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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넘은 시간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을 맞고 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을 맞고 있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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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특전사 옷을 입고, 김은 중국에 가고, 손은 영화를 보고, 안은 강의를 하고, 이는 자전거를 타고, 박은, 박은…가만히 있다. 올해 12월 대선에 앞서 여야의 대권주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예비 대통령들의 보폭이 커지는 만큼 지켜보는 이들의 관심도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아웃 오브 안중'의 나락으로 떨어진 '위원회'가 하나 있으니, 그 친구는 바로 '최저임금 위원회'이다.

이 위원회는 노·사·공익 9명씩 총 27명의 위원들이 '재잘재잘, 쑥덕쑥덕, 복작복작' 회의를 진행해 다음해의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대개 6월 말까지를 협상 시한으로 두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는 않는 것 같다. 올해에는 노동 측 최저임금 위원으로 '국민노총'의 조합원이 위촉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만 들려올 뿐이다. 국민노총은 정부의 어용노조라는 소리를 듣는 단체다. 국민 상당수의 삶을 결정하는 위원회가 국민의 무관심 속에 삐걱거리고 있는 상황은 대단히 안타깝다.

노동계는 '노동자 평균임금의 50%'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책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현재 수준으로 산정하면 약 5600원이 나온다. 2012년 최저임금인 4580원은 이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다. 사실 노동계의 주장은 근거 없는 몽니가 아니다.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라는 주장은 다름 아닌 OECD가 권고하는 기준이다.

실제로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고문은 이러한 기준을 반영해 매년 최저임금 결정을 법제화하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경총이나 전경련은 '최저임금 올리면 중소기업 다 죽는다'고 우는 소리하는데, 풉. 언제부터 중소기업의 운명에 그토록 관심이 많으셨던지. 회장님을 위해 당신들이 후려치지만 않아도 중소기업은 별 탈 없을거다.

월급 96만원에서 117만원으로... 통신비, 교통비는 '퉁'

최저임금을 둘러싼 쟁점들은 접어 놓고, 조금 즐거운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최저임금위원회의 파행이나, 국회 법 제정 문제는 다 제쳐놓고, 최저임금이 5600원으로 책정되었다고 가정한다. 나는, 그리고 최저임금 혹은 이에 준하는 임금을 받는 청년들의 구체적인 삶은 어떻게 바뀔까?

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을 꽉 채워서 일했다. 한 달에 약 96만 원을 받은 셈이다. 청년들이 88만원 세대라는데 나는 완전 '귀족'이었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5600원으로 책정되면 이 '귀족' 노동자의 월급은 무려 117만 원으로 뛴다.

세상에나. 21만 원의 월급이 뻥튀기가 된다. 최저임금을 받는 청년들이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상상의 폭은 무궁무진하다. 우선 내 기준에서 떠오르는 것은 한 달에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통신비와 교통비가 '퉁' 쳐진다. 통신사들이 보이스톡에까지 견제구를 넣는 바람에 통신비를 절약할 여지가 안 보였는데, 참 잘 됐다. 어느 순간 교통카드에서 1050원 씩 빠져나가는 상황을 보며 흠칫흠칫 놀랐는데, 이것 참 잘 되었다. 다달이 나가는 고정 지출에 대한 부담을 한시름 덜고, 대신 나를 위한 소비를 통해 한국의 내수시장 활성화에 이바지 해야겠다.

"한 시간 알바비로 넉넉한 밥 한끼 가능"

제육덮밥
 제육덮밥

시급 4580원으로 밥 한 끼를 먹는다고 생각해 보자. 김밥집의 제육덮밥 앞에서 망설이다가 라면과 김밥 한 줄을 시켜 먹은 뒤 남은 돈으로 껌을 한 통 사먹는다. (요즘은 껌도 비싸져서 조금 어려울 수도) 만약에 한국의 최저임금이 5600원이 된다면, 이 땅의 청년들이 김밥천국의 제육덮밥 앞에서 망설이지는 않을 것이다. 1시간을 꼬박 일해서 밥 한 끼도 제대로 사먹을 수 없다는 열패감에서 청년들을 구원하게 되는 것이다.

