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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 홈페이지 메인 화면. 박근혜 후보의 오늘이 소개돼 있다.
 '박사모' 홈페이지 메인 화면. 박근혜 후보의 오늘이 소개돼 있다.
ⓒ 박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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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대한민국 박사모'(회장 정광용, 이하 박사모)는 오직 박근혜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지난 22일 박사모 정광용 회장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박근혜 후보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며 대놓고 "밥버러지들"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사모는 박근혜 후보의 라이벌인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향해서는 "친북좌파 척결"이라는 과감한 구호를 거침없이 외친다.

18대 대선을 불과 50여일 남겨둔 지금, 박사모는 최후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 그 대상이 누구든, 박근혜 후보에게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박사모의 공격 대상이다. 맹목적 충성이다.

한 사람만을 위한 조직 '박사모'

대선과 총선 때면 어김없이 논란의 중심에 서온 박사모. 박사모가 12월 대선을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박사모 회원들이 회원가입에 집중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박사모 정광용 회장이 있다.

박사모를 논할 때면 정광용 회장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는 박사모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하다. 박사모는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대한민국 박사모'가 모체다. 30일 오후 3시 현재 박사모 가입 회원수는 7만 25명이다. 하지만 7만명이 회원의 다가 아니다. 정광용 회장은 "오프라인 회원수가 약 18만 명에 달한다"며 "카페 회원과 합하면 박사모 회원은 25만명을 넘는다"고 말했다.

박사모는 최근 전 회원에게 지침을 내려 회원수 배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한 회원이 50명의 박사모 오프라인 회원을 모집하라는 지침이다. 이번 대선은 박사모 회원 가입 증대 여부에 따라 승패가 좌우된다는 것.
 
박사모는 처음 정광용 회장이 1인 카페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정 회장은 주변에 산재한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을 다음 카페 박사모로 결집시켰다.

지난 2004년 3월.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를 추진하다 거대한 역풍을 맞았다. 이때 침몰 직전인 한나라당 선장으로 나선 이가 박근혜 후보다. 박 후보가 그해 3월 23일 한나라당 당 대표를 맡은 뒤 일주일 뒤인 3월 30일 밤 10시경 정광용 회장은 박사모 카페를 개설했다.

평소 박근혜 후보를 좋아하던 정 회장은 침몰하는 한나라당을 구하려는 박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박사모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후 박사모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박사모는 박근혜를 위한, 박근혜 친위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광용 회장은 "카페를 개설하면서부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라는 한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다음 카페 박사모 조직은 전국(해외포함) 30개 지방본부, 152개 지부, 400개의 지회로 구성되어 있다. 각 지부에는 지부장이 있고, 지부장 산하에 지회장이 있다.

26일 국립현충원에셔 열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33주기 추모식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유족인사말을 하고 있다
 26일 국립현충원에셔 열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33주기 추모식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유족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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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에 따르면 회원은 10대부터 60대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다. 정광용 회장은 "온라인에서는 20대와 50대가 공존한다"고 말한다. 박사모는 기본적으로 봉사를 위주로 하는 모임이라는 점을 공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첨예할 때는 현실참여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박사모는 박근혜 후보가 가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지난 26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박 후보가 유족대표로 참석하자 박사모 회원들은 현장에 천막을 치고 참석자에게 음료수와 커피를 대접하기도 했다.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재정이다. 이에 대해 정광용 회장은 "박사모의 재정은 전액 회원들의 후원금과 간부들의 회비로 충당된다"며 "일반회원들에게 강제하는 회비는 없으며 간부들은 직급별로 차별화 된 회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화끈한 박사모? 결국 이회창 지지 

박사모는 설립 초창기부터 카페 공지와 회원들에게 보내는 메일로 주요 사항에 대한 지침을 전달했다. 이 지침에 따라 회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특히 정광용 회장이 내는 논평이나 성명은 언론에서 자주 기사화되기도 한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의 박근혜 후보 돕기 활동이나 2008년 18대 총선에서 박근혜 후보에 반하는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 전개는 모두 이 지침에서 시작됐다.

지난 2009년 치러진 4·29 경주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보여준 박사모의 활동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필자가 현장을 확인한 것에 따르면 전날 박사모 카페에서 내린 지침으로 인해 경주역 유세장에는 500여 명이 집결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들은 친박 후보인 정수성 후보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이들 500여명은 유세가 끝난 후 경주지역 식당에 흩어져 집중적으로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당시 이같은 박사모의 공격적인 선거운동은 무소속 후보로 나선 정수성 후보가 친이명박계인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를 누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관련기사: < 박근혜로 시작해 박근혜로 끝나는 경주 재선거>)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회원들이 지난 2007년 8월 25일 여의도 한나라당사앞에서 '부정경선 규탄대회'를 열고,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 후보 자리에서 끌어내리자'고 주장했다. 일부 회원들은 경선 결과에 불복한다는 의미로 삭발을 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회원들이 지난 2007년 8월 25일 여의도 한나라당사앞에서 '부정경선 규탄대회'를 열고,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 후보 자리에서 끌어내리자'고 주장했다. 일부 회원들은 경선 결과에 불복한다는 의미로 삭발을 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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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정점을 이룬다. 박근혜 후보가 그해 8월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하자 박사모는 충격에 빠졌다. 이후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을 상대로 '후보 효력정지' 소송을 불사하는가 하면 2007년 11월 26일 저녁에는 박 후보 집 앞으로 몰려가 "이 후보를 돕지말라"고 석고대죄 하기도 했다.

