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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최경준, 선대식, 정민규(부산), 이주영 기자
사진 : 남소연, 조재현 기자
종합 : 장윤선 기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손잡고 첫 공동유세를 펼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손잡고 첫 공동유세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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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첫 공동유세를 펼치자 부산시민들이 일제히 환호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첫 공동유세를 펼치자 부산시민들이 일제히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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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첫 공동유세를 펼치며 범야권 단일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첫 공동유세를 펼치며 범야권 단일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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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광복동 남포역 광장에서 유세를 펼치자 수많은 인파가 몰려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광복동 남포역 광장에서 유세를 펼치자 수많은 인파가 몰려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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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안철수 전 후보와 첫 공동유세를 펼치며 환호하는 부산시민들에게 하트를 날리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7일 오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상가 분수대 앞에서 안철수 전 후보와 첫 공동유세를 펼치며 환호하는 부산시민들에게 하트를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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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대설주의보, 어딜 가든 교통체증으로 발이 꽁꽁 묶일 엄동설한. 지름 1cm짜리 눈송이가 KTX 창문에 한 덩이씩 방울졌다. 서울역을 지나 천안, 동대구역 다음 밀양, 구포에 이르니 눈송이는 제법 굵어졌다. 하늘은 묵직했고, 날은 꾸물꾸물했다. 영하의 서울은 발자국이 이어질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 나는 눈밭. 부산은 하늘에서 내린 진눈깨비들이 어느새 땅에 닿기만 하면 빗방울로 변하는 영상의 날씨였다.  7일 정오 부산역은 각자 자신의 터전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물결로 일렁였지만 비교적 한산했다.

[# 장면1.] 7일 오후 1시 45분 부산역

"아휴, 여기까지 오셨어요? 우선 밥부터 먹고. 하하하. 네. 있다가 뵐게요."

무소속으로 18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안철수 전 후보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그는 7일 오후 1시 45분 환한 얼굴로 부산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서울 광화문의 한 레스토랑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만났을 때 입었던 블루 톤의 점퍼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밝게 웃으며 기자와 인사를 나눴다. 안 전 후보와 함께 한 수행팀은 송호창 전 선대본부장, 장하성 전 국민정책본부장, 허영 전 비서팀장, 유민영 대변인, 하승창 전 대외협력실장 등 10여 명이다.

이날 서울역에서 오전 10시 50분 부산행 KTX에 몸을 실은 안 전 후보는 약 3시간 만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기자에게 말한 것처럼 그는 도착 즉시 수행팀과 함께 부산역 인근의 한 식당에서 돼지국밥으로 점심 끼니를 때웠다.

15분간 후닥닥 점심을 해결한 안 전 후보는 기자들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문재인 후보와 공동번개가 예정된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 앞으로 향했다.

[# 장면2.] 7일 오후 2시 30분 부산역->벡스코

"내는 월남 전쟁에도 다녀왔다. 문재인이는 암만 생각해도 안보가 약해. 김대중정부 때 을매나 퍼줬노? 북은 주마 역방향으로 활용해뿌잖아. 아래께 TV토론 안했나. 이정희, 와... 완전 '짝패들이구나'. 문재인이랑 짝패다 했제. 고마 이정희 꼴 보기 싫어서 테레비 꺼뿌따. 거는 인성교육이 안 된 아이야. 생각나는대로 말을 뱉어. 촐랑거린다."

부산토박이 한채성(68)씨는 자신을 박근혜 지지자라고 소개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한씨는 해병대 출신의 택시기사다. 그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야 나라의 안보가 튼튼해진다"며 "문재인은 불안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철수 전 후보에 대해서도 "대학교수로 남았어야 했다"며 "정치에 들어와버렸으니 이제 손학규 꼴 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자신은 확고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지지자지만 자식들은 꼭 그렇지 않다고 소개했다. 한씨는 "내 사위는 경찰간부인데도 제 생각은 다른데예! 한다"며 "젊은 사람들은 야권에 우호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 사상구에 살고 있는 택시기사 정정도(64)씨도 한씨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안철수? 나는 밸로 관심 없어요. 지하상가 분수대에서 한다카데. TV토론 첫날, 등산 하고 식당 갔드이마 3번 욕 마이 하데? 그게 박근혜한테 유리하겠지, 안그렇겠습니꺼. 이미 결집돼있는데, 더 될게 뭐 있겠습니꺼."

