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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미술관 온천 호수 옆에서 샤갈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 샤갈 미술관 온천 호수 옆에서 샤갈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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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규슈(九州)의 온천도시 유후인(由布院)을 답사하던 우리가 석양 무렵에 도착한 곳은 긴린코(金鱗湖)라는 호수였다. 호수에 다가서기 전, 우리는 호숫가에서 뜻하지 않게 마르크 샤갈 미술관(Marc Chagall Museum)을 만났다. 온통 검은색 목재로 2층 건물을 온전히 둘러싼 외관이 무척이나 세련돼 보이는 건물이다. 샤갈 미술관의 건축물 자체가 긴린코 호수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온천 마을 호숫가에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러시아 화가의 미술관을 만든 발상 자체가 참 신선하다. 미술관 안에는 지키는 사람도 없어서 샤갈의 작품들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샤갈 미술관은 유채화뿐만 아니라 그림책에서 보기 어려운 드로잉·습작 등 샤갈의 작품 30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조그만 미술관 건물 2층에 전시 중인 샤갈의 작품들은 동화적이고 자유분방하다. 창 너머로 보이는 긴린코 호수와 호수 주변을 둘러싼 삼나무 숲이 일대 장관이다.

미술관 건물 1층에는 호수의 전망을 점거하고 있는 카페 '라 리슈(La Ruche)'가 있다. 카페 이름은 샤갈이 프랑스에서 공부했던 '라 리슈'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유후인을 대표하는 긴린코를 이곳보다 더 멋있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식당을 겸한 이 카페는 아쉽게도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카페서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를 마주하다니

라 리슈 긴린코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이다.
▲ 라 리슈 긴린코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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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가 조금 지나 도착한 이곳. 그렇다고 내가 이 카페에서 긴린코 감상을 놓칠 수는 없다. 나는 아내와 자연스럽게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의 점원들은 가게의 의자 등을 정리하며 가게 문 닫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카페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나는 아내와 이 카페에서 처음으로 긴린코를 만났다. 우리는 차분히 호수를 감상했다. 잔잔한 호수 위로 밀림을 이룬 듯한 키 큰 나무들이 바람에 한들거리고 저 먼 산에는 석양이 걸리기 시작했다. 호수 주변의 건물들은 모두 나무로 지어져서 호수의 경관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호수에 비치는 나무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호수 주변의 삼나무는 거대하고 풍요로워 보인다. 크지 않은 호수가 한눈에 가득 들어오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해가 기울면서 날씨는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카페 입구로 나가자 카페 종업원이 우리를 보고 깜짝 놀란다. 이 종업원은 우리가 카페에 들어온 줄도 모르고 뒷정리를 하고 있었던 것. 아내가 미안하다는 듯이 소리 내 웃자 이 종업원도 우리가 불쑥 나타나서 놀랐다며 웃는다. 사소한 규정도 꼭 지키는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무례해 보였을 수도 있지만, 이 종업원은 밝게 웃고 있었다.

긴린코 온천 조용한 온천마을 호수 곁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몰린다.
▲ 긴린코 온천 조용한 온천마을 호수 곁으로 많은 여행객들이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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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호숫물이 워낙 맑아서 호숫가에서는 물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호수 밑에서는 특히 잉어들이 많이 놀고 있었다. 긴린코를 그린 그림지도를 보니 호수 안에는 거북이·가재·장어도 사는 모양이다.

나는 이 호수를 산책하는 시간을 일부러 해가 지는 시간에 맞췄다. 긴린코 호수 이름 자체가 해가 지는 석양 시간의 호수 정경을 보고 지어진 이름이기 때문이다. 호수 이름 '긴린코(金鱗湖)'는 석양이 비치고 있는 호수의 수면을 뛰어오르는 잉어 '비늘(鱗)'이 '금(金)' 색으로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호수의 오리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편안한 오리이다.
▲ 호수의 오리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편안한 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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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주변에서는 오리들이 한가하게 놀고 있고 여행객들이 그 오리를 구경하고 있다. 오리는 호수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돌아다니기도 한다. 긴린코 호수 밑바닥에서는 지하수와 함께 따뜻한 온천수가 올라오고 지열도 있기 때문에 오리가 따뜻한 물 위에서 유유히 놀고 있다. 호수 안에 손을 넣어보니 물이 따뜻하다. 긴린코에 손을 넣어본 사람들이 호수의 따뜻함에 다들 감탄을 한다고.

카페 '라 리슈(La Ruche)' 주변의 사진을 찍다 보니 카페 동쪽에 두터운 모즙나무 껍질 지붕을 이고 있는 일본식 초가 가옥이 있다. 호수 가장자리에서 유명세를 즐기고 있는 '시탄유(下ん湯)'라는 노천온천이다.

이 조그만 노천온천이 유명한 이유는 이 온천이 남녀가 한 탕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혼탕이기 때문이다. 이 노천온천에서 온천을 하면 온천 밖에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고 소문난 곳이다. 젊은 여자는 보이지 않고 할아버지들만 가끔 보인다는 소문도 들리는 곳이다. 그래서 이 온천은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무언가 혼탕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여행객들이 들르는 곳이다.

