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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만 수험생이 대학입학을 앞둔 시기다. 이 시기에는 수험생뿐 아니라 대학들도 고민에 빠진다. 이른바 명문대와 수도권 대학들은 수험생이 몰려 느긋한 입장이지만, 지방대학들은 신입생 유치에 발을 동동 구른다. 일부 학교는 대학의 존폐까지 걸린 문제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것이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한국교육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그대로 고교교육까지도 전해진다. 전통의 명문고를 제외한 학교들은 오로지 대학진학률만을 따지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는 실정인 것.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마냥 사회나 환경 탓만을 할 수는 없다. 이름값에 기대지 않는 차별화된 교육으로 자생력을 길러야만 하는 것. 이에 이른바 서울의 전통 명문고가 아니지만, 각자의 맞춤형 교육으로 지역의 명문으로 발돋움한 학교들의 교육현장을 찾았다. 경기 파주의 교하고(공립고), 전남 장흥군의 장흥고(공립 기숙형 자율고), 경북 청도군의 모계고 (기숙형 사립고)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창의적 지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파주 교하고등학교

교하고 교훈 '청 명 창'은 '맑고 밝은 창의적인 사람'을 뜻한다.
 교하고 교훈 '청 명 창'은 '맑고 밝은 창의적인 사람'을 뜻한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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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개교 이래 폭력 사건이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담배 피는 학생도 없고요. 그래서 학부모들이 '폭력 없는 학교', '흡연 안 하는 학교'라고 불러요. 하하하."

교하고등학교 김영일 교장은 "'착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무척 즐겁다"며 활짝 웃는다. 보통, 고등학교의 자랑 1순위는 '명문대에 몇 명 진학시켰다'인데 의외다. 교하고는 지난 2006년부터 신입생을 받기 시작했다. 짧은 역사에도 단숨에 지역 명문고로 올라섰다. 대학교 진학률이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따뜻한 학교 공동체'를 함께 꾸려온 덕분이다.

"인권과 교권은 다른 게 아니라, 선생님이 학생에게 친구 같은 역할을 하며 한 발 더 먼저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가서다 보니 자연스레 학생들의 인권도 존중되고요."

김 교장이 학교 안에서 불거지는 '인권침해와 교권추락'에 대해 제시한 해법은 교사가 먼저 앞장서고 학생과 학부모가 뒤따르는 것이다. 교하고는 매년 선생님과 전교생이 한데 어울려 부근 심학산을 오르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벌점을 받은 학생의 경우, 역시 선생님이 앞장서 주말을 이용, 학생·부모와 함께 산행을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개교 7년차에 불과한 교하고가 좋은 평판을 얻은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매년 정호승 시인, 유안진 작가 등 명사를 초청해 시낭송 축제를 열고, 학생이 주도하는 독서신문 발간, 과학창의력 대회 개최, 수학 동아리반·영어도서관·자기주도 학습인증제 운영 등 감성을 자극하고 지성을 충족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갖추고 있다.

교하고 정문을 들어서면 학교 건물 외벽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학교 상징 동물인 사자의 머리 위쪽에 쓰인 '가고 싶다. 교하고로'라는 문구는 교하고의 자부심을 그대로 드러낸다.

교하고 김영일 교장과 김동준 행정실장(왼쪽).
 교하고 김영일 교장과 김동준 행정실장(왼쪽).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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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최초의 기숙형고, '돌봄의 교육' 실천하는 장흥고등학교

"장흥고는 전라남도에서 처음 지정된 기숙형 고등학교예요. 기숙사는 원거리 학생 위주로 배정하고, 학교에서 가까운 학생들은 성적순입니다. 안정된 생활 속에서 학력 수준을 효율적으로 높일 수 있는 게 기숙형고의 장점이죠. 학생들의 생활 지도에도 큰 도움이 되고요."

장흥고등학교 위점복 교감은 기숙사를 갖춘 장흥고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장흥고는 서울 광화문의 정남쪽 '정남진(正南津)'이 위치한 전라남도 장흥군을 대표한다. 1951년 9월 개교 이래 6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 속에서 올해까지 15,296명의 학생을 졸업시켰다.

장흥고 하상규 교장과 위점복 교감(왼쪽).
 장흥고 하상규 교장과 위점복 교감(왼쪽).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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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고의 신입생 모집안내 자료를 보면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매년 190명 졸업생이 4년제를 비롯한 대학에 100% 가까이 진학하고 있는 점. 위점복 교감은 "오랜 역사 동안 이어진 선후배 간의 끈끈한 관계가 대학 진학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전남·광주 지역의 대학을 보내려고 했지만, 요즘 부모님들은 수도권 대학을 선호해요. 가정환경이 어려운 경우에는 시립대 등을 찾고요. 수도권으로 유학 간 학생들은 장흥군의 장학금을 지원받으며 전라남도에서 세운 '전남 학숙'에서 기숙하며 공부하고 있어요."

장흥고의 장학금은 다른 일반 공립고에 비해 규모가 꽤 크다. 특별교부금으로 지급되는 '군 인재육성 장학금'의 경우, 내신 성적 10% 이내 학생이 입학하면 3백만원에 달하는 3년간 수업료를 전액 면제해 준다. 그 밖에 명문고 육성 장학금, 기숙사비 지원, 농어촌 우수고 장학금, 동문·지역사회 장학금, 성지·안풍라 장학금 등도 있다. 

