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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연인들이 푸른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세인트 제임스 파크 가족과 연인들이 푸른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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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답사를 마친 우리는 버킹엄 궁(Buckingham Palace)을 향해서 걸었다. 나의 눈앞에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St. James Park)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원래 헨리 8세 때 궁전의 정원으로 만들어졌던 곳이다. 이 곳이 공원이 된 것은 17세기에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면서부터였다. 그러니 이 공원은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왕립공원이다. 원래 왕들이 놀던 곳이니 공원이 넓고 시원하기 그지없다.

공원의 호숫가를 걷다보면 수많은 새들을 만날 수 있다.
▲ 공원의 호수 공원의 호숫가를 걷다보면 수많은 새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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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주요 명소들을 답사하려면 언젠가는 한번 걸어서 건너갈 수밖에 없는 공원이다. 나는 이 공원을 산책삼아 가볍게 지나가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곳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이었다. 이곳은 빌딩 숲에 둘러싸인 도심 속 공원이 아니다. 이 공원은 거대한 자연의 외곽에 사람이 지은 건물이 멀리 드문드문 보이는 곳이다. 공원은 인공의 힘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자연스럽다. 방금 전 런던 도심 속에 있던 내가 언제 광활한 숲 속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잔디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누운 자세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연인도 있고 친구도 있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한가롭고 즐거운 낮시간을 보내고 있다. 로맨틱한 풍경도 있고 다정스러운 가족애도 있다. 나는 잔디가 카페트 같이 깔려 있는 공원에서 맘껏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엿보고 있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휴식은 나의 가족이 자연스럽게 벤치에 앉아 쉬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다음 여행일정 답사의 시간적 압박을 버리고 그들처럼 한 줌의 햇살을 차분히 맞이하기로 했다. 벤치에 앉아서 바라본 버킹엄 궁 바로 앞의 호수와 공원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다리를 편히 쉬며 공원의 녹색을 만끽한다. 마음이 평화로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나는 마치 시골 깊숙이 자리한 수목원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한동안 벤치에 앉아 주변의 사물을 구경했다.

한 소년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며 어울리고 있다.
▲ 비둘기와 소년 한 소년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며 어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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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안에 들어가 난동을 피운 주인공이다.
▲ 공원의 강아지 호수 안에 들어가 난동을 피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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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서 보니 강아지 한 마리가 호수로 뛰어들어 난동을 피우고 있다. 강아지는 호수 위에 한가로이 노는 새들을 보고 시샘을 한 모양이다. 강아지는 한동안 헤엄치며 호수를 휘젓더니 의기양양하게 땅으로 올라왔다. 강아지가 공원 잔디밭 위로 올라오자 공원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 평화로운 공원에는 의외로 다양한 동물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곳은 야생조류 보호구역이어서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 이곳이 새들이 사는 야생의 벌판인지 헷갈릴 정도다. 공원이 아니라 새들의 서식지에 인간들이 구경을 온 것 같다. 새의 종류도 한 종이 아니다. 마치 대형 동물원의 조류관 같이 많은 종의 새들이 있다. 새들은 이 공원이 새들의 지상낙원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떠나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블루 브릿지에서 보면 버킹엄 궁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 버킹엄 궁 블루 브릿지에서 보면 버킹엄 궁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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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를 따라 걸으면서 보니 호수 안에 새들이 정말 많다. 공원 호수 앞 설명판에는 호수에 사는 새들이 그림과 함께 친절히 그려져 있다. 새들 중에는 오리 종류가 가장 많고 펠리컨과 백조, 흑고니, 거위 등 40 여종 약 1000여 마리의 물새가 어울려 있다. 이 새들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자유롭다. 공원의 여러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이곳의 사람들은 전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오리는 사람들이 오가는 호수 옆 길가에 앉아 태연히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가끔 어린 아이들이 오리를 쫓아다니기 때문에 오리는 사람들을 오히려 귀찮아하고 있다. 사람 손을 너무 많이 탄 거위는 사람들이 거위에게 손을 내밀면 손 위에 먹이가 있는지 물끄러미 쳐다본다. 거위는 사람 손은 요령껏 쪼지 않고 먹이만 쏘옥 빼 간다. 세인트제임스 파크는 친근한 동물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이다.

