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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의 진보 일간지인 가디언지는 한국 언론들로부터 맹비난을 당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로스쿨을 다녔던, 아르와 마다위라는 한 여성 기고가가 올린 기사 때문이었다. 언론들은 이 기사가 '문화적으로 새로울 것 없어', '뚱뚱한 동양인 편견만 부추겨', '짜깁기' 등 부정적인 내용을 담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본 기자가 기사 전문을 검토하고, 지난 3일 이후 몇 차례 그녀와 이메일을 통해서 취재한 바로는 한국에서 보도된 내용과 다른 점이 너무 많았다.

포털에서 검색한 가디언지 싸이 혹평 기사 캡처 화면.
 포털에서 검색한 가디언지 싸이 혹평 기사 캡처 화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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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뭇매 맞은 아르와 마다위, 진짜 혹평했나

9월 24일자 가디언지에 실린 아르와 마다위 기사.
▲ 가디언지 보도 9월 24일자 가디언지에 실린 아르와 마다위 기사.
ⓒ 조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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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와 마다위의 기사 본문에는 '문화적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상식을 벗어난 비디오'(an over-the-top video)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녀는 이 표현이 부정적 관점이 아니라고 한다.

기사원문에서 그녀는 강남 스타일이 성공한 원인으로 '그 비디오가 외국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으로 지나친(방탕한) 사람을 패러디한 점'과 '비디오의 시각적 요소들이 미국적'이라는 점, 그리고 '사람들이 노래 가사도 모르면서도 마치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인 양 느끼게 하는 수준으로 팝 비디오의 상투적 요소들을 잘 섞어놓은 점'도 언급하고 있다.

국내 언론들이 "가디언지가 기존에 유행했던 익숙한 영상들의 짜깁기라고 혹평했다"고 보도를 했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이는 "서구 팝 비디오의 상투적 요소들을 잘 이용하여 오히려 조롱하고 있다는 긍정적 관점"이라고 한다. 이는 본문에 언급된 클리셰(cliche)라는 단어에 집착한 나머지 본문 자체를 오해한 것이거나. 의도적으로 편집한 것으로 보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의 성공은 일탈과 반동을 통해 성장한 인간의 역사다.
▲ 싸이의 말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의 성공은 일탈과 반동을 통해 성장한 인간의 역사다.
ⓒ 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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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지는 '강남 스타일'이 성공한 원인으로 서양 힙합 스타들과는 다르게, 비디오에 대한 저작권을 포기함으로써, 많은 풍자물들이 재생산될 수 있게 한 점도 언급하고 있다.

또  아르와 마다위는 '강남 스타일' 인기 원인에 대해 우리 언론이 보도한 대로 "동아시아인에 대한 서양인의 인종적 편견을 만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싸이의 인기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가중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을까.

그녀는 기사 본문에서 '강남 스타일'이 서구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서양인들이 동양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언급하고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할리우드 영화에서 아랍인들이 테러리스트로 묘사되고, 영국인들은 세련되게 묘사되듯이, 서구 미디어에서 동양인들이 묘사되는 특이한 방식이 있다고 한다. 이는 일반적 고정관념을 언급한 것이며, 인종적 편견이라는 표현은 원문에 언급 자체가 없었다.

또한, 싸이의 인기가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표현도 기사 원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사들 외에도, "'강남스타일'이 인기를 얻은 요인은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나, "'강남스타일'의 가사가 대한민국의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사회상을 담은 것이라고 분석했다"라는 내용도 가디언지 원문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9월 24일 자 타임지 보도
▲ 타임지 9월 24일 자 타임지 보도
ⓒ 조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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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와 마다위가 강남스타일을 반자본주의적 메시지와 강남의 소비풍조, 된장녀 등을 풍자한 것으로 본 것은 지나친 사회정치학적 분석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자신이 참고한 기사와 자료들 일부를 알려 주었는데, 거기에는 더 아틀란틱(The Atlantic)지 편집장인 Max Fisher의 기사와 9월 24일 자 타임(Time)지 기사 그리고 구글의 재미한국인 블로그 온 세미로(Onsemiro)의 심층 분석 글이 포함되어 있었다.

타임(Time)지는 "'강남 스타일'에 철저히 숨겨져 있는 의미"라는 기사에서 '강남 스타일'은 한국의 지나친 소비 풍조를 비판하는 풍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 기사는 강남이 서울에서도 가장 부유한 도시라는 점과 2010년 한국 가정의 수익대비 카드부채비율이 155퍼센트였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강남 스타일' 비디오 장면들 속에 깔린 풍자내용들까지 언급하고 있다. 기사는 마지막 부분에서 "돈과 지위, 그리고 지나친 소비에 사로잡혀있는 사회에서 '강남 스타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의미까지 부여하고 있다. 참고로 타임(Time)지도 온 세미로(Onsemiro)의 분석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재미 한국인 온세미로가 구글 블로그에 올린 심층 분석 자료
▲ 온세미로 재미 한국인 온세미로가 구글 블로그에 올린 심층 분석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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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외신들의 '강남 스타일'에 대한 분석 이전에도 국내에서는 다양한 분석들이 이미 있었다. 그동안 싸이의 노래들에 사회 풍자적 요소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싸이 본인은 초심으로 돌아가 정말 재미있는 싸이 다운 뮤직 비디오를 제작할 의도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가 과연 그런 의도로만 강남 스타일의 가사와 비디오를 만들었을까? 한국에는 아직도 노래가사와 뮤직 비디오에 대한 검열이 존재하며, 싸이의 5집 앨범에 수록된 'Right Now'는 여성가족부에서 19금으로 지정해 놓은 상태이다. 'Right Now'는 6일 현재 673만8579명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19금 조치가 없었다면 'Right Now'는 지금 제2의 '강남 스타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왜곡보도의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언론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강남 스타일'을 영국 신문에서 비난을 했다는 기사는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이자 분노의 대상이었다. 가디언지 원문을 보기 전까지 본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르와 마다위의 가디언지 기사 원문과 그 기사에 달린 일부 한국 네티즌들의 댓글을 보고난 후에는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한국인 댓글 중에는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댓글도 보였다.

아르와 마다위는 한국 언론의 이같은 보도와 이를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 등을 지인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사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아 아쉽다, 비판을 하려고 쓴 기사가 아닌데,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 몰랐다"며 아쉬워했다.

인터넷 덕택에 이제는 외신 기사들도 누구나 볼 수 있으며, 외국인들도 한국어만 안다면 한국 언론 기사를 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언론사들처럼 외신 기사의 원문도 검토하지 않고, 왜곡된 기사를 보도하는 일이 앞으로는 없기를 바란다. 언론은 권력이 아니다.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언론이 오히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다면, 그런 언론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지 않을까?


태그:#싸이, #PSY, #강남스타일, #언론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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