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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고환 제거…. 최근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수위와 재범 방지 방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특히, 지난 4일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19명이 '성폭력범죄자의 외과적 치료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SNS 등 인터넷에서는 격한 반응이 쏟아졌다. 대체로, 강력한 처벌만으로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외과적 치료'라는 고상한 말은 다름 아니라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의 고환을 수술로 제거한다는 뜻이다. '고환 제거'는 성범죄자에게 성충동 약물치료를 시행하려는 '화학적 거세'보다 한참 앞서나간 방안이다. 어쩌면 머지않아 고환 제거라는 '현대판 궁형' 탓에 역사책에서만 봤던 내시나 환관처럼 고환 없는 성범죄자를 마주할 수도 있다.

물론, '처벌'은 그릇된 행동을 범한 일부 성범죄자들에게 해당하는 일이겠지만, 남성은 누구나 '아랫도리'를 조심할 필요가 있다. 성폭행까지는 아니어도 남성은 누구나 성추행과 성희롱 등의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아찔했던 성희롱의 기억

실제 내게도 성희롱(성추행)에 대한 아찔한 기억이 있다. 사건은 몇년 전 어느 연말 모임에서 벌어졌다. 대개의 모임이 그렇겠지만 친목을 다지며 술을 한잔씩 하다 보면 어색함을 떨쳐버리고 빠르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날도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모임이 끝났다.

그런데 다음날, 충격적인 이야기가 전해졌다. 한 여성이 내가 '성추행' 내지는 '성희롱'을 저질렀다고 주장한 것이다. 내가 거침없이(?) 자신의 허벅지 등을 만져서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는데, 당황스럽게도 나는 그런 기억이 없었다. 아마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신체접촉이기에 기억에 없을 거라고 판단했지만, 나는 그 여성이 원한다면 공개 사과를 하겠다고 했다. 어찌됐든 중요한 것은 그 신체접촉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의사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다행히 그 여성의 이해 속에 큰 문제 없이 처리됐다.

이 사건 이후 나는 한동안 모임에서 그 여성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또한 어떤 자리이건 여성과 함께 하는 모임에서는 행동이 상당히 위축되곤 했다. 그뿐인가. 만원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다 여성의 몸과 조금이라도 부딪힐 때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데 앞에 여성이 걸어가고 있어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혹여 그 여성이 흘낏 돌아보기라도 하면, 난 영락없이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되고 만다.

전남 나주시 어린이 납치 성폭행사건 피의자 고모(23)씨가 1일 오전 피해자 A(7)양의 집에서 A양을 이불째 납치하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이날 피해자 집 내부의 현장검증 장면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채 진행했으며, 이 사진은 전남지방경찰청이 제공했다.
▲ 이불째 납치 재연하는 피의자 전남 나주시 어린이 납치 성폭행사건 피의자 고모(23)씨가 1일 오전 피해자 A(7)양의 집에서 A양을 이불째 납치하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이날 피해자 집 내부의 현장검증 장면은 언론에 공개하지 않은 채 진행했으며, 이 사진은 전남지방경찰청이 제공했다.
ⓒ 연합뉴스/전남지방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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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게 나 개인만의 일일까? 과연 그럴까? 인터넷에서 직접 검색을 해봤다.

"강간 따위의 짓을 하거나 성적으로 희롱하는 짓." - <동아새국어사전>의 '성추행' 정의

"입맞춤·포옹, 뒤에서 껴안기 등의 신체적 접촉이나 엉덩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만지는 행위, 안마나 애무를 강요하는 행위 등. 음란한 농담이나 음담패설, 외모에 대한 성적인 평가나 비유, 성적 사실관계를 묻거나 성적인 내용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성적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음란한 내용의 전화 통화, 회식석상 등에서 무리하게 옆에 앉혀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 등. 성과 관련된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고의적으로 노출하거나 만지는 행위 등." - <두산세계대백과>의 '성희롱' 정의 요약

성교육이 '전무'한 남성들

'성추행'과 '성희롱'에 대한 설명이다. 찬찬이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도대체 어디까지가 성추행이고 성희롱인가'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남자와 여자가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성'적으로 상대 의사에 반하는 행위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숱하게 발생한다.

그런데 이 모든 행위를 고환 제거와 같은 강력한 처벌로 막을 수 있을까? 물론 직접적인 성폭행과 성추행·성희롱은 그 정도에 따라 '죄질의 차원'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인격과 인권을 짓밟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범죄다. 때문에 처벌 강화 이전에 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는 걸 깨우치는 게 우선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공교육과 사교육을 통틀어서 '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40대 초반인 내 또래 남성들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여자들만 남겨서 뭔가 은밀한 수업이 이뤄지던 기억은 있다.

최근 나주에서 벌어진 7세 여아에 대한 무지막지한 성폭력 범죄는 지탄 받아 마땅하다. 가해자의 인권보다 강력한 처벌론이 앞서는 데에는 범죄의 잔혹함이 있다. 하지만 화학적 거세에서 나아가 고환 제거라는 성범죄자 처벌이 법으로 제정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진중권 교수(@unheim) 트위터 계정 화면.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물리적 거세' 법안과 관련해 "한 마디로 정치적, 사법적, 문화적 의식의 가장 후진적 층위의 저열한 복수본능에 의뢰해 잠깐 인기 좀 끌어보겠다는 한심한 짓"이라는 글을 5일 트위터에 남겼다.
 진중권 교수(@unheim) 트위터 계정 화면.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물리적 거세' 법안과 관련해 "한 마디로 정치적, 사법적, 문화적 의식의 가장 후진적 층위의 저열한 복수본능에 의뢰해 잠깐 인기 좀 끌어보겠다는 한심한 짓"이라는 글을 5일 트위터에 남겼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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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절단형이 부활하면, 이제 고환만 자르겠어요? 힘 가진 여성이 청소년 남자 추행하면, 이제 자궁을 들어내자고 할 겁니다. 강력사건 터질 때마다 잘라도 되는 부위의 리스트가 늘어나겠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지난 4일 '고환 제거' 법안 소식을 전해들은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괜한 기우가 아니라는 점에서 동감이다.

사형 찬성, 현대판 궁형, 불심검문 강화... 그 다음엔 뭐? 

사형 집행 찬성, 화학적 거세, 현대판 궁형 도입, 시도 때도 없는 불심검문 강화 등 정부 여당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입을 통해 살벌한 대책들이 쏟아진다. 정부가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일련의 강한 조치들은 암울했던 지난 군사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미니스커트 길이 단속과 장발 단속은 오히려 애교에 가깝다. 필요에 의해 언제든 신체를 구금하고 인권을 짓밟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던 그런 시절이 또다시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재범 우려가 큰 성범죄자에게 고환 제거라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면, 불법 정치자금을 또 받을 우려가 큰 정치인들의 손목을 절단하는 법도 필요한 걸까?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이들의 입은 꿰매는 게 정답일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를 나날이 강화하는 언론인들에게는 삼시 세끼 가장 자극적인 음식을 먹이는 법안은 또 어떨까. 그들이 국민들에게 주는 고통도 결코 작지 않으니 적극 추진해보는 건 어떤가?


태그:#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고환 제거, #성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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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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