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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차밭길. 봇재로 오르는 길에서 본 풍경
 보성 차밭길. 봇재로 오르는 길에서 본 풍경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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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비가 내린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차밭이 생각이 났다. 보성 차밭은 여러 번 다녀왔다. 매번 차로 둘러보고 오다보니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 걸어볼까? 율포해변에서 봇재까지는 도로가 있어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걸을 수 있겠다.

걷기 시작점인 보성 회천면에 도착하니 점심 무렵이 되었다. 비는 그칠 모양이다. 비가 잦아들더니 이내 흩뿌린다. 이런 날은 칼국수나 수제비가 좋은데….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 반가운 간판을 보았다. 녹차수제비. 녹차해수탕 옆에 낮은 한옥으로 된 식당이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정말 좋다.

녹차해수탕 근처 토담이라는 식당에서 먹은 녹차수제비와 녹차동동주
 녹차해수탕 근처 토담이라는 식당에서 먹은 녹차수제비와 녹차동동주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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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안은 서까래가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천장을 터서 답답하지 않다. 녹차수제비를 시키고 녹차동동주도 시켰다. 동동주 맛이 깔끔하다. 연한 푸른빛이 술맛을 더한다. 술은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다르다. 녹차수제비는 비가 오는 날과 잘 어울린다. 녹차부침개까지 시켜본다.

비가 멈췄다. 율포해변으로 나왔다. 해변 모래가 부드럽다. 밟히는 촉감이 좋다. 비가 그친 바다는 은은한 빛으로 산란한다. 다정한 연인들이 해변을 거닐고, 조개를 캐는 사람들이 열심히 모래를 헤집고 있다. 해변과 바다가 완만하여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해변을 걸어서 도로로 나온다. 거리에는 횟집들이 즐비하다.

비가 온 후 율포해변 풍경
 비가 온 후 율포해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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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차밭길을 따라 도란도란 걸어가는 길
 보성 차밭길을 따라 도란도란 걸어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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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따라 걸으려는데 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다향길'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걷는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왔는데 그곳에는 이미 길을 열어 놓았다. 나중에 확인하니 '서편제 보성소리 득음길'이라고 총4개 코스에 34㎞길을 만들어 놓았단다. 편백숲길, 숲속산책길, 생태하천길, 차향소리길.

바닷가를 보면서 걷다가 모퉁이에서 농로로 들어섰다. 보성군에서 조성한 길에서 벗어나지만 내가 처음 계획한 길을 걷고 싶다. 논밭을 가로지르며 구불구불 앞장서고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간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파가 자라고 있다. 푸른빛으로 채운 논들은 색을 달리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화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파를 심어 놓았다. 억새와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준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파를 심어 놓았다. 억새와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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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영화 속에 나올 것 같이 정겨운 길
 추억의 영화 속에 나올 것 같이 정겨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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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경사진 풀밭에 야생 갓이 보랏빛으로 싱싱하다. 저녁 반찬으로 먹으려고 갓 잎을 몇 장 땄다. 시골길을 걷다보면 조심스럽다. 절대 오해 살 일을 해서 안 된다. 누가 봐도 재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농작물은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길을 걷다보면 가끔 만나는 시골 분들은 배낭을 멘 사람을 보고 경계의 눈빛을 보낸다.

산비탈로 올라가는 길은 바람이 세차게 분다. 뒤를 돌아보면 바다와 어울린 들판풍경이 시원하면서도 정겹다. 구불구불 재를 넘어간다. 이런 길을 오를 때면 오래된 영화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추억의 영화 한 장면에는 언덕을 넘으면 달려가고픈 집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 마루를 넘어서니 마을이 나온다.

마을을 내려서서 반듯한 논 사이를 걸어간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정응민 생가가 있음을 알리는 안내판을 만난다. 보성은 소리의 고장이다. 이청준의 소설 <서편제>의 무대도 보성이다. 서편제는 섬진강 서편지역에서 부르는 판소리를 일컫는다. 서편제 중에서도 보성지역은 강산제로 다시 분류된다.

