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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면전차의 좁은 승강장이 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 츠키마치역 인파 노면전차의 좁은 승강장이 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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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長崎)의 역사기행에 나선 나는 아내와 함께 데지마(出島)로 향했다. 데지마로 향하기 위해서는 노면전차 데지마(出島)역에서 내려야 한다. 차이나타운에서 나온 우리는 노면전차를 타기 위해 차이나타운 바로 앞의 츠키마치(築町·つきまち)역까지 걸어갔다.

대로 중앙차로의 좁은 승강장에는 차이나타운을 다녀온 많은 학생들의 뱀 같은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승강장에 잠시 서 있었지만 줄이 워낙 길어 첫 번째 도착했던 노면전차는 겨우 승객 몇 명만을 더 태우고 가버렸다. 다음 노면전차에 타기도 힘들 것 같고 노면전차도 도착하지 않고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나가사키 지도를 꺼냈다.

아직 나가사키 지리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데지마역까지는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였다. 차이나타운에 올 때 이용했던 노면전차의 역 사이 거리가 멀지 않았던 기억이 나서 아내에게 데지마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방향을 잡고 걸어가니 왜 승강장에서 기다렸는지 후회될 정도로 데지마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우리 눈앞에 데지마 남쪽의 호안석축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벌써 데지마에 도착한 것을 알게 됐다.

데지마는 원래 1636년에 일본의 최초 서양 무역 상대였던 나가사키 시내의 포르투갈인들을 격리해 거주시켰던 부채꼴 모양의 작은 인공섬이다.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상인들에 의한 기독교인 증가와 기독교의 평등사상 확산은 막부에게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포르투갈인들과 무역을 유지한 채 활동무대를 제한했던 것이다. 데지마의 섬 모양이 부채꼴인 이유도 일본인들이 유럽 상인을 감시하기 편하기 때문이었다.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면 부채꼴 모양이 인간의 시야와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1년 뒤에 포르투갈인들은 아예 데지마에서 쫓겨나고 네덜란드 상인들이 기독교 전파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데지마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일본은 아시아에 진출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기독교 포교 목적이 없었던, 네덜란드라는 무역 파트너를 만났던 것이다. 19세기에 일본이 미국에 의해 전면 개항을 하기 전까지 200여 년 동안 네덜란드는 일본의 유일한 서양 교역국이었고 데지마는 일본의 근대화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세기 초 일본을 만나다

검은 교복은 입은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데지마 입구 검은 교복은 입은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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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데지마 입구에 도착해서 일본 역사의 타임머신을 타는 입장권을 샀다. 데지마 입구에는 꽤 많은 수의 일본 고등학생들이 답사여행을 와 있었다. 얌전해 보이는 이 학생들은 일본인 관리의 복장을 한 직원들과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여학생들이 손에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는 것도 우리나라와 너무 닮았다. 내가 중학생 때 입었던 상하 모두 검은 교복을 이들은 아직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제국주의적인 중고등학생 검정 교복을 21세기에도 한 치의 변함 없이 그대로 입는 것을 보면 일본은 참 알다가도 모를 나라다.

나는 입구에서 한국어로 된 팸플릿을 받아 들고 데지마 안으로 들어갔다. 팸플릿 제목은 '되살아나는 데지마'라고 돼 있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매립이 시작되었던 데지마는 1904년에 완전히 자취를 감췄는데 현재 그 역사적 가치를 살리기 위한 데지마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데지마는 데지마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 10채를 복원해 여행자들을 만나고 있다. 데지마 입구를 넘어서자 19세기 초의 데지마가 눈앞에 펼쳐졌다.

네덜란드 상선의 선장의 집으로 다다미 방 위에 서양식 가구들이 있다.
▲ 제1호 선장실 네덜란드 상선의 선장의 집으로 다다미 방 위에 서양식 가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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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를 즐기는 나는 네덜란드선 선장과상관원들이 주택으로 사용했던 건물에 들어섰다. 바닥이 다다미인 방으로 올라서기 위해서 나는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다다미의 정갈한 바닥에 발이 닿는 감촉이 참 좋다. 1층의 창고를 지나 목제 계단으로 2층을 오르니 침대와 가구장, 테이블 등 당시의 가구로 장식된 거실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널찍한 다다미가 아늑해 보이고 정말 쉬고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편안해 보인다.

