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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식품의약품안전청(청장 이희성)은 의약품 재분류안을 발표하며 안전성을 이유로 사전피임약과 사후피임약의 운명을 뒤바꿨다. 누구나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었던 사전피임약은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으로, 사후피임약은 정반대로 변경한 것.

 

의약품 재분류 소식을 접한 당사자인 여성들은 식약청에 뿔이 났다. 강미연(가명·26·회사원·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씨는 8일 <오마이뉴스>와 통화하며 "이 제도가 확정되면 사전피임약 사재기를 할까 생각 중"라고 했다. 호르몬 이상으로 생리주기가 불규칙하거나 한 달 내내 월경을 하는 증상 등이 나타나는 '다낭성 난소증후군'을 앓고 있는 강씨는 2~3년 전부터 매년 한두 달씩 사전피임약을 복용하고 있다.

 

"치료제로 사전피임약 먹는데... 살 때 처방전 있어야 하면 비용부담↑"

 

의사는 그에게 "다낭성 난소증후군의 일반적인 치료법"이라며 '머시론'이라는 사전피임약을 처방했다. 이 병은 원인이 불분명한데다 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손쉽게 나타난다. 그만큼 재발가능성도 높아 강씨는 "앞으로 사전피임약을 계속 먹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방전이 있어야만 사전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산부인과에서 처방전을 받으려면 진료를 받아야 해요. 그럼 초음파 진단으로 증상을 알아야 하는데 이 비용이 3만 원 정도 들고, 여기에 진료비 따로, 약값 따로 내야하니까 비용 부담이 늘어나잖아요."

 

"몇 년 전 필리핀 여행을 갈 때 생리주기를 늦추려고 사전피임약을 먹어봤다"는 배정현(가명·27·회사원·서울시 양천구)씨는 "사전피임약이든 사후피임약이든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배씨는 "여자에게 임신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도덕적 판단은 개인 몫으로 남겨두되,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다만 자신도 "사전피임약 복용 후 다음 월경 때 생리통이 굉장히 심해졌다"며 "사전·사후피임약 모두 부작용 등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져야 한다"고 했다.

 

주부 김아름(가명·31·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씨도 "사전·사후피임약 모두 교육을 받고 먹도록 해야 한다"며 "몇 년 전 사후피임약을 복용했는데, 나중에 의사한테 '이건 정말 급할 때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먹어야 한다'고 혼났다"며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점에는 찬성하지만, 남발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혼여성들이 산부인과 가는 걸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데…"라며 의약품 재분류안이 가져올 불편함도 염려했다.


처방전 필요없어지는 사후피임약... "남용 격정" "청소년 임신위험 증가 우려"

 

온라인 여심(女心) 역시 새로운 피임약 분류법에 부정적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한 카페 회원 ***어물은 "어디 여행가거나 일 있어서 생리 미루려고 할 때마다 병원 가서 진단서 끊고 약 타먹어야 하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또 다른 회원 꽃***는 "사전피임약, 이게 문제"라며 "예방하겠다는데 왜 내 권리까지 침해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후피임약이 여자 몸에 얼마나 안 좋은데, 저렇게 되면 뭣 모르고 사먹는 사람들 많아질 것 같다(릴**)"며 사후피임약 남용 가능성을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씨 또한 자신의 트위터에 "사후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여준 것은 20·30대 여성에겐 분명 개선이지만, 청소년 임신위험성이 늘어난다는 보고도 있다"며 "청소년 성교육과 피임대책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 서씨는 "안 그러면 몇 달 후 불행한 일들이 늘어날 수 있는데, 청소년 성교육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가 지구와 안드로메다 수준"이라며 우려했다.

 

누리꾼들, 식약청 홈페이지에 항의글 올려... 식약청 "공청회 열겠다"

 

7~8일 시민들이 식약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만 8일 오후 4시 현재 35건이다. 하루에 민원성 글 2~3편이 올라오던 평소와는 다른 반응이다. 식약청 홈페이지에 글을 남긴 시민들은 '사전·사후피임약 재분류안 반대'에 한목소리를 냈다. 사전피임약 전문의약품 지정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는 블로그(http://mydefinition.tistory.com/)도 등장했다.

 

전날 식약청은 의약품 재분류안을 발표하며 피임약 분류기준을 바꾼 이유로 '부작용 가능성'을 내세웠다. "긴급(사후)피임약이 사전피임약보다 여성호르몬 성분이 10배 이상 들어있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1회만 복용하므로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사전피임약은 21일간 먹어야 한다. 식약청은 이 때문에  "사전피임약은 여성호르몬 수치에 영향을 미치고 혈전증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사전피임약은 복용 전 의사와 상담 및 정기적 검진이 권장되는 의약품"이라고 설명했다.

 

식약청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의약단체와 제약업계, 소비자단체의 의견을 모으고, 특히 여론이 크게 나뉘는 피임약 분류안은 관련 공청회를 열 예정이다. 이후 "전문가 등이 참여한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이르면 오는 7월말에 이번 의약품 재분류안을 확정, 필요한 유예기간을 둔 뒤에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피임약, #사전피임약, #사후피임약, #식약청, #의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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