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30분 기상, 부랴부랴 짐정리를 하고 아디스아바바를 빠져나왔다. 훌라 사업장 결연아동을 만나러 아와싸 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아디스아바바 외곽은 뿌연 모래먼지로 뒤덮였고, 교외의 산들은 내내 민둥산들. 자연스런 현상인지, 사람들이 훼손해놓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황토빛 산들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두 시간여를 달리니 호수가 나온다. 가나 볼타호수와는 또 다른 풍경. 가나, 볼타호수! 특히 우기철에는 투명하고 청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숲속과 야트막한 산들. 산들은 온통 열대수림으로 뒤덮여 있고 그 산들 뒤로 광활한 볼타호수가 위용을 펼친다. 판테아크와에 머물던 시절 아다코페 초등학교 가는 길, 차를 타고 한 다섯시간은 가야했는데(거북이 걸음으로 운전을 하던 내 속도로) 한참을 가다 나오는 마지막 비탈 언덕 꼭대기에서 처음 바라보던 볼타호수를 본 그 날,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비포장 도로를 한참을 달리고, 건기의 푸석거리는 먼지를 한 바가지 뒤집어 쓴 이후 마주하는 그 볼타호수의 광대한 모습. 그 이 후 몇 번을 그 언덕으로 가서 점심 도시락을 먹던 기억이 새롭다. 볼타호수의 광대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 에티오피아 남부 아와싸 주. 누렇게 마른 풀들이 가득한 초원 위를 한참을 달린 후에 나오는 푸릇푸릇한 늪지대의 수풀과 그 너머의 아담한 호수는 또 전혀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호숫가에 들러 잠시 쥬스로 갈증을 채웠다. 마침 새들도 호수 속 나무 버팀목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평화 그 자체이다. 에티오피아가 사막으로만 뒤덮인 황량한 땅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가나에서부터 에티오피아에, 서아프리카에서 동아프리카까지 가급적 아름다운 아프리카의 모습들을 함께 소개할 수 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딸기밭 딸기, 최고의 아침식사아디스아바바에서 아와싸 주까지는 약 4시간 반 가량이 걸렸다. 가는 도중에 딸기 농장이 나왔다. 에티오피아의 주 수입원은 농산품 수출이라고 하는데, 과연 실감이 난다. 우선 첫날 비행기에서 바라다본 수도 근처의 풍경에 놀랐다. 구획이 매우 잘 정리된 대규모 농장들이 수도를 온통 둘러싸고 있었다. 농장규모로 보아서는 매우 현대화된 농법이 발달했을 것으로 짐작케 했다.
그리고 오늘 아와싸로 내려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발견한 딸기농장. 딸기밭에는 스프링쿨러가 설치되어 있었고, 마침 시원스런 물줄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어서, 밭은 습기를 듬뿍 머금고 있었다. 딸기농장 앞에서는 바로 수확한 딸기를 즉석에서 팔고 있었다. 한 뼘 정도 되는 상자에 가득 담으면 20비르, 약 1500원 정도 되겠다. 아침으로 딸기를 먹는 신선놀음을 하며 줄곧 내달리니 오후 이른 시간에 아와싸 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그리고 그 너머의 초원. 이는 가나 최북부 지방과 매우 비슷한 풍경이다. 초원 위에 군데 군데 서있는 산들이 죄다 민둥산인 것이 흠이었다. 사막화가 여기서도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고지대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인지 모르겠지만, 산 가득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가득 찼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
아와싸 주에는 월드비전 P.O(programme office)가 있다. 가나에서는 B.O.(base office)라 칭하는데, 해당 주에 속한 여러 개의 지역개발사업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사무소, 그러니까 본부와 지부의 중간 격에 속한다. 60여개의 지역개발사무소가 있고 7개의 PO가 있으니 한 PO에서 여남은 조금 못 되는 지역개발사무소를 맡고 있나 보다.
아와싸 주 PO 직원들과 전체 일정에 대해 논의를 했다. 아동을 만나러 가는 길은, 김연수 후원자와 PO 및 지역개발사무소 직원이 동행하기로 하고, 나와 양선생은 목요일 시세이, 레마 선생님과 진행할 회의를 위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결연아동과의 만남, 김연수 후원자김연수 후원자, 2009년 내가 가나에 입국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주가나 한국대사관 행정과장으로 부임을 하였다. 연수 과장은 가나 입국 훨씬 전인 2007년부터 월드비전의 후원자로 에티오피아 아동을 결연하고 있었다.
월드비전과 같은 개발 NGO에서 일하는 것을 비전으로 가진 연수과장은 지난 3년 대사관에 근무하며 다양한 현장경험도 익히고 틈틈이 대학원 준비도 하여, 이번에 맨체스터, 서섹스 등의 대학원에 입학허가를 받게 되어 한국으로 귀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결연아동을 잠시 만나러 가기 위해 에티오피아를에 들렀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아와싸 까지 고속도로를 내리 달려서 5시간, 아와싸에서 훌라 지역개발사무소까지 두시간 반 그리고 지역개발사무소에서 아동이 사는 마을로 가는 진입로까지 산 두 개를 넘으면 한 시간 그리고 그곳에서 내려서 도보로 산 하나를 다시 넘어 40분을 걸어가면 나오는 마을. 그곳에 결연아동이 살고 있었다.
"에덴 동산에 갔다 왔어요."연수 과장이 돌아와서 내뱉은 첫 마디다. 연수과장과 월드비전 직원들 그리고 차량까지 온통 황토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여기도 지금은 건기가 한창이라, 도로가 매우 푸석푸석하다.
"여느 아프리카 시골마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짚으로 이은 움막 같은 집. 그런 집들이 언덕 사이로 난 계곡을 따라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고, 계곡 사이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외국인을 처음 보는 듯 했고, 결연아동도 처음에는 어색해 했는데 좀 지나니까 바로 친해졌죠. 아마릭 어로 인사하니까 다들 되게 놀라더라구요."1시간여나 되었을까?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시간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연수 과장은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하였다. 며칠 사이에 아마릭어로 기본적인 인사와 소개를 배웠다. 그리고 가나에서 가져온 선물에 더해서, 지난 주말 시내를 돌아다니며 좋다 하는 서점에서 에티오피아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을 골랐다.
김연수 과장, 사실 그는 월드비전의 '비판적 지지자'다. 지역개발사업에 전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아동결연사업과 지역개발사업과의 연계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인 의견을 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나에 있을 때부터 휴가를 내서라도 내가 있던 사업장에 찾아와서 아이들을 만나려하고, 정성스레 선물을 준비하고 편지를 쓰는 모습, 아이들이 이해하는 현지어를 열심을 다해 익히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후원자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많이 부끄러워졌다. 개발학을 공부하러 곧 떠날 그의 화려한 복귀를 열렬히 응원하련다. 언젠가 꼭 어느 사업현장에서인가 연수 과장을 만날 것이란 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