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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 모습.
 서울 신촌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 모습.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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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를 강화하는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이에 반발하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대해 출판사들이 공급 정지를 선언하고, 독자들 역시 찬반 양론으로 갈려 있다. 도서정가제의 필요성, 그리고 함께 생각해볼 문제들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한다.

현행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발행 후 18개월 미만의 신간 도서에 대해 소비자 판매 가격을 출판사가 정하고, 서점 등 판매업체가 이를 준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듯이 매우 광범위한 할인이 이루어지면서, 정가대로 판매하는 서점이나 정가로 구입해도 좋다는 소비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법에서는 엄연히 정가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예외 조항이 많아서 입법 취지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즉 현행법에 의한 도서정가제에서는 법정 보호기간인 18개월 미만의 도서라 해도 정가의 10% 기본 할인율에 판매시 마일리지 적용 등이 가능한 추가 할인율(판매 가격의 10%)까지 총 19%의 할인을 기본으로 허용한다. 또한 발행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구간 도서와 실용서 및 초등 학습참고서는 정가 판매 대상이 아니다.

실용서와 초등 학습참고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편집저작물로서의 창작성과 예술성이 약하다는 기이한 논리로 2005년 및 2007년부터 정가제의 순차적 일몰제 계획에 따라 일방적으로 정가 판매 대상에서 제외시켰으나 출판법 개정 이후에도 복권되지 못하고 있다. 또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사회복지시설, 군부대 등에서 도서를 구입할 경우에도 정가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무늬만 도서정가제... 당신이 모르는 비밀

이렇게 정가제 적용 예외가 많다보니 '무늬만 도서정가제', '골다공증 도서정가제'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에 필자가 국내 최대 매장 규모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의뢰해 확인해보니, 당시 국내도서 재고 약 43만 종 가운데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은 12.8%에 불과했다. 이조차 19% 할인이 가능한 책이다. 이런 상황은 당초의 입법 취지는 오간 데 없고 '도서 할인 촉진제도'라는 괴물이 출판시장을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차라리 법이 없는 것만도 못한 유통질서 혼란과 거품가격, 중소 출판사와 서점의 시장 퇴출을 초래해 유통 지배력이 있는 할인판매업체의 배만 불려주었을 뿐 저자, 출판․서점업계, 도서 구매자 모두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신간 도서에 대한 명목상의 정가제 적용은 구간 도서의 과당 할인 경쟁을 부르는 '풍선 효과'를 조장했다. 50% 이상 할인은 물론이고, 1000원, 3000원 균일가 판매 등 도서정가제가 없는 나라보다도 더 심한 할인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구간 중심의 판매 구조는 새로운 책의 출판을 감소시키는 역기능을 불렀다.

우리나라에서 책은 부가세 10% 면제,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무상의 도서관 시스템 운영, 학교에서의 독서교육과 언론의 신간 안내 보도, 독서문화진흥법의 존재 등 준공공재로서의 특징이 분명함에도 일반 소비재보다도 더한 할인 경쟁이 벌어지면서 자본력이 취약한 대다수 중소 출판사와 오프라인 서점의 존립 기반을 붕괴시켰다.

단적으로 1994년에 5683개이던 전국의 서점 수는 2011년에 1752개로 약 70%나 감소했다. 지역의 명망 있는 향토 서점들은 물론이고 대도시 유력 서점들까지 속수무책으로 폐업으로 내몰려, 전국 읍면동 2개마다 1개의 서점이 있을까 말까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여기에 스마트폰으로 상징되는 영상, 정보매체의 범람과 경제양극화 등 '책이 눈에 안 들어 올 만큼' 정신적 여유를 잃은 국민들의 독서율 감소, 가계 도서구입비 감소 등 책과 독서에 관한 기본 수요가 전반적으로 크게 줄어들면서 출판·독서 생태계 전체가 황폐화, 사막화되는 형국이다.

인터넷서점에서는 책 할인 행사가 자주 열린다.
 인터넷서점에서는 책 할인 행사가 자주 열린다.
ⓒ 알라딘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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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 개정안에서는 정가제 적용 범위를 신간과 구간의 구별이나 출판 분야별 제한 없이 모든 도서에 적용하되 정가의 10% 이내에서 할인(마일리지 포함)하도록 규정했다. 도서관 판매에 대해서도 정가제를 적용했다. 공정거래법으로 도서정가제를 원격 조종하지 못하도록 근거 조항을 없애고 특별법 규정으로서의 독립성을 견지했다. 그래서 정가제가 숙원인 출판․서점계는 대환영을, 할인을 성장동력으로 삼아온 일부 업체는 반발하는 형국이다.       

