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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당신의 진정성을 못믿었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한국을 떠나올 때, 나는 많은 것을 실패한 사람이었다. 아이의 교육도, 하던 사업도 모두 실패하고 4년 전 네덜란드로 와서 살게 되었다.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늘 중얼거렸던 말 가운데 하나가 '내가 안철수도 아닌데'였다. 그는 실패하지 않고서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성공한 참 드문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안철수 후보가 정치를 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무척 안타까웠다. 그냥 있는 자리로도 대한민국에서 많은 부분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정치판에서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을 수모를 어떻게 감당하며 헤쳐갈까라는 고민이 제일 컸다. 말을 아끼는 그 사람의 행보를 유심히 보면서 위태위태할 때마다, '하지말지, 하지말지'라고 되뇌며 속마음은 더욱 쓰렸다. 그러나 점점 그의 행보가 나에게 희망의 바람을 일으켰다. '대한민국에도 거대한 정치의 변화 바람이 불까?'라는 기대가 커졌다.

안철수 후보가 대선 후보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였을 때, 네덜란드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한국 정치 기사로 안철수 후보에 대한 내용을 실었다.

네덜란드 일간지 NRC에 실렸던 기사
 네덜란드 일간지 NRC에 실렸던 기사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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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2월에 있을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아주 흥미진진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의 한 소프트웨어 기업가이자 대학 교수인 안철수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거의 1년동안 그의 대통령 선거 참여는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안철수는 세계에서 12번째로 꼽히는 경제 국가인 한국에서 매우 인기가 높다. 안철수는 보수적 성향의 후보인 박근혜의 가장 큰 도전자가 될 것이다. 그는 의사였던 직업을 그만두고 1995년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생산에 초점을 맞춘 안랩 연구소을 설립하여 기업가의 길을 걸었다. 안철수는 정치적 배경은 전혀 없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공개 토론에 참가하여 강력한복지 국가와 기업의 규칙에 대한 자신의 견해 즉, 대기업의 직원들에 대한 착취 행위를 골자로 강력한 기업의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안철수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진행되었던 한국 전쟁이 현재도 계속 중이라는 점을 들어 북한과의 관계도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 한국의 18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안철수 후보는 보수적 성향의 박근혜 후보에게 가장 심각한 경쟁 후보이다. 안철수 후보는 서울대학교의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역임했으며 의사, 교수,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의 기업가 등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지닌 꿈의 직업을 고루 가졌던 사람이다. 이 점은 안철수가 한국에서 매우 인기가 높을 수 있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 일간지 NRC에 실렸던 기사 전문

한국 정치에 관심조차 없는 이 곳에서도 한국의 안철수가 대선 후보로 나온다는 사실은 해외 기사감으로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그가 대선을 향해 나아가는 행보는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감에 부풀게 했고 새로운 정치변화와 혁신에 등불이 되어 국민들 사이로 번져나갔다. 그러한 기대와 희망이 왜 21세기를 살아가는 민주국가인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져야 하는 것인지가 의문인 가운데서도  국민들과 더불어 안철수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의 한 고비 한 고비를 넘고 있었다.

파란 많은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 후보, 한 편으로는 수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새로운 정치 개혁, 정치 문화의 새바람을 일으킨 안철수 후보. 박원순 시장에게 보였던 그 배려를 대선에서는 보여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의 상황과는 너무나 다른 대선 후보의 자리, 수많은 그의 지지자들이 곁에서 함께 밤을 새웠을 것이고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정치 시대를 준비해왔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제 안철수라는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닌 상황이 된 것임이 분명하기에.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할까?  정권 교체를 원하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다른 견해들로 티격태격거리고 각 자들의 주장을 이야기하며 트윗과 페이스북은 소란스러웠다. 그렇게 토론하고 이견을 좁히면서 민주주의는 발달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참 소중한 시간들이다.

좋은 시대를 타고난 탓일까? 후보 단일화를 위한 TV 토론을 해외에서도 볼 수 있는 행운을 맞았다. 오마이TV를 통해  한국의 생방송을 가감없이 볼 수 있었고 더불어 함께 시청하는 분들과 의견을 주고 받을 수도 있었다. 두 후보의 토론을 보면서 솔직히 안철수 후보가 정당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책을 만드는 과정도 그럴 것이고 경험과 역사를 한꺼번에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내기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생각은 다를 수 있고 정책을 만들어내는 과정들도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간 역사 속에서 뿌리가 내려있는 거대한 힘을 단 시간에 단칼에 베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증명되었다.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이번은 무리인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인가?' 토론 이후, 국민들과 약속했던  단일 후보를 내겠다던 후보 등록일이 가까이 오자 더욱 조마심이 났다. 너무나 익숙해져있던 풍경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된다. 안 된다. 내가 낫다. 네가 낫다. 내가 하면 더 잘해. 나 아니면 안돼...

단일화가 늦어지자 트윗의 타임라인은 전쟁터가 되었다.그야말로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의 비수같은 말들이 오갔다. 페이스북 안철수 캠프에 올린 문장이 나를 화나게 했다. 안 되는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아집같아 보였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이 식었다.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에 답답하고 또 속은 것 같아 억울했다. 안 되는 것을 할 수는 없다는 말에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페이스북을 통해 안철수 캠프에 화풀이를 했다.

"안 되는 것 되게 하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할 수 없다고 포기하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되나요?  그럼 국민들에게 약속은 무엇 때문에 하셨나요? 약속을 하지 않았으면 기대도 안 할텐데라고…"

아침에 깨서 트윗을 보니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고 다짐했던 사람들끼리 패싸움을 여전히 하고 있었다.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트윗에 올라오는 안철수 후보를 옹호하는 글들도 다 밉게 보였다. 그리고 그의 진성성을 의심했다. 기다리다 지쳐서7시 경에 내 트윗에 이렇게 썼다.

'오늘 여러가지 의견과 기사와 그 간의 진행 상황을 쭉 다시 훑어 보면서 든 생각,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 진정한 정권 교체의 열망 하나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고 최종 정리. 그래도 믿고 싶었는데...'

그런데 8시 20분, 그는 다시 한번 내 심장을 멎게 했다.

"백의 종군, 대선 후보 사퇴"

인내하지 못한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한국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을까? 안철수 후보의 눈물 때문이었을까? 내 눈에도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이렇게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으로 이렇게 긴 반성문을 쓴다.

사람은 늘 자신이 봤고 생각했고 행했던 일에 대한 고정 관념이 있다. 그 관념들은 쉽게 깨질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은 경험치에 의존하고 그 경험이 맞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의 관념이 안철수라는 한 사람으로 인해 무참하게 깨어졌다.

내려놓기, 비워내기가 사람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도 반드시 국민을 위한 큰 역사를 쓸 사람이라는 것을 가슴 속에 넣고 내 머리 속 한 켠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길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박수칠 때 떠나라고. 그러나 그는 박수를 받으며 떠나지 않고 정치인으로 남을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간에 쓰리게 우리 마음 속에 남은 정치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들을 하나하나 남김없이 무너뜨리는 참된 정치인으로 자리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이제 안철수 박사, 안철수 대표, 안철수 교수, 안철수 대통령 후보가 아닌 내가 가진 선입견과 편견을 깨 준 내 인생의 한 스승으로 기억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안철수 선생님.


태그:#안철수, #후보사퇴, #네덜란드 안철수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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