보성소리의 명가 정응민 생가
 보성소리의 명가 정응민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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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 순창에서 태어나 보성에 자리를 잡은 비조 박유전이 심청가에 애절한 가락을 보다 많이 가미하고, 슬픈 대목을 더욱 슬프고 처절하게 다듬어서 전주대사습에 나가 장원을 했다. 대원군은 박유전의 소리에 탄복해서 "네가 제일 강산이다"라며 강산이라는 호를 내려줬다. 1896년 보성 도강 마을에서 태어난 송계 정응민은 강산제에 동편제 소리가 어우러지고 중고제 소리까지 조화를 이룬 이른바 보성소리를 만들었다.

정응민 생가로 들어가는 문은 '보성소리명가'라는 현판을 달았다. 생가는 문이 모두 닫혀있어 조금 아쉽다. 방 구조도 보고, 생전에 부르던 판소리라도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뒤뜰로 올라서면 정응민 묘가 있다. 논들이 내려다보이고 멀리 바다도 보인다.

도로는 한산하다. 반대편에 도로가 있어 차들은 거의 다니지 않는다. 주변 경치를 보면서 두리번두리번 걷는다. 커다란 저수지를 만난다. 시골 저수지 치고는 크다. 영천제다. 저수지 차가운 물빛을 보면서 걸어간다. 하늘거리는 억새는 저수지와 잘 어울린다.

영천마을에는 득음정 가는 길이 있다. 굳이 가지 않는다. 그냥 쉬엄쉬엄 걸어가는 이 길이 너무 좋다. 모퉁이를 몇 번 돌아서니 길 가로 차밭 풍경이 펼쳐진다. 차밭을 본 느낌. 정갈하다. 잘 다듬어 놓았다. 선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차밭 풍경
 아름다운 차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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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선의 예술 보성 차밭
 아름다운 선의 예술 보성 차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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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아름다운 보성 차밭 풍경. 노란 유자와 잘 어울린다.
 선이 아름다운 보성 차밭 풍경. 노란 유자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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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차밭은 선의 예술이다. 반듯하고 규칙적인 것 같지만 선은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차밭이 만들어 놓은 선은 자연스럽게 능선을 따라 구부러진다. 차밭이 만들어낸 선은 물길을 만나면 건너지 못한다. 규칙적인 도형 같지만 자연스러운 지형을 따라 그리다보니 어떤 곳에서는 어지럽고, 굵어지기도 한다. 자투리 땅에는 대충 무더기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차꽃이 하얗게 피었다. 깨끗하다.

길은 봇재를 향해 오르막이다. 차밭 풍경도 어수선해졌다. 다듬어 놓지 않은 차밭은 눈에 익지 않았는지 밉게 보인다. 벌써 인위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차밭에 대한 고정관념이 자리를 잡았다. 선암사에서 본 야생차밭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었는데….

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한참을 올라가니 봇재에 다다른다. 봇재 전망대에서 걸어온 길을 내려다본다. 율포해변에서 봇재까지 걸었다. 그냥 내가 걷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그곳에는 친절하게도 길을 만들어서 걸어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걸으려는 길을 따라 걸었다.

가는 길과 주변 볼거리
'보성차밭길'은 임의로 붙인 이름이며, 보성군에서는 율포해변에서 제2대한다원을 거쳐 봇재까지 가는 16.5km 다향길을 조성하였다.

* 차밭을 따라 걸어간 길 : 9㎞ 정도/3시간 소요
율포해변-4㎞-정응민생가(도강마을)-2.2㎞-영천마을-2.8㎞-봇재

보성 차밭길 안내지도
 보성 차밭길 안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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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편 : 군내버스 운항시간은 10분 전후로 차이가 있다.

차밭과 율포해변 가는 보성 군내버스 시간표
 차밭과 율포해변 가는 보성 군내버스 시간표
ⓒ 보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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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볼거리
보성녹차밭(대한다원) :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150만 평 규모의 차밭으로 조성되어있다.(입장료 3000원)
한국차박물관 : 차에 대한 풍부한 컨텐츠를 담은 차 전문 박물관이다.
율포해변 :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고운 은빛 모래와 해송의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변이다.
율포해수녹차탕 : 지하 120m 암반층에서 끌어올린 해수가 보성 녹차와 만나 지친 몸을 달래주는 전국 유일의 녹차해수탕이다.



태그:#보성 차밭, #율포 해변, #봇재, #녹차밭, #정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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