도서정가제는 과도한 시장 경쟁에 의해 책의 가격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최소한의 기반이다. 승자 독식이 아닌 저작, 출판, 유통 생태계의 유지를 위해 문화 선진국들이 특별법 등으로 예외 없이 도입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출판시장을 가진 영어권을 제외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 대다수 유럽 국가와 일본 등이 도서정가제를 철저히 시행함으로써 모국어의 지식문화 생태계를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나라 공정거래위원회나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백 부에서 수천 부 정도밖에 발행하지 않는 새 책이 1년에 5만 종 이상 발행되어 지식과 문화의 저수지 역할을 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구조이다. 5만 종 이상의 신간 중에는 판매가 어려워 적자를 보는 책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러한 출판시장의 특성을 고려하고, 종국적으로는 독자의 독서권을 보호하는 것이 도서정가제이다. 소비재 상품처럼 지역과 여건에 따른 가격 차이가 생기지 않도록 문화 공공재인 책의 판매가를 전국 균일가로 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완전 정가제 상품인 신문의 경우도 민주주의 가치 창달에 기여하는 언론의 기능을 중시한 제도적 선택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오해하듯, 도서정가제는 출판사나 서점의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가제를 강화하면 구입가가 올라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정가제를 해도 출판사가 적정 가격을 붙여 거품가격 없이 판매하면 할인한 것과 마찬가지 효과가 있고, 할인판매제를 한다고 해도 가격을 부풀린 다음 명목상의 할인을 한다면 소비자의 실제 이익은 기대하기 어려운 속임수에 불과하다. 출판사이건 서점이건, 모든 장사의 속성상 땅 파서 장사하는 사람도 없고 손해 보는 장사를 하는 사람도 없다. 정가제냐 자유가격제냐 하는 가격제도 여하에 따라 소비자 구입가에 큰 차이가 생길 가능성은 낮다는 말이다.

다만, 출판산업처럼 공급자 시장의 성격이 강하고 유사 상품이 많아서 경쟁 정도가 심한 분야는 드물다. 대부분의 책은 유사 도서가 많아서 강도 높은 경쟁가격(비슷한 책의 가격대 이상을 붙이기 어려운 눈치가격)으로 세상에 나오므로 다른 상품에 비해 가격 상승률이 매우 낮지만, 소비자의 할인 요구 정도가 강하고 할인이 일반화된 상황에서는 너나없이 할인 예정액을 거품가격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상황이 그렇다.

사회적 약자들도 편하게 책 읽으려면...

사실 우리나라의 도서정가제에서 아킬레스건은 선진국들과 달리 소비자의 가격(혹은 가격제도)에 대한 저항을 방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선진국들처럼 생활권 가까이에 규모 있는 공공도서관과 장서가 많아서 어떤 책이든 무료로 빌려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부터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는 문고본이나 페이퍼백 같은 염가본 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것이다.

멀리 있는 도서관이라도 열심히 다니는 열성적인 독자가 아니라면, 오로지 양장본 또는 반양장본을 구입해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체 수단이 없는 소비자들은 책값에 대해, 도서정가제라는 가격제도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도서정가제 자체가 아니라 독자를 둘러싼 사회적 독서환경(책의 입수 환경) 자체가 폭력적인 현실이라는 것이다. 소비자는 싸게 살 수 있는 독자의 권리가 박탈되는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다른 대안을 함께 강구하지 않고 가격제도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에 화를 내는 것이다. 관련 업계와 정부가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이다.

사회적 약자들도 부담이 없을 만큼 책값이 저렴해지기 위해서는 책 읽는 독자들이 많아져야 한다. 독서인구와 도서구입비가 늘어야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고 책의 생산 단가나 유통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정반대로 가고 있다. 도서정가제가 강화된다고 해도 출판시장에 미칠 순기능이나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 있는 것처럼, 가격제도가 여러 난제들을 해결하는 요술봉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가격경쟁의 이전투구 대신 다수 출판사, 서점 사업자의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만들어짐으로써 출판과 유통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거품가격의 폐해가 사라지는 등 독서 생태계의 선순환과 젖줄이 마르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모성' 역할 만큼은 분명히 발휘할 것이다.
       
일방의 주장을 넘어서,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면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일 때 공존과 발전이 가능하다. 그래서 도서정가제 개정 논란은 책값 제도만이 아니라 책을 둘러싼 한국문화 생태계의 빈곤하고 서글픈 자화상을 곧추세우기 위한 건강한 에너지로 삼을 필요가 있다. 책값 제도라는 담론의 입구로 들어가, 책 이야기로 시끌벅적한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입니다.



태그:#도서정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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