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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터키에 꽂히다> 표지
 <여자, 터키에 꽂히다> 표지
ⓒ 미래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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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의 눈은 대체로 한가하고 느긋하다. 그곳(여행지)이 치열한 삶의 현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지인들의 시공간이 '현실'이라면 여행자의 시공간은 '꿈'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내가 타고 있는 배를 제외하고 모든 바다에 떠 있는 배가 낭만적으로 보이기 마련인 것처럼.

하지만 도보여행가 유혜준 작가한테는 이 공식(여행자들 눈은 대체로 한가하다는)이 맞지 않는다. 그의 눈은 늘 바쁘다. 어쩌면 현지인들 보다 더 바쁠지도 모르겠다. 그가 쓴 여행기 <여자, 터키에 꽂히다>를 보면 그의 눈이 얼마나 바빴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여자, 터키에 꽂히다>는 <오마이뉴스> 기자이자 도보여행 작가인 유혜준 작가가 쓴 30일간의 터키 여행기다. 그녀는 불과 30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터키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도시를 모두 돌았다.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샤프란볼루, 앙카라, 반, 디야르바크르, 카파도키아, 안탈리아, 파묵칼레, 셀축을 거쳐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긴 여정을 30일 만에 소화한 것이다.

터키(78만3562㎢)는 남한 땅(9만9720㎢)의 약 8배 정도 크기다. 그러다 보니 무엇인가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이스탄불에서 사프란볼루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다. 7시간이 걸렸으니 서울에서 부산 가는 시간보다도 더 걸린 셈이다.

가장 먼 거리는 앙카라에서 반까지였다. 너무 멀어 터키 국내선 비행기를 탔어도 1시간 40분이나 걸렸다. 서울에서 제주도를 왕복하고도 30여 분은 남을 시간이다. 버스로는 24시간 정도 걸린다니, 얼마나 긴 거리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그녀의 여정을 지도에서 살펴보니 터키를 한 바퀴 돈 형상이다. 그의 눈이 바빴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그것도 멀고 먼 거리를 이동하며 보고 느끼고 체험해야 했기 때문이다. 

동양 여자에게 친절한 터키 남자... '여자'를 사로잡은 남자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던 잘 생긴 터키 남자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던 잘 생긴 터키 남자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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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유혜준이 터키에 꽂힌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책 제목을 <여자, 터키에 꽂히다>로 지었을 정도로 인상 깊은 게 있었다니 분명 뭔가에 꽂히긴 꽂혔을 터. 책을 펼치면서 이게 가장 궁금했다. 책 속에서 확인해보자.

말이 통하지 않아도 버스표를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고, 호텔을 잡는데도 별로 지장이 없다. 만인의 공통 언어 보디랭귀지가 있지 않나. 게다가 터키 남자들은 동양 여자에게 엄청나게 친절했다. 과잉 친절은 가끔 짜증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지만, 여행하는 데는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작가는 머리글에서부터 '남자타령(?)을 늘어놓았다. 그 뿐인가 책 표지에도 남자타령이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문제없다. 왜? 오지랖 넓은 터키 남자들이 있으니까. (중략) 시내에는 전차가 다니고 시내버스에는 차장이 있다. 그것도 모두 남자 차장이다. (중략) 어디에서든 같이 사진 찍자고 달려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터키에 가면 누구나 (여자라면) 잠깐의 인기를 누릴 수 있다.

이정도면, 눈치가 굼벵이 같은 사람도 여자 유혜준이 누구에게 꽂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남자다. 터키 남자, 그것도 오지랖이 바다 같은 터키 남자들에게 꽂혔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고? 아니면 아직 믿지 못하겠다고?

머~ 그럴 수도 있다. '여행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여자가 고작 남자한테 반한 이야기를 쓸어 모아 책을 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러나 사실이다. 놀라지 마시라 유혜준 작가는, 간 크게도(그는 유부녀다) 자기가 반한 남자 이름을 대문짝만 하게 써놓기까지 했다.

내가 반한 남자는... 아타튀르크

아타튀르크 케말이 그려진 현수막
 아타튀르크 케말이 그려진 현수막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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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믿겠는가? 그렇다. 그녀는 진짜 '아타튀르크'라는 터키 남자에게 반했다. 이제 그 이유를 알아보자. '아타튀르크'라는 남자에게 도대체 어떤 치명적인 매력이 있어서 여자, 그것도 남편이 있는 여자 유혜준이 거리낌 없이 반했다고 선언했는지를.