나와 나의 가족이 바라보는 새들은 평화롭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새들을 구경하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동물원에 가도 잘 볼 수 없는 펠리컨이 바로 눈앞에서 돌아다닌다. 펠리컨은 시민들을 위해 일부러 풀어놓은 인기 조류일 것이다. 엄청난 덩치와 멋진 부리를 자랑하는 펠리컨은 만져보고 싶지만 부리에 물릴 것 같아 무섭다.

마치 동화 속 성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 호수와 호스가즈 마치 동화 속 성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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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에는 햇살이 부스러지고 있다. 오늘은 운이 좋게도 정말 날씨 좋은 런던의 하루이다. 런던 도심의 대자연 속, 기분 좋게 상쾌하다. 공원에 가득한 초록 내음이 온 몸에 스며든다. 오후의 긴 햇살이 상큼한 잔디밭 위를 종단하고 있다. 푸른 잔디밭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정화된다. 푸른 하늘과 예쁜 뭉게구름 아래, 밝은 햇살이 공원 내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공원 벤치에서 영국 여행 중 가장 긴 시간의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호수 중심을 가로지르는 블루 브릿지(Blue Bridge)가 있었다. 이 블루 브릿지에서 공원 서쪽의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을 바라본다. 이 다리는 명성대로 버킹엄 궁전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이다. 오전의 해가 하늘에서 궁전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공원의 호수 동쪽 건너편으로는 여왕 친위대의 훈련장소였던 호스 가즈(Horse Guards)가 공원의 배경인 듯 조화를 이룬다. 동화나라의 성 같은 외관이 마치 호수의 물 위에 떠 있는 듯 하다. 호수 뒤로는 런던 아이(London Eye)도 보인다. 템즈 강변에 뜬금없이 솟아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런던 아이는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가장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호스 가즈의 건축물과 현대적인 런던아이의 전망이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

다이애나 비는 아직도 영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 다이애나 비 기념판 다이애나 비는 아직도 영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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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에는 현재 영국 왕실의 스토리도 녹아들어 있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산책로 바닥 곳곳에 고 다이애나 비가 이 공원을 산책했음을 알려주는 청동 기념비가 박혀 있다. 기념비의 화살표는 그녀가 산책했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 기념판은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s)에서부터 하이드 파크(Hyde Park), 버킹엄 궁전, 세인트 제임스 파크까지 11km의 길에 걸쳐 그녀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들을 연결하고 있다.

영국인들이 여전히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고 다이애나 비는 아직도 공원에 남아 있다. 이 기념판을 보고 있자니 안타깝게 죽어간 그녀의 짧은 삶에 잠시 숙연함이 느껴진다. 찰스 황태자가 가장 사랑하는 공원도 이 세인트 제임스 파크라고 하는데 모두 한 공원을 사랑했던 부부가 이 공원 밖에서는 헤어지는 운명을 겪었다.

공원을 다니는 내내 신영이의 관심 속에 들어온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공원 안에는 청솔모를 닮은 다람쥐가 나무와 나무 사이, 사람과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미 사람들과 친해져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람쥐는 사람들이 먹이를 내밀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깊은 산속에서 사람을 보고 도망가는 다람쥐만을 봐 온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다.

관광객이 주는 먹이를 다람쥐가 받아먹고 있다.
▲ 관광객과 다람쥐 관광객이 주는 먹이를 다람쥐가 받아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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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거리감 있는 새보다는 다람쥐가 귀엽기 때문에 다람쥐는 많은 관광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을 보면 항상 이 다람쥐가 관광객들에게서 땅콩이나 호두를 받아먹고 있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여자친구인 아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딸과 함께 손을 꼭 잡고 공원을 걸었다. 차분하게 공원을 서성거리며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매력 속에 빠져든다. 우리는 소풍 온 것처럼 런던에서의 여유를 즐겼다.

공원에서 다람쥐는 가장 인기를 끄는 동물이다.
▲ 공원의 다람쥐 공원에서 다람쥐는 가장 인기를 끄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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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후 신영이에게 런던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였느냐고 물어보았다. 신영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그토록 가보고 싶어 했던 대영박물관도 아니었고 뮤지컬 극장도 아니었다. 신영이가 런던에서 가장 사랑했던 곳은 바로 이 세인트 제임스 파크였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영국여행, #런던, #세인트 제임스 파크, #공원, #다람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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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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