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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 예술가 거리. 무기 만들던 공장에서 갤러리로 바뀐 거리.
 798 예술가 거리. 무기 만들던 공장에서 갤러리로 바뀐 거리.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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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를 멈춘 무기 공장은 부수지 않았다. 폐허가 된 틀 안에 예술가들을 불러들이자 차츰 갤러리가 만들어졌다. 그걸 보려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798 예술가 거리라 불리는 곳에 나는 혼자 서 있다. '우리 집 남성동지'들은 노천카페에 있다. 남편은 칭다오 맥주를 마시면서 잠든 꽃차남을 안고 있다. 큰애는 망고 주스를 홀짝이고 있다.

멀리 가도 일상의 습성은 따라온다. 큰애는 '스마트폰님'에 대한 충정이 깊어 모시고 다닌다. 꽃차남은 지금이 맘에 안 든다고, 아까 전으로 (시간을) 돌리라며 성질을 부린다. 생떼를 쓰며 운다. 교집합이 성립될 것 같지 않은 열 살 차이 형제는 자주 싸운다. 몸으로 치고받는다. 이겨도 져도 서로 분하다. 

'아들동지'들을 몹시 사랑한다. 그런데도 숨 돌릴 겨를 없는 하루하루가 갑갑하다. 나도 좀 살자. 지난해에는 365일 중 8일을, 세 번으로 쪼개서 혼자 여행을 갔다. 화를 잘 안 내고, 음식을 도맡아 하는 남편이 있으니까. 로또만 당첨 되면, 쥐도 새도 모르게 핏줄(나와 우리 아이들) 없는 곳으로 이사가 버리는 것이 꿈인 내 자매가 가까이 사니까.

먼 곳에서 전화해 보면, 학교에 갔어야 할 큰애는 집에 있다. 꽃차남은 나를 찾으며 울부짖고 있다. 폭격 맞은 전쟁터의 아비규환, 내가 없는 우리 집이 그 모양이다. 세월은 간다. 조금만 더 숨죽인 채 견뎌보자. 그래서 올해는 한 번도 혼자 출타를 시도하지 않았다(고 하면 뻥, 날짜까지 잡았지만 몸이 아파서 실패!).

세상에나, 버스에 올라타니 '안내양'이 있네

예술가 거리 노천카페. 책 읽고, 게임하고, 잡담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로망 때문이겠지. 앉아있는 사람 모두가 멋있어 보인다.
 예술가 거리 노천카페. 책 읽고, 게임하고, 잡담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로망 때문이겠지. 앉아있는 사람 모두가 멋있어 보인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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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거리 곳곳에 카페가 있다. 시간에 얽매여 보이지 않는 사람들. 책 읽고, 게임하고, 잡담하는데 멋있어 보인다. 모퉁이를 돌아서 우리 집 남성동지들을 염탐한다. 노천카페에 앉아서 유유자적 해본 적 없는데도 도시 사람들의 시크가 느껴지는군. 내가 없다고 집에서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는 않겠어. 나는 더 천천히 둘러본다. 

베이징에는 버스가 다양했다. 2층 버스, 전기 버스, 두 대가 한 대로 된 '합체버스'. 어릴 때는 개미똥구멍에서 신맛이 나나 빨아먹어 봤다. '젊고 건강했던' 30대에는 몽골 초원에 뜬 쌍무지개를 잡으러 차를 타고 한정 없이 따라가 봤다. 그러니 현자들의 '버스 떠난 뒤에 손 들어봐야 소용없다'는 명언을 무시할 배짱은 없다.    

대학을 다닐 때도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던, 버스 정류장 앞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하다가 막차를 놓쳐 2시간 넘게 걸어서 집에 간 적 있는 남편이, 버스 탄다고 좋아했다. 세상에나, 버스에는 안내양이 있었다. 몇 십 년 전 우리나라 언니들처럼 앳된 얼굴은 아니었다. 그녀가 차비를 받았다. 우리가 탄 버스는 에어컨이 없어서 값이 좀 쌌다.

두 대가 한 대로 변신한 베이징의 '합체버스'. 사람들을 많이 태우기 위해 합체한 버스. 돌아가는 중국 식탁처럼 버스를 연결한 틈새에는 회전판이 있다. 커브길을 돌 때 돌아간다.
 두 대가 한 대로 변신한 베이징의 '합체버스'. 사람들을 많이 태우기 위해 합체한 버스. 돌아가는 중국 식탁처럼 버스를 연결한 틈새에는 회전판이 있다. 커브길을 돌 때 돌아간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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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비를 직접 받는 안내양이 있었다. 아기나 어르신이 타면 자리를 양보하라는 방송도 겸한다.
 차비를 직접 받는 안내양이 있었다. 아기나 어르신이 타면 자리를 양보하라는 방송도 겸한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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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타자마자 안내양 방송, 어린 아이가 있으니까 우리 식구에게 양보를 권유한 모양이었다. 한 아가씨가 일어섰다. 괜찮다는 중국말을 모르는 남편은 꽃차남을 안고 자리에 앉았다. 나는 다른 자리를 노려서 앉았다. 버스와 버스를 연결한 틈새에는 중국 식탁처럼 회전판이 있었다. 커브 길을 돌 때면 앉은 자리가 돌아갔다. 오호! 그 느낌이 확실히 왔다.

