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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에 심신이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던 지난 7월, 회사로부터 일본출장 상담을 진행해야 하는 업무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 일본이라? 눈이 번쩍, 귀가 쫑긋해진다. 어차피 금년 여름휴가는 8월말 교회에서 중고등부를 이끌고 제주도로 수련회를 가야 하니 낭만적인 여름추억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지 않았던가.

자유와 새로움을 꿈꾸며 꿈틀대던 나에게 일본출장의 유혹은 혼을 쏘옥 빼놓기에 충분했다. 목적지는 일본 고베. 출장을 자원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일본의 여름 바다가 유난히 멋져보였기 때문이랄까. 아, 나 지금 벌써 흥분했나? 일본은 본토 뿐만 아니라 대마도 등 여러 번 가봤지만 이번 여행은 왠지 고베(Kobe, 神戶)라는 지명부터 남다른 포스를 풍긴다.

1995년 이전까지만 해도 고베가 어떤 곳인지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진도 7.2의 한신 대지진으로 사망자 5천여 명, 부상자 2만여 명, 가옥파괴 10만여 동이라는 큰 피해를 입은 후 오히려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이끌어낸 곳이다. 지진 피해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던 아픈 곳, 그러나 그 덕택에 밤이 되면 더욱 빨갛게 불빛을 내는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난 곳이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방 어디를 보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일본에서도 가장 빠른 유행에 아름다운 시가지와 편리한 대중교통, 동경 못지않은 최고의 야경을 자랑한다. 게다가 미각을 자극하는 산해진미, 무더운 여름철 원기회복을 돕는 뜨끈한 온천까지 자연의 이로움을 듬뿍 담는 것만으로도 더위를 잊게 만든다. 말 그대로 '안구정화'의 기회다.

출국 이틀 전, 아무리 해외여행이라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곳인데 준비가 반드시 화려하고 거창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간단 일본어'라는 제목으로 정성스럽게 답변을 올려놓은 한 포털 사이트의 지식문답 코너를 통해 습득한 얄팍한 일본어 지식이 여행준비의 전부였다.

'코레와 이꾸라데스까~'(얼마에요?) '한국카라와마시타~'(한국에서 왔습니다) '쿠시떼구다사이~'(싸게 해 주세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아, 맞다.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かわいい' ('카와이이' = 귀엽다) 'きれい' ('키레이' = 예쁘다)가 빠질 순 없지. 다른 건 몰라도 이 단어는 반드시 외워야 하지 않겠나. 작년에도 대마도에서 아리따운 일본여인에게 말 한마디 못해보고 그저 바라만 보지 않았나?

카레이 '갸루상' 기다려라... 키레이, 아리가또!

혹시라도 백만 불짜리 다리에 요즘 유행하는 진한 화장을 한 예쁜 '갸루상'을 만날 수도 있으니, 작업용(?) 단어를 빼놓을 순 없다. 아, 정말이지 이번에도 그런 기회를 놓친다면 정말 남자가 아니, 사람이 아니무니다~!

일본물건을 백엔에 몽땅 살수있다니, 이런 호사가? 그런데, 퀼리티는 좀 아니올시다. 일본에 있는 백엔샾에도, 거의대부분 중국산이 판치고 있다. 진짜 백엔 하는것 치고 일본산 하나도 없다. 괜찮다고 집어들면 무조건 '메이드인 차이나'다. 차라리 선물을 사려면 200~300엔 정도 지불하고 일반 상점에 가서 구입하라.
 일본물건을 백엔에 몽땅 살수있다니, 이런 호사가? 그런데, 퀼리티는 좀 아니올시다. 일본에 있는 백엔샾에도, 거의대부분 중국산이 판치고 있다. 진짜 백엔 하는것 치고 일본산 하나도 없다. 괜찮다고 집어들면 무조건 '메이드인 차이나'다. 차라리 선물을 사려면 200~300엔 정도 지불하고 일반 상점에 가서 구입하라.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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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일정의 첫날은 일행 10여 명이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 간사이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고베로 들어가는 코스였다. 간사이공항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고베는 오사카와 비슷한 항구지만 교류가 많은 곳이라 일본의 어떤 도시보다 이국적인 느낌을 많이 풍기는 곳이다.

