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 아이가 헐레벌떡 교무실로 달려왔다. 중학생 티를 벗지 못한, 아직은 앳된 1학년이다. 얼마 전 구입한 스마트폰을 방금 잃어버렸는데, 자기 것을 손에 들고 다니는 형을 봤단다. 직접 보자고는 말 못한 채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한달음에 뛰어온 거란다.

어떻게 네 것인지를 확신하느냐고 물었더니, 스마트폰의 기종은 물론 케이스도 같고 심지어 매달고 다니는 교통카드까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조급해하는 그에게 전교생의 얼굴이 담겨있는 학교 사진첩을 꺼내 보여주었다. 얼굴을 봤다고 하니 쉬이 찾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스마트폰 도난당한 후배... '범인'이 같은 학교 선배라도 찾기 어려워

그런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신이 아닌 고만고만한 얼굴 사진만으로는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운데다 2, 3학년만 해도 700명이나 되니 사진첩을 뒤적이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몇 명만이라도 압축해보라고 했더니, 확신하지 못해선지 가리킨 사람이 숫제 열 명도 넘었다.

원한다면 직접 교실을 돌며 찾아볼 수도 있다는 말에는 화들짝 놀라 움찔거렸다. 분실과 도난 문제로 후배더러 선배의 교실을 돌며 가방과 사물함을 뒤져 '범인'을 색출하라는 건,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후배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고 무모한 요구다.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교무실을 나서는 그를 다독일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스마트폰 등 값비싼 '필수품'들이 아이들 손마다 쥐어지면서 도난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기실,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도난과 갈취, 폭력 등은 양상은 사뭇 다르지만, 일어나는 환경적 조건은 거의 같다. 다수로 인한 익명성, 바로 그것이다. 곧, 이는 도난뿐만 아니라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본질적 대책 마련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집이 어딘지, 가족 관계와 성격 등이 어떤지 등을 서로 속속들이 다 아는 사이에서는 도난도, 학교폭력도 일어나기 어렵다. 또, 그런 불미스런 일들이 교사들의 무지 혹은 방관 속에 공감능력이 부족한 아이들끼리 관계 맺기에 실패한 결과라면 교사와 학생과의 만남은 물론, 아이들끼리 어우러지는 기회를 늘리는 게 최선일 것이다.

누구나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의 학교는 여전히 콩나물 교실이고, 교사는 교사대로,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서먹해하고 힘들어한다. 담임이 아니면 교사의 이름조차 모르는 아이들이 태반인데, 교사들도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우선 학교의 규모가 작아져야 한다. 작은 학교라야 아이들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 다 알고 있는 교사, 거의없다

교복과 명찰이 아니라면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은 물론, 누가 선배인지도 알기 어렵다. (자료사진)
 교복과 명찰이 아니라면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은 물론, 누가 선배인지도 알기 어렵다. (자료사진)
ⓒ 영화 <몽정기>

관련사진보기


이른바 학교에서 몇몇 '잘 나가는' 아이들을 빼면, 선후배들끼리 알고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복과 명찰이 아니라면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은 물론, 누가 선배인지도 알기 어렵다. 아이들만 그런 건 아니다.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다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교사는 거의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경우, 지역에서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는데도, 학생 수가 천 명이 넘고, 교사만도 50여 명이다. 학급당 학생 수가 40명이 넘는데, 도무지 줄어들 줄을 모른다. 출산율이 낮아 조만간 전국 학교의 학생 수가 급감할 것이라는 정부의 우려가 무색할 지경이다. 도시 학교로의 전학이 여전히 많은 탓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교사들을 탓한다. 거칠게 말해서 교사를 욕하는 게 '대중 스포츠'가 된 지 오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아무리 유능한 교과교사라도, 수업시간 수백 명의 아이에게 한결같은 열정을 쏟을 수 없고, 아무리 자상한 담임교사라도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품을 수는 없다.

반대로 농어촌의 학교에서는 도시로의 전출이 심각해 학급을 넘어 학년까지 통합교실로 운영되기 일쑤고, 학생보다 교사가 더 많은 곳도 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에서, 교육과정도, 학업성적도, 심지어 학교폭력조차도 농어촌 학교에서는 사치스러운 고민일 수밖에 없다.

