상 떠난다는 말을 듣자 서운해한다.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living in America'를 틀어주며 한바탕 신나게 춤을 보여준다. 그만의 작별선물이다.

"My home is always open to you."(언제든지 내 집에 환영이야).

다시 뉴욕으로 올 리는 없지만 정이 듬뿍 담긴 말 한마디가 이국땅에 홀로 있는 사나이에게는 너무나 고맙다. 오늘 가야 할 경로를 고민한 결과, 꽤 괜찮아 보이는 길을 발견했다. 뉴욕시에 속한 스태튼 섬(Staten Island)과 맨해튼을 오고 가는 무료 페리가 있다. 맨해튼 아래에 위치한 섬인데 여기에서 다시 북쪽으로 뉴저지 주와 다리가 놓여져 있다. 3개의 다리 중 바욘 브리지(bayonne bridge)는 자전거로 출입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었다. 맨해튼 위쪽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시간도 아끼는 데다 페리를 타면서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liberty island)까지 볼 수 있으니 나름 통박을 굴린 셈이다.

자전거 여행자들은 일반인과 달리 검문 검색을 받아야 한다.
▲ white hall 선착장 자전거 여행자들은 일반인과 달리 검문 검색을 받아야 한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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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화이트홀(whitehall) 선착장에서는 매 30분마다 스태튼 섬으로 가는 페리가 있는데 자전거 여행자는 일반인들과 격리된 1층 통로로 들어가야 한다. 게다가 짐 속에 수상한 물건을 감추진 않았는지 검색도 받는다. 잘 훈련된 경찰견이 내 자전거 가방을 킁킁대며 돌아다닌다. 아이들을 대동한 일가족이 지나가자 담당 경찰관은 높다란 자판기 위로 개가 성큼 올라가는 묘기를 선보인다.

배는 웅하는 육중한 엔진음과 함께 출발하고 중간쯤에 이르자 완연한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작가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Frederic-Auguste Bartholdi)가 조각했고 에펠 탑의 설계자이기도 한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이 내부 철골구조물에 대한 설계를 맡았다.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우호증진의 선물로 준 기념물.

9·11부터 아프간전, 이라크 전까지. 뉴스에 보도되었던 영상들이 횃불을 높이 쳐들고 있는 여신상과 오버랩된다. 두 번 정권을 역임한 부시 대통령 하에서 일어났던 전 세계적인 마찰들. 뉴욕에서 첫날 만났던 택시기사는 자유란 소중하지만 남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는 없다고 말했다. 여신상은 현재 테러의 위험 때문에 꼭대기까지의 출입은 제한되어 있다. 단종이 강원도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던 것처럼 자유의 여신도 허울 좋은 자유의 섬에 감금된 느낌이다.

페리에서 바라보는 자유의 여신상
▲ 자유의 여신상 페리에서 바라보는 자유의 여신상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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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튼 섬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오히려 구석구석을 돌아보게 된다. 같은 뉴욕시지만 맨해튼과는 모습이 딴판. 페리가 오가는 선착장 주변만 깔끔할 뿐 약간만 벗어나면 허름한 카센터나 작은 식료품점만 눈에 띈다. 녹이 슨 철책 너머로 황량한 공장지대는 해가 지면 우범지대로 변할 성싶다.

바욘 브리지는 왠지 아슬아슬하다. 낮은 난간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는 더욱 아찔하다. 앞에 가는 히스패닉계 청년을 따라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다. 곳곳에 히스패닉계가 많이 보인다. 특히 바욘 고등학교 제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가자 어릴 적 감명깊게 봤던 <천사들의 합창>이 떠오른다. 아, 히메나 선생님.

케네디 대로(boulevard)를 따라 쭉 올라간다. 뉴저지 시티에서 뉴와크 쪽으로 넘어가야 한다. 가까운 곳의 뉴와크 베이 브릿지는 78번 페더럴 루트(federal route)라 더 북쪽에 위치한 풀라스키 스카이웨이가 적절해 보인다. 호보켄 지역에 많이 보이는 인도인들을 뒤로 하고 진입로에 들어선다.

불안하다. 우선 보도(side walk)가 없다. 차량이 달리는 속도도 만만치 않다. 대형트럭은 없지만 일반차량도 무시무시하기는 마찬가지. 마음 속으로 갈까 말까 수십 번 망설였다. 수중에 지도도 없는 데다 빨리 뉴저지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등을 떠민다. 그래. 가보는 거다.

