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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에서 근무했던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증언 도중 오열하고 있다.
 2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삼성전자 LCD 기흥공장에서 근무했던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증언 도중 오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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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대회 행사장앞에는 이미 사망했거나, 현재 투병중인 피해자들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증언대회 행사장앞에는 이미 사망했거나, 현재 투병중인 피해자들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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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은 건강할 때 삼성전자에 입사해 일하다가 병들었다. 그런데 사람을 한 번 쓰고 마는 종이컵처럼 버렸다."

김시녀씨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일류 기업에 들어갔다고 자부하던 딸 한혜경(35)씨는 입사 후 곧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창문도 없는 방에서 종일 일해야 했다. 씻고 또 씻어도 몸에 밴 화학약품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생리까지 멎어 힘들어하던 한씨는 입사 6년째였던 2001년 회사를 그만뒀고, 4년 뒤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했지만 잃은 게 많았다. 세 살짜리처럼 기저귀를 채우고, 물병에 빨대를 꽂아 쓰는 딸의 모습을 설명하던 김씨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2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는 한씨처럼 삼성전자 계열 공장에서 일하다가 갑작스레 병을 얻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모였다. 심상정 통합진보당 의원이 주관한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 요양중인 송창호씨가 증언을 하고 있다.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 요양중인 송창호씨가 증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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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부터 만 5년7개월 동안 삼성전자 온양 반도체공장에서 납과 화학약품으로 반도체 도금 작업을 했던 송창호(43)씨는 지난 2008년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같은 공장에서 납 공정을 했던 김지숙씨는 재생불량성 빈혈을 얻었고, 지난 4월 생존자 중 처음으로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다. 2008년 불승인 판정을 받은 송씨는 현재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재판을 진행하며 삼성의 거대함을 느낀다. 눈에 종양이 난 동료 사례를 증언집에 올렸더니 이걸 빼달라는 항의전화가 왔다. 결국 그 사례를 재판에서 말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써줬다. 제가 얘기해도 회사랑 근로복지공단이 듣지 않는데, 돌아가신 분들 가족은 어떻겠냐. 일류 기업이라면 (잘못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고 3이던 1997년 온양공장에 입사한 고 이윤정씨는 2003년 퇴사할 때까지 반도체칩을 고온에서 시험하는 공정에서 일했다. 퇴직 후 정희수씨와 결혼해 두 아이를 뒀다. 이씨는 2010년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았고 지난 5월 33세로 숨졌다. 아내의 투병생활을 담담하게 증언하던 정씨는 "제발 애들 공부만큼은 잘 시켜달라,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서 공장 다니는 건 싫다"던 아내의 유언을 전하다 고개를 푹 숙였다.

2010년 악성 뇌종양 진단으로 2년간 투병 뒤 사망한 고 이윤정씨의 남편 정희수씨가 증언을 하고 있다.
 2010년 악성 뇌종양 진단으로 2년간 투병 뒤 사망한 고 이윤정씨의 남편 정희수씨가 증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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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 산재 인정 등 요구... 국회 환노위 소위구성은 무산

같은 곳에서 일하다가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린 유명화(31)씨의 아버지 유영종씨는 "삼성 가족이었는데, 퇴사했다고 (아파도) 나 몰라라하는 몰상식한 삼성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삼성이 피해자 가족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기업, 반성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증 재생불량성빈혈로 투병중인 유명화씨의 아버지 유영종씨가 증언하고 있다.
 중증 재생불량성빈혈로 투병중인 유명화씨의 아버지 유영종씨가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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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울산에서 올라온 정기운(41)씨도 "모두가 산재 인정받고 건강하게 살아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삼성SDI에서 일하다 2009년 갑작스레 쓰러진 정씨는 급성 대동맥 박리 진단을 받았다. 두 차례 산재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판정을 받아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삼성 백혈병·직업병 문제 해결에 앞장서 온 황상기씨와 정애정씨도 참석했다. 황씨의 딸 고 황유미씨는 2003년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에 입사해 2년 만인 2005년 백혈병이 발병했고, 2년 만인 2007년 세상을 떠났다. 스물 셋이었다. 1995년 같은 기흥공장에 입사했던 정씨는 그곳에서 남편 황민웅씨를 만났고 그곳에서 남편을 잃었다. 황씨 역시 백혈병이었다. 두 사람은 이날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 ▲ 삼성의 행정소송 개입과 산재 은폐 중단 ▲ 삼성과 정부의 투명한 진상조사·정보공개 ▲ 정부의 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증언하고 있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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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증언하고 있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가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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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무거운 표정으로 증언을 듣던 심상정 통합진보당 의원은 "성장제일주의, 시장만능주의의 이면을 아주 고통스럽게 봤다"며 "이 자리가 노동자의 생명권이 유린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행사 초반에 "19대 국회 화두는 한마디로 삼성"이라며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 환경노동위원들은 쌍용자동차와 함께 삼성 백혈병·직업병 해결을 위한 소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통합진보당 김제남, 박원석, 이상규 의원뿐 아니라 새누리당 소속 송광호, 서용교, 김상민 의원도 참석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26일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아직 정확한 현황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위를 구성하면 정치적으로 갈 수 있다'며 소위 구성에 난색을 표했다.

심상정 의원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거론하던 중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거론하던 중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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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단, 반올림, 발암물질 없는 사회만들기 국민행동 주최로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리고 있다.
 2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단, 반올림, 발암물질 없는 사회만들기 국민행동 주최로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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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삼성, #삼성 백혈병,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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