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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내가 돈만 벌기만 해봐. 우리 집 낡은 TV, 좋은 놈으로다 바꿔줄게. 나만 믿고 기다려~"

허풍 떨며 자신만만하게 말한 지 어느새 8년. 직장인 6년차 나는 여전히 내 앞가림도 못하는, 그리고 내 중심적으로 사는 이기적인 딸내미다. 친구들 모임에선 턱하니 밥값을 계산하며 온갖 너스레를 떨면서, 정작 가족 모임에선 돈 없다는 핑계를 무기 삼아 슬그머니 뒤로 빠지는 얌체다. 큰 맘 먹고 한턱 쏠라 치면 평소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보다 저렴하고 푸짐한 곳으로 예약해 자식된 도리를 다한 것인양 의기양양했다.

돈만 벌면 호강시켜 주겠노라고 호언장담했던 지가 엊그제인데…. 나는 내 돈 나가는 건 아깝고, 부모 돈 나가는 건 당연하게 여기며 이기적으로 지난 6년을 살아왔다. 내 부모, 고모가 어떤 존재인지도 망각한 채 말이다. 

부모님 대신 부모 노릇한 고모

지난 20여간 식당일을 해 자식 넷을 홀로 키우셨다.
▲ 참부모, 우리고모 지난 20여간 식당일을 해 자식 넷을 홀로 키우셨다.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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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잃은 우리 남매를 거둔 고모. 정작 자신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당신 자식 둘에, 우리 남매 둘까지 합이 넷을 홀로 키우셨다. 음식 장사를 하시며 먹는 것 하나는 부족함 없이 키우셨고, 여자도 대학을 나와야 대우받고 산다며 가장 큰 딸인 나를 4년제 대학에 보내셨다. 고모의 지난날의 희생을 생각하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눈물이 흐른다. 나에게 고모는 어버이보다 위대한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신 참 부모다.

그러나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20대의 화려하고 방탕한(?) 삶을 즐기면서 효도는 고모의 생신날, 어버이 날 말고는 안중에도 없었다. 고모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 알면서도, 내가 처한 상황이 먼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고모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 혼자 벌어 너 혼자 먹고 살기도 빠듯하지. 긍게 돈 무서우니 알고 살아야 돼. 절대 허투루 쓰지 말고…."

순간 지난 날의 불효를 이해받기라도 하듯 동조하며 맞장구쳤지만, 이내 생각했다. 난 혼자 벌어 나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 고모는 혼자 벌어 넷을 먹여 살리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모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생각하니 지난 날의 내 모습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또 다른 반성의 시간은 두 달 전 목욕탕에서 엿들은 50대 아줌마의 대화에서였다. 

"자식들한테 왜 서운한 게 없겠어. 서운한 거 일일이 말하면 입만 아프지. 그저 지네들만 잘 살면 그만이니 아무소리 않고 사는 거지. 내가 뭘 바라겠어."
"그러지~ 자식들도 다 품안에 자식이야. 내 품 떠나니깐 지 서방, 지 자식밖에 모르잖어. 어쩔 땐 내가 난 딸년이 맞나 싶다니깐."

꼭 나 들으라고 하는 것처럼 뇌리에 박힌 두 분의 대화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늦기 전에, 시집가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를 행해야 겠다고.

조카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분들, 잘 보세요

효도의 첫 번째는 나로 인한 고모의 스트레스를 최소화시키는 것. 일찍 귀가하려고 노력하고, 툴툴거리며 답변하지 않으며, 집안일로부터 고모의 일손을 덜어드리는 것 등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다. 효도의 두 번째는 안마. 지난 수십 년간 음식장사를 했고, 지금은 병원식당에서 근무하시는 고모는 파스를 몸에 달고 살 정도로 온몸이 아프시다.

평소 한 방에서 같이 자는데 자다가 말고 일어나 통증에 잠 못 자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동안 난 뒤척이는 고모를 보면서 모른 척 잠을 청했지만 효도를 마음먹고부터는 단 5분이라도 주물러 드리려고 노력했다. 이런 날 보며 고모는 한 마디 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계란 한 판(서른) 다가오니 슬슬 철 좀 들려고? 야야~ 안하던 짓하면 일찍 죽는다. 아따 그래도 어젯밤 간만에 푹 잤다. 고마우이~큰딸내미~또 해줄꺼징~~"

그때 생각했다. 우리 고모가 돌려 말해서 그러지 칭찬에 인색하신 분이 아니라는 걸.

효도의 세 번째는 가족을 위해 돈을 쓰는 것. 평소 좋아하시는 회를 거하게 사드릴까. 옷을 한 벌 사드릴까. 고민 고민하다가 8년 전 호언장담했던 TV가 생각났다. 그러나 고개는 절레절레.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TV야, 미쳤지', '아니야~ 이참에 사야지. 도대체 언제 살려고??' 내 안에 악마와 천사가 번갈아가며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일 주일, 이 주일, 삼 주일…. 서서히 악마가 이기려는 찰나, 전자제품 매장을 우연치 않게 지나가게 됐다. 뭐, 그냥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들어간 매장에서 나는 최신형 스마트TV를 10개월 할부로 구매하게 됐다. 그렇게 질질 끌며 고심하고 고민하던 문제가 한방에 해결됐다.

막상 사고 나니 카드 할부금의 부담보다 '고모가 이 선물을 받고 얼마나 기뻐하실까'라는 생각에 집에 가는 길이 설렜다. 내 생애 첫 효도선물 앞에 내가 이렇게 행복하고 설렐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부리나케 집에 가 주무시고 계신 고모를 흔들어 깨웠다.

그동안 고생한 고모를 위한 선물. 돈은 이렇게 쓰려고 버는 게 아닐까.
▲ 첫 효도선물 그동안 고생한 고모를 위한 선물. 돈은 이렇게 쓰려고 버는 게 아닐까.
ⓒ 박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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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 줄 알어?"
"왜, 왜, 왜, 뭔 일 났냐?"
"하하하. 46인치 스마트TV를 샀다고."
"뭐~?"
"고모 갖고 싶다는 TV 샀다고."
"니가 돈이 어디서 나서 그런 걸 사. 얘가 진짜 맛팅이가 갔고만."

맛팅이 가도 제대로 갔다. 200만 원 가까이 되는 TV를 카드로 긁고 이렇게 행복한 걸 보면. 앞으로 10개월간 허리띠는 졸라매야겠지만 삼일 밤낮으로 동네방네 내 칭찬을 하고 다니는 고모를 보니 내가 더 행복하다. 돈은 이렇게 쓰려고 버는 것 아닐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우친 첫 효도기. "조카자식 키워 봤자 소용없다"고 말한 사람들 보란 듯이 나의 효도는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고모는 그 어떤 부모보다 자식 키운 보람을 배로 느껴야 할 분이기 때문이다.


태그:#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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