집 구경하기 좋아하는 아내도 감탄사를 연발 중. 완전히 사라졌던 데지마의 집을 복원한 것이지만 마치 당시 네덜란드인들이 사용하던 그대로의 모습인 양 거짓말같이 재현돼 있다. 내부가 잘 정돈된 건물과 방은 마치 모델하우스 같지만 건물의 내력을 보면 일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곳 중의 하나다.

데자마, 서양 문물을 수용하게 된 기초

일본과 네덜란드의 제1교역품이었던 설탕의 무게를 재던 저울이다.
▲ 설탕 저울 일본과 네덜란드의 제1교역품이었던 설탕의 무게를 재던 저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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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선 선장의 집 바로 옆에는 당시 일본의 최대 수입품이었던 설탕을 보관하던 제1창고가 있다. 건물 내부에는 발굴조사 시 발견된 데지마의 건물 기초석 등 데지마를 복원공사하던 과정을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다. 창고의 벽은 귀중한 교역품을 화재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서 내화 구조의 두꺼운 흙벽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그 흙벽 안에 설탕의 무게를 재던 목제 저울이 균형추를 잡고 서 있다. 일본에서 최초로 이 창고로부터 전래된 설탕은 나가사키의 카스테라를 만들고 여러 양과자를 만드는 역사를 시작했다.

일본의 전통 가옥 안으로 들어가서 이것저것을 둘러보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다. 하지만 건물을 복원하기 위해 사료를 점검하고 전통공법에 따라 데지마 건물들을 복원했음을 마치 대학교재의 사진 설명과 같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있을 작은 박물관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모두 읽어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창고 옆의 네덜란드 서기장 주택도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무역 장부 등을 기록하던 서기장의 주택은 당시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난학(蘭學)과 네덜란드의 문물을 소개하는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을 통해 들어온 문물은 다양했다. 감자·토마토·커피·초콜릿·맥주 등의 음식 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배드민턴 그리고 코끼리·낙타같은 동물들이 데지마를 통해 일본에 유입됐다. 이처럼 네덜란드를 통해 들어온 서양학문과 문물은 19세기 미국에 의한 강제 개항 이후에 서양의 문화를 무리 없이 수용하는 기초가 됐다.

멋지게 재현된 카피탄 주택 앞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한다.
▲ 카피탄 주택 멋지게 재현된 카피탄 주택 앞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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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앞에 서서 보니 유럽식 목조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색 목조 건물인 주변의 건물들에 비해 이 유럽 건축물은 하늘색과 잘 어울리는 개성 강한 민트 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골동품 같은 문 위의 램프를 보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데지마의 네덜란드 상관장(商館長)을 이르는 '카피탄(カピタン)'이 사무소 겸 주택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기독교를 믿던 네덜란드인들은 이곳에서 화려한 만찬을 즐겼다.
▲ 크리스마스 식탁 기독교를 믿던 네덜란드인들은 이곳에서 화려한 만찬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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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탄 주택은 데지마의 생활을 유물과 영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유물 사이에서 한 미니어처가 아주 인상적인 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마치 조선 통신사들이 일본을 방문하는 행렬도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미니어처다. 네덜란드 상관장이 1년에 한 번씩 수도인 에도(江户)의 막부를 만나러 가는 행렬이다. 이 긴 행렬 속에서도 호기심이 많은 일본사람들은 네덜란드 상인들을 따라다니면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네덜란드 상관원들은 1년에 한번 에도에 행차하며 서양문물을 전파했다.
▲ 상관장 에도행차 네덜란드 상관원들은 1년에 한번 에도에 행차하며 서양문물을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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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탄 주택 2층은 상관장의 생활모습을 미니어처와 재현된 가구, 다양한 소품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일본식 다다미 방의 벽면에는 일본 화풍의 소나무가 그려져 있지만 창문과 테라스의 전등은 모두 네덜란드식이다. 당시 데지마의 관장과 15명 정도의 상관원들은 하루에 2번, 이 카피탄 주택 2층에 모여서 식사를 했다.