특히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그의 개혁 정책이었다. 이슬람국가임에도 과감하게 국교를 폐지한 것도 대단했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그가 일부다처제를 폐지하고 남녀 교육 의무화를 실시, 여성 참정권을 실행했다는 게 놀라웠다.

전체 국민의 98% 이상이 무슬림인 국가에서 그런 정책을 세우고 실천 할 수 있는 '남자'가 있었다는 게 어찌 놀랍니 않겠는가. 그것도 1920년대에.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을 것은 직접 보지 않아도 상상 할 수 있다. (중략) 그런 면에서 나는 그가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눈치 채셨을 터. 그녀가 반한 남자는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 케말' 이다. 술탄 체제를 군사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터키 공화국을 세운 화끈한 남자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는 그를 추도하기 위해 세운 추도원이 있고, 곳곳에 그의 동상과 그림이 있다.  그것들을 보며 작가 유혜준은 아타튀르크와 터키의 민주주의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의 본명은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이다. 터키 국회는 1934년 무스타파 케말에게 조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 경칭을 수여했다. 그는 신생 터키 공화국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대명제 아래 서구식 법치와 민주적 정치제도로 현대화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재임 중이던 1938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얼싸안을 듯 반가워하는 두 여자... 국경 초월한 '나쁜 남자'의 매력

사프란볼루
 사프란볼루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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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남자들이 동양 여자들을 좋아한다면 터키 여자들은 누구를 좋아할까. 동양 남자? 맞다. 터키 여자들은 동양 남자, 그것도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 작가 유혜준 곁에는 영어를 썩 잘하는 그의 여동생이 늘 붙어 다녔다. 그 여동생과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드라마 속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터키 여자가 수다를 떠는 모습을 작가는 남 얘기 하듯 담담하게 그려냈다.

거의 얼싸안을 듯이 반가워하던 두 여자는 마주 앉아 쉼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김남길(드라마 <나쁜 남자>의 주인공)의 팬답게 그들은 김남길에 관한 이야기를 질리지도 않고 하고 또 했다. 김남길 그가 얼마나 멋있고 잘 생겼으며 그의 연기가 어떠한지에 대해서 둘은 신나게 맞자구를 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중략) 여자는 김남길 말고도 <꽃보다 남자>에 나온 이민호도 좋아 한다고 했다. (중략) 여자는 한국 사람을 만나 함께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흥분 한 것 같았다. 얼굴이 불그스레하게 변하면서 목소리 톤이 계속 높아진다. 그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유혜준 작가는 이 밖에도 터키에 관한 많은 것을 책 속에 담아냈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이스탄불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그려냈다. 그리고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사프란볼루'의 붉은 지붕 집들을 스케치 했다.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케밥, 로쿰 같은 터키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아침 식사를 공짜로 줄 정도로 친절한 호텔에서 잠을 잘 수도 있고. 또 사진 찍히기를 좋아해서 카메라만 들이대면 미소를 짓는 순박해 보이는 터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항아리케밥
 항아리케밥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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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욕심이 많다. 한 달 내내 쉴 새 없이 터키를 돌아다녔으면서도 터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터키 전역을 둘러보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 왔지만 나의 터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스탄불에는 내가 보지 않은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그걸 다 보려면 한 달 이상은 이스탄불에서 뭉개듯이 머물러야 할 것이다.

<여자, 터키에 꽂히다>는 터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나 터키 여행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여행을 하면서 겪은 갖가지 에피소드와 호텔비, 버스비, 음식값 등,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죄다 담아 놓았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겠고, 나처럼 한 번도 터키를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좋은 학습 자료가 될 것이다.  

작가와 익히 아는 터라 여행 경비는 얼마나 들었냐고 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두 사람의 여행 경비가 700여만 원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는 기필코 이 책을 정독하리라 '작심'했다. 7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쏟아 붓고, 한 달을 객지에서 '개고생' 한 다음, 수많은 나날 머리를 혹사시켜서 쓴 책을 단 하루 정도 투자해서 내 것을 만든다면 그야말로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돈 버는 거 '차암~' 쉽다.

덧붙이는 글 | <여자, 터키에 꽂히다> 유혜준 씀, 미래의창 펴냄, 2012년 8월, 344쪽, 1만5000원



태그:#여자, 터키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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