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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봄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보건의료 시민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에서는 4회에 걸쳐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일 건강과 관련된 이슈들을 점검해 보는 기사를 마련했다.....................  <기자주>

전 국민이 애용한다는 애니팡 게임에 이어 또 다른 게임이 나타났으니 줄줄이 떨어지는 적과 운석을 피해 누구보다 더 멀리 날아가야 하는 '슈팅게임(액션게임의 하위장르)'이 그 주인공이다.

이 게임은 그냥 날면 되는 단순한 게임이다. 앞길을 가로막는 적을 격파할 수 있는 레이저가 시원하게 나간다. 멋지고 귀여운 드래곤을 타고 그냥 쭉 날면 된다. 일명 '드래곤 플라이트'. 

필자가 이 스마트폰 게임에 매료된 이유는 다름이 아닌 '마이너스'가 없다는 것 때문. 적을 물리치며 돈과 보석, 아이템이 마구 떨어지니 이것을 쉽게 잡아먹기만 하면 된다. 돈이 웬만큼 쌓이면 상점에서 새로운 무기를 구매할 수 있다. 레이저도 더 강해지고 더 오래 날 수도 있다. 그리고 설사 적에게 죽었다 하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던 무기와 돈을 가지고 새로운 게임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필자는 우리 삶도 이 게임 같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평등한 조건에서 출발하고 설사 실패를 했다 하더라도 항상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는 마이너스 인생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을 잠시나마 꿈꿔보지만 현실에선 마이너스 인생들이 너무 많다.

"그냥 이대로 살다 죽으면 좋겠어요" 가난한 이의 외침

 쪽방 내부 모습(자료사진).
ⓒ 고재연

올해 건강세상네트워크는 동자동 쪽방 주민 225명을 대상으로 건강권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사회적 관계망, 노숙경험 등 건강권에 대한 조사였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최근 1년 동안 동자동 쪽방 주민 10명 중 6명이 자살을 생각했고 5명 중 1명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드러난 일반 국민의 자살생각률은 10명 중 1.5명, 자살시도율은 0.5명 정도이니 이에 비하면 크게 높은 수치다.

또, 10명 중 4명이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중도에 치료를 포기했다. 국내 국민 미충족 의료율(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진료를 받지 못했거나, 중도에 치료를 포기한 비율)이 20.3%임을 감안하면 거의 두 배에 달한다.

동자동 쪽방에서 필자가 만난 한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40대 초반의 남성인 이분은 시골출신으로 알코올 중독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13살에 집을 나왔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살다가 17살에 먹여주고 재워주겠다는 말에 염산공장에 들어갔다. 그러나 19살이 되던 해 염산이 튀어 오른쪽 손과 손목이 일그러지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공장을 쫓겨난 그는 이후 10년을 구걸하며 살았다고 한다.

산에서 잠을 자며 교회나 시골 할머니들이 주는 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그는 겨울 산속이 너무 추워 몸을 녹이려고 무작정 기차를 탔다. 자고 일어나보니 서울역. 그곳에서 무료 급식소와 무료 진료소를 발견하고는, 서울에서는 굶어 죽지 않겠다는 생각에 또 10년을 노숙했다고 한다.

그러다 결핵으로 쓰러져 치료를 받고 현재는 쪽방을 소개받아 기초생활수급으로 방세를 내며 살고 있다고 했다. 쪽방이 너무 시끄럽지만 그래도 무료급식소도 가까워서 좋다는 그. 좁고 춥지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이 생겨 좋단다. 그냥 이대로 살다가 죽고 싶으니 정부에게 수급을 끊지 말라고 대신 이야기해달라며 수줍게 웃어보였다.

이 남성 이외에 필자가 만난 쪽방촌 주민의 대부분은 어릴 적부터 가난해서 교육의 기회가 없었거나, 실직과 사업의 실패로 삶을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분들이 많았다. 어릴 적부터 가난하니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불안정하거나 위험한 일자리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소득이 불안정하니 먹고 사는 일도 버거웠던 그들에겐 남들처럼 미래를 꿈꾸는 것도 사치였을 것이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 왜 치료를 포기할까?

 동자동 쪽방촌의 한 골목
ⓒ 고재연

왜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아파도 치료를 포기할까(최소한 필자가 만난 사람들은 그랬다). 우선 한국의 의료제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한국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아플 때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의료급여'라는 제도로 보호하고 있다(기초생활수급자는 대부분 의료급여 1종을 부여받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 조건부로 2급이 주어진다).

그러나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최저생계비 120% 이하 빈곤층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10% 내외로 이중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빈곤층 인구의 약 3.4%정도다. 빈곤계층 중 6~7%정도가 사각지대에 방치돼 의료이용에 제약을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의료급여 1종·2종의 수급권자라 하더라도 1종 환자의 입원비를 제외하고, 중증질환이 발생했을 때, 선택진료비와 각종 고가의 검사비 등 비급여 진료비로 인한 과중한 본인부담이 발생한다. 치료를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서 건강보험을 체납했을 경우는 어떨까. 건강보험료를 6회 이상 체납하여 급여가 제한된 가구는 2008년 기준 약 200만 세대로 추산된다. 건강보험료 6회 이상 체납시 (건강보험) 자격이 정지돼 치료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들 중 80% 정도가 생계형 체납자로 보험료를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급여가 정지된 체납자가 의료이용을 하였을 때 보험급여의 일부 또는 전부를 진료 받는 경우 부당이득으로 간주된다. 이미 받은 보험 혜택은 체납자에게 징수된다.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 사회적 취약계층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및 그 가족, 노숙인, 희귀난치질환자 등도 건강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아파도 병원 못가는 이들, 시급한 과제는?

아파도 병원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될 과제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가족 중 부양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경우, 의료급여 혜택을 받지 못한다)을 폐지하여 의료급여 수급자를 확대해야 한다. 또, 현 근로능력 구분으로 의료급여1,2종을 선정하는 것도 의료급여 수급권자에 대한 차별조항으로 폐지해야 한다. 

또,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병원이용이 제한되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건강보험 체납자에 대해 급여제한을 폐지하고 결손처분을 확대하여야 한다. 그리고 보험가입자 중 보험료를 부담할 능력이 되지 않는 이들이 의료서비스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보험료는 전액 면제나 보험료 경감조치를 통해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와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민과 그 가족, 노숙인, 희귀난치질환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건강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이들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공평한 사회를 만들 후보 어디 없나요?

최근 대선 후보들이 너나할 것 없이 한 번의 실패로 인생의 낙오자가 되지 않는 세상, 모두에게 평등하고 공평한 기회를 주는 세상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이런 꿈같은 이야기들을 하며 자신이 모든 사람의 꿈을 이루어줄 미래의 새로운 대통령 후보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이들 중 평등하고 기회가 공평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그동안 이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게으르고 나태한 개인의 잘못이라서 이들이 겪는 불평등은 당연하다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빈곤의 책임은 이들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부를 독식하고 불평등을 확산시키는 사람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MB정부는 기업들에 수십 조의 세금을 감면해 주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은 줄여왔다.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아무런 지원도 못 받는 사각지대도 크게 늘었다.

경제위기에 고통분담을 하겠다던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과 서민들에게만 고통을 안겨주었다. 언제까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이 고통을 견뎌내라고 할 것인가? 언제까지 이들의 고통을 외면할 것인가?

우리는 공평한 기회와 아플 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평등한 건강권을 보장해 주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일할 대통령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정숙 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가입니다.



태그:#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 #건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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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세상네트워크는 시민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건강권 시민운동단체입니다. '건강'은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임을 선언하며 2003년 4월 출범했습니다. www.konkang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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