가만히 내버려 둬도 농어촌 학교는 시나브로 문을 닫고, 도시의 학교는 오늘도 포화상태다. 농어촌 학교는 생존을 걱정하고, 도시의 학교는 넘쳐나는 아이들을 건사하지 못해 헉헉댄다. 이러한 지역별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온갖 문제를 야기한다. 주택, 환경, 교통 문제와 더불어 범죄 문제가 대표적인 도시 문제이듯, 학교폭력도 이러한 환경 속에서 빈발한다.

그런데도 듣자니까 정부는 농어촌의 작은 학교들을 없애지 못해 안달이 난 모양이다.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한다는 정책의 취지는 전가의 보도처럼 '효율성'과 '경쟁력'의 극대화다. 이른바 '규모의 경제'를 교육 현장에도 이식시키자는 발상인데,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농어촌의 작은 학교는 지역의 랜드마크 구실을 한다.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며, 교사, 학생뿐만 아니라 주민 모두가 학교의 구성원 역할을 하게 된다. '제2의 가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낙후한 경제 여건을 감안하면 교육을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없어서는 안 될 보육시설이라 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해서, 농어촌에 다른 기반시설이 다 무너진다 해도 학교만은 남아있어야 한다. 학교마저 떠나면, 농어촌은 자칫 아무도 살지 않는 황량한 사막과 같은 곳이 될지도 모른다. 도시의 과포화 상태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지금의 농어촌은 돌아가야 할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곧, 작은 학교 살리기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포기할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다.

물론, 농어촌만의 문제는 아니다. 도시 속 작은 학교도 통폐합의 기로에 서 있긴 마찬가지다. 주거지역이 도시 외곽으로 옮겨지면서 나타난 도심 공동화의 영향이 크지만, '효율성'과 '경쟁력'의 유령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배회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보다 될성부른 나무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 흉물스러운 폐교들과 천여 명이 함께 생활하는 '괴물 학교'의 등장이 대세가 됐다.

이러한 악순환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더욱 노골화되는 듯하다. 규모가 커지면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조차 서로 '래포'가 형성되기 어렵다. 또, 비대한 학교에 교육의 한 주체라는 지역사회가 개입할 여지 또한 많지 않다. 학교도 지역사회의 지원을 바라지 않고, 지역사회도 거대한 학교를 상대하기 버거운 탓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학급당 학생 수를 넘어 학교 규모 자체를 줄여야 한다.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학교 교육의 문제들은 모두 여기서 비롯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선 작은 학교를 살리고, 학교폭력 등 도시의 큰 학교들에서 끊이지 않고 있는 문제들을 직시하고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학교폭력 예방으로 '복수담임제''교과별 교실제' 전면 시행한다고? 

아이들과 교사가 서로서로 자주 눈을 맞추는 것이 교감이고 그것이 교육의 밑바탕이라면, 학생 수가 천 명도 넘는 큰 학교에서는 애초 불가능하다. 물론, 누군들 모르겠느냐마는, 문제는 역시 '돈'일 터다. 그러나 '예산 타령'은 정부의 무능을 숨기려는, 늘 한결같은 준비된 답변일 뿐이다. 모든 게 그렇듯, 문제는 한정된 예산을 어느 곳에 쓰느냐다.

현재 교사라면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황당한 예산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비근한 예로 학교폭력 예방하겠다고 전격 시행한 '복수담임제'가 그렇고, 대학식의 '교과별 교실제'를 조만간 전면 시행하겠다며 수많은 학교를 그에 걸맞도록 '리모델링'하는 모습이 또한 그렇다.

'복수담임제'야 현장을 전혀 모르는 행정 관료들이 벌인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지만, '교과별 교실제'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현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향후 몇 년 내에 모든 중·고등학교에 도입한다는데, 학년과 학급 개념도, 담임교사 개념조차도 유명무실해질 것이 뻔해, 시범 운영하는 학교마다 우려의 목소리가 큰 까닭이다.

치밀한 검증도 없이, 그야말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대책을 밀어붙이기보다, 외려 그런 예산들을 작은 학교를 살리는 데에 쓰길 바란다. 주판알 튕겨 가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폄훼하기 전에, 그 수많은 작은 학교들의 전통과 역사가 지역사회에, 나아가 우리나라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배려할 수는 없을까. 바야흐로 지역과 공동체, 나눔과 연대가 시대정신일진데, 학교폭력 예방은 외려 덤이다.


태그:#소규모 학교 통폐합, #학교폭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