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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1970년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조건 진정서'에 전태일열사가 써놓은 글)
"세상은 비겁해, 나쁜건 넌데, 아픈건 나야."(2011년 정리해고당한 KEC 조합원이 트위터에 남긴 글)

전태일 열사의 친구이자 청계피복노조 전 지부장인 임현재 씨가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거리에서 부당한 정리해고로 거리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 해고 철회를 호소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전태일 열사의 친구이자 청계피복노조 전 지부장인 임현재 씨가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거리에서 부당한 정리해고로 거리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 해고 철회를 호소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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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열사 친구이자 청계피복노조 전 지부장 임현재씨가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거리에서 부당한 정리해고로 거리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 해고 철회를 호소 하고 있다.
 전태일열사 친구이자 청계피복노조 전 지부장 임현재씨가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거리에서 부당한 정리해고로 거리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 해고 철회를 호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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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의 친구이자 청계피복노조 전 위원장인 임현재씨가 오늘날 부당한 정리해고로 거리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들을 만났다.

민주노총 소속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과 1970년대 노동운동가가 지난 28일 정오부터 약 2시간 동안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 집결해 "40년이 흘러도 노동자의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임현재씨는 정리해고로 길거리에 내몰린 후배 노동자들과 함께 섰다.

"단지 일만 열심히 한 노동자들을 자신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길거리로 내몰았습니다. 부당한 정리해고로 거리에 내몰린 우리를 복직시키라며 외치는 노동자들입니다.

70년 전태일 동지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항거했지만, 오늘의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는 사용주가 시키는 대로 일만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해진 제도 속에서 보호 받으며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장들은 노동자의 권리와 권익을 인정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수족처럼 일하길 강요합니다. 노예가 되라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니까 이렇게 길거리로 내몰려 이 엄동설한에 이렇게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암담한 현실입니다.

대통령선거철이라고 모든 대선후보들이 노동자의 복지를 증진하고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합니다. 대법판결을 거부하고 복직시키지 않는 이들에게 정부는 아무 말도 못합니다.

노동자들이 고공투쟁을 하고 비바람 속에 길거리에서 투쟁해야만 하는 현실입니다. 시민여러분,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져야 참된 선진국이며 우리 경제가 살아납니다. 길거리에서 싸우는 이분들을 위해 격려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하루빨리 이들이 현장으로 돌아가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저도 함께 했습니다.

노동자는 공장에서 일하고 사용자는 분배를 공정하게 잘 해야 합니다. 대기업들은 수십억씩 분식회계 등 방법으로 자신들 주머니만 채울 뿐 열심히 일한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 오직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으로 이를 극복해야 합니다."

이어 오늘날 정리해고로 내몰린 후배 노동자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금속노조 시그네틱스분회 김은정 조직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시그네틱스에 입사한지 24년이 됐지만 그동안 두 번 해고를 당해 일한 기간은 15년 정도입니다. 2001년 공장 이전을 빌미로 징계해고당했고, 6년 간 싸워 2007년 대법판결에 따라 복직했습니다.

회사는 영풍그룹 내 유일하게 노조가 있다는 이유로 파주 본사에 복직시키지 않고 안산에 가건물을 지어 조합원들을 일하게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복직했다는 기쁨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회사가 관리자들을 시켜 우리를 많이 괴롭히고 핍박했지만 열심히 일했습니다. 서울에 주거지를 둔 노동자가 많았고 안산까지 통근버스를 타야 했지만 힘들어도 즐겁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우리 시그네틱스는 반도체조립 생산공장인데 경력도 많고 모두 숙련된 노동자들입니다.

2011년 7월 두 번째로 해고당했습니다. 회사는 거대재벌인 영풍그룹입니다. 그 회사가 경영상 어렵다는 이유로 우리를 해고했습니다. 해고 3~4개월 전 시그네틱스가 주식에 상장됐습니다. 적자가 아니고 잘나간다는 것 아닙니까?