그는 "부산에 이런 얘기가 있다"면서 "안철수는 안 되니까 철수했다 카고, 문재인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해쌌코. 웃을라카는 건데?"라며 현재 부산의 민심을 전하기도 했다.

정씨도 한씨처럼 박근혜 지지자였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는 새누리당. 아무래도 새누리당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똑똑한 사람들이. 새누리당은 보수, 문재인은 진보 아닙니꺼. 문재인이 되면, 이북에 다 퍼줘붓고. 박근혜 말마따다 가짜 평화 아닌교. 나이 많은 사람들은 박근혜 아닌교?"

[# 장면3.] 7일 오후 3시 10분 벡스코 현장

"문재인 후보 아직 도착 못하셨습니까."

궂은 날씨 때문이었다. 문 후보가 타고 있는 제주발 부산행 비행기가 발이 묶였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 의원들이 탄 서울발 부산행 비행기도 처지는 같았다. 20여 명의 의원들이 동승한 비행기는 1시간30분여 김해 상공에 머물다 착륙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3시 부산 벡스코에서 의원총회를 열기로 한 민주당 의원들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당초 예정된 오후 4시 경성대 일정은 당연히 취소됐다. 오후 5시 10분으로 예정된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에서 안철수 전 후보와의 공동번개 일정이 더 급해졌기 때문이다.

의총장은 다소 썰렁했다. 서울에서 내려오기로 했던 의원들이 궂은 날씨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영향도 있어 보였다.

이날 의총에서 문 후보는 "부산을 동북아 물류 중심도시로 키우겠다는 부산발전정책공약을 발표 하려고 한다"며 "오늘 말씀드리는 저의 부산발전 정책공약이 대선 때의 일시적인 약속이 아니라 이번 대선에 임하는 저와 민주통합당의 간절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 문재인"이라며 부산발전 공약을 몇 가지 발표했다. 간추리면 첫째, 부산을 동북아 물류중심도시로 키우기 위해 '동북아 물류중심추진특별법'을 제정하겠다, 둘째, 혁신형 산업정책을 통한 '일자리혁명'을 동남권에서 일으키겠다, 셋째, 동남권 제조업의 경쟁력과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여 갈 새로운 차원의 혁신형 산업정책을 추진하겠다 등이다.

[# 장면4.] 7일 오후 4시 30분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

"내 돈 내놔라, 내 돈! 문재인이는 70억 내놔라."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이날 오후 4시 30분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에서 피켓시위를 시작했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은 문재인 후보가 속해 있는 법무법인 부산이 부산저축은행과 관련이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박근혜 후보를 사랑하는 시민모임(박사모) 회원게시판에 오른 '달걀세례' 준비팀이 이들인가 싶도록 그들은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한 켠에서 이들의 피켓시위를 지켜보고 있던 일군의 시민들이 일순간 그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가라! 가라! 가라!"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의 첫 공동유세를 방해하려고 몰려든 것이라고 판단한 시민들이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맞서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다시 목소리를 합쳤다.

"문재인 후보 물러나라!"

시민들이 도돌이표로 외쳤다.

"박근혜!"
물러날 사람은 "박근혜"라고 받아치는 격이었다. 삽시간 안에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 앞은 발 디딜 틈이 없도록 인산인해를 이뤘고, 이내 시민의 바다가 됐다. 이곳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부산에서 이런 모습은 87년 6월항쟁 이전에 보질 못했다"며 "부산 사람들이 마 디비졌다"고 탄성을 질렀다. 현장에선 시민들의 즉석 정치토론도 벌어졌다.

