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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23일 밤 11시19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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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최종판결을 6일 앞둔 지난 21일, 집무실에서 만난 곽노현 서울교육감은 분주했다. 인터뷰는 약속시간보다 20분 늦게 시작됐고, 그 중간에도 인사 등 3건의 결재를 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날 경우, 집중추진하고 싶은 정책으로 '수업혁신'을 첫 손에 꼽았다.  인성교육·민주시민교육·문예체(문화·예술·체육)교육·적성진로교육을 별도의 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35시간씩 12년 동안 계속되는 학교 수업에서 실시하고, 모든 수업을 발표수업·협동수업·사고력 및 문제해결능력 수업으로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무한경쟁교육의 정점에 다다른 한국 교육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유죄 판결로 물러날 경우 12월 19일 재선거에서 다시 진보개혁진영이 교육감을 당선시킬 수 있겠는냐는 질문에는 "학력지상주의·대입경쟁지상주의를 극복하고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교육정책을 펴겠다는 사람이 선택되는 건 자명하다"며 "공교육에서의 대세는 결정났다, 설령 나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또 올지라도 이 교육기조가 계속 되리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없다"고 답했다.

다음은 문답전문.

"한국 교육, 무한경쟁 교육의 정점에 와있다"

- 지난 7월로 교육감 취임 2년이 지났다. 한국 교육의 현재를 평가한다면.
"얼마 전 교과부가 발표한 학생·학부모·교사 5만 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학생 10명 중 4명이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한다고 나타났다. 게다가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자기주도성, 지적흥미도, 사회성, 협동성 등의 점수는 전부 바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생행복지수에서도 4년 연속 최하위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무한경쟁교육의 정점에 와있다고 할 수 있다. 20년 후 국가경쟁력 위기가 학교에서 잉태되고 있다. 이제는 20세기 공장식 학교교육에 머물고 있는 서울 공교육을 21세기형 공교육으로 진화·발전시켜야 한다. 아이들을 극한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경쟁교육 기조를 바꾸고 공교육의 새 표준을 정립하지 못하면 국가적 위기가 5년 안에 올 것이다."

- 교육감으로 출마할 때 '행복한 교육혁명'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어디쯤 와있나.
"그동안 아이들의 자기주도성 회복 내지는 강화를 교육목표로 설정하고 열심히 씨를 뿌렸다. 지금은 싹이 자라고 있는 상태다. 몇 군데 열매를 맺는 있는 영역도 있다. 혁신학교가 그 예다. 공교육의 새 표준 정립이 '지금 여기서' 가능하다는 걸 혁신학교가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문예체교육 활성화를 약속한 바 있다. 중학교에서 집중 시행중이다. 이 부분은 학교현장 호응이 제일 크다. 학생인권조례도 우리나라 교육의 전후를 나눌 만큼 생활교육의 '패러다임 시프트'(기본틀 전환)를 가져왔다. 일제 때부터 내려온 학교문화를 바꿨다. 이런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앞으로 대응해 나가면 된다.

또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을이 학교다'라고 하는데, 우리도 지역사회의 교육역량과 자원을 학교와 교육에 접목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활성화를 통한 교육 네트워크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마을공동체는) 지역사회의 상담지원·생활지도 역량을 총동원해 한 아이의 올바른 성장과 치유·돌봄을 도모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물론 시의원, 국회의원, 교육청,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촘촘하고 긴밀한 교육 협력체계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 취임 2주년 기자회견문에서 교육격차 해소를 강조한 바 있다. 서울 교육청 혼자 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데, 구체적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의 원칙은 분명하다. 열악한 지역의 학교에 우선지원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중식지원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낙후된 지역의 학교로 보면 맞다. 이 학교들에 예산 지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바꾸겠다.

교육격차 해소는 서울시장의 일이기도 하다. 자치구마다 재정형편에 따라 학교지원경비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어느 구에서는 관내 학교에 평균 2000~3000만 원을, 또 다른 구에서는 1~2억 원 정도를 쓴다. 이처럼 격차가 굉장히 큰데 최근에는 약간 줄어들고 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 낙후지역의 구청장들이 교육지원경비를 많이 늘려서다. 이런 노력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또한 인사제도 면에서, 교육장·국장·과장 등의 책임있는 직책에 오르려면 반드시 가장 열악한 지역에서 성과를 올린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했다. 가장 열악한 학교의 교육력을 높였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인사제도를 확립하고, 장학관들을 다시 지역 학교로 보내 현장에서 실적을 올리게끔 하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행정적으로)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다.

