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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골에서 발티를 넘으면 바로 충주가 나온다

재오개리 망향정
 재오개리 망향정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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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매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재오개리로 발길을 옮긴다. 매내미재를 넘으면 재오개리가 된다. 재오개리는 도선골, 동막골, 하재오개, 상재오개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충주호수를 따라 도선골, 하재오개, 상재오개로 갈 것이다. 매내미 고갯마루를 넘자 2011년 재오개 주민들이 만든 망향정이 보인다. 길에서 조금 벗어난 산자락에 세웠다.

그곳으로 올라가 보니 충주호 전망이 좋다. 망향정 앞에는 망향석과 기념비가 서 있다. 충주댐으로 인해 뿔뿔이 헤어진 실향민들이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었다는 글이 적혀 있다. 그들은 가까운 충주, 청주, 서울로 흩어졌지만 여전히 고향이 그립고, 이곳을 찾아 고향의 정을 나눌 것이다.

발티에서 바라본 도선골 하니마을과 충주호
 발티에서 바라본 도선골 하니마을과 충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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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넘어 길은 잠시 산자락을 따라 간다. 그리고 산자락을 내려와 길이 충주호변으로 이어지면 바로 도선골이 나온다. 도선골(道仙洞)은 충주호에 면한 마을로 산쪽에 있어 수몰을 면했다. 도선골에서 서쪽 골짜기를 따라 가면 발티가 나오고 발티 고개를 넘으면 충주시 호암동 발티 마을이 나온다. 발티 고갯길은 옛날 살미에서 충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도선골은 현재 전통마을, 생태마을, 하니마을, 체험마을로 유명하다. 2008년 농촌 전통테마마을이 되었고, 2011년 산촌 생태체험마을이 되었다. 여기서 생태체험이란 꿀벌 생태체험, 옥수수 따기, 사과 따기 등을 말한다. 정부는 사과벌꿀을 산업화하기 위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총 30억 원을 투입해 이곳에 벌꿀 가공시설을 만들 예정이다. 그래서 재오개 하니마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재오개 하니마을 안내도
 재오개 하니마을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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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마을에는 벌꿀 가공시설이 갖춰지고, 크림 꿀, 꿀 와인, 프로폴리스 등 다양한 사과벌꿀 제품이 생산될 예정이다. 지난 6월 9일에는 국무총리실 직원들이 재오개 하니마을을 방문하여 매실도 따고 사과도 적과하면서 농촌 일손을 도왔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온 가족과 어린이들은 꿀벌 생태체험을 하고 밀랍인형을 만들었다. 재오개 하니마을은 사과꽃이 피는 매년 4월 말 꿀사과축제(Honepple Day)를 열기도 한다.  

재오개는 어떤 의미일까?

하니마을 정자에는 마을 사람들이 여럿 나와 있다. 우리는 그들과 잠시 어울려 대화를 나눈다. 일부는 이곳 도선골 사람이고 일부는 충주에서 친구를 방문한 사람이다. 나는 그들에게 재오개의 역사를 물어본다. 그러자 1985년 충주댐이 완공되면서 마을이 수몰되어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니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대원들
 하니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대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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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을이 쇠퇴하기 시작한 건 이미 1929년부터다. 그때 신작로가 내사리, 세성리 쪽으로 나면서, 재오개-발티로 이어지는 옛길의 효용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나는 재오개라는 마을이름의 유래에 대해 물어본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두 가지 유래를 얘기한다. 하나는 아기장수 이야기에서 나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섯 고개 넘어 마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초 이 마을에 왕기를 지닌 아기가 태어났다. 다섯 살이 되자 그는 벌써 문무를 겸비한 아이로 성장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조정에서 군사를 보내 금봉산 자락의 혈을 끊고 그 아기장수를 죽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마을 이름을 재오개(才五介)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럴 듯하지만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다.

하니마을 앞 충주호 수몰지
 하니마을 앞 충주호 수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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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는 다섯 고개 넘어 물가 동네라는 의미에서 재오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다섯 고개가 발티 마을로 넘어가는 발티, 매남 마을로 넘어가는 매내미재, 진의실로 넘어가는 진의실재, 고든골 석종사로 넘어가는 성재, 남벌로 넘어가는 하느골재다. 재오개는 이들 다섯 고개를 넘어야 이웃 마을로 갈 수 있는 산촌이다. 그래서 고개(재) 다섯(오) 물가(개)라는 세 글자를 사용, 재오개가 되었다는 것이다. 타당성이 있다.  