만찬을 즐기는 네덜란드 상인 옆에서 시중을 드는 식민지 사람들이 보인다.
▲ 만찬 미니어처 만찬을 즐기는 네덜란드 상인 옆에서 시중을 드는 식민지 사람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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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거실 한 중앙에는 당시 네덜란드 상인들의 화려했던 만찬 모습이 미니어처로 잘 재현돼 있었다. 고기를 자르고 와인을 마시는 네덜란드 상인들 옆에서 음식 시중을 드는 하인들과 흥을 돋우는 악사들이 모두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데려온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다. 유럽인들에게 착취 당하는 당시 아시아인들의 모습이 측은하게 다가온다. 이 미니어처를 보고 있으면 당시 일본인들이 갈구했던 선진 문물을 가져온 네덜란드 세력이 호화로운 식사를 즐기며 부를 쌓는 활동에 집중한 사람들이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카피탄의 주택 창문 너머로 일본인 관리의 사무동이 나란히 보인다. 카피탄 주택에서 유심히 살펴봐도 일본인 관리의 방 내부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 일본인 관리의 사무동으로 들어가 봤다.

유럽을 대한 일본인의 태도, '수용'과 '경계'

일본인 관리들은 이곳에서 사무도 보고 네덜란드인들을 감시했다.
▲ 일본인 관리 사무동 일본인 관리들은 이곳에서 사무도 보고 네덜란드인들을 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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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지마 내에서 가장 화려한 카피탄의 주택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인 관리의 가옥 내부는 모두 일본식으로 돼 있는 소박한 일본적인 공간이다. 의자 없이 생활한 일본인들의 다다미 방은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겨울에는 꽤 추웠을 것 같다. 데지마를 직접 축조한 평민 중에서 뽑힌 일본인 관리는 이곳에서 무역사무와 함께 데지마 관리 업무를 맡았다. 일본인 관리들은 이곳에서 네덜란드 무역선이 왔을 때 수입품과 수출품의 목록을 하나도 빠짐없이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일본인 관리의 사무동 창문에서 보니 네덜란드 상관장, 카피탄의 방 내부가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였다. 일본인 관리들은 이 사무동에서 네덜란드 상인들을 철저히 감시했다. 일본인 관리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자기들에게 보고하지 않은 일을 하거나 딴 짓을 하는지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그만 인공섬의 작은 공간에서만 유럽과의 교역을 허가한 것이나 데지마 내의 관리사무소 격인 일본인 관리 사무동에서 유럽인들을 감시한 것을 보면 일본인들이 유럽의 문화를 배우고 장사를 하면서도 그들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알 수 있다.

데지마에는 아직도 복원이 진행 중인 여러 건물터가 눈에 들어온다. 꼼꼼한 일본인들은 정확한 고증을 위해 앞으로도 10년 정도 복원사업을 더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본 근대사의 역사적인 유적을 완벽하게 복원하려는 노력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씁쓸한 것은 왜일까.

일본인 관리 복장을 입은 직원들이 옛 시대를 재현하고 있다.
▲ 데지마 일본인 관리 일본인 관리 복장을 입은 직원들이 옛 시대를 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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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창이었던 데지마는 이제 육지의 섬 같이 말끔하게 복원되었고 일본인 관리 복장을 한 직원들이 곳곳에서 학생·관광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완전히 사라진 유적 위에 마치 테마파크의 드라마 세트장 같이 복원된 여행지이지만 세계로 열려 있었던 일본의 작은 창을 둘러보는 마음 속의 느낌은 간단치 않다.

1653년 제주도에 표착했던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 일행도 바로 이 나사사키 데지마에 가던 길이었다. 아쉽게도 당시 조선 조정은 이 네덜란드인 표류자 36명을 13년 동안 억류시키면서도 서양의 문물에 조금도 접근을 하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데지마라는 창구를 통해 실눈을 뜨고 조금씩 근대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시 일본인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을 정도로 데지마는 닫힌 공간이기도 했지만 작은 창은 미약하나마 세계를 향해 열려 있었다. 외국과 교류하지 않는 국가는 뒤처지고 먹히는 냉엄한 지구촌에서 조선이 일본에 뒤처지는 결정적인 계기는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비가 와서 심란하던 날씨는 조금씩 풀려가고 있었다. 나는 아내와 데지마를 나와 또 다시 노면전차에 몸을 실었다. 평일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노면전차에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노면전차에 적힌 역이름과 지도를 대조해보면서 다음 여행지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태그:#일본여행, #큐슈, #나가사키, #데지마, #카피탄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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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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