형언할 수 없는 긴장감이 몸을 휩싼다. 뒤에 오던 차 하나가 20cm 정도의 간격을 두고 옆을 지나간다. 속도조차 줄이지 않고. 경적이라도 울려주면 그나마 양반이다. 미국에 오기 전 뉴스에 크게 보도되었던 여자 사이클 선수들 사고가 떠올랐다. 지원차량이 뒤에서 따라와도 큰 사고가 났는데 나는 의지할 데가 없다.

길 가장자리에 폭 60~70cm 정도 턱이 있다. 올라갔다. 스카이웨이는 정말 길어 보였다. 저 끝까지 이렇게 자전거를 끌고 가려면 밤이 으슥할 무렵 도착하지 않을까? 갑자기 나타난 경찰차. 뉴저지 경찰이다.

"여기서 뭐하는 거죠?"

다리를 건너가려 했을 뿐이라고. 미안하다고. 몰랐다고 소리쳤다. 경찰관들이 차량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우리 뒤로 차들이 멈춘 채 1차선으로만 굼벵이 걸음을 한다. 트렁크에 자전거를 실었다. 나는 뒷좌석에 탄다. 여행 첫날. 그것도 미국 경찰차를 탈 줄은 몰랐다. 아찔했던 상황을 벗어난 순간에서도 카메라를 꺼내 경찰차 내부를 찍는다. 만약 기자라면 치열한 직업 의식이겠다.

경찰차는 보도가 있는 도로에 내려주고 또 어디론가 사라진다. 고마운 뉴저지 경찰. 안도의 한숨도 잠시.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적어도 2, 3일은 견뎌줘야 하는 거 아닌가. 여전히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라 끌고 갈지 때우고 갈지 망설여진다.

적절한 순간에 나타난 경찰차는 라이더를 위험에서 구해주었다.
▲ 뉴저지 경찰차 적절한 순간에 나타난 경찰차는 라이더를 위험에서 구해주었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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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마음 먹지 말고 처음으로 돌아가라. 마음에 없는 말을 억지로 크게 떠들어대며 페니어백을 떼내고 자전거를 옆으로 눕힌다. 한국에서 정비를 배울 때 어깨 너머로 익혔던 팁이 있다.

보통 펑크를 때우려면 바퀴 자체를 떼내야 하지만 뒷바퀴는 앞바퀴에 비해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든다. 그 상태에서 튜브만 밖으로 살짝 빼낸 다음 찢어진 부분만 펑크 패치로 때우고 다시 집어 넣는 방법이 있다. 고무풀을 바르고 패치를 붙인다. 펌프로 바람을 넣었다. 팽팽해지는가 싶더니 피식 공기가 새어나온다. 찢어진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덕분에 아까운 펑크패치만 3개를 소모했다. 가게에서 사지 않고 인터넷으로 주문했던 저가 펑크패치는 달라붙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뒷바퀴를 분해한다. QR을 풀고 뒷기어변속기와 뒷바퀴를 분리한다. 해는 저물어가고 바퀴 없는 자전거만 내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정비를 꼼꼼히 배워두길 참 잘 했다. 혹시 타이어에 유리조각이 박혀 튜브를 갈아 끼워도 소용없을까 걱정했지만 그 정도 불행은 찾아오지 않는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뉴와크(newark)로 들어서서 잠잘 곳을 물어보다가 그 부부와 맞닥뜨린 것이다. 지금껏 풀라스키 스카이웨이를 지나간 사람은 내가 처음이란다. 하물며 자전거 라이더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러더니 걱정스런 눈빛으로 큰 길을 경계로 반대쪽은 우범지대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안전한 곳과 아닌 곳이 극명하게 갈려.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른 거지. 우리나라의 문제점이기도 하고. 뉴와크는 미국 내에서도 범죄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야. 물론 낮에는 괜찮지. 아침 일찍 그 지대를 지나가면 문제는 일어나지 않아. 부랑자들이나 범죄자들은 술에 곯아 떨어졌거나 게으르니까. 밤에는 사정이 다르지. 걔들이 일어나서 거리를 서성거리거든."

나 같은 한국인 여행자는 특히 'Stand out'(눈에 띄다) 된단다. 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냐고 하자 고개를 주억거린다. 심각해지는 부부의 얼굴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이들을 무조건 붙잡아야 한다며 내 본능은 외치고 있었다. 한참 얘기를 나누던 둘은 가져온 트럭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고 했다. 수납공간이 많은 토요타 트럭이다. 일제는 안 쓰지만 오늘만큼은 일반 승용차가 아닌 트럭이 너무 감사하다.