이들은 당시 이명박 후보 집 앞으로 몰려가 후보사퇴를 촉구하는 기습 촛불시위를 벌였다. 결국 박사모는 다음날 긴급 운영회의를 열고 "이명박 후보는 안 된다, 이회창 후보 지지를 결정한다"는 화끈한(?)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박사모의 영향력이 확인시켜준 사례는 2008년 18대 총선. 박사모는 '친박 공천 학살'을 주장하며 친이계인 이재오, 이방호, 정종복, 전여옥 등을 주적4인방으로 규정, 낙선운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전여옥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낙선했다. 

박사모는 특히 진보진영이 주축을 이룬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박사모는 정부와 보수층에서 음모론을 제기하자 "박사모가 촛불집회에 나가 친북좌파론을 종식시키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박근혜 후보의 정적인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촛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박사모는 친박 인사라 할지라도 박근혜 후보에 반하는 정치인이 나오면 '배신자'로 규정하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했다. 김무성 전 의원에 대한 공격이 그 좋은 예다. 김무성 전 의원이 2009년 세종시 문제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을 옹호하자 박사모는 회원 투표를 통해 그를 배신자로 낙인 찍고 친박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고성국 박사 감사패·'십알단' 양성 논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로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로고.
ⓒ 박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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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박근혜 후보 한 사람만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다보니 박사모는 종종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김무성 전 의원이 그 예다. 박근혜 후보가 최근 당내 혼란 수습 방안으로 김무성 전 의원을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으로 공식 임명했지만, 박사모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못했다.

최근 잇따라 친박근혜 발언으로 편파성 논란이 일었던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에게 박사모가 감사패를 준 일도 세간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5월 6일 박사모 창립 8주년 충북본부 기념식이 끝난 후 고성국 박사가 '4·11총선 평가와 대선전망'을 주제로 강연을 벌인 후 감사패를 전달한 것이 논란이 된 것.

또한 박사모가 노년층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켜 박 후보의 라이벌인 안철수·문재인 후보를 온라인으로 공격하게 한다는, 소위 '십알단(십자군 알바단)' 양성도 과잉 충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순수한 지지모임으로서 과도한 정치행위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주내용이다.

이에 대해 정광용 회장은 "박사모의 한 지역 모임에서 그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감사패를 준 것에 불과하다. 박사모는 고 박사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초청해서 강연을 들을 수 있다"며  "좋은 강의 해주어 고맙다고 감사패를 준 일을 확대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십알단'에 대해서는 "전국에서 21차례나 공개적으로 회원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했다"며 "좋아하는 후보를 돕자고 컴맹 회원에게 컴퓨터 교육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왜 논란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십알단? 컴맹들에게 교육한 것에 불과하다"
[인터뷰] 박사모 정광용 회장


지난 2011년 4월 2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창립 7주년 한마당 대찬지'에서 정광용 중앙회장이 대회사를 통해 "2012년 박 전 대표의 대선 승리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호소하고 있다
▲ 정광용 박사모 회장 "대선 승리하자" 지난 2011년 4월 2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창립 7주년 한마당 대찬지'에서 정광용 중앙회장이 대회사를 통해 "2012년 박 전 대표의 대선 승리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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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모를 어떻게 만들게 됐나?
"2004년 탄핵정국에서 치러진 총선 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눈물을 보고 그를 돕자는 생각에서 <다음> 카페 박사모를 개설하게 됐다. 2004년 3월 30일 밤 10시경이다. 그때 정광용 1인 카페로 출발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 

- 그 이전에는 박근혜 후보와 전혀 인연이 없었나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카페 개설 이전에는 박 후보와 그 어떤 인연도 없었다. 단지 평소 그의 신념과 소신을 좋아했고, 특히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이 전부였다."

- 박사모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박사모는 기본적으로 봉사를 위주로 하는 모임이다. 매년 여름 수해 때 전국 박사모 회원들이 수해복구에 나선다. 서울, 경기, 강원, 진주 등 지역회원들이 수해복구 봉사를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해당 지자체장들이 감사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박사모 함세(함께하는 세상)에서는 정기적으로 소외계층을 돕는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오프라인 봉사활동은 서로 얼굴을 모르던 회원들 간에 단합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 박사모 정광용 회장의 논평이나 성명은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경우 현실참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뿐 아니라 박사모 회원들이 대부분 그렇다. 한 사람을 좋아해 모였는데, 사랑을 하는데 무엇이 두렵겠느냐."

- 조직을 움직이려면 돈이 든다. 재정은 어떻게 충당하나
"박사모의 재정은 전액 회원들의 후원금과 간부들의 회비로 충당된다. 일반회원들에게 회비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박사모는 무엇을 바라고, 혹은 사적 이익을 위해 모인 단체가 아니다."

- 친박 편파 발언으로 논란이 된 고성국 박사에게 감사패를 주거나, 온라인 상에서 너무 공격적인 '십알단'을 양성해 논란이 되고 있다.
"모두 공개된 일정이며 적법하게 진행한 일이다. 좋은 강의를 해준 분에게 감사패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비단 고성국 박사 뿐 아니라 어느 누가 강의를 해도 마찬가지로 감사패를 줬을 것이다. 십알단은 전국 지역모임에서 공개적으로 교육을 한 것이다. 컴맹 회원들에게 교육을 시킨 것이다. 논란거리가 아니라고 본다."

덧붙이는 글 | 박석철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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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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