이렇게 종합적·체계적으로 하지 않으면 공교육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다. 어디서나 부익부 빈익빈은 세상 법칙처럼 돼 있다. 공교육은 이것과 싸우라고 존재하는 영역이다. 여기서 실패한 공교육은 죽은 공교육이다."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하려면 새로운 입법 근거 필요"

"그동안 아이들의 자기주도성 회복 내지는 강화를 교육목표로 설정하고 열심히 씨를 뿌렸다. 지금은 싹이 자라고 있는 상태다"
 "그동안 아이들의 자기주도성 회복 내지는 강화를 교육목표로 설정하고 열심히 씨를 뿌렸다. 지금은 싹이 자라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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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문제가 논란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소년법에 따르면 청소년기에 형사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은 '가정법원 소년부에 송치돼야 한다. 그곳에서는 형사재판을 하는 게 아니라 보호처분재판을 한다. 보호처분은 전과가 아니다. 소년법 30조는 보호처분이 신상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못박고 있다. 또한 70조는 군사·수사·재판상 목적이 아닌 이상 누구도 청소년이 보호처분 받은 사실을 조회할 수 없게끔 금지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만큼 법은 소년기 중에 격정과 미숙으로 말미암은 범죄 행위에 대해서 배려한다.

학교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게 되면, 경미한 사안으로 처분 받은 사실도 기록에 5년간 남아 대학 입시와 취업에 어려움이 있다. 즉 청소년 신상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게 교과부의 이번 대책이다. 이렇게 하려면 (기존 소년법과 다른) 새로운 입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교과부 장관이 명령으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또한 인권위가 교과부의 이번 대책과 관련해 인권침해 소지가 있으니 중간삭제 제도를 도입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중국·프랑스 등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제도를 운영하는 다른 나라에서도 중간삭제제도가 당연하게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여론의 지지를 업고 글로법 스탠다드도 아랑곳 없이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다분히 포퓰리즘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 서울시교육청이 교과부의 학생부 기재 강행을 비판하면서도, 직접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보류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대학 입시를 앞둔 상황에서 학교 현장에 교과부와 교육청이 각각 지시를 따로 내리는 건 못할 짓이라고 봤다. 실효성이 의심스러웠고, 학교 현장에 굉장한 부담을 주겠구나 싶었다. 교과부를 비판하면서도 직접 (일선 학교에) 불복종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은 이유다."

- 무죄가 선고될 경우, 집중 추진하고 싶은 정책을 꼽는다면.
"우선 수업혁신이다. 인성교육·민주시민교육·문예체교육·적성진로교육을 활성화 하고자 한다. 이런 교육을 방과 후에 따로 하는 게 아니라 일주일 35시간씩 12년 동안 계속하는 수업에서 해야 한다. 이제는 일방적 지식전달형 수업으로는 안된다. 집단지성 시대에 맞게 가야 한다. 모든 수업이 최대한 발표수업·협동수업·사고력 및 문제해결능력 수업으로 진행돼야 한다. 감수성·창의성 수업도 늘려야 한다. 다행이 2015년부터 PISA에서 두 명이 한 조가 돼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테스트할 계획이다. 이것이 우리 교육 변화에 큰 자극과 계기가 될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의 참여·자치 능력도 길러줘야 한다. 이는 민주시민의 핵심 토대다. 이미 학생인권조례에는 학생들이 학급회의를 열 권리가 명시돼있다. 학생들이 학급회의에서 학교생활과 관련해 발표하고 토론하고 자율적으로 규범을 만들며 민주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감정코칭 연수 등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보편화하고 싶다. 많은 학부모가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마찰과 갈등을 겪고 있다. 아이의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과정을 같이 고민하고, 아이와 부딪히는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와 감성을 기르는 교육이 학부모를 위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학교의 자율성이다. 지금까지 (교육개혁을) 저해했던 요인 중 하나는 학교의 관료주의다. 학교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학교 여건에 맞는 교육목표를 설정하거나 현장에 필요한 활동 지원을 모색하는 대신, 교육청·교과부의 지침이나 정책 사업을 기다리는 관료주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

"공장식 학교교육 못 바꾸면 5년 내 국가위기 올 것"

"공교육에서의 대세는 결정났다. 여기에 어떤 의심도 있을 수 없다. 만약 여기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나라가 망하는 길로 접어든다"
 "공교육에서의 대세는 결정났다. 여기에 어떤 의심도 있을 수 없다. 만약 여기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나라가 망하는 길로 접어든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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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죄 판결로 직을 잃을 경우, 이후 진행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이 되는 정책은 무엇인가.
"그동안 추진한 정책들은 시민의 열망이 결집된 것이었다. 이를 교육청에서 아래로부터의 협의를 통해 정한 것이다.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본다."

-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와 함께 재선거가 실시된다. 다시 진보개혁진영에서 교육감을 당선시킬 수 있다고 보는가.
"지난 2년간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이 교과부의 중앙집권적 획일화 정책과 충돌을 빚으면서 교육 자치 원칙에 맞춰서 분투해왔다. 시민들이 이 과정에서 교육감 선출이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누가 시대에 맞는 21세기 교육정책을 추진하는지 보면, 어떤 차질도 빚어질리 없다고 본다. 학력지상주의·대입경쟁지상주의를 극복하고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교육정책을 펴겠다는 사람이 선택되는 건 자명하다.

공교육에서의 대세는 결정났다. 여기에 어떤 의심도 있을 수 없다. 만약 여기서 잘못된 선택을 하면 나라가 망하는 길로 접어든다. 설령 나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또 올지라도, 이 교육기조가 계속되리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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