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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내를 태운 버스는 어느새 일본 규슈(九州)의 살아 숨쉬는 화산, 아소산(阿蘇山)을 오르고 있다. 아소산의 험준한 능선을 오르던 버스는 아소산니시역(阿蘇山西駅)이 가까워지자 고원지대의 광활한 풍광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걸어서 올라왔으면 3~4시간은 걸렸을 산행이지만 아소산의 관광거점인 나카다케(中岳 1,506m)까지 버스가 손쉽게 올라가고 있다. 

아소산의 펄펄 끓는 분화구를 제대로 보는 것은 하늘이 허락해 주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아소산 입산은 당일 날씨 뿐만 아니라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황증기의 흐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늘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하늘은 더 이상 푸를 수 없을 정도로 푸르며 하늘엔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버스가 멈춰 서서 내리니 아소산 분화구로 우리를 안내할 아소산 로프웨이 역이 바로 앞이다.

아소산을 오르는 거점으로서 로프웨이가 출발한다.
▲ 아소산니시역 아소산을 오르는 거점으로서 로프웨이가 출발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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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선 버스 짐칸에 실어두었던 큰 여행가방을 내려서 역 안으로 들어갔다. 로프웨이 역 안에 큰 여행가방을 맡기는 곳이나 코인 라커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 입구에 몇 개 있는 라커에는 우리 가방이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역 2층의 로프웨이 표를 사는 곳에 여행가방을 끌고 가서 가방을 맡길 수 있는 곳이 없느냐고 물었다. 역의 안내원 아가씨가 매표소에서 나와서 직접 내 가방을 로프웨이 회사 사무실 안에 넣어주고 번호표를 준다. 큰 짐을 맡기고 나니 몸이 한결 가뿐하다. 

아소산니시역에서 나카다케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서 나카다케를 구경하고 보도를 따라 걸어서 내려온다. 자유여행은 다리로 걸을 일이 많아서 다리가 쉽게 피곤해지기에 로프웨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쾌적한 여행을 선호하는 아내를 위해서도 나는 로프웨이를 택했다.

로프웨이를 기다리는 승강장 앞에는 로프웨이 이용 안내문이 있고 여러 나라 말로 설명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 한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로프웨이 타는 곳이라고 하지 않고 '케이블카 타는 곳'이라고 적혀 있다. 한국에서 많이 쓰는 단어를 사용하는 세심함이 돋보인다. 로프웨이를 타기 위한 대기줄을 서는 곳 앞에는 간이 신사도 만들어져 있다. 빨간 글씨 경고판에는 화구 주변에 화산가스가 흐르기 때문에 천식, 기관지 질환자, 심장이 나쁜 사람은 등산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관광객들을 태우고 아소산 분화구까지 천천히 이동한다.
▲ 아소산 로프웨이 관광객들을 태우고 아소산 분화구까지 천천히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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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웨이는 아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1958년에 설치된 아소산 로프웨이의 디자인은 투박하지만 잘 관리되어 깔끔하기만 하다. 로프웨이에는 젊은 부모와 함께 탄 일본 아이가 우리 옆에 서서 창 밖을 구경하고 있다. 아주 어린 이 녀석은 아소산에서 내려오는 로프웨이를 보고 "버스다!"라고 소리쳐서 한순간 우리 모두를 웃게 만들었다. 워낙 크게 잘 웃는 아내를 보면서 젊은 일본인 부부도 함께 웃었다.

진동도 없이 천천히 올라가는 로프웨이 밖으로 살아 숨쉬는 화산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자라는 나무 한 그루 없이 진한 갈색의 풀밭이 깔린 산마루가 로프웨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금씩 화산의 황 냄새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나는 고저 108m의 로프웨이를 이용하면서 마치 미지의 행성에 올라가는 듯한 묘한 감흥을 느꼈다.  