70대 노인(남) "내는 안철수 코미디 구경하러 나왔다!"
50대 남성 "아저씨, 좀 조용히 좀 하세요!"
70대 노인 "와?"
50대 남성 "누구를 찍든 자유 아닌교? 여기가 공산주읜교?"
50대 여성 "내는 이런 아저씨가 제일로 싫다. 말이 안 통한다 아이가, 말이."
70대 노인 "뭐?"
50대 남성 "마 박근혜 찍어드릴게예, 됐지요?"
70대 노인 "차라, 문재인이 찍어야지, 와?"
50대 여성 "됐습니다. 마라 문재인이를 찍어예? 박근혜 됐지예?"

검정색 중절모를 쓴 70대 노인이 안 전 후보에 대해 비아냥 대자 50대 유권자들이 발끈했다. 이들은 부산시 전포동, 대신동, 해운대 등지에서 안 전 후보와 문재인 후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지지자들이었다. 문재인 후보와 안 전 후보를 응원하지도 않으면서 왜 이 자리에 있느냐는 비판이 이어지자 이 노인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이 자리에서 한 50대 남성이 부산의 민심을 전했다.

"지금 지상에선 박근혜캠프가 선거운동 한다 아잉교. 아르바이트 애들만 춤추고 있어예. 부산 사람들은 여기 다 모였네예. 이런 거 처음 봅니더. 그렇게 박근혜가 부산 마이 왔어도 젊은 사람들 이래 마이 모인 거 처음입니더."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올해 51살의 한 여성도 이 남성의 말에 한 마디 더 보탰다.

"암만 부산이 새누리당 판이라캐도 이제 바까야 한다 아입니꺼. 우리도 배울 만큼 배웠고, 뉴스 다 본다 아입니꺼. 생각이 다 있어예. 50대라고 다 보수 아입니더. 말이 통해야 살 거 아입니꺼 말이."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이들은 두 줄로 서서 경찰의 폴리스라인 대신 '시민라인'을 쳤다. 겨우 사람 하나 지날 정도의 통로를 만들어놓고 양쪽으로 선 부산 시민들은 일제히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놓고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의 등장을 간절히 기원했다.

이들 중에는 회사 근무 중에 잠깐 나온 사람들도 있었고, 서울에서 휴가를 내고 내려온 지자자도 있었다. 이들이 두 줄로 서서 "질서유지"를 외치며 두 사람을 기다리는 순간 오후 5시 10분 양 갈래 통로를 통해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이 등장했다. 일순간 환호성이 터졌다. 시민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문재인" "안철수"를 연호했다.

문재인 후보는 좁다란 통로에 빽빽이 들어선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말을 하지 않은 채 환하게 웃는 문재인 후보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문 후보의 길을 앞에서 헤쳐주던 김경수 수행팀장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혀 있었다.

"잠깐만요, 조금만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김 팀장의 눈빛엔 만의 하나 발생할지 모르는 안전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눈치였다.

현장에서 만난 김효일(31)씨는 이날 DSLR 카메라를 들고 맨 앞줄에 서서 기다렸다. 그는 "나는 문재인 지지자"라며 "안철수 후보와 같이 온다고 해서 나왔다, 제 주변 친구들은 '문반 안반'이었는데 안철수가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니까 마음이 조금씩 기우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확실히 안철수 전 후보가 부산의 젊은 층들한테 인기가 많았으니까 문재인 후보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선희(54)씨는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으로 그룹채팅을 하는 중이었다.

"원래 안철수가 좀 더 좋았습니더. 서면에서 좀 배웠다하는 사람들은 안철수 좋아하더라고예. 안철수 사퇴하고 나서 선거 기권한다꼬 했는데, 안이 온다니까 난리도 아닙디다. 부산도 60~70대 어르신들처럼 새누리당을 원래 좋아하던 사람들 말고는 다른 서울사람들하고 똑같아예."

