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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태안지역 희생자 명단은 정 회장이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요청하면서 비로소 빛을 봤다.
▲ 정석희 회장 한국전쟁 당시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태안지역 희생자 명단은 정 회장이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요청하면서 비로소 빛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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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오전 11시 2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67호 소법정 안.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았는지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아까부터 이마와 등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찜통더위에 작은 법정을 가득 메운 인파까지 제대로 숨을 쉬기도 버겁다.

붐비는 방청객석 앞으로는 판사와 변호인단들이 쉴 새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답답함에 상의 단추를 하나 풀었다. 그래도 대화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얇은 긴 셔츠 차림에 재킷을 손에 든 노신사에 시선이 멈췄다. 그는 법정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노신사는 상의 셔츠가 하얀 맨살을 드러낼 정도로 땀을 흘렸다. 그 모습이 흡사 최근 유행하고 있다는 시스루 룩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간혹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눈을 자극했는지 그는 몇 차례 눈을 깜박였다.

땀범벅인 외형과 달리 눈빛은 진지했다. 재판장과 변호인단의 대화를 경청하려는 듯 그는 몸을 최대한 앞으로 수그렸다. 10분도 채 되지 않은 대화가 끝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법정을 떠났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삼촌을 잃은 정석희(65)씨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제367호 소법정에서는 보도연맹과 관련된 제4차 변론이 진행됐다.

정씨는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2구 669번지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고향을 떠올리면 '향수'보다는 '애증'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는 공권력에 의해 가족을 잃었다.

지난 2008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서산·태안지역에서 부역혐의로 희생된 186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현재까지 조사된 바로는 전국에서 희생자가 가장 많다.

앞서 그는 2008년 초 서산·태안지역 보도연맹사건의 유가족 15명과 함께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공권력에 가족을 잃고 수십 년간 핍박받으며 살아온 세월을 보상받고 싶어서다. 그러나 한 번 덧씌워진 명예를 회복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지는 않았다. 물론 그의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충남 태안군 태안읍 평천리에 세워진 부역혐의 희생자 추청 알림판. 현재 유해매장 추정지 옆으로는 전통 활쏙 연습장이 조성돼 있다.
▲ 풀 우거진 알림판 충남 태안군 태안읍 평천리에 세워진 부역혐의 희생자 추청 알림판. 현재 유해매장 추정지 옆으로는 전통 활쏙 연습장이 조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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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 2세들, '빨갱이' 꼬리표에 연좌제 '낙인'

가족의 죽음이 그의 인생에 발목을 잡은 것은 대학을 졸업할 즈음이다. 그 당시 부역혐의와 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유가족들에게는 '빨갱이' 꼬리표가 뒤따랐다. 그리고 희생자 2세들은 연좌제로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 

그는 학창시절 잠시 장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다. 그래서 한때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꿈을 접었다. 집안의 누구 하나 그에게 알려준 적이 없지만 어릴 적부터 어렴풋이 조부모와 아버지, 그리고 삼촌의 죽음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행정고시에 응시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험에서는 최종면접까지 갔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종합격자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고향에 대한 애증을 극복하기 위해 행정고시를 봤다. 당시는 행정군수 시절이어서 태안(군) 같은 작은 시골은 지원만 하면 갔다. 그래서 합격하면 태안군수가 되어 고향을 찾고 싶었다. 근데 한계만 느꼈다. '아 이게 연좌제구나' 하는 생각에 젊은 시절 좌절감을 술로 달래는 날이 많았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에도 그는 몇 차례 공기업에 입사원서를 넣었다. 그러나 항상 '불합격' 통보만 전해졌다. 억울했다. 마음속에 분노가 솟구쳤다. 하지만 그가 극복하기에 당시 시대상황이 나빴다. 사회의 벽도 높았다. 심지어 친척들도 그의 가족과 접촉하는 것을 꺼렸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다. 어머니가 '그래도 제대했는데 외삼촌댁은 한번 갔다와라'고 해서 처음 외삼촌댁을 갔다. 고향집과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한 번도 외삼촌댁을 가본 적이 없었다. 어렵사리 외삼촌댁을 찾아갔는데 반기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시대가 그래서인지 피해를 받을까봐 그런 것 같더라. 머쓱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다행히 취직은 했다. 1965년 한일국교화정상화가 시작되면서 일본의 롯데그룹이 한국에 진출해 롯데제과주식회사를 세웠다. 당시만 해도 롯데제과는 중소기업이었다. 1967년 입사해 2000년까지 20년이 넘도록 이곳서 직장생활을 하다 정년퇴임했다.

지난 2009년 충남 태안군청에서 열린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합동위령제.
▲ 합동위령제 지난 2009년 충남 태안군청에서 열린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합동위령제.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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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의한 희생' 인정... 그러나 현실은 소설보다 더 잔혹

그의 삶에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던 일은 60세를 두 해 앞두고 찾아왔다. 지난 2005년 5월 국회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이 통과했다. 그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묵혀왔던 가족의 죽음에 대한 의문과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머지 삶을 이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고향인 충남 태안군에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태안유족회를 발족하고 고향마을 곳곳에 있는 유족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000여 명의 희생자 유가족을 찾아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08년 진실화해위에 의해 밝혀진 진실규명서를 들고 어머니 산소에 갔다. 어머니는 끝내 진실이 규명되는 것을 못 보고 돌아가셨다. 산소에 진실규명서를 올려놓고 절을 드리며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꼭 사법적인 규명도 받아내겠다고."

하지만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사회인식의 벽은 높았다. 가슴 속 상처가 아물려고 하면 후벼 파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는 다시 20~30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 희생자 유족들은 다시 숨죽이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각 지역별 유족회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들었고 지난 2010년 12월부로 진실화해위의 활동도 중단됐다. 심지어 이영조 진실화해위원장은 최근 제주 4·3항쟁을 '폭동'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반란'으로 폄훼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현실은 소설보다 더 잔혹하다'는 생각에 낙담했다.

그리고 오는 12월 대선을 앞두고 종북논란이 불거지면서 희생자 유족들에게 그동안 유리하던 판결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재판장 이우재)는 진실화해위가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피해자로 인정한 이들에 대해 "구체적 증거가 부족하다"며 희생 사실을 불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전쟁 당시 국민의 재산과 생명, 그리고 인권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거꾸로 이를 박탈한 사건이 민간인 희생사건이다. 이념의 논리로 풀 사항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이념의 잣대로 희생자 유족들에게 보이지 않은 낙인을 찍고 있다. 부관참시 당하는 기분이 든다. 후세에 올바른 역사를 남기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과거사정리는 꼭 필요하다."

인터뷰 말미 그는 앞으로 '일어나야 할' 일들을 늘어놓았다. 정부가 희생자 발굴사업을 재개해야 하고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사업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구상해온 구체적인 사업까지 언급했다. 그러고는 일화 하나를 들려줬다.

"매년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나면 며칠을 앓는다. 아마도 돌아가신 분들 중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영령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참고로 오는 8월 8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제367호 소법정에서 태안 보도연맹과 관련한 1심 판결이 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민간인 학살,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보도연맹, #부역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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