4대보험에서도 차이는 뚜렷하다. 20, 30대 비정규직 노동자 중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비율은 50% 남짓이다. 최저임금 노동자로 한정한다면 이 비율은 더 낮아진다. 주 15시간(혹은 월 60시간) 이상 일하면 '의무 가입대상'으로 포함되는 4대 보험의 가입률이 이토록 떨어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 이렇게 가입률이 낮은 것일까? 사업주가 기피하는 요인도 크지만 근로자가 4대 보험 가입을 원치 않는 경우 또한 다반사다. 그도 그럴 것이 쥐꼬리만한 소득에서 4대 보험을 내면 소득은 더 줄어든다. 현재 4대 보험을 납부하기 위해 근로자가 부담하는 요율은 약 8%이다.

96만 원을 벌 때 4대 보험을 내고 나면 딱 88만 원 남았다.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은 임금에서 빠져나가는 보험료는 치명적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는 이들에게 '연금'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고용보험'으로 '안정성'을 설계하는 것은 대단한 사치다. 최저임금의 수준이 올라 이들의 평균 소득이 올라간다면 4대 보험 가입으로의 유인은 한층 강력해질 것이다. 사실 제대로 집행이 되기만 한다면 한국의 4대 보험은 대단히 잘 설계되어 있는 편이다. 특히 고용보험의 경우 취업과 실업을 쳇바퀴 도는 오늘날 청년층에게 대단히 중요한 자원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정규직에도 이득"

"알바 안 했으면 나도 학점 좋았을 텐데..."
 "알바 안 했으면 나도 학점 좋았을 텐데..."
ⓒ 김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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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언급할 영역은 다름 아닌 최저임금의 인상이 (파트타임 노동시장이 아닌) 정규직장에 미치는 영향이다. 한국의 낮은 최저임금이 정규 직장의 장시간 노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어떨까? 이는 '포괄임금제'(월급 안에 연장근로에 따른 수당이 포함된 것으로 인정하는 계약 방식)와 엮어서 비정규 청년 노동자들에게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160만 원을 받는 노동자가 있다. 근로계약서의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하다 보니 60시간 정도 일한다. 하지만 '포괄임금제'라는 무식한 장치로 인해 야근에 따른 추가 수당이 붙지 않는다. 그의 시급은 얼마일까?

연장 근로수당을 비롯한 기타 등을 산정하여 계산해보면, 약 4700원이 나온다. 어쨌든 최저임금보다는 높지만, 낮은 최저임금과 포괄임금제라는 장치가 결합하여 160만 원을 받는 귀족 노동자(?)가 일개 최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조건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을 주변에서 너무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실제로 현행 최저임금 기준으로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155만 2300원 이상을 지급한다면 '주 60시간' 이상 근로를 시키더라도 최저임금법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이유는 이렇다. 주 60시간을 근무한 자는 40시간을 초과한 나머지 20시간은 1.5배의 임금을 적용받는다. 20시간에 1.5배는 30시간이다. 여기에 유급휴무 수당 8시간을 합치면 주 78시간이 된다. 즉 한 주에 60시간을 일하는 사람은 78시간의 근무 수당을 받게 돼 있다. 한 달을 4.345주((365일÷12개월)÷7일(1주일의 일수) = 4.345)로 하고 주당 근무시간 78시간에 최저임금 4580원을 곱하면 155만 2200원이 나온다. 즉 155만 2300원만 받게 되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앞의 계산과 마찬가지로 185만 원이 넘는 임금을 지급한다면, '주 70시간' 이상 근로를 시키더라도 현행 최저임금에 미달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OECD가 권고하는 수준인 5600원까지 올라간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사업주는 예전처럼 160만 원을 지급하면서 주 60시간에 달하는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없다. 노동자를 주 60시간 굴리고 싶으면 190만 원에 달하는 임금을 제공해야 '최저임금'을 준수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상황에서 사업주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높은 임금으로 재계약을 맺든지, 노동자의 근로시간을 줄이든지.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이 OECD 권고 수준으로 책정된다면, 한국의 과도한 노동시간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가 생기는 셈이다.


태그:#최저임금,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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