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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수 시인의 제4 시집 <청산별곡>이 2012년 6월 20일 출간되었다.
 김흥수 시인의 제4 시집 <청산별곡>이 2012년 6월 20일 출간되었다.
ⓒ 도서출판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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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이던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첫 작품 '해'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소설 부문 당선자는 송기원이었다. 그러나 촉망받기만 했을 것 같은 시인의 이후 이력은 전혀 딴판으로 흘러갔다. 1980년 군사정권은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학교에서도 쫓겨났다.

1984년 <민중교육>지 사건 때에도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뒷날 어렵사리 교단에 복귀할 수 있기는 했지만 공립에서 받아주지 않아 사립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보통의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본래 근무했던 사립에서 복직을 거부해 공립학교로 특채된 것과는 정반대의 삶이었다.

그동안 <충청도 사설><나락을 거두며><작은 학교 이야기>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삶의문학> 동인으로 활동했던 이력답게 세 권 모두 이른바 '민중문학'적 관점의 시들로 채워진 시집이었다. 대전충남작가회의 초대 회장 역임 이력은 그의 시 경향을 한 마디로 간명하게 정리해주는 증거물이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등단 이래 38년 동안 단 세 권의 시집만 내었고, 이제 새로이 네 번째 시집 <청산별곡>을 출간하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더 이상 시를 못 쓰는 줄 알았다'고 토로하는 김흥수 시인. '나이가 든 탓인가, 이젠 노래가 되는 대로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음풍농월의 시로 채워진 시집도 출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회와 민족을 음풍농월 속에 녹여낸 가창들

교편을 잡는 동안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교내 요리대회를 연 것을  꼽는 김흥수 시인. 아이들이 함께 음식재료를 구하러 다니고, 라면 끓이기 수준을 뛰어넘어 창의적 음식을 협동하여 빚어내는 과정을 통해 정을 쌓고 공동체 의식을 키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이 세 번이나 금강산 수학여행을 할 수 있도록 애썼다. 아이들에게 더 이상의 추억을 남겨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든 교단을 떠난 후 그는 거의 매주 명산대천을 여행 다닌다. 아이들에게 금강산을 밟아보도록 했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자꾸 부르면 산이 옵니다.' <청산별곡>에 시 '묘향산'이 노래되어 있는 까닭을 시인은 그렇게 한 마디로 요약했다. 묘향산에 가보지 못했지만 그렇게 노래를 불러야 통일이 앞당겨진다는 것이다.

김흥수 시인의 약력을 소개한 <청산별곡>의 앞날개. 1953년 충남 아산 출생 등의 경력이 밝혀져 있다. 김흥수 시인은 21세이던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왔고, 그 후 대전충남작가회의 초대회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1980년에는 군사정권에 의해 투옥되기도 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교단에서 물러나 고향에 살면서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할 확실한 대안인 협동조합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채 새로 열심히 시를 쓰고 있다.
 김흥수 시인의 약력을 소개한 <청산별곡>의 앞날개. 1953년 충남 아산 출생 등의 경력이 밝혀져 있다. 김흥수 시인은 21세이던 197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왔고, 그 후 대전충남작가회의 초대회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1980년에는 군사정권에 의해 투옥되기도 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교단에서 물러나 고향에 살면서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할 확실한 대안인 협동조합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채 새로 열심히 시를 쓰고 있다.
ⓒ 도서출판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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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꿈속에서
묘향산이
보고 싶다 외치니
묘향산이 떡하니
머루랑 다래랑
보현사랑 데리고
서산대사랑 함께
하인처럼 내 앞에 와 엎드리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했다.

백두산도 구월산도
부르면 곧장 달려오겠지.
삶이 외롭거나 팍팍할 때마다
우리 청산을 자주 이야기하자.
늘 푸른 산을 불러 함께 놀자.