스물두살 허지영씨는 대학생이었다. 허씨는 "제 주변에는 진짜 박근혜 지지자가 없다"며 "저는 문재인이 좋은데 친구들 대부분은 안철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한초(73)씨는 자신이 누구를 지지하는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가 독특했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늘 낙선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묵언하는 가운데 투표를 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가 내놓은 세 후보에 대한 평이다.

"박근혜는 역사의식이 없다는 게 진짜 단점 같아요. 그래도 뭐 꾸준히 민생을 잘 챙기는 것 같고. 문재인은 인권변호사 30년. 가난한 사람들 위해 일 많이 했는데, 분명히 노무현정부 때 어떤 결정에 참여했을 텐데 발뺌해 석연치가 않고. 안철수는 남자로서 말하면 대가 좀 약한 것 같아. 이상은 좋은데 말이야. 내 결론은 아직."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복명(53)씨는 "나는 박근혜를 싫어한다"며 "소신도 없고 지금까지 전부 여론 따라 말을 했다"고 강한 정서적 거부감을 표출했다. 김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부산이 많이 바뀌었다"며 "예전에 부산에선 새누리당이 깃발만 꽂으면 됐는데 그러다보니 오만해졌고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새누리당에서 정권을 잡으면 안 된다"며 "이명박이 한 번 했으면 이제는 야당이 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 발전이 있다"고 말했다.

박해연(65)씨는 "진짜 이번 선거는 20~30대와 40~50대간의 기싸움 같다"며 "젊은이들은 거의 투표를 안 하는데 노인들은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투표를 하러 온다, 아직까지 박정희의 향수가 남아있으니까, 뚜껑을 열어봐야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분수대 주변에선 이런저런 '정치토론'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그중 박청구(59)씨는 부산의 현실에 대해 신랄하게 토로했다.

"종편이 너무 편파적이다. 박근혜 방송 아니고 뭔가. 그게 정확한 보도를 해주면 박근혜도 찍어줄 수도 있다. 이명박이 잘 했으면 박근혜 찍어주고, 이명박이 못했으면 바꿔야 하는 거다. 20년간 부산 사람들이 새누리당 지지한 결과가 뭔가. 부산에 젊은 사람이 없다. 왜 젊은 사람이 떠나나. 일자리가 없어서다. 부산 사람들이 견제 세력을 키워야 한다."

두 딸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온 현장을 지켜보기 위해 나선 박재훈(42)씨는 "자꾸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이 났다"며 "두 분에게 믿음은 가는데, 마음을 끌어당기는 게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박씨는 "그래서 불안하다"며 "지금 선비님들이 필요한 게 아닌데... "라며 좀더 두 사람이 공세적으로 뛰어주기를 기대했다.

[# 장면5.] 오후 6시 10분 자갈치역 7번 출구 PIFF 광장

안철수 전 후보가 이날 오후 6시 10분경 자갈치역 7번 출구에 도착했을 때 시민들은 이미 1천 명이 넘었다. 쇄도하는 인파 속에 안 전 후보는 마치 파도에 몸을 맡긴 서퍼처럼 휩쓸려 다녔다.

이 가운데 서울에서 안철수 전 후보의 부산 유세를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왔다는 김덕용(54.전문직)와 만났다. 김씨는 "그동안 굉장히 애를 태웠는데,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결정이 되면서 매우 감동적이었다"며 "그래서 휴가를 내고 여행 삼아 바람도 쐴 겸 부산까지 내려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까 서면에서부터 봤는데, 분위기가 굉장히 열광적인 것 같다"며 "한국 정치가 안철수라는 기득권 정치에 물들지 않은 사람을 통해 완벽하게 판갈이가 되기를 기대했다"고 속내를 비췄다.

또한 김씨는 "안철수 전 후보가 정권교체를 위해서 결단 내려주기를 바랐다"며 "어제 문안 두 후보의 모습을 보면서 홀가분하게 마음의 정리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안철수라는 사람이 현재 우리 정치개혁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 장면 6.] 7일 오후 6시 30분 남포동 남포역 7번 출구

문재인 후보가 연단에 올랐다. 대중의 박수갈채가 끊이지 않았다. 탁현민씨와 영화배우 문성근씨는 문재인 후보와 함께 '정권교체'를 연호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귀를 쫑긋한 채 문 후보의 말을 듣고 있었다.