부부는 나를 한적하고 아늑한 별장에 내려주었다. 안전한 지역에 자리잡은 숙소. 연회실에서 파티가 열리는지 백인 남녀 커플들이 뒤엉켜 춤을 추고 있다. 마음 속의 긴장이 눈 녹듯 풀린다. 친절했던 미국인 아저씨는 2년 전에 들렀던 한국만큼 미국이 안전하지는 않다며 메일 주소을 알려주었다. 잠자리에 들면서 그가 내 상황에 빗대어 가르쳐준 영어 표현을 되새겨 보았다. dodge one bullet. 총알을 잽싸게 피하다. 이번 총알은 아주 큰 총알이었다.

2012. 5. 19(토)
Kenilworth, NJ, United States - Morristown, NJ, United States
16 mile ≒ 25.7 km

어젯밤 미국인 부부가 알려준 길을 따라 경로를 잡는다. 차는 없고 보도는 있으며 아무데서나 캠핑을 해도 될 정도로 안전하다는 최고의 코스. 대도시에서 벗어나 시골로 갈수록 범죄율이 낮아지나 보다. 미국은 큰 도시 이외 지역에는 가까운 식료품점이나 공원에 가려 해도 거리가 몇 마일은 족히 된다. 남 등쳐먹는 인간들도 그만큼 살기 팍팍하겠다.

모리스 애비뉴(moriss avenue)를 쭉 따라가다 특정 신호등부터 차들이 일방향 통행을 하는데 그 직전에 왼쪽 다리를 이용해 옆 차선으로 갈아타면 다시 정면으로 뻗은 모리스 애비뉴가 나온다. 그 길은 서밋 애비뉴(summit avenue)로 명칭이 바뀌었다. 서밋 타운(summit town)이 근처에 있다는 뜻. 한가한 도로. 제한속도는 35마일. 간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다. 적절한 내리막길이 시원함을 준다.

파사익 공원(passaic park)가 나타났다. 작은 다리 밑으로 시냇물이 흐른다. 순간, 순천 선암사 승선교가 떠올랐다. 낯선 땅에서 사소한 데서 동질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다. 작은 언덕을 올라서는데 또 다시 펑크다. 근처 짐(Gym)에 자전거를 대놓고 수리에 들어간다. 마음이 즐거울 리는 없지만 평화로운 길가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 풀라스키 스카이웨이의 악몽.

출발시간이 늦다보니 모리스 타운(morris town)까지 15.5 마일 밖에 안 되는데도 벌써 7시. 조그마한 타운에 음식점이 널려 있다. 동양식 밥이 땡겨 들어간 현대 중국 음식점이라는 'aikou' 레스토랑. 주인은 물론 종업원도 태반이 동양인이다. 같은 아시아 계열인 내 눈에는 중국인이 대부분.

식사를 마친 내게 꿈 같은 장소가 보인다. 스타벅스(Starbugs). 한국에서는 거의 가지 않지만 미국에서 이만큼 반가운 데도 없다. 바로 무료 와이파이가 가능하기 때문. 게다가 아침 8시부터 밤 12시까지 문을 연다는 친절함까지. 특별히 오늘 밤에는 두 명의 친절한 미국인까지 내게 다가 왔다. 매장 종업원인 에드윈 메나(Edwin Mena). 히스패닉계열로 생겼는데 역시나 에콰도르에서 부모님과 함께 이민 온 사연을 가지고 있다. 짧은 교대 시간 동안 저녁식사를 간단히 해치우는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저 자전거 너꺼니?"
"아, 세워두면 안 되는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고."

켄드라(Kendra)는 이 동네 자전거 동호회 회원이다. 이번달 동호회 활동 계획표까지 보여주며 자신을 소개한다. 자전거 라이더 알아보는 건 라이더 밖에 없다. 텐트 칠 만한 장소를 물색 중이라고 하자 회원 중에 뒷마당을 빌려줄 사람을 바로 찾아보겠다는 반가운 대답.