진의실 요각골을 지나 마즈막재로

우리는 이들과 헤어진 다음 하재오재를 지나 상재오개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재오개에서 상재오개로 가는 길은 산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 길은 금봉산 자락을 따라 마즈막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산쪽으로 가면서 보니 날이 가물어 충주호에 수몰된 옛날 재오개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논둑 밭둑도 보이고, 집터도 보이고 우물 흔적도 보인다.

재오개리 골짜기
 재오개리 골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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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재오개 마을에는 사과농사를 짓는 농원들이 여럿 보인다. 길은 구불구불 뱀처럼 이어진다. 옛길은 대개 지름길을 택하는데, 차량이 다니는 임도를 내다보니 이렇게 구불구불 만들어졌다. 진의실로 넘어가는 진의실재에 이르니 재오개 깊은 골짜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골이 길고도 깊다. 길가에는 야생화가 지천이고 한여름 더위 속에 짝짓기하는 나비도 많고 많다.

동물들은 왜 짝짓기를 하는 걸까? 하등동물처럼 무성생식을 하면 편할 텐데. 아메바나 플라나리아처럼 몸을 잘라 번식을 하면 얼마나 간단한가. 그런데 굳이 짝을 찾아 사랑을 나누고, 새끼를 낳아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일까?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지만, 암수의 유전자 결합을 통해 새로운 유전체를 만들어 냄으로써 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짝을 찾는 나비
 짝을 찾는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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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하는 나비
 짝짓기 하는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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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똑같은 유전자가 계속 전해져 내려오면 병이 그것을 파괴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그 동물은 일시에 멸종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고 보니 종의 다양성을 통해 종족을 보전한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종의 다양성, 다양한 능력을 가진 인류, 그런 것으로 인해 인간사회가 발전할 수 있고 또 다양한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인가 보다.

길을 가다 보니 위장의 명수 대벌레도 보인다. 몸의 모양이 풀의 줄기와 같은 모습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진의실에 이르니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이제 충주댐까지 10㎞ 밖에 남지 않았다. 곧 이어 사람들이 꽤나 많이 사는 요각골이 나타난다. 요각골은 귀촌한 사람들이 많은지 현대식으로 잘 지은 집이 많다. 요각골은 지대가 높고 전망이 좋아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겠다.

마즈막재 이야기

마즈막재 표지석
 마즈막재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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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각골에서 마즈막재까지는 단조로운 포장길이다. 내리막길로 힘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은 힘겨워한다. 저 아래로 다시 충주호가 보인다. 요각골에서 40분쯤 걸으니 마즈막재가 나온다. 마즈막재는 충주 시내에서 충주호로 넘어가는 중요한 고개다. 마즈막재에서 서쪽으로 가면 충주 시내가 나오고, 동쪽으로 가면 남벌이 나오며, 북쪽으로 가면 종민동과 충주댐이 나오고, 남쪽으로 가면 요각골과 진의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마즈막이라는 고개 이름의 유래를 알 필요가 있다. 보통 마지막으로 넘는 고개라서 마즈막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마즈막이라는 단어는 마슴목에서 나왔다. 마슴은 마음(心)의 충청도 사투리다. 이 때 ㅅ은 고어 ㅿ다. 충청도 사람들은 무를 무수라고 하고 아우를 아수라고 하고 여우를 여수라고 한다. 목은 말 그대로 목(項)이다.

충주호수로를 따라 만들어진 나무데크
 충주호수로를 따라 만들어진 나무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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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거나 이별할 때 사람들은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아픈 것은 마음이 아프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면 그 감정이 북받쳐 목까지 올라온다. 그러므로 마슴목 고개는 마음이 아파 목까지 올라오는 고개다. 그 마슴목이 마스목→마스막→마즈막으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충주 사람들은 아직도 마스막재라고 발음한다. 이 고개 이름이 마슴목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한자식 지명 심항현(心項峴)와 심항산(心項山)에서도 확인이 된다.  

충주지씨의 관향이 종댕이 마을입니다.