나와 아내는 해발 1258m의 아소산 나카다케 분화구 앞에 발을 내렸다. 로프웨이에서 내려 주변을 사진 찍고 있으려니 아내가 길잡이를 하려는 듯 나카다케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아내가 한참 걸어갔던 길을 되돌려 나카다케 서쪽에 있는 카코니시 전망소(火口西 展望所)에 먼저 올라보자고 했다. 나카다케를 보고 동쪽의 등산로를 따라 아소니시역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소산의 서쪽부터 답사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 시에 사람들이 대피하기 위한 시설이다.
▲ 피난시설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 시에 사람들이 대피하기 위한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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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소 쪽으로 가다보니 분화구 방향으로 엄폐된 둥근 원통 모양의 콘크리트 대피소가 묘하다. 10만년 전의 대폭발로 만들어진 아소산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예고를 하고 폭발하지 않는다. 이 대피소는 1950년 이후에 아소산이 두 번이나 폭발을 거듭하고 1958년에 화산폭발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만들어진 시설이다.

아소산은 지금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콘크리트 대피소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화산이 폭발하고 화산재가 쏟아져 내리면 구멍 뚫린 작은 대피소 안에 숨는 게 더 안전할까? 나 같으면 산 아래로 한시라도 빨리 뛰어 내려가는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다. 화산 분출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 대피시설에서 잠시 용암과 화산재를 피하더라도 화산이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서 열심히 산 밑으로 달리기를 해야 할 것이다.

아소산 나카다케의 능선 위에 올라서니 하늘은 푸르고 태평한데 강풍이 휘몰아친다. 모자를 손으로 잡지 않으면 모자는 언제든지 내 머리에서 떠날 태세다. 나는 곧 날아갈 듯한 모자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며 오랜만에 내 단독 사진을 찍었다. 바보같은 내 행동에 아내도 웃고 지나가던 서양 청년도 실실 웃으며 지나간다.

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 냄새를 맡으며 나는 전망소의 계단을 올랐다. 전망소 위에는 유럽에서 온 듯한 청년들이 주변의 화산경관을 차분하게 관조하고 있었다. 별로 사진을 찍지 않는 아내가 핸드폰을 꺼내들더니 전후좌우의 장엄한 정경들을 사진에 담고 있다. 전망소 위에도 화산을 건너온 바람이 사람들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고 아내의 머리카락은 정돈이 불가능할 정도로 헝클어지고 있었다.

아소산의 대표적인 다섯 봉우리 중의 하나이다.
▲ 에보시다케 아소산의 대표적인 다섯 봉우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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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소에서 보니 아소산(阿蘇山)을 이루는 해발 1000m가 넘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 즉  아소고다케(阿蘇五岳) 중에서 에보시다케(烏帽子岳 1337m), 기시마다케(杵島岳 1326m)가 너른 고원 뒤로 우뚝 솟아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동쪽을 보니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활화산, 나카다케(中岳 1506m)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아소고다케 중 가장 높은 다카다케(高岳 1592m)와 함께 네코다케(根子岳 1433m) 봉우리는 거대한 나카다케 너머에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인 아소산의 자연은 가슴이 벅차 오를 정도로 웅대했다.

날씨가 좋은 날에 아소산에 오른 사람은 화구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
▲ 나카다케 화구 날씨가 좋은 날에 아소산에 오른 사람은 화구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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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망소에서 내려와서 드디어 세계 최대의 칼데라(caldera) 중 하나인 나카다케로 향했다. 화산가스가 포함된 나카다케의 바람이 여행자들을 향하면 여행자들은 이 활화산을 구경도 하지 못하고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다행히 나카다케의 바람은 우리를 향하지 않았다. 아소산 안내도 위쪽의 청색, 녹색, 황색, 적색의 안전 레벨 램프를 확인해 보았다. 오늘은 다행히 나가다케 주변의 화산가스가 안전함을 나타내는 파란색 불이 들어와 있다.

화구에 화산가스가 많고 사람 방향으로 향하면 화구를 구경할 수 없다.
▲ 화산가스 경고문 화구에 화산가스가 많고 사람 방향으로 향하면 화구를 구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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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폭발로 생성된 드넓은 고지의 초원 위에 나카다케의 칼데라 호수가 있고 호수 물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화구(火口) 호수 아래의 온도는 1000℃. 화구에서 끊임 없이 올라오는 뜨거운 김은 이곳이 살아 숨쉬는 활화산임을 웅변하고 있다. 나카다케의 분화구 주변으로 묘한 열기가 퍼지고 있었다.