문 후보가 내세우는 공약이 하나씩 소개될 때마다 대중 속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마치 '2002년 노풍'을 상징하듯 거리에는 노란색 풍선과 노란색 목도리, 노란색 점퍼와 그린계열의 목도리를 두른 시민들이 꽤 눈에 들어왔다.

찬바람을 마스크로 가린 채 이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53세의 한 남성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오마이뉴스>와 짤막한 인터뷰를 나눴다.

"퇴근길에 들렀습니다. 저희 가족은 MB정권이 살벌해서 바꿔야 한다고 결의했습니다. 물론 연세 드신 분들은 노골적으로 박근혜를 피력하십니다. 그러나 제 주변엔 온통 야당세입니다. 이번엔 바꿔야 한다는 건대, 그래도 말 못하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지지한 사람은 '야권단일후보'입니다. 문재인-안철수 둘중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정권교체만 될 수 있다면 누구든 어떠리! 였지요. 박근혜 후보는 주로 노인들이 밀집된 재래시장을 다니니까 표몰이가 되겠죠. 그러나 이제 시작입니다. 오늘로 야권은 첫 유세를 시작한 것 아닙니까."

부산 남포동에는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도 많았다. 남포동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다정스럽게 사진을 찍고 있던 류정수(27. 연제구)씨와 김선영(24 동래구)씨 커플은 "아직 정하지는 못했지만 문 후보를 생각하고 있다"며 "한나라당부터 이어져온 이명박 정부,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원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 연인은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지만 도와주기로 했다면 좀 더 빨리 도와주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본다"고 전했다.

문재인 후보의 연설을 지켜보던 한 50대 남성은 "남포동 저쪽 롯데백화점 있는 데가 예전에 부산시청 있던 자리라예, 25년 전 87년 6월항쟁 때도 문재인이가 저 자리에 있었다 아입니꺼"라며 "감회가 새롭네예, 부산이 또 한번 디비지고 있네예, 아 감동입니더"라고 말했다.

[# 장면 7.] 7일 저녁 7시 30분 부산역 광장

땅거미는 내려앉았고 2000명의 시민들은 부산역 광장에 모여들었다. 안철수 전 후보의 유세를 보기 위한 것이다. 안 전 후보는 이날 '부산일정'의 마무리로 부산역 광장을 택했다. 시민들이 둘러싼 가운데 마이크도 없이 연설을 시작했다. 내용은 아주 짤막했다.

"부산 시민 여러분!
이렇게 많이 와주시고, 환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사퇴 이후에 수일이 흘렀습니다. 어제 아침에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정당쇄신, 그리고 정치개혁에 대한 대국민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말씀을 듣고 새정치를 바라는 저, 저의 지지자들을 위해서 문재인 후보를 도와주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처음 정치에 나온 것도 국민 여러분들이 정치혁신, 정치쇄신, 새로운 정치, 민생을 해결해줄 수 있는 정치를 바라는 국민들 때문에 제가 정치로 나왔습니다. 그 초심 잃지 않고 앞으로 열심히 새로운 정치를 위해서 끝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시민들은 "안철수" "안철수"를 연호했고, "철수야 노올자!" "철수야 고맙데이!"라는 환호가 이어졌다.

이날 안 전 후보는 부산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저녁 8시 30분 또 다시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 안 전 후보를 배웅하려는 부산 시민들은 부산역 플랫폼까지 내려가 손을 흔들며 무사귀환을 빌었다.

어느새 진눈깨비는 그쳤고, 어두컴컴했지만 땅은 다시 단단히 말라 있었다. 안 전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8일 오후 서울 대학로와 광화문에서 각각 집중유세를 연다. 부산에서 시작된 제2의 6월항쟁 분위기는 비상사태 선포와 시민의병운동으로 대선판을 뒤집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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