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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 책겉그림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 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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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에서 대한민국 상품의 점유율이 줄어들어도 우리 경제가 무사하다면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한반도 남쪽 시장만 가지고 자급자족하는 생활이 족하다고 동의한다면, 세계 시장 점유율 경쟁에서 뒤처지는 불이익을 부득불 감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국내 시장이 커서 2006년을 기준으로 무역의존도가 각각 국내총생산의 22.3%, 28.1%밖에 안 되는 반면, 한국은 71.5%에 이른다. 설상가상 한국은 통일을 비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국가적 숙제가 있다."(22쪽)

김현종의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는 WTO 법률국 부국장에서 한국의 통상교섭본부장이 되어 미국과 FTA를 체결한 역사적인 주인공이죠.

이 책에는 한미 FTA 체결뿐만 아니라 아세안 10개국과 FTA를 타결한 것, EU 27개과 협상을 출범시키고, 러시아와 FTA 예비협상을 도출한 것 그리고 남북 FTA를 북한에 제의토록 한 일들을 상세하게 밝혀놓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동시다발적 FTA 전략'을 추진한 그 흐름들을 엿볼 수 있는 것이죠. 

회고록과 같은 이 책을 그가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미 FTA의 협상에서 그가 얻은 노하우와 교훈들을 후배에게 전하고픈 마음 때문이라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죠. 이 책의 부제처럼 '대한민국을 위해 최전방에서 설 젊은이들에게' 바치고픈 마음에서 그랬던 것입니다. 물론, 꼭 그런 마음만은 아닐 수 있겠죠. 'Ready, Aim, Fire'(준비-조준-발사)라는 협상단계가 있었음에도 곧바로 'Fire'(발사)했던 그의 성과들을 자랑하고픈 욕심도 한 몫했을 것입니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국의 거만함을 그리 달가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대통령의 마음까지 그가 흔들어놓으면서 한미FTA를 추진했던 배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그 이유를 100여 년 전 대원군의 쇄국정책에서 빌려옵니다. 다자 협상의 틀과 같은 WTO에 의존한 채 개별 국가 간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치 않는다면 머잖아 우리나라는 100여년 전의 그 꼴을 당할 수 있다고 말이죠.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초·중등교육과 의료 등 사회 공공 제도는 협상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며 전기·가스·수도 등 여타 공공서비스도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논의될 것이므로 협상이 타결되어도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한미 FTA 반대론자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한미 FTA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전교조는 초·중등교육 시장이 개방 대상에서 제외되더라도 고등교육 시장이 개방되면 필연적으로 영리법인을 허용할 것이므로 결국 등록금 상승으로 이어져, 소수 특권층만이 고등교육의 혜택을 누리고 학교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한편 공교육은 붕괴될 것이라고 홍보했다."(133쪽)

사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그의 논리에 깊은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 때문입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가 개별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지 않으면, 특별히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으면 머잖아 높은 관세 때문에 우리나라의 제품들이 도태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 말이죠.

그래서 미국과 대등한 FTA를 재빨리 체결해 놓으면, 다른 국가들과는 우위를 점하면서 FTA를 체결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많은 반대론자들의 의견까지 감내하면서 협상 테이블에 성실하게 임한 이유였고, 여러 악전고투 속에서도 끝내 한미FTA를 체결한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미FTA, 경제학자는 무겁게 생각... 외교관은 가볍게 본다

 〈fta 한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
▲ 책겉그림 〈fta 한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
ⓒ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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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체결 건수를 국민 경제 발전의 척도로 삼을 수는 없고, 지금과 같이 실제 한국 중소기업의 형편과 서비스 업종의 어려움을 돌아보지 않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계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늘 옳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외교관에게는 조약 체결 건수가 성과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2005~2006년이 꼭 '동시 다발적 fta'를 추진해야 할 상황이었는가에 대해서는 훗날 다시 평가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공무원 특히 외교관에게는 조약 체결이 개인으로서는 성과이겠지만, 그게 국민 경제에도 반드시 그런 효과를 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50쪽)

우석훈의 < fta 한스푼 그리고 질문 하나>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야말로 경제학자가 예측하는 한미fta의 국민경제와 외교관이 바라보는 한미FTA 체결과는 전혀 다르다는 셈이죠. 앞서 김현종 본부장이 회고록을 낸 이유를 내가 삐딱하게 생각한 게 있는데, 그 역시 단순무식한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경제학자는 총체적인 국민경제를 걱정하는 측면에서 한미fta를 무겁게 생각한다면, 외교관은 성과주의 때문에라도 한미FTA를 가볍게 내다본다는 뜻이죠. 더욱이 그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UN대사를 역임한 뒤 삼성선자의 해외 법무 사장으로 간 것도 뜻밖의 통탄할 일이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뭔가 음모론을 제기한 사람도 있다고 하죠.