마즈막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충주호수로를 따라 종민동으로 향한다. 종민동으로 가는 길에는 차량통행이 많다. 다행히 길옆으로 나무 데크를 만들어 놓아 위험은 덜한 편이다. 데크에는 버찌들이 떨어져 터지곤 했다. 아 그런데 길옆으로 데크 공사를 하느라 자연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 경사가 급한 곳에 폭 2m 정도의 데크를 설치하고 그 바깥으로 돌축대를 쌓고 있다. 만약 큰 비라도 오면 돌축대가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잘못 하면 데크와 축대가 함께 유실될 수 있어 벌써부터 걱정이다.

충주호 유람선
 충주호 유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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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를 따라가면서 나는 눈을 돌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금봉산(남산) 자락을 타고 요각골로 넘어가는 구불구불한 길이 보인다. 충주호는 그동안의 가뭄 때문에 수위가 많이 줄어 평상시보다 흙벽이 많이 드러나 있다. 그 드러난 흙벽을 배경으로 충주호 유람선이 지나간다. 우리는 계명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충주호를 향해 계속 아래로 내려간다.

드디어 우리는 종댕이 마을의 '충주지씨 관향(忠州池氏 貫鄕)'에 도착한다. 관향이란 한 성씨가 출발한 고향을 말한다. 충주지씨는 현재 충주시 종민동 종댕이 마을을 자신들의 관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충주지씨는 시조 지경(池鏡)의 6세손인 지종해(池宗海) 때부터 충주지씨라 불리게 되었다. <청구사림(靑邱事林)>과 <해동성보(海東姓譜)>에 의하면, 지종해가 충주지방에 장가들어와 살게 되었고, 그 후 관작이 높아져 1071년 충원백(忠原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충원은 충주의 다른 이름으로 이때부터 충주지씨는 충주의 대표적인 성씨가 되었다.

충주지씨 관향지
 충주지씨 관향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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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지씨는 고려말에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는 이들을 지문사걸(池門四傑)이라 부른다. 지문사걸은 지씨 문중을 대표하는 네 사람의 호걸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찬성사 지윤(池奫), 충의공 지용도(池龍圖), 충무공 지용수(池龍壽), 충원부원군 지용기(池湧奇)다. 이들은 고려말의 무인으로 상원수 등을 지냈으며, 조선의 건국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주지씨 인물이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근현대에 이르러 종두법을 개발한 지석영 선생과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 등을 배출했다. 이곳 관향 유적지에는 지석영 선생과 지청천 장군의 흉상이 만들어져 있다. 충주지씨들은 매년 중양절인 음력 9월 9일 이곳에 모여 조상에 대한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충주지씨는 전국적으로 3만7000가구에 12만 명쯤 된다.

교원 복지회관에서 바라본 충주호
 교원 복지회관에서 바라본 충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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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지씨 관향지를 지나 우리는 계명산 가든에서 매운탕으로 이른 저녁식사를 한다. 그것은 아침과 점심을 비교적 부실하게 먹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바로 충주호변에 있어 전망이 좋은 편이다. 지나가는 유람선도 볼 수 있고, 건너편 화암나루 쪽 사우앙산도 볼 수 있다. 저녁식사후 우리는 종당전씨 사당을 지나 충북 교직원 복지회관에 여장을 푼다.

충북 교직원 복지회관은 폐교된 종민초등학교를 개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지어 2005년 9월 문을 열었다. 건물은 두 동인데, 연수동과 숙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수동은 폐교된 종민초등학교를 리모델링했고, 숙박동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새로 지었다. 우리는 방 두 개, 거실, 화장실 두 개인 10인실 A형 두 개를 빌린다. 방에서 내다보는 충주호와 계명산 쪽 전망도 그만이다. 하루의 피로를 이곳에서 완전히 풀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추풍령에서 도담삼봉까지, 충북을 걷다]를 25회(충주호) 연재했다. 다음 연재는 8월말에나 가능할 것 같다. 필자 사정으로 충주댐에서 단양군 매포까지 답사에는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마지막 날 단양 매포에서 다시 팀에 합류, 최종목적지 도담삼봉까지는 갈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8월말에 충주댐에서 단양 매포까지 보완 답사를 하고 연재를 계속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충북을 걷다] 글쓰기는 8월말에 다시 이어진다.



태그:#재오개리, #도선골, #마즈막재, #충주호, #충주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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