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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쳤던 버섯속에서도 버섯살이 곤충들의 사생활, 짝짓기를 하고, 알을 까며 살아가는 버섯살이 곤충들의 일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버섯속에서도 버섯살이 곤충들의 사생활, 짝짓기를 하고, 알을 까며 살아가는 버섯살이 곤충들의 일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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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즉에 알았다면, 산길을 오가며 보았던 그 숱한 버섯들 속에 이토록 진지한 사랑, 꿈틀대듯 몸부림치는 생명, 연애소설보다도 더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줄줄이 담겨 있는 줄 알았다면, 가던 길 잠시 멈춰 서서 눈길 좀 줄 걸 그랬습니다.

허탕을 치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감각 곤두세우고 두런두런 살피다보면 사랑을 구하는 구애의 세레나데도 들리고, 사랑을 나누는 격정적인 몸짓도 볼 수 있었을 건데 하는 아쉬움이 커지는 순간입니다. 

뭔가를 엿본다는 건 말초신경이 짜릿할 만큼 재미있는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엎드리고, 때로는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들여다봐야 할 때도 있겠지만 암수가 뒤엉키는 순간은 원초적 본능을 발현시키고, 산란하고 있는 장면을 지켜보는 순간은 모성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불법사찰에 덴 사람들에겐 뭔가를 엿본다고 하는 말이 도청이나 사찰쯤으로 연상될지 모르지만 여기서 말하는 엿봄은 곤충의 세계, 곤충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관찰과 기록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여성 생물학 박사가 은밀하게 들여다본,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

<버섯살이 곤충들의 사생활> 표지 사진
 <버섯살이 곤충들의 사생활> 표지 사진
ⓒ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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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조금은 엉뚱하게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정부희 박사의 글과 사진을 지성사에서 출판한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은 버섯을 삶의 토대로 하여 살아가고 있는 버섯살이 곤충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연구기록, 생태계 보고서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신고가 들어가 꼼짝없이 관리소 직원한테 붙잡혔지요. 그 아까운 버섯은 다 빼앗기고, 법대로 처벌을 하겠다며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리랍니다. 그렇게 2시간 가까이 잡혀 있었습니다.

"국내에 달랑 한 사람밖에 없는 버섯곤충 연구자다, 이 버섯 속에 사는 곤충이 누군지를 알아내면 그게 바로 세계 기록이 된다. 이제 우리도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 자연 자원을 찾아낼 때가 되었다"며 선처를 부탁했지요, 정말 공손하게…. 하지만 돌아오는 건 범죄자 취급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너무 서러워 1시간 내내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펑펑 울고 또 울었습니다. - 10쪽, '저자의 글', '버섯살이 곤충과 평생의 동행을 꿈꾸다' 중

정부희 박사는 '저자의 글'을 통해서 스스로를 '국내에 달랑 한 사람밖에 없는 버섯곤충 연구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버섯곤충을 연구하는 길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습니다. 빈약한 연구자료, 척박한 연구 풍토, 곤충에 대한 빈곤한 이해, 모자라는 여건, 궁핍한 시간,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는 게 한 발 앞서서 가는 연구자들이 극복해야만 하는 유·무형의 장벽이자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맞닥뜨리는 현실을 극복하며 일군 연구결과로 맺어낸 저자의 글과 사진은 재미있고 진지합니다. 한편의 에세이 같기도 하고, 시공을 초월해가며 버섯살이 곤충들만을 닥닥 긁어모아 꾸린 화보집 같기도 합니다.

어떤 곤충의 사생활을 소개하는 내용은 순정소설처럼 부드럽고, 어떤 광경을 묘사하는 글귀는 서정시를 읊조리는 문학소녀의 청순함이 연상되는 문체입니다. 짝짓기하는 곤충을 슬쩍 건드려보는 마음은 곤충들의 연애를 방해하는 훼방꾼의 마음, 장난꾸러기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곤충들의 사생활이 마이크로필름 영상처럼 가지런하게 담겨

훔쳐보듯이 다가가, 속삭이듯이 관찰한 이야기 속엔 버섯살이 곤충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들 나름대로 겪거나 극복해야만 하는 그들만의 생로병사가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영상처럼 가지런하게 담겼습니다.