특별히 우석훈은 이 책을 통해 100년 전의 개방과 쇄국, 매국과 애국이라는 논의 구도 자체를 깨트려버립니다. 사실 한미FTA 찬성파들은 반대파를 향해 장사도 모르고 세계 경제도 모르는 쇄국주의자라는 인식으로 몰아붙이죠. 다른 쪽에서는 이완용 등이 외교 조약으로 나라를 팔았던 1905년의 을사늑약을 한미fta 날치기에 비유하고요.

그는 그런 시각 자체를 홍길동처럼 훌쩍 뛰어넘습니다. 그가 보기에 작금의 우리나라는 17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유행한 중상주의의 부활과 같다고 진단합니다. 국내의 생산기반이나 산업생태계는 전혀 고려치 않고, 무조건 관세만 낮추고 해외투자 규제만 풀어주면 경제가 잘 돌아갈 거라는 극단적 중상주의로 치닫는 때라고, 진단한 게 그것입니다.

과연 우석훈은 이 책을 통해 한미fta가 몰고 올 재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는 우리나라가 미국과 맞붙으면 농업은 점차 깨질 것이고, 서비스도 예외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일반인들이 염려하는 의료체계와 약값도 괜한 기우가 아니라고 하죠. 다만 자동차 분야에서 이익을 볼 거라 예상했던 일들도 자동차 회사의 현지화 전략 때문에 관세와도 거리가 멀어질 것이라고 예측을 합니다.

그것은 한미fta를 체결한 이후의 지난 몇 달 동안에 일어난 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라고 하죠. 이전에도 그랬듯이 우리나라는 여전히 수출보다 수입이 많다고 합니다. 결국 한미fta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셈입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WTO 내의 개발도상국이라는 지위를 누리면서 관세 혜택을 보는 게 훨씬 이로운 선택이었는데, 이미 새로운 다리를 뻗은 상태라, 앞으로는 경제민주화 정부가 들어서서 한미fta를 개정하는 것 밖에 달리 길이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이 '팩스 한 장으로도 한미fta를 종료시킬 수 있다'고 말한, 그의 서정적 표현이기도 하죠.

"국민들이 질문하지 않는 나라가 잘 살게 된 예가 없다. 사회가 질문을 멈추면 군인이든, 관료든, 전문가든, 독재가 시작된다. 노무현의 인수위에서 김현종에게 전화한 사람은 과연 누구였을까? 못내 궁금하다. 역사는 기막힌 우연의 연속이라지만, 한국 경제의 운명이 그 전화 한 통으로 바뀌게 되었다."(279쪽)

왜, 우석훈이 경제민주화 정부를 이야기하는지 그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이것입니다. 김현종의 행동반경과 그가 추구한 성과주의는 한국의 특권층 그것도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무시무시한 공화국과 함께 그의 맥박이 계속 뛰었을 것이란 예측이죠. 그래서 우석훈은 그 공화국을 대변하는 한미FTA이기보다는 한국 내의 청년들과 소상공인들과 농민들과 난치병 환자들과 여성들을 보호할 수 있는 한미fta가 훨씬 낫다는 판단 하에 그런 개정도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그대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시렵니까? 외교관이 급속하게 협상을 추진한, 그리하여 그 공화국과 같은 대한민국의 특권층을 위해 체결된 한미FTA가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경제학자가 내다 본, 그리하여 국내의 전반적인 생산 기반과 산업생태계를 모두 살려야만 한다고 생각한 한미fta의 개정이 더 낫다고 내다보십니까?

이런 까닭에 '통상파'에 해당되는 현직 정치인들보다는 경제민주화 정부를 이룰 수 있는 시민사회격의 새로운 인물이 차기 대통령에 나서야 하는 건 아닐까요?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 대한민국을 위해 최전방에 설 젊은이들에게

김현종 지음, 홍성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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