이 나카다케 제1화구는 화산활동 중인 분화구를 관광객들이 유일하게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분화구 앞에 서보니 왜 아소산이 세계의 수많은 화산 분화구 중에서 으뜸으로 꼽히는지 몸으로 느끼게 된다. 나는 이 나카다케의 분화구를 보면 7년 동안 행운이 따른다는 속설도 진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악마의 입 같은 화구가 에머랄드 빛으로 빛난다.
▲ 나카다케 제1화구 악마의 입 같은 화구가 에머랄드 빛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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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사실은 오늘같이 날씨 맑은 날에 화산 호수가 에메랄드 빛으로 찬연하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산 호수에 녹아든 광물질이 햇빛에 반사되고 있는 것일까? 아내는 꿈틀거리는 화산호수가 어떻게 에메랄드 빛을 하고 있는지 감탄을 연발하고 있다. 분화구 속에는 두려움과 신비함도 공존하고 있었다. 악마의 입 같은 화산 호수가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움은 마치 괴로움 속에 한줄기 스며드는 희망과 같이 묘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세계 제일의 화구 앞에서 모두들 기념사진을 남긴다.
▲ 아소산 등산기념 세계 제일의 화구 앞에서 모두들 기념사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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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고 있는 나카다케 분화구 바로 앞에서는 괴이하게도 분화구에서 채집한 노란 고체 유황을 팔고 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가기 때문인지 무좀, 땀띠에 좋고 바퀴벌레를 퇴치하는데 사용된다고 한글로 광고하고 있다. 유황이 살충효과가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화산이 많은 일본의 유황은 품질이 좋기 때문에 실제로 효험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나는 유황 파는 아저씨에게서 유황은 사지 않고 나와 아내의 기념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나카다케의 활화산 제1화구 안내도가 바로 이 아저씨의 유황 노점 바로 앞에 있고 '아소 국립공원. 세계 제일의 화구'라는 문구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유황 파는 아저씨는 무뚝뚝하기는 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만들어놓은 듯한 작은 사다리에 올라가 우리 기념 사진을 여러 장 찍어줬다.

살아 있는 제1화구 옆에는 불꽃이 사그라든 수많은 화구가 있다.
▲ 제4화구 살아 있는 제1화구 옆에는 불꽃이 사그라든 수많은 화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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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은 불길이 사라진 나카다케의 제2화구에서 제7화구까지 모조리 구경하면서 서서히 이동했다. 오늘 아소산에 오른다는 내 말에 별 반응이 없었던 아내는 직접 아소산을 감상하며 예상치 못한 풍광에 놀라고 있었다. 아내는 처음 보는 이색적인 경치를 차분히 감상하며 감탄을 연발하고 있다. 우리는 아소산을 내려오면서 아소산니시역까지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하산길은 능선을 따라서 구불구불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시커먼 화산재가 그득한 주변 경관을 제대로 느끼면서 산보했다. 나는 황량한 들풀만이 자라는 활화산을 아내와 손을 잡고 내려왔다.

분화구에서 아소산니시역까지 걸어서 이동하면 이국적인 풍광을 즐길 수 있다.
▲ 아소산 보도 분화구에서 아소산니시역까지 걸어서 이동하면 이국적인 풍광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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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고원의 한적한 산책로 위로 서양의 여행객 3명이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오고 있었다. 건강해 보이는 젊은 그들은 모두 여유있게 웃고 있었다. 나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자연을 즐기러 올라가는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마치 다른 혹성의 황량한 들판 위를 걷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풍광을 보여주는 아소산. 절대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숨 막히는 아름다움이다. 역시 여행은 잊을 수 없는 매력을 선사하는 마력이 있으며, 내가 다시 여행길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규슈, #아소산, #나카다케, #분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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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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