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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5일 오후 서울 금융위원회, 서울역 등 도심 곳곳에서 3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99%행동준비회의> 주최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다(Occupy 서울)' 집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15일 오후 서울 금융위원회, 서울역 등 도심 곳곳에서 3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99%행동준비회의> 주최 '1%에 맞서는 99%, 분노하는 99% 광장을 점령하다(Occupy 서울)' 집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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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에 이어 시중은행도 사면초가에 몰렸다. 지난주 공정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조사를 시작으로 신한은행 저학력자 고금리 대출 논란, 국민은행 대출계약서 위조 의혹까지 온갖 비난이 은행권과 금융감독당국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1% 금융 자본에 맞선 '어큐파이 여의도' 운동이 은행이 밀집한 명동과 을지로 일대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장 공정위와 감사원 조사로 '약탈적 대출'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정치권과 금융노조까지 힘을 보내고 나선 것이다.   

감사원 발표는 '금융소비자 약탈 백서'

"CD 금리보다 가산 금리가 더 문제다." CD 금리 담합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23일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이 보인 반응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감사원은 이날 '금융권역별 감독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행의 저금리 기조에도 은행들이 가산 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가계나 기업에게 돌아갈 이자 감소 혜택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신한은행의 대출금리 학력 차별, 단기간 연체자 불이익, 저신용자 카드 대출 문제 등 금융권의 약탈적 대출 사례와 금융당국의 감독 소홀을 고발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역시 저학력자 고금리 대출 문제였다. 신한은행은 개인신용평가 모형에 석·박사는 최고 54점을 준 반면 고졸 이하는 최하점인 13점을 줘 대출시 불이익을 줬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학력 요인 때문에 대출을 거절당한 사례만 1만4138건이었고 추가 부담한 이자는 17억 원에 달했다. 

저금리 시대 가산 금리를 올려 높은 예대마진을 올린 은행들의 행태도 드러났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2008년 5%대에서 2011년 3%대로 계속 떨어졌고 주택담보대출 등 변동금리 기준이 되는 CD 금리 역시 같은 기간 6%대에서 3%대 중반으로 떨어졌지만 가산금리는 오히려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10월 금융위기 이전 1.76%였던 가산금리는 금융2.98%로 1.22%p 올랐다. 시장금리 하락으로 자신들의 이자 수익이 줄어든다는 이유 때문이다.

'가산금리' 실체 드러나... 이자 30조 추가 부담 '충격'

금융위기 전후 가산금리 인상으로 추가 부담한 이자만 가계 3조 8000억 원, 기업 16조 6000억원 등 20조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덕분에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 1.48%p이던 은행권 예대마진도 2009년 발생 후 최대 2.39%로 더 벌어졌다. 그런데도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 등은 금리는 시장 자율로 결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은행 불합리한 가산금리 조정이 적정한지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단 1주일(5영업일)만 연체해도 신용평가회사에 통보해 개인신용등급을 떨어뜨리거나 금리를 올려 불이익을 주는 것도 문제였다. 2010년 기준 5영업일 이상 연체 1149만 건 가운데 76.4%가 30일 이내 상환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은행권은 안하무인이었다. 1주일 연체했다는 이유로 신용등급을 평균 1.3등급 떨어뜨리고 신용등급 회복에 평균 5개월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 감사 보고서엔 이밖에 저축은행 PF대출이나 후순위 채권 발행 과정에서 감독 부실 문제 등을 비롯해 신용카드, 보험, 증권업계까지 아우르는 감사결과 60건이 담겨 있다. 

'약탈적 대출' 차단 기회... '금융소비자보호원' 독립 기대

그간 은행권 고질적인 병폐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자 금융권 일부에선 은행 대출금리 인하 압박이 아니냐는 불만 섞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실제 최근 집값 하락에 따라 담보인정비율(LTV)이 높아지면서 은행권에서 대출 금리 인상이나 원금 일부 회수에 나설 가능성을 보여왔다. 이밖에 '금융소비자보호원'을 둘러싼 정부기관간 알력 다툼, 심지어 오는 30일 예정된 금융노조 총파업을 무력화하려는 음모론까지 갖가지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금융 자본의 약탈적 대출을 막을 호기로 보고 있다. 당장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은 24일 "(감사원 발표로) 가계부채 급증 원인은 '소비자 약탈'을 위한 금융권에 의한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밝혀졌다"면서 "'약탈적 대출'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공정대출법' 제정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대출법에는 과잉대출 금지를 비롯해 ▲심사의무 부여, ▲심사의무 위반시 손해배상액 법정화 ▲사전 채무재조정(프리워크아웃) 법제화 ▲금융기관 압류제한 ▲과잉경매 금지 등이 담길 예정이다.

오는 7월 30일 총파업을 앞둔 김문호 위원장을 비롯한 전국금융산업노조 지부장들이 24일 오전 금융노조 투쟁상황실에서 삭발한 뒤 CD 금리 담합 의혹 진상 규명, 낙하산 인사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오는 7월 30일 총파업을 앞둔 김문호 위원장을 비롯한 전국금융산업노조 지부장들이 24일 오전 금융노조 투쟁상황실에서 삭발한 뒤 CD 금리 담합 의혹 진상 규명, 낙하산 인사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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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금융회사의 약탈적 대출에 맞서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을 요구해온 시민단체 목소리에도 한층 힘이 실릴 전망이다.

서민금융호보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들은 24일 오후 여의도 금융위 앞에서 CD 금리 담합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서 "오랜 기간 동안 금융이 가진 공신력을 무기로 상대를 가리지 않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사기를 친 것"이라면서 "우리는 지금 자신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되거나 파산을 하는 경우가 개인의 능력 부족이나 불운이 아닌 탐욕스런 금융의 조직적인 범죄의 희생양이라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라고 따졌다.

이런 분노에 감사원 발표는 기름을 부은 셈이다. 채무자 권익을 위한 시민운동을 준비하고 있는 제윤경 에듀머니 이사는 "금융권이 개인신용등급 관리 체계를 투명하게 공개하지도 않으면서 금융소비자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활용돼온 게 사실"이라면서 "그나마 감사원 같은 정부기관이 아니면 알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30일 총파업을 예고한 금융노조에서는 최근 사건들이 자신들이 내건 금융 공공성 강화 명분에도 부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금융업계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금융 노동자들에게까지 향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은 "CD 금리 담합이나 저학력자 고금리 대출 문제는 금융당국과 사용자들이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탐욕스런 금융자본을 만든 결과"라면서 "금융노조는 그간 정부와 사용자를 상대로 공공성 강화와 사회적 약자에 책임을 다하라고 주장해왔지만 은행과 금융회사들을 단기성과 위주 영업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태그:#금융소비자, #CD금리, #약탈적 대출, #가산 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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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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