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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일 검사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에 원형으로 함몰된 흔적이 있다.
 지난 8월 1일 검사한 고 장준하 선생의 유골. 오른쪽 귀 뒤쪽 두개골에 원형으로 함몰된 흔적이 있다.
ⓒ 장준하기념사업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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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일,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의 유골 상처를 두고 많은 논란이 벌어졌습니다. 지름 6cm의 '가격 흔'이 무슨 이유로 장준하 선생의 유골에 선연하게 남게 된 것인지 많은 의혹이 뒤따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장 선생이 벼랑에서 추락하면서 생긴 상처라고 주장했고 또 어떤 이들은 망치 등으로 가격된 명확한 '타살 증거'라고 단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찾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지난 2003년부터 약 1년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 선생의 의문사를 담당했던 조사관이기에 제 견해를 물어온 것입니다. 처음엔 굳이 제가 직접 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조사했던 사람으로서 이러 저러한 말을 하기 보다는 제가 국가기록원으로 보낸 장준하 선생 '의문사 조사 기록'을 확인하시라고 권했던 것입니다.

장준하 기록 '70년 비공개', 황당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된 것은 MBC 이 아무개 기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 였습니다. 국가기록원에 장준하 선생 관련 기록을 요청했는데 국가기록원측이 관련 자료가 전부 '비공개' 결정되었다며 안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황당한 말에 다시 되 물었습니다.

"진짜예요? 그럼 언제까지 비공개한다는 것인가요?"
"향후 70년간 '비공개'한다고 하던데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향후 70년 비공개라며, 다시 말해서 제가 기록을 보낸 때가 2004년이니 앞으로 2074년이 되어야 장준하 관련 기록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저를 기준으로 보면 제가 104세가 되어야 그 기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니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써서 기고도 하고 <나는 꼼수다>, <망치 부인> 등 팟 캐스트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장준하 선생 사건에 대해 잘 못 알려진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장 선생 사건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보수 논객인 조갑제씨가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천벌 운운'하며 비난하는 것을 보며 분노했습니다. 또한 일부 보수 매체가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씨의 과거 '월간 조선' 인터뷰를 사실인양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에 맞서 누군가 제대로 된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낯선 전화 번호가 휴대폰에 떴습니다. '누굴까' 하며 받아보니 민주당 유기홍 국회의원실의 비서관이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용건을 여쭤보니 장준하 선생 의문사를 국회 행안위에서 다루고자 한다는 것 이었었습니다. 그러면서 "사건을 담당했던 조사관으로서 혹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주실 수 있냐"며 묻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솔직히 망설였습니다. '국정감사에 나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리고 저와 생각이 다른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 분에게 조리있게 잘 설명할 수 있을까' 등등 많은 걱정이 스쳐갔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장준하 선생 사건은 제 마음대로 판단할 수 없는 어떤 '숙명'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증인으로 출석하여 말하는 것이 장준하 선생 사인과 관련한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제 숙명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네.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 출석하면 되나요?"
"현재 일정상 오는 10월 8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날은 다른 일정을 잡지 마세요."

새누리당 증인 채택 반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단단히 마음먹고 기다렸던 그 날, 저는 국회 행안위 국정 감사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신문 지면에서 확인한 사실에 의하면 저를 비롯하여 장준하 선생 장남 장호권씨 그리고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씨 등에 대해 새누리당이 증인 채택을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나름대로 진실을 말하고자 어렵게 마음 먹은 것인데 이러한 저의 증인 채택을 반대한다니 한편으로 야속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아했습니다.

장준하 선생 사인에 대해 생각하는 눈높이는 다를지라도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마음은 '다 같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왜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인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증인 출석이 무산 된 후 민주당 임수경 국회의원실에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첫 번째 증인 채택은 무산되었지만, 다시 증인 채택을 시도할 계획인데 그때 출석해 줄 수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나가겠다"고 재차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출석할 날짜를 물어보니 10월 24일이라고 답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날 다른 일정을 전혀 잡지 않을테니 이번에는 꼭 좀 증인 채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그러나 10월 24일을 하루 앞둔 23일. 저는 제가 2012년도 국회 행안위 국정 감사에 증인으로 출석 할 수 없게 되었음을 최종적으로 알게되었습니다. 끝내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반대하여 저도, 장호권씨도 그리고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씨도 증인 채택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장준하 선생 사건은 37년 전 어느 날 벌어진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진행되고 있는 '현실의 사건'임을 말입니다.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마주하기 '불편한 진실'이기에 이를 말하고자 증인 채택을 원했던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제가 알게된 사실입니다.

내가 국회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어 출석한다면 제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제가 말하지 못하고 사라질 이 '말'을 이곳에 남기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국가기록원이 비공개로 결정한 장준하 사건 관련 기록은 모두 공개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진실을 알고자 하는 국민에게 그 진실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특히 장준하 선생과 관련한 의문사 기록은 '국가 기밀'이 아닙니다.

유신시대 당시 중앙정보부가 생산한 장준하와 관련된 문서는 국가 기밀 일 수 없습니다. 모두가 다 불법적인 도청과 미행으로 이뤄진 중앙정보부의 '범죄 사실'인 것입니다. 장준하 선생이 안방에서 가족과 대화한 내용 그리고 그 집을 다녀간 사람들의 명단 등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하에서 자행된 정보기관의 범죄 사실이 바로 장준하 관련 자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국가 권력에 의한 범죄 사실을 이른바 '국가 기밀'이라며 향후 70년간 비공개하겠다는 것은 또 다시 언제든 이런 범죄를 다시 하겠다는 의지로 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이런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지난 군사 독재와 유신 시대에 벌어진 모든 범죄 사실을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장준하 관련 자료를 모두 공개하도록 관련 법령을 국회가 나서서 바꿔줘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장준하 선생 사건은 더 이상 의문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장준하 선생의 유골에서 확인된 지름 6cm의 '가격 흔'이 어떤 경위와 과정으로 생긴 것인지 유족을 비롯하여 국민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조속히 빠른 시일내에 장준하 선생 의문사를 재조사할 수 있도록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려 했습니다.

방법도 쉽습니다. 현재 활동기간 종료로 2010년 해산한 '대통령소속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를 다시 재가동하면 됩니다. 시행령의 일부만 바꾸면 이는 내일이라도 바로 재가동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올바른 국회의 임무인 것입니다.

국회에서 끝내 외치지 못한 이 두가지를 저는 지금 떨리는 심정으로 외칩니다. 더 이상 우리 국민이,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이 고통 받아서는 안됩니다. 장준하가 온 몸으로 사랑했고 제가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이미 거대한 '민주주의 행진'이 시작되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그 길에서 장준하 선생이 넉넉하게 미소 지을 그날까지 저는 제 숙명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고 장준하 선생의 넋을 추모하며 국가 차원의 재조사를 거듭 촉구합니다.


태그:#장준하, #행안위, #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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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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