멋진주거저리와의 첫 만남은 어느 늦은 봄날, 삼색도장버섯을 뒤적이다 영화처럼 낯선 곳에서 이렇게 우연히 이루어졌습니다. 그 벅차고 설레는 기분은 절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마치 첫사랑의 설렘처럼…. - 44쪽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녀석의 사생활을 어느 정도 알아냈습니다. 관찰을 끝낸 뒤에는 녀석을 다시 숲 속으로 돌려보냅니다. 정이 담뿍 들었지만 녀석들이 살 곳은 숲이니까요. - 67쪽

먹을 수 있는 버섯, 먹어서는 안 되는 독버섯 정도로만 생각했던 버섯들이, 어느 버섯살이 곤충에겐 둥지를 틀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되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산란의 공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사진과 글로 보여줍니다.

짝짓기를 하고 있는 초파리 -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 297쪽
 짝짓기를 하고 있는 초파리 -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 297쪽
ⓒ 정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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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은 버섯살이 곤충들이 온몸 부르르 떨어가며 짝짓기를 하는 사랑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먹을 것을 취할 수 있는 식량창고가 되기도 합니다. 오순도순 둘러앉으면 밥상이 되고, 끼리끼리 모이면 그들만이 누리는 파티 장으로 역할 하는 게 버섯과 버섯살이 곤충과의 관계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는 그것, 몰라서, 무심해서, 귀찮아서 그냥 지나치기 일쑤인 버섯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버섯살이 곤충들 역시 인간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사랑하고, 싸우고, 자식 키우고, 짝짓기 하고….

조개껍질버섯이 차려준 공짜 버섯밥을 먹으면서, 멋있는 짝과 눈이 맞으면 즉석에서 짝짓기를 합니다. 짝짓기는 여느 버섯벌레류처럼 수컷이 암컷 등 위에 올라탑니다. 짝짓기는 꽤 오래하는 편입니다. 누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거의 움직이지 않고 수컷이 암컷을 끌어안은 채 사랑을 나눕니다. 왜 안 그러겠어요? 지금 아니면 이제 다시는 못 볼 짝꿍인데. 수컷은 짝짓기가 끝나면 시름시름 힘이 빠져 죽고, 암컷도 있는 힘껏 알을 낳고는 기운이 다 빠지면 죽어갈 테니까요. -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 145쪽

산과 들, 강과 바다, 숲과 개울, 연구실과 집을 가리지 않는 탐사,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그리고 밤낮을 구분하지 않는 채집과 관찰, 비교하고 검토하는 연구와 기록으로 맺은 산물이라서 그런지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을 통해서 보는 곤충의 세계는 더 없이 진지합니다.

여성 생물학자의 꿈으로 엮어낸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

짝짓기를 하고 있는 줄무당거저리 -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 130쪽
 짝짓기를 하고 있는 줄무당거저리 -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 130쪽
ⓒ 정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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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을 하는 장면에서는 삼할미, 순산과 산모의 건강을 걱정하며 산후조리를 돌보고 있는 친정어머니의 모습으로 연상되고, 짝짓기 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순간은 첫 순정을 바치던 소녀처럼 덩달아 얼굴까지 붉어지는 민망한 모습으로 연상됩니다.

나무에 사는 버섯을 먹는 곤충 11종(류), 땅에 나는 버섯을 먹는 곤충 11종(류)들의 세계, 그들이 살아가는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다보면 버섯뿐만이 아니라 곤충들의 생태계도 알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공간, 버섯 속에 사는 곤충들, 더구나 수명이 짧은 버섯에 오는 곤충의 감춰진 사생활을 엿보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녀석들은 좀 더 많이 관찰하고 연구해 녀석들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할 뿐입니다. - 312쪽

잠꼬대 같은 소리가 될 게 뻔하지만 산길을 걷다 만나는 버섯에서 버섯살이 곤충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필자에게도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눈앞이 침침해지는 노안을 실감하면서도 버섯살이 곤충에 대한 관심만은 아직도 청춘인 듯합니다. 만만하지 않은 일을 이렇듯 만만하게 결실로 이룬 저자의 꿈, 한국의 버섯살이 곤충을 정리하는 일이 제2, 제3의 책으로 주렁주렁한 결실로 맺어지기를 고대하며 기원할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 글과 사진 정부희, 지성사 펴냄, 2012년 10월, 3만 원



버섯살이 곤충의 사생활

정부희 지음, 지성사(2012)


태그:#버설살이 곤충의 사생활, #정부희, #지성사, #버섯, #짝찟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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