장흥고는 다문화가정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학교에서 매년 다문화요리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장흥고는 다문화가정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학교에서 매년 다문화요리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 장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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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의 특징은 다문화교육을 지속적으로 시킨다는 점입니다. 2학년 학생회장 여학생과 2학년 이과 1등 남학생이 일본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를 둔 다문화가정 출신이죠. 다문화요리 경연대회와 음식문화체험 등을 진행해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어요." 

장흥고 출신인 위점복 교감은 "군내 학부모들이 일부 사립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대학 진학률을 보면 장흥고가 보다 뛰어난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다른 군과 사립고로 학생들이 빠져나갈까봐 걱정이라고. 재정 지원이 넉넉지 않은 농어촌 고등학교의 고달픈 현실이다.

'굳건하자(剛) 사랑하자(愛) 창조하자(創)' 모계고등학교

경상북도 청도군에 위치한 모계고는 1953년 개교한 사립고교다. 역사는 물론 최근 연혁이 돋보인다. 도교육청 기관평가 우수교(2004년), 도교육청 및 한국교육개발원 주관 일반고 기관평가 우수교(2007년부터 3회 연속), 경북 1지역 1명문교 선정(2008년) 등을 수상하며 도교육청으로부터 재정적 지원도 많이 받았다.

모계고의 이름이 된 모계 김용희 선생의 동상. 아들인 관재 김경곤 선생이 부친의 뜻을 기리고자 설립했다.
 모계고의 이름이 된 모계 김용희 선생의 동상. 아들인 관재 김경곤 선생이 부친의 뜻을 기리고자 설립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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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부터 모계고에서 근무한다는 박헌식 교감은 "관재 김경곤 선생이 광복된 조국을 위해 만석의 재산을 쾌척, '무상교육'을 실시하고자 1947년 모계학원과 초급중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모계고를 세웠다"고 말했다.

모계고의 교육과정은 독특한 것이 많다. 초-중-고를 연계한 12년 개근상 시상, 전교생 검도 수련, 12월 말에 새 학년 담임을 선정해 방학인 1월과 2월에 학습지도를 하는 조기학년제 운영, 선생님들이 월 1~5만원씩 갹출해 학생들을 지원하는 사도장학회 제도, 방학 중 예비신입생에게 자율학습과 독서지도를 하는 등 눈에 띄는 내용이 많다.

기숙사도 그 중 하나. 남학생 108실, 여학생 104실이 구비돼 있고 식비 포함해서 한 달에 약 24만 원 안팎의 사용료가 든다. 전교생 460명 중 약 40% 정도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모계고는 원래 남자고교였다가 2007년 뒤늦게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박 교감은 "남녀공학이 양성교육 등 올바른 방향인 것은 맞지만, 모계고가 처한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며 걱정했다.

"남학생의 경우 대구 등의 도시로 진학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져요. 갈수록 여학생 숫자가 느는 추세예요. 2012년 5대 5의 남녀 비율이 앞으로 4대 6, 3대 7로 역전될 거예요. 농촌학교의 현실을 고려해, 인원 조정이 필요합니다."

모계고는 재학생 전원에게 검도 수련을 시키며 정신력과 체력을 함께 길러주고 있다.
 모계고는 재학생 전원에게 검도 수련을 시키며 정신력과 체력을 함께 길러주고 있다.
ⓒ 모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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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교하고, 장흥고, 모계고는 공히 중학교 학생생활기록부를 바탕으로 선발고사를 병행해 학생들을 선발한다. 애초 비평준화지역의 명문고는 지역을 거점으로 서울 등의 대도시 고교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럼에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도시 유학을 보내는 현실은 지역 학교들의 힘을 빠지게 한다.

한편 수능이 끝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은 무질서한 것이 현실이다. 대학만을 바라보고 12년을 달려왔기에 정규 교육과정이 끝난 학교는 통제 불능인 경우가 많다. 취재 과정에서 찾은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도무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할 정도.

장흥고는 학생들의 세계 이해를 돕기 위해 베트남, 몽골, 중국 등 해외 문화체험을 진행한다. 사진은 몽골 교육 장면.
 장흥고는 학생들의 세계 이해를 돕기 위해 베트남, 몽골, 중국 등 해외 문화체험을 진행한다. 사진은 몽골 교육 장면.
ⓒ 장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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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 3개 고교는 달랐다. 수능 점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는 하겠지만, 대부분 학생들의 모습에서는 여유와 웃음이 묻어났다. 특히, 교하고에서 만난 2학년 학생들은 DMZ다큐멘터리 영화제 토론대회 최우수상, 왕인박사 추모 학생백일장대회 대상, 국회방송 토론 예선통과 등 다채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3학년이 되더라도 이들은 자신의 특성을 살려 대학 입시에 도전할 생각을 갖고 있다.

교하고 2학년 학생들. 왼쪽부터 임병민, 박은선, 엄유리(이상 DMZ다큐멘터리 영화제 토론 최우수상), 류태희(왕인 백일장 대상), 정형호(토론대회 예선통과).
 교하고 2학년 학생들. 왼쪽부터 임병민, 박은선, 엄유리(이상 DMZ다큐멘터리 영화제 토론 최우수상), 류태희(왕인 백일장 대상), 정형호(토론대회 예선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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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점수 1점에 목숨 걸지 않고 학생들의 특성을 하나하나 챙겨주며 인권과 교권이 조화를 이루는 학교. 이런 꿈이 그저 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로 이루어지는 교육현장. 바로 이것이 대한민국 공교육이 바라는 세상이 아닐까.

모계고 학생들. 높은 하늘로 비상하는 청춘이다.
 모계고 학생들. 높은 하늘로 비상하는 청춘이다.
ⓒ 모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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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교하고, #장흥고, #모계고, #기숙형 고등학교, #자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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