두 번째로 해고돼서 오늘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길거리에 내몰린지 1년 6개월이 다 돼 갑니다. 우리는 해고가 억울하다고 법으로 해결하자며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열흘 전 민사판결 1심에서 시그네틱스 부당해고이니 복직시키고 그동안 밀린 임금을 주라고 판결했습니다. 열심히 싸운 결과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 선전전을 하느라 시민들이 불편하시겠지만 열심히 투쟁하다보면 언젠가 꼭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노동자들은 우리나라를 이끌어가고 성장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일 없이 온국민이 모두 같이 잘사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민주노총 소속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과 70년대 노동운동가가 해고 철회를 호소하며 선전활동을 하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민주노총 소속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과 70년대 노동운동가가 해고 철회를 호소하며 선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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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함께 있던 금속노조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합원도 마이크를 잡았다.

"부산 풍산마이크로텍에서 일하다 정리해고된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부산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여러번 선전전을 했으니 시민여러분께서도 어렴풋이 아실 겁니다.

풍산마이크로텍 정리해고의 본질은 사원들을 기만하고 몰래 회사를 매각한 후 해고한 것입니다. 2010년 사장이 내려와 절대 매각은 없다고 말해 우리를 안심시킨 후 2개월 후 전 사원을 휴가보내놓고 야밤에 매각을 발표했습니다. 매각 후 우리는 이것이 단순 지분 매각이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새로 온 경영진은 정상적인 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풍산금속 부지개발로 인한 이윤과 탐욕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는 1년 간 투쟁하면서 풍산마이크로텍 정리해고 사태를 국민에게 알려왔습니다. 부디 마음으로나마 우리 투쟁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십시오."

이어 포레시아 해고노동자도 말을 이었다.

"수년간 우리 억울한 정리해고를 호소하며 싸워왔습니다. 2008년 회사는 경기도 화성 외국인투자단지로 이사를 했습니다. 외투 단지는 각종 세금이 면제되고 땅값과 지방세가 무료입니다.

회사는 2009년 5월26일 미국발 경제위기를 빌미로 우리를 해고했습니다. 우리 사업장은 한국노총과 금속노조가 같이 일하는 공장입니다. 사측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에 대해서만 전원 해고를 단행했습니다. 금속노조를 와해하기 위해 조합원을 회유하고 협박해 탈퇴시켰습니다.

징계해고보다 정리해고가 더 쉽다고 합니다. 금속노조를 말살하기 위한 기획된 정리해고였습니다. 고등법원이 부당해고라고 판결했지만 회사는 우리를 복직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여러분, 정리해고 사업장들에 관심 가져 주십시오.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 1978년 해고된 동료 124명 복귀를 촉구하며 농성중인 여성노동자들 ▲ 2001년 염창동공장 강제 이전을 반대하다 공장에서 거리로 쫓겨난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여성노동자들이 처절히 투쟁해야만 하는 현실.

▲ 1979년 신민당사에서 위장페업 철회 농성 중인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끌어내는 경찰들 ▲ 2009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정리해고 철회 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특공대

▲ 1970년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청계6가 건물에서 농성 중인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 ▲ 2011년 인천 부평 본사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대우자동차판매 노동자들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민주노총 소속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과 70년대 노동운동가가 해고 철회를 호소하며 선전활동을 하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앞에서 민주노총 소속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과 70년대 노동운동가가 해고 철회를 호소하며 선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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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은 동대문 일대에 흩어져 70년대 노동조건과 다르지 않은 오늘의 척박한 노동현실 속에서 정리해고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처지를 호소하고 내용의 선전물을 나눠주며 선전전을 벌였다.

선전전을 마친 후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임현재씨가 다시 후배 노동자들 앞에 섰다. 그는 70년 당시 전태일열사와 함께 평화시장에서 고통받으며 일하는 시다들의 열악한 처지를 개선해보고자 했던 일들을 들려주며 후배들의 투쟁을 격려했다.

"회사에서 쫓겨났으면 지금 이렇게 힘들게 투쟁하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새 일을 찾는 것이 더 쉬울지 모릅니다. 앞이 안 보이는 이런 싸움, 너무 힘들고 희망도 없을지 모르는 길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싸우는 것은 우리가 싸워 회사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옳은 일이고 제도를 바꾸고 생각을 바꿔 우리 후배들과 2세들이 더 좋은 세상,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자는 소망에서일 것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늘은 제가 이렇게 왔지만 앞으로는 여러분의 투쟁현장에 다른 선배동지들이 와서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당장 우리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길게 보고 우리의 생각과 다짐을 선전하다 보면 언젠가 변화가 오지 않겠습니까?