NIMBY(not in my back yard)가 아니라 PIMFY(please in my front yard)다. 지역 기피 시설이 유치 희망시설로 바뀌는 순간. 소개를 받고 찾아간 더글러스는 전형적인 중산층 백인이었다. 호젓한 2층집에 앞 뒤로 마당이 널찍하다. 뒷마당에는 큼지막한 창고도 있어 웬만한 공구들은 가득 차 있다. 언젠가 뉴저지에서 플로리다까지 가 볼 계획이라는 그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려면 일찍 일어나야 된다며 끝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멀고 먼 한국에서 온 자전거 라이더가 여기에 들른 일은 그에게 특별하다. 오늘 오후 '모리스 타운 앨리캣(moriss town alleycat)'이라고 해서 타운 중심부 그린 파운틴(green fountain)에서 회원들이 모여 자전거도 타고 게임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불과 몇시간 전의 이벤트를 마치자 나타난 한국인 청년에게 그는 'synchronical'(공시적인)이란 단어를 연신 중얼거렸다.

더글라스(Douglas)씨의 환대로 편안하게 캠핑을 할 수 있었다.
▲ 첫 야외취침 더글라스(Douglas)씨의 환대로 편안하게 캠핑을 할 수 있었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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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환대로 들뜬 마음에 서둘러 텐트를 설치하다 한쪽 폴대가 부러졌다. 여행 초반부터 이것저것 부러지고 깨지는 것 투성이다. 어제는 스태튼 섬에서 코너를 돌다가 앞 페니어백이 철망에 부닥치면서 연결고리 하나가 파손되었다. 연달은 해프닝에 성격은 점점 무던해진다. 여행을 할수록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미국 자전거 횡단 여행 중 첫 번째 야외 취침. 잠이 생각보다 잘 온다.

2012. 5. 20 (일)

Morris Township, NJ - The Goddard School, South Branch Road, Hillsborough, NJ
28.5 mile ≒ 45.9 km

간밤에 새가 울었다. 한국에 살지 않는 새인듯 처음 듣는 울음소리. 휘융~ 투두두두두두두. 다가오는 적기를 향해 대공포가 발사되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딛고 있는 땅이 달라지니 모든 것이 다르다.

자전거를 타느라 피곤한 상태에도 새벽에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곧이어 더글러스 아저씨도 마당으로 나와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오늘의 교통수단은 자전거. 가만 보니 일요일인데 이상한 일이다. 근처 국립공원이 직장인지라 남들과 달리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근무한다.

아저씨가 말한 'synchronical'(같은 시간을 살아가는)의 의미를 되새기며 나도 출발 채비를 갖춘다. 필라델피아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한다. 모리스 타운에 오는 중 들렀던 채텀 타운(chatham town)을 다시 거쳐 남쪽으로 내려가는 경로다. 지났던 길을 돌아가는 건 여러모로 의욕이 꺾이는 행보. 아침 먹으랴 지도 검색하랴 이래저래 출발 시간은 늦어진다.

여행에는 무수한 갈림길이 있다.
▲ 그린브룩(greenbrook)으로 가는 길 여행에는 무수한 갈림길이 있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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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텀(chatham)을 거쳐 watchung, greenbrook, southbound brook으로 쭈욱 남하. 밀스톤(millstone)강을 따라 조성된 마을들이다. 인터넷 상에선 단순하게 하나의 선이었지만 몸으로 부딪혀 보니 다르다. 손으로 조잡하게 그린 지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변 서쪽에 위치한 웨스트 캐널 로드(west canal road)는 표지판조차 볼 수 없다. 길이란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지만 지도에 표시되지 않으면 사람은 불안감을 느낀다. 지도도 나침반도 GPS도 없다.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방위을 짐작할 뿐이다.

카운티 로드(County Road) 24번은 남쪽을 향해 시원하게 뻗어있어 1시간 내내 곧장 내달렸지만 어느 순간 카운티 로드(County road) 675번으로 바뀐다. 혼란스러워진다. 갈림길마다 길을 묻다 보니 속도는 더디고 불안감은 상승한다.

펜실베이니아 주 래빗 타운(revitt town)까지 가려던 계획이 틀어졌다. 내세닉(Neshanic, NJ)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곳을 헤매고 있다. 시침은 어느덧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애초 목표의 절반밖에 전진하지 못했다.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워싱턴 DC를 거쳐 버지니아주 샬로츠빌(Charlottesville)에 도달하면 준비한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 지도가 진가를 발휘한다. 앞으로 일주일이 관건이다.

또 다시 야외캠핑을 해야 할 순간이 왔다.
▲ 힐스보로우(hillsborough)의 밤 또 다시 야외캠핑을 해야 할 순간이 왔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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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국 횡단, #자전거,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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