남녀혼탕, 궁금해서 슬쩍봤더니... 에계

시탄유 호수 옆의 남녀 혼탕이지만 아무도 없었다.
▲ 시탄유 호수 옆의 남녀 혼탕이지만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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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시탄유 안을 슬쩍 들여다봤다. 작은 온천탕 내부에는 온천을 관리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온천을 즐기고 있는 사람도 없다. 삼나무탕과 노천탕 2개의 탕이 있는데 공중 목욕탕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다. 입장료는 탕 입구의 통에 양심껏 넣게 돼 있다. 나름 분위기 있는 온천탕이지만 수많은 여행객들이 오가는 긴린코 한복판에서 옷을 벗고 온천을 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나는 아내와 오랜만에 단둘만의 기념사진을 긴린코 호수 곳곳에 남겼다. 딸 신영이가 빠진 여행이라 무언가 허전하지만,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도 즐겁다. 나는 아내와 서울에서의 생활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눴다.

란푸샤 프랑스식 레스토랑으로 호수의 정경을 사랑하는 연인들이 찾는 곳이다.
▲ 란푸샤 프랑스식 레스토랑으로 호수의 정경을 사랑하는 연인들이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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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남기며 긴린코 호수의 남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호수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건물이 있다. 료칸(여관)이라고 예상하고 주변의 일본사람에게 물으니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프랑스식 레스토랑 '란푸샤(ランプシャ)'는 조용하고 여유 있는 외관이 긴린코의 잔잔한 수면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호수가 바로 눈 앞에 있고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가에서의 식사는 눈이 부실 것이다. 저녁식사로 료칸 가이세키(會席) 요리가 기다리고 있기에 고풍스러운 식당 안에서 호수의 풍경을 감상하는 연인의 대열에 낄 수는 없었다.

나무 난간에 기대 호수를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잉어들이 호수 위에 입을 올려놓고 뻐금거린다. 따뜻한 물속에 잉어가 편히 놀고 있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따뜻한 온천의 물에 적응된 이 잉어들은 차가운 물속에 넣어두면 아마도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호수 위에는 왜가리가 휙 날아오기도 한다. 이 호수 속의 작은 잉어를 잡아먹고 사는 왜가리다.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섰더니 왜가리는 내가 날 수 없는 하늘로 멀리 날아간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어둠 속의 긴린코를 떠났던 나는 다음날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긴린코의 유명한 아침 물안개를 놓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제 많이 걸어서 두 다리가 뻐근하고 몸이 노곤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여행 경험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기상시간 몇 분만 참으면 여행지의 놀라운 아침이 펼쳐지는 경험 말이다. 나는 오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나서 료칸의 따뜻한 이불 밖으로 빠져나왔다.

료칸에서는 투숙객들에게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고 있었다. 자전거에는 도난방지용 열쇠도 채워져 있지 않다. 정말 오랜만에 타보는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온천 마을의 아침은 고요함 속에 신선하다. 자전거 옆으로 깔끔한 일본 가옥들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적막 속에 잠겨 있다. 논 사이로 시원스레 뚫린 포장도로를 자전거로 달렸다. 초록이 시들어가는 천변에는 긴린코 호수에서부터 흘러나왔을 물이 가득 흐르고 있다. 나는 이 서정적인 온천마을의 아침 정경이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수에 드라이아이스를 뿌렸나요?

텐소진자 호수 위에 신사의 도리이가 아스라이 떠 있다.
▲ 텐소진자 호수 위에 신사의 도리이가 아스라이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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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속에 도착한 아침의 긴린코 호수. 예상대로 아침의 몽환적인 물안개가 호수 위에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물안개는 호수 위에 낮게 깔려 호수에 가득했다. 마치 TV의 가요무대에서 시각적 효과를 위해 드라이아이스를 엄청뿌려놓은 것처럼 호수 위에는 안개가 가득 찼다. 호수 아래에서 흘러들어온 따뜻한 온천수가 이른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 호수 전체에 멋진 물안개가 생긴 것이다. 아침 안개와 호흡을 맞추듯이 호수 주변의 역사 오랜 료칸 온천에서 모락모락 올라온 김이 무리를 지어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긴린코 여행객 여행자들은 호수의 적막 속에서 고요함을 유지한다.
▲ 긴린코 여행객 여행자들은 호수의 적막 속에서 고요함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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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너머 저편에는 신사 입구를 장식하는 두 개의 기둥 문, 도리이(鳥居)가 신비한 모습으로 아스라이 떠 있다. 물 속에 외로운 도리이가 떠 있는 곳은 텐소진자(天祖神社). 호수 반대편의 도리이는 긴린코 호수를 건너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다. 반짝이는 호수 속의 도리이는 마치 호수를 장식하는 장식물같이 한 자리에 우뚝 서 있다.

긴린코의 물안개 따뜻한 온천호수와 차가운 공기가 만나 물안개가 자욱하다.
▲ 긴린코의 물안개 따뜻한 온천호수와 차가운 공기가 만나 물안개가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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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린코 호수의 안개에 갇힌 물결은 잔잔하기만 하다. 바람이 불어오면 호수 위에 잔물결이 흔들거린다. 아침 안개를 만나러 나온 여행자들은 긴린코의 고요함에 압도돼 호수의 적막을 깨지 않고 있다.

호수의 물안개 나는 물안개의 환상을 가슴 속에 담았다.
▲ 호수의 물안개 나는 물안개의 환상을 가슴 속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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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온천의 물안개를 관조하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물안개 자욱한 긴린코의 아득한 모습을 가슴에 깊이 담았다. 나는 다시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아내가 잠들어 있는 료칸으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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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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