고베 시가지의 특징은 역사에서 비롯된다. 1868년 항구 개방 후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시가지는 먹을거리와 쇼핑센터가 혼재한 쇼핑·문화타운으로 변모했다. 또 중국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은 난킨마치라는 이름의 차이나타운으로 정비돼 기존 재래시장과 연계해 주변 상권을 부활시킨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고베의 차이나타운 입구
 고베의 차이나타운 입구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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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베에서 차이나타운을 만나는 일은 색다른 느낌이다. 특히 전철역에서도 가깝고 유명한 중국 먹거리집이 많다. 차이나타운의 한 가판대에서 팔고 있는 귀엽고 앙증맞은 찐빵.
 일본 고베에서 차이나타운을 만나는 일은 색다른 느낌이다. 특히 전철역에서도 가깝고 유명한 중국 먹거리집이 많다. 차이나타운의 한 가판대에서 팔고 있는 귀엽고 앙증맞은 찐빵.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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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베에서 만난 한국 여학생들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고베시내 어느 곳을 다녀도 의사소통엔 별 문제가 없다. 그냥 간단한 단어조합에 '스미마센~' '아리가또~'만 붙이면 만사해결이다. 혹시라도 길을 모른다면 간단한 여행지도에 원하는 곳을 짚어서 보여주면 자세히 알려주고 어떤 이는 직접 데려다 주기까지 한다.

지식문답을 통해 습득한 얄팍한 일본어들을 슬슬 써먹어야 할 때가 온듯한데 도무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일행과 함께 일본인들이 하는 말 몇 마디를 중얼거리며 따라하고 있는 그때였다. 중국계(?)로 보이는 10대 여학생들이 내게로 오는 것이다. '엇? 이거 나를 일본 사람인줄 알고 다가오는 모양인데 어떻게 대처하지? 곤니찌와? 사요나라??'라며 대답을 궁리하고 있던 찰나 나에게 와서 하는 말은,

"저기, 아저씨 사진 한 장 찍어주실래요?"

그랬다, 일본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람이 중국인이고, 그다음 사람이 우리 한국인이라더니…. 어딘지 모르게 빈틈 있고 어리숙해 보이며 시끄러운 한국 아저씨 냄새가 풍겼나 보다. 용감한녀석들의 '기다려 그리고 준비해'라는 노래가 나를 두고 부른 노래는 아니었기를…. '기다린다 해도 안 될 O은 안돼! 기다려도 안 되는 세상이야?'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 보이는 짙고 두꺼운 검은 양산들의 행진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검은 우산이 밝은 색의 양산보다도 자외선 차단 효과가 높다고 하는 믿음 때문이라는데 글쎄다, '믿거나 말거나'다.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 보이는 짙고 두꺼운 검은 양산들의 행진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검은 우산이 밝은 색의 양산보다도 자외선 차단 효과가 높다고 하는 믿음 때문이라는데 글쎄다, '믿거나 말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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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사마'로 시작된 일본 내 한류는 이제 하나의 현상을 넘어 정착 국면인듯하다. 한국어 강좌가 저녁시간대 TV프로에 방송되거나 한국 가수나 배우가 일본 매체에 얼굴을 비치는 것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역시 최근 불기 시작한 일본 내 반한류 속에서도 장근석과 카라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브로마이드와 광고포스터를 고베 시내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이젠 일본에 익숙한 콘텐츠의 하나가 된 것이다.

욘사마 열풍이 지나고 이제는 본격적인 한류열풍으로 일본 전역이 물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욘사마 열풍이 지나고 이제는 본격적인 한류열풍으로 일본 전역이 물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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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열풍은 이제 일본의 익숙한 콘텐츠의 하나

일본은 우라나이(점 치기)를 것을 좋아하는 나라답게 연간 1조엔 시장규모란다. 휴대폰 어플중 점치기와 관련된 어플이 최상위권이고 문자메시지로 운세를 매일 받아보는 사람까지 있을정도라나. 여기저기 문전성시를 이루는 손금 운세는 일본인의 특성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인들은 점괘테스트, 손금으로 보는 운세, 별자리 운세 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연중무휴로 손금 점을 볼 수 있는 이곳에서는, 손금을 통해 건강, 풍수, 애정운을 제공한다고 한다. 하지만, 점괘가 좋지 않을 경우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운이 없다고 쿨하게 위로한다고 전한다.

손금으로 점을 보는 가게에는 하루 종일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손금으로 점을 보는 가게에는 하루 종일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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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철역 부근에 있는 자전거 주차장엔 주차정기권을 구입하면 한달 내내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 '만차'라고 되어 있는 팻말이 세워진걸 보니 여기는 자전거 주차전쟁이 벌어지는 것일까? 일본은 자전거의 천국답게 괜찮은 원룸이나 빌라, 아파트에는 특이한 자전거 보관소가 갖춰져 있다.

우리처럼 대충 자물쇠로 묶어놓고 형식적으로 세워놓는 방식이 아닌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구비되어 있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면 양 옆이 빗면으로 되어 있어서 올라가고 내려오는 자전거끼리 부딪히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 비바람은 물론 천재지변이나 도둑 걱정도 전혀없다.