버스에는 학생들이 없었다. 학교는 대개 시 외곽에 있어서 기숙사 생활을 한단다. 중국 엄마들은 그리운 아이들의 성장을 일주일이나 한 달 단위로 느끼겠지. 커가는 아이들은 몸에 맞게 뇌의 전전두엽도 폭풍성장을 한다. 자주 뚱해지고, '꼬라지'가 장난 아니다. 같이 있지만 부모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 특유의 유체이탈을, 중국 엄마들은 덜 겪겠지.

그래도 사람들은 말한다.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애들 끼고 있던 때가 최고로 좋았다고. 나도 우리 엄마 보고 대강은 안다. 아들 얘기만 나와도 얼굴이 환해진다. 아직 총각인 아들네 집 건사를 할 때는 힘찬데 끝나고는 어색해 하신다. 아들 쉬라고 밥도 안 먹고 일어서신다. '내 새끼'라도 그리운 사이가 되면 닿지 않는 존재다. 손님 같다. 

헉, 12만원 자연산 송이를?... 살림 걱정하며 말리던 종업원들

남남북녀 인증! 한국에서 왔으니까 우리 집 주소만 대도 바로 미남 인증. 안 그래도 꽃차남은 삭신이 짧고 통통해서 어디에서나 먹히는 미모!
 남남북녀 인증! 한국에서 왔으니까 우리 집 주소만 대도 바로 미남 인증. 안 그래도 꽃차남은 삭신이 짧고 통통해서 어디에서나 먹히는 미모!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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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버스에서 베이징의 북한식당에 간 얘기를 했다. 나는 그녀들을 직접 보고 나면 편해질 것 같았다. "너, 일생 미인 소리 들어본 적 없지?"라고 쓸데없이 예리한 지적을 하는 사람들에게 출생지 핑계를 대야지. 우리 집 남성동지들은 집 주소만 대도 미남 인증 받을 테고. 특히, 꽃차남은 삭신이 짧고 통통해서 무조건 먹히는 미모인데, 뭘.

우발적으로 북한식당에 갔다. 남편이 자연산 송이(우리 돈으로 12만 원)를 고르자 그녀들은 우리 집 살림 걱정까지 해주며 다른 것도 맛있다고 했다. 우리는 진짜 그게 먹고 싶어서 주문했다. 넷이 먹는데 갈비찜, 냉면, 김치, 달걀찜, 작은 화로 위에서 끓는 소라탕, 김치볶음밥, 김밥, 김치찌개까지. 풍악이 울리는 데서 대접 받으며 밥 먹는 호사를 누렸다.

예쁜 그녀들이 비싸다고 한 번 더 생각하라던 자연산 송이. 큰애가 먹으려고 주문한 볶음밥. 속에 고기가 들어있다.
 예쁜 그녀들이 비싸다고 한 번 더 생각하라던 자연산 송이. 큰애가 먹으려고 주문한 볶음밥. 속에 고기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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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찜을 나오자 꽃차남이 웃었다. '육식인'인 큰애는 갈비찜을 보고는 활짝.
 달걀찜을 나오자 꽃차남이 웃었다. '육식인'인 큰애는 갈비찜을 보고는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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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전골은 한 사람에 하나씩 나온다. 국물을 계속 부어주는데 시원한다. 언제 여기를 다시 올까 싶어서 식구 넷이서 참 많이도 주문했다. 북한김밥은 어떤지 호기심에...^^
 소라전골은 한 사람에 하나씩 나온다. 국물을 계속 부어주는데 시원한다. 언제 여기를 다시 올까 싶어서 식구 넷이서 참 많이도 주문했다. 북한김밥은 어떤지 호기심에...^^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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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느라 시간이 걸렸다. 코끝이 찡해서 더 그랬다. 밥 먹으러 와서 북한 사람 처음 본 게 아니다. 이화원에 갔을 때 봤다. 셔츠와 신발이 깨끗하고, 관광 태도도 깔끔했다. 말도 안 통하는 중국 할머니랑도 얘기하고 같이 사진도 찍었으면서, 나는 "말 걸어도 될까?" 스스로 검열만 했다. 가슴에 달고 있는 배지를 보니 '빨갱이'가 분명해서 멀어져 버렸다. 

아이들한테 "이 웬수 같은 새끼들"이라고 욕한 적 있지만 영영 못 보면, 나는 못 산다. 중간고사 점수를 '반띵'해온 큰애 성적표를 보고도 "아빠는 중학교 때 빵점도 맞았는데 우리 아들 잘했네"라고 말하는 남편이랑 헤어져 생사를 모른다면, 생각만으로 입이 마른다. 가슴이 탄다.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자식의 자식이 우리다. 남남북녀다.

언어라는 것은 몸으로 배운 것들하고는 그 성질이 다르다. 안 쓰면 잊어버린다.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 식구들은 북한말로 이야기를 했다. 꽃차남의 북한말은 억양이 간지러워서 들을수록 기분이 좋았다. 아기 때 하도 영특해서 '멘사'라고 부른 적 있다는 고백을 민망해하며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봤다. 차려준 밥만 먹고도 북한말이 터진 언어천재를.

언어천재 꽃차남군...^^ 아기 때 하도 영특해서 '멘사'라고 부른 적 있다. 차려준 북한 음식만 먹고도 북한말이 터진 언어천재.
 언어천재 꽃차남군...^^ 아기 때 하도 영특해서 '멘사'라고 부른 적 있다. 차려준 북한 음식만 먹고도 북한말이 터진 언어천재.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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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베이징 여행, #북한식당, #베이징 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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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년의 레시피』 『남편의 레시피』 『범인은 바로 책이야』 『나는 진정한 열 살』 『내 꿈은 조퇴』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 대한민국 도슨트 『군산』 『환상의 동네서점』 등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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