어제밤에 제 꿈에서 한 후배가 굉장히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제가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묵묵히 갈 길을 가다보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고 말해줫습니다. 아마도 제가 오늘 동지들을 만나려고 그런 꿈을 꿨나 봅니다.

70년 그 당시는 이렇게 모이기만 해도 다 잡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도 몰라서 모이자고 한 겁니다. 전태일동지와 함께 평화시장에서 일했습니다. 당시 시골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80~90%가 14살에서 20살 사이 젊은 미혼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때 노동자는 2만7천명 정도로 추산합니다. 시골에 부모형제를 두고 서울에 와서 시다를 하며 가족을 먹여살렸습니다.

기분 나쁘면 때리고, 잠을 거의 못자며 일을 하니 코피를 흘리고 폐결핵에도 많이 걸렸습니다. 병에 걸려 그만둬도 돈을 안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의 일이 너무 억울하고 불쌍해서 우리 23살 정도 되는 남자 재단사들이 모여 고쳐보자고 했습니다.

시다 월급을 안주면 우리가 그 가게에 가서 장사를 못하게 방해를 하면 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한 겁니다. 먼저 우리 실태를 알려야겠다고 해서 현장실태조사를 했습니다. 당시 노동자들 소원이 일요일에 쉬는 것, 속이 쓰리고 배가 아픈데 약 사먹을 돈이 없다... 그런 것이었습니다.

노동청에 이걸 갖다주면 될 줄 알았어요.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죠. 노동청 출입기자들이 뭐냐고 해서 자료를 줬더니 그게 신문에 났습니다. 신문을 사서 평화시장 기사가 났다고 우리가 이제 뭉치면 된다고 투쟁을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노동청 국장이 와서 해결을 해준다고 하더니 안됐습니다. 그때 국정감사가 끝나는 날까지 우리를 달래려고 거짓말을 했던 겁니다. 여러번 데모를 하려고 시도했지만 무산됐습니다.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자고 했어요.

당시 전태일씨는 그렇게 해서는 개선이 안되고 몇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자신이 먼저 죽겠다고 혼자 미리 계획을 해놓고, 분신하려고 휘발유를 사자고 하면 친구들이 안할 테니까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는 데 쓴다면서 사오게 한 다음 그걸 자신의 몸에 끼얹고 불을 붙였습니다.

전태일 씨의 큰 뜻을 이어받고 분신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우리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밥을 굶고 경찰 군홧발에 얻어터지며 전태일을 알리려고 투쟁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투쟁현장의 맨 앞에 전태일열사가 모셔지게 됐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서 전국의 노동자들 귀와 눈이 열렸고 우리 권리를 찾기 위한 의식화도 진행이 됐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민주주의를 성장시키는 역할도 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결과도 가져왔습니다. 또 오늘의 민주노총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이나마 주장도 거리에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싸우다보면 언젠가 우리나라 노동현장에서도 좋은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합니다. 힘내서 열심히 싸우세요. 저도 힘 닿는대로 동참하겠습니다."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은 "끝까지 투쟁해서 현장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정리해고를 철회시키고 현장으로 돌아갈 것을 결의했다.

70년대 노동운동 선배들과 함께 하는 선전전은 대선까지 계속된다. 매주 수요일이나 화요일 12월 5일(명동 예술극장), 12일(광화문 동화면세점), 18일(강남역이나 영등포역) 일대에서 70년대 엄혹한 사회 분위기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한 청계피복, 원풍모방, YH, 동일방직, 콘트롤데이타 등 늙은 노동자들과, 쌍용차, 시그네틱스, 풍산마이크로텍, 포레시아, 대우자판 등 현시기 정리해고 후배 노동자들은 매주 수요일 서울 시내 주요 지역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선전물을 나눠주며 '정리해고 없는 세상 만들기' 서명을 받고, 거리공연과 동영상상영 등 거리선전전을 벌인다.

임현재 전 청계피복노조 지부장이 오늘날 부당한 정리해고로 거리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임현재 전 청계피복노조 지부장이 오늘날 부당한 정리해고로 거리에 내몰린 해고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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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노총 신문 <노동과세계> 온라인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임현재, #노동운동, #민주노총,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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