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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31일 오후 2시 45분]

지난 3월 21일 서울 한남동 주한 인도대사관 앞. 20여 명의 노동자와 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였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맞춰 만모한 싱 인도총리가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인도 기업인 마힌드라가 '먹튀' 상하이차를 따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울림은 컸다.

'마힌드라의 쌍용차'가 출범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쌍용차의 매출은 크게 늘었다. 국내 시장 점유율도 꼴찌를 벗어났다. 중국 상하이차 시절보다 성장세가 확연하다. 하지만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 환경 속에 쌍용차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 않다. 좋은 차만 만들어선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마힌드라의 쌍용차가 생존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수천억 투자 절실한 쌍용차, 대주주 마힌드라 직접투자는 '0원'

쌍용자동차의 코란도C.
 쌍용자동차의 코란도C.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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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선 옛 상하이차의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 지난 2004년 쌍용차를 인수한 상하이차는 매년 3000억 원을 신차개발 등에 투자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개발은 뒷전이고, 기술만 빼 가려 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결국 이들의 부실 먹튀 경영으로 쌍용차는 부도 위기로 내몰렸다. 2600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 3월까지 정리해고자와 가족 등 22명이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지난 2010년 인도의 마힌드라엔마힌드라(M&M) 그룹은 5225억 원에 쌍용차를 인수했다. 상하이차가 들였던 5900억 원보다 싸다. 마힌드라는 쌍용차 주식 70% 등을 갖고, 대주주로 올라섰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종탁 산업노동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마힌드라는 쌍용차 인수 당시 내놓은 주식인수 자금 말고, 이제까지 실제 투자한 돈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지난 1년 6개월 동안 쌍용차가 내놓은 신차나 변경모델 등 모두 자체적으로 조달했다"며 "마힌드라 역시 상하이차와 비슷하게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종식 쌍용차 영업부문 부사장도 올해 초 인도의 한 경제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쌍용차는 3~5년 동안 마힌드라 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 예산 12억 달러로 네 가지 새로운 자동차 모델과 변형모델을 생산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상 마힌드라가 국내에 직접 투자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마힌드라 지원없이 신차 생산" vs. "직접투자없이 어려울 것"

쌍용차 주요 재무지표
 쌍용차 주요 재무지표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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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쌍용차 관계자는 "마힌드라 인수 이후 부채 등이 크게 줄면서 재무적으로 안정됐고, 신차 출시에 따른 판매 증가 등으로 자체적인 자금 조달 능력이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마힌드라로부터 자금을 따로 받을 필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쌍용차의 계획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쌍용차가 향후 자동차 시장에서 제대로 안착하려면 향후 2~3년 동안 최소 수천억 원에서 1조 원이 넘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힌드라 직접 투자 없이 현재의 재무구조로 이 같은 투자를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 업종을 관찰해온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역시 "쌍용차 계획대로 신차 등이 나오기 위해선 돈이 필요한데, 대주주가 (돈을) 내놓지 않는다면 금융권의 차입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신차 한 대 개발에 최소 수천억 원이 들어가는 자동차 업종의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은 금융권으로부터 신용을 바탕으로 일정한 돈을 빌려 쓰고 있다.

실제 금융권 일부에선 올해 초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쌍용차에 1조 원대의 신용 대출 여부를 타진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쌍용차의 향후 시장확대 등 가능성을 보고, 자금 지원을 할수있다는 것이다. 대신 대주주인 마힌드라의 지급보증을 조건으로 달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힌드라 쪽에서 지급보증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해당 글로벌은행의 국내지점 관계자는 "쌍용차가 됐든, 어떤 기업이든 재무구조가 좋고, 향후 기업 수익성 등을 고려해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쌍용차 대출 타진 여부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삼갔다. 쌍용차 쪽에선 부인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금융권과 거래를 트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며 "아직까지 국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특별히 접촉해 온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2011년 쌍용차 판매량
 2011년 쌍용차 판매량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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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렉스턴 생산, 기술유출 논란

마힌드라의 투자 의지와 함께 기술 유출 논란도 떠오르고 있다. 지난 12일 평택서 만난 한 직원은 "옛 상하이차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노조 지부장은 "회사는 올해 3000억 원을 들여 신차를 개발하겠다고 했지만 지금 투자도 연구개발도 진행되는 것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또 "오히려 올 하반기부터 인도 공장에서 렉스턴 등이 생산된다"며 "여기선 반제품 조립(CKD) 방식으로 수출해 거기(인도 공장)에서 조립만 한다고 하지만 앞으로 직접 생산체제를 갖추게 되면 기술유출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마힌드라 쪽은 인도 차칸공장에 렉스턴 조립생산 라인을 짓고, 하반기부터 생산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이후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코란도C(씨)도 판매할 계획이다. 특히 향후 2016년까지 쌍용차와 4개의 신차 플랫폼을 공유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이종탁 선임연구원은 "마힌드라는 국내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 아닌 쌍용차의 부품과 기술을 넘겨받아 인도에서 생산 체제를 구축하는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신차 플랫폼을 공유한다는 것은 사실상 쌍용차의 설계와 생산 기술을 고스란히 마힌드라에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지난 13일부터 5~6차례에 걸쳐 인도 마힌드라의 아난드 부회장 쪽에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마힌드라의 미디어 담당자인 로마 발와니씨는 "아난드 부회장이 회의 중"이라거나 "외부에 나가 계신다"며 전자우편으로 질문 내용을 보내라고 했다. 이어 마힌드라 측의 투자 집행 내역과 계획, 기술유출 논란 등이 담긴 질문을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마힌드라는 지난 27일 "한국의 쌍용차 쪽에서 답변할 사안"이라며 답변 자체를 꺼렸다.

마힌드라의 쌍용차 1년 6개월. 쌍용차는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로에 서 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늘리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희생된 노동자를 배려하는 노사 상생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시장의 신뢰를 얻고,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종탁 연구원의 말이다.

"국내 상용차(트럭)제조업체인 타타대우의 예를 보세요. 마힌드라와 같은 인도회사인 타타그룹은 쓰러져 가는 대우트럭을 인수한 후, 군산공장에서 차량을 생산하고 있어요. 인수할 때 돈을 지불한 것 말고도, 공장 설비에 투자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면서 고용안정에도 적극적이예요. 좋은 차도 만들어 내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어요. 왜 마힌드라는 그렇게 못 합니까."


태그:#쌍용차, #마힌드라, #타타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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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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