'묘향산' 전문이다. 시 속에 있는 '머루랑 달래랑'이라는 구절이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온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을 통해 익히 알려진 시어이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

하지만 김흥수 시인의 시집 <청산별곡>에 실려 있는 시들을 읽어보면 현실도피적 가치관을 노래한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세계와는 노래의 내용이 전혀 다르다. 고려가요의 세계는 '머루랑 다래랑 먹'으면서 사람살이와 거리가 아득히 먼 '청산'에 숨어 사는 수준이지만, 그의 앞에는 '머루랑 다래'만 있는 게 아니라 분단의 질곡에 갇혀 우리가 갈 수 없는 '묘향산 보현사'와 민족사의 '서산대사'가 '하인'처럼 '앞에 엎드리'는 까닭이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우리 청산을 자주 이야기하자. 늘 푸른 산을 불러 함께 놀자.' 그의 시는 언뜻 음풍농월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은근슬쩍 독자들을 민족과 역사 앞으로 인도하는 가창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는 말이다. 스스로 '음풍농월에 지나지 않는 이런 시들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겸양을 보이지만 그건 그저 시인의 '엄살'에 불과하다는 해석이다.

늘 푸른 산과 함께 놀자, 청산을 자주 이야기하자

자주 청산을 이야기하면 어떻게 되나. 늘 푸른 산을 불러 함께 놀면 어찌 되나. 시인은 시 ' 묘향산'에서 독자에게 보냈던 '청유'를, 다음의 시를 통해서는 에두름 없이 직선적으로 토로한다. 하지만 애써 수사법을 동원하지는 않은 듯이 자연스럽게 상징과 비유를 휘둘러내는 시인의 솜씨 덕분에 독자에게는 조금도 생경한 느낌이 일지 않는다. 

여기저기 방방골골
가슴에 청산을 품은
시냇물은 또 잘 나가다가
강으로 모여든다.

국토의 수호신 푸른 용처럼 긴 용틀임
백두대간 청산들은 온통 온 강으로
두꺼비처럼 첨벙첨벙 뛰어들어
날마다 바다로바다로 모여들고

어느새 바다는 푸른 물이 들어
옷 벗어 헹구어 짜면
푸르른 솔향기와 함께
온통 청산 물이 주룩주룩 흘러나온다.

바다 한 가운데로 배를 몰아
낚싯대로 건져 올리면
바다는 온통 청산 건더기뿐.

'바다'의 3~6행이다. 강이 모여 이루어진 바다가 그 자체로 온통 청산이다. 시인에게 '청산'은 그저 유토피아이자 남북통일이며 세계평화이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이 아니라 공감생존이기 때문이다. '온통 청산 건더기'인 '바다'로 모여든 '국토의 수호신 푸른 용' 같은 '용틀임'이 바로 강이고, 그 강에 '첨벙첨벙 뛰어들어 날마다 바다로바다로 모여'든 존재가 바로 '백두대간 청산들'이니, 더 이상 또 무엇을 말할 것인가.

시인은 시집 권두의 '시인의 말'을 통해 스스로 고백한 바와 같이 '지금' '청산에 푹 빠져' '청산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며 청산이 하는 말에 사랑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속삭인다. '청산은 우리네 토종'이고, '가족'이며 '친구'이며 '애인'이니 '청산의 아우성을 절대 지지하며' '매일같이 낮이나 밤이나 하염없이 청산과 함께' 살아가자고.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음풍농월이라고.

김흥수 시인의 '청산'은 고려가요 '청산별곡'이 말하는 것과 같은 자연도피적 자연이 아니다. 심지어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청산은 신자유주의가 아닌 북유럽의 시민주의자를 좋아한다'고 드러내놓고 말한다. 그럼에도 전통적 자연의 외피로 내용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시인의 능력에 힘입어 그의 시들은 너무나 부드럽게 읽힌다.
 김흥수 시인의 '청산'은 고려가요 '청산별곡'이 말하는 것과 같은 자연도피적 자연이 아니다. 심지어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청산은 신자유주의가 아닌 북유럽의 시민주의자를 좋아한다'고 드러내놓고 말한다. 그럼에도 전통적 자연의 외피로 내용을 아름답게 가꿀 줄 아는 시인의 능력에 힘입어 그의 시들은 너무나 부드럽게 읽힌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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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흥수 시집 <청산별곡>, 도서출판 심지(2012년 6월), 111쪽, 7000원.



태그:#김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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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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