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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능라유원지 준공식에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함께 부인 리설주가 참석하고 있는 장면.
 평양의 능라유원지 준공식에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함께 부인 리설주가 참석하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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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변하고 있는가? 해묵은 질문이 새삼스럽게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몇 달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파격적인 행보가 계속되면서 '회의론'을 딛고 조심스럽게 '긍정론'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미제 퇴폐 문화"의 상징처럼 여겼던 미키마우스와 록키가 모란봉 악단 공연에 등장했고, 김정은이 부인 리설주를 대동하고 연일 민생행보에 나서고 있으며, 김정은이 놀이기구에 올라탄 장면이 북한 매체에 등장한 것 등은 과거와는 분명 다른 북한의 모습이다. 이는 단순히 신세대 지도자 김정은의 스타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책과 노선의 변화 징후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의론이 압도적이었다. '3대 세습'이라는 봉건적 선택,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한 김정은 체제의 등장, 할아버지와 아버지 노선, 즉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답습할 것이라는 판단, 북한 군부의 개혁개방에 대한 거부감 등을 놓고 볼 때, 북한에 개혁개방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일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올해 전반기까지 북한의 움직임 역시 이러한 부정적 평가에 힘을 실어줬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후 그의 대표적인 업적을 핵과 위성 보유라고 밝혔고, 4월에는 광명성 3호 발사를 강행했다. 급기야는 개정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을 명시했고 남한을 겨냥한 위협적인 언사도 늘어놓았다. 이러한 일련의 행태는 김정은의 북한에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비관론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나 변화의 징후는 광명성 발사 때부터 잉태되어 있었다. 외국 전문가와 언론을 초청해 발사 장면을 공개했고 로켓이 이륙 1분 만에 폭발하자 신속하게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또한 북한이 곧 3차 핵실험을 실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곳곳에서 나오자 '그럴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어버렸다. 모두 이례적인 일이다.

민생 해결 다짐하는 김정은 체제

그리고 로켓 발사 이틀 후이자 고(故)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인 4월 15일 공개 연설에서 김정은은 "우리 인민이 다시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다짐을 뒷받침하듯 경제정책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김정은은 1월에 당 간부들에게 "자본주의 방식 논의에 눈치보지 말라"고 언급한 바 있고, '4·6로작'에서는 "경제사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각의 통일적인 지휘에 따라 풀어나가는 규율과 질서를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발전을 최대 당면 과제로 삼으면서 '선군정치'에 대한 구조조정 시도도 엿보인다. 6월 29일자 <로동신문>에 게재된 '정론'에서는 "선군정치로 국력이 다져진 조건에서 이제 경제강국의 용마루에 올라서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7월 1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에서 북한 군부의 최고 실세인 리영호를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북한이 선군정치와 결별을 선언하거나 결별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김정일의 최대 업적을 선군정치의 '완성'으로 규정하고 이제는 경제발전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일 시대에는 선군정치가 경제발전도 주도한다는 '선군경제'를 표방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자 이제는 내각이 경제발전을 주도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부분적이지만 구체적인 개혁조치도 나왔다. 6월 28일 내놓은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 체계를 확립할 데 대하여'란 내용의 '6·28 방침'이 바로 그것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비료와 원료, 농기계 등이 부족한 협동농장과 가동이 중단된 공장에 국가 투자로 자금을 돌려 농산물과 공산품 생산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상품 매입시 고정 가격이 아닌 시장 가격으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고 있다. 또한 협동농장의 규모도 10~25명에서 4~6명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9월 4일자 <워싱턴포스트>는 "규모 축소는 전체 마을이 아니라 한두 가정이 자신의 농사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리더십과 대외 관계가 가장 큰 변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0회 생일인 지난해 2월 16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생중계된 육·해·공·군 장병들의 열병식에서 김정은 당시 부위원장이 리영호와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 리영호와 이야기하는 김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70회 생일인 지난해 2월 16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생중계된 육·해·공·군 장병들의 열병식에서 김정은 당시 부위원장이 리영호와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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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변화의 징후를 놓고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북한 스스로도 "우리에게 개혁개방을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이것이 곧 북한이 개혁개방을 거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표현이 어찌되었든 경제발전을 위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외국 정부 관리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관리들은 군사 문제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은 반면에 "지속적으로 경제 정책 및 경제 발전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최근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한 이 관리는 "분명히 그들은 경제 개혁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내가 북한 고위 관료들로부터 받은 확실한 메시지는 '우리는 경제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대외적으로 김정은 체제는 올 한 해를 '냉랭한 분위기 깨기(Ice Breaking)'의 시간으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우려됐던 군사 도발이나 3차 핵실험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나, 최근 남한, 미국, 일본에 대한 비난을 눈에 띄게 줄이고 있는 것은 내년부터 있을 본격적인 접촉에 대비한 분위기 조성의 성격이 있어 보인다.

또한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동남아 국가들과 이란과의 관계 복원에 나서고 있는 것도 '외곽 다지기'의 성격이 짙다. 부인과 함께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 역시 김정은 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한-미-일, 북한 강경파에 힘 실어줘선 안 돼

그러나 이러한 김정은의 변화 시도가 어떤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극히 미지수이다. 선군정치에 대한 언어적 찬사가 경제를 우선시하려는 정책과 노선의 변화에 따른 혼란, 특히 군부 등 기득권 세력의 이익 침해 문제까지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과 정책 역량이 수반되어야 한다. 대내적 핵심 변수다.

또한 경제발전의 핵심 변수인 대외 관계의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한-미-일은 북한의 변화 여부의 핵심적인 척도로 핵문제를 들고 있다. 그런데 김정은식 개혁개방은 적어도 당분간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하고 있을 공산이 대단히 크다. 이 엇갈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가 대외적 핵심 변수이다.

물론 대내적 변수와 대외적 변수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 만약 김정은 체제가 대외 관계 개선에 힘입어 민생경제에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면 북한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반면 한-미-일 주도의 대북 제재와 봉쇄가 계속되고 이것이 북한 군부를 비롯한 강경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는다면, 북한 체제는 또 다시 급속히 위축되고 군사 모험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blog.ohmynews.com/wooksik)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이어질 글은 '핵보유와 경제발전은 양립할 수 있을까?'입니다.



태그:#김정은, #개혁개방,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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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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