혹시 윗단에 보관된 자전거를 내릴 때 위험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은 접으시라. 안전문제까지 고려한 최첨단 방식이라 프레임만 슬쩍 잡고 당기면 뒤로 슬며시 빠진다. 일본은 주거건물을 지을 때 자동차뿐만 아니라 자전거, 오토바이 등을 보관하는 주차시설을 확보해야 하니 역시 교통선진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안전 우선한 자전거 정책은 눈 여겨 볼만

우리가 그저 감동만 받을 문제가 아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국민의 안전을 고려한 정책은 반드시 눈여겨 볼만 하다. 수백 킬로 4대강 자전거길이 만들어지고 자전거 이용자가 많이 늘어난다 해도 안전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일본은 자전거의 천국답게 주거지역에는 자전거 보관소가 갖춰져 있다. 대충 자물쇠로 묶어놓고 형식적으로 세워놓는 방식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다.
 일본은 자전거의 천국답게 주거지역에는 자전거 보관소가 갖춰져 있다. 대충 자물쇠로 묶어놓고 형식적으로 세워놓는 방식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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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그냥 돌아다니다 시간을 보내던 중 찾아 간 인형뽑기 가게는 그 다양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게다가 기계속 인형의 '퀄리티'는 반드시 뽑고야 말겠다는 전의를 불태울 만큼 아깝지 않다. 기본이 100엔씩이라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한판에 1천5백 원을 거는 식이지만 한국의 싸구려 인형과는 차원부터 다르다.

특이하고 좀 고급스럽다 하는 것은 한판에 몇백 엔이지만 이거 은근히 중독성있다. 인형뿐만 아니라 게임기, 라이터, 과자, 사탕, 시계, 메달, 장신구 등 온갖 종류가 다 있다. 없는거 빼고 다 있다. 그래서 찾는 이들을 더욱 설레게 한다. 하지만 이것들이 다 내것이 될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 생각없이 덤볐다가는 기둥뿌리 뽑히는 건 시간문제다.

중독성 강한 일본의 인형뽑기는 인형뿐만 아니라 게임기, 라이터, 과자, 사탕, 시계, 메달, 장신구 등이 준비돼 있다.
 중독성 강한 일본의 인형뽑기는 인형뿐만 아니라 게임기, 라이터, 과자, 사탕, 시계, 메달, 장신구 등이 준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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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지막으로 일본여행을 처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남성들에게 한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일본에 가면 밤 10시만 넘으면 엄청 야한 프로그램들이 즐비하다고 알고 있는데,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도 케이블방송에서 야한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추세만 생각하고 일본 TV에 대한 막연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오산이다.

성인방송 기대 하는 남성들이여,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아무리 채널 돌려봐라, 그런건 하나도 없다. 일본 TV는 디지털, BS, CS(홈쇼핑) 채널이 기본이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야동수준의 성인방송이 있긴 하지만 유료다. 엘리베이터 앞에 성인방송 시청용 하루 쿠폰 카드를  구입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 밤 9시부터 새벽을 지나 동틀 때까지 '언젠간 나오겠지'하며 밤새 깡으로 버티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화면만 열심히 쳐다봐도 결국은 안 나오니 꼭 명심하시라.

일본TV의 한국어 강좌다. 그런데 강좌에 등장하는 문장은 우리가 주로 쓰는 말이기 보다는 비문에 가깝다. 세종대왕도 울고 갈 표현이다. 
"저는 지금부터 빠르게 깡총깡총 뛰어서 일본에 돌아갈건데 어떤 느낌인지 특별히 보여드릴게요!"
 일본TV의 한국어 강좌다. 그런데 강좌에 등장하는 문장은 우리가 주로 쓰는 말이기 보다는 비문에 가깝다. 세종대왕도 울고 갈 표현이다. "저는 지금부터 빠르게 깡총깡총 뛰어서 일본에 돌아갈건데 어떤 느낌인지 특별히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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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제를 둘러싼 대립, 그리고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지만, 일본은 여전히 1억3천만 명이라는 거대 인구가 다양한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우리와 가장 가깝고 쉽게 갈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임은 틀림없다.

넓은 국토의 풍요로운 자연, 바다의 다채로운 볼거리·먹을거리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감각의 경험으로 우리를 이끈다. 특히 고베는 일본에서 가장 멋진 야경을 자랑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더욱 의미 있는 여행지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2012년 7월 25일부터 일본고베에서의 2박 3일간의 일정을 정리한 것입니다.
고베여행 코스 추천 팁 : 고베역 -> 고베플라자 -> 기타노 일대 -> 키타노 스트리트 -> 시노미야 일대 -> 이쿠타도오리 -> 산노미야 도오리 -> 다이마루백화점 -> 모토마치 -> 차이나타운 -> 난킨마치 -> 하버랜드 -> 고베타워 -> 마리타임머슘 -> 히가시몬도오리 -> 신고베 오리엔탈시티



태그:#일본, #고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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