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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장 시절을 담은 회고록 <좌우지간 인권이다>(살림터)을 출간한 안경환 서울대교수.
 국가인권위원장 시절을 담은 회고록 <좌우지간 인권이다>(살림터)을 출간한 안경환 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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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의 위상 추락은 이미 잘 알려졌다. 그 신호탄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안경환(64) 전 국가인권위원장의 사퇴다. 2006년 10월 제4대 인권위원장에 취임했던 그는 임기를 3개월가량 남긴 2009년 7월 위원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인권위에 몸담았던 시절을 되돌아본 회고록 <좌우지간 인권이다>(살림터)를 12일 출간했다. 인권위원장을 그만둔 지 3년 7개월 만이다. 안 교수는 인권위원장 재임 당시 틈틈이 써둔 메모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써냈다. 출간 다음날인 13일 만난 그는 "회고록에 인권위의 독립성이 추락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담았다"고 말했다.

그의 회고록에는 인권위가 홀대당한 사실이 실감나게 적혀있다.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에 인권위 현황 보고를 하러 간 직원이 서류 접수를 거부당하는 등 문전박대 당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또 공식석상에서 이 대통령이 안 교수 전까지만 악수를 하고 곧바로 단상으로 올라간 일도 소개됐다.

안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의 독립성을 부정하려 했다"며 "차기 박근혜 정부는 이 기록을 참고해 그러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인권위 위상 회복은 미룰 수 없는 차기정부의 중요 과제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차기 박근혜 정부의 인권 정책을 두고 우려가 제기되는 게 현실이다.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인권위가 차기 정부의 인권과제를 전달하자 "당선인의 공약과 일치하는지 검토해야 한다"며 '공개 유보'를 요구해 논란을 빚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시절 '사형제 찬성' '질서 유지 강화' 등의 방침을 내비친 것을 두고, 새 정부에서 인권 영역이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안 교수는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뜻인가"라며 "사형제 폐지가 추세인 국제사회의 기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도 사형제 집행은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타인의 아픔을 달래고 보듬는 여성의 미덕이 박 당선인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며 "차기 정부의 인권 수준은 앞으로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 당선인에게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 국제사회에서 실추된 한국의 인권수준을 만회해야 한다"며 "'옆을 보며 처진 사람과 함께 간다'는 자세로 복지·노동권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이명박 대통령은 나 재임시 업무보고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안경환 "인권위는 이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밉보였다."
 안경환 "인권위는 이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밉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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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3년 남짓 인권위원장 재임 기간을 좌파 정부인 노무현 정부와 우파 정부인 이명박 정부에 나눠 근무했다. 당시 일하면서 '정권이 교체되는 기간 동안 업무 변화가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인권위 활동은 정권연장과 관계없이 일관돼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차기 정부는 인권위가 어떤 기관인지를 제대로 알고, 이 책을 참고해 인권정책을 수립하길 바라며 단행본을 내게 됐다."

-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인권위가 홀대 당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인권위 업무보고도 받지 않았다는 게 사실인가.
"그렇다. 인권위는 독립기관이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장에게 정기적으로 업무를 보고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있을 당시 인권위 업무보고를 단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 인수위에 인권위 현황 보고를 하러 간 직원이 서류 접수를 거부당해 결국 '그냥 두고 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취임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공식·비공식 요청을 보냈지만 회신이 없었다. 이렇듯 인권위는 이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밉보였다.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전환한다'는 인수위 조직 개편안에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 책에는 인권위가 수난을 당한 이야기도 자세하게 소개됐다. 대표적 사례는 무엇인가.
"2008년 촛불정국 이후 인권위 조직 축소다. 당시 인권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경찰 공권력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진정이 쇄도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촛불집회에서 경찰의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는 의견서를 냈다. 그러자 감사원은 예정에 없던 인권위 직무감사를 실시했다. 이어 정부는 2009년 3월 인권위 조직 축소를 단행해 정원의 21%를 줄였다.

조직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 출신 직원들도 수난을 겪었다. 시민사회단체 출신 직원들 중에는 별정직·계약직 공무원이 많았다. 그런데 조직이 축소되면서 별정직 공무원 자리가 없어지자, 시민사회단체 출신 직원들도 인권위에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됐다."

-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2009년 7월 인권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인권위 홀대·축소가 결정적 계기였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2009년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부의장국이었던 한국 인권위는 2010년 차기 의장국이 되기로 사실상 국제사회의 합의가 이뤄져 있었다. 의장직 역시 의장국의 대표인 한국 인권위원장이 맡도록 돼있었다. 문제는 임기가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당시 인권위원장이었던 나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자리를 비켜주고 후임 인권위원장이 차기 의장이 될 수 있도록 지지해주기 위해 물러났다."

- 그러나 한국 인권위가 ICC의 차기 의장국이 되지 못했다.
"아쉽다. 내 후임자는 국제사회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감당할 수가 없어 포기했다고 들었다."

- 뒤이어 들어온 현 위원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현재 인권위 업무와 관련해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 말할 입장은 아니다. 다만 내가 지난해 현 위원장의 연임에 반대하며 글까지 썼던 이유는 있다. 현 위원장 체제의 인권위가 정부에 당당하지 못했던 예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직원들을 성향에 따라 분류해 한 쪽을 탄압했다. 인권위원장으로서 매우 잘못된 처신이었다."

"박 당선인, 국제사회서 실추된 인권 수준 만회해야"

안경환 "이 정부에서의 인권 수준 후퇴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통해 드러났다." "박 당선인이 이를 만회하면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안경환 "이 정부에서의 인권 수준 후퇴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통해 드러났다." "박 당선인이 이를 만회하면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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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박근혜 정부에서는 인권위의 지위와 역할이 어떻게 변해야 할까.
"인권위는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기구다. 설립 당시부터 그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인권위의 독립성이 나름 지켜졌다. 이명박 정부는 독립성을 훼손했고 오히려 이를 부정하려 했다. 박 당선인에게 의지가 있다면, 우선 인권위가 독립기구로서 업무를 수행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좌우가 아닌 인권위 고유의 업무를 찾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인권위가 영속적 기구가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 인권위를 헌법기구로 만들어 인권위의 지위를 보장하는 방법도 있다."

- 일각에서는 차기 정부에서 인권 영역이 축소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안 교수 역시 책에서 박 당선인이 후보 시절 "사형제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에 우려를 표했다.
"박 당선인이 사형제 발언을 할 당시 국제적인 안목을 잘 모른 채 눈앞에 닥친 국내정치적 상황만을 본 경향이 있었다고 본다. 세계적인 추세는 사형제 폐지다. 유럽연합은 사형제 폐지가 가입의 전제조건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15년 동안 사형을 한 건도 집행하지 않아 2007년 말부터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돼있다. 이 시점에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대통령이 되면 실제로 사형을 집행하겠다는 뜻인가. 이명박 정부도 초반에 사형을 집행하려 했지만 하지 못했다.

그래도 차기 정부에서의 인권 수준은 앞으로 두고 봐야 한다. 처음부터 미리 속단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전제에서 본다면, 박 당선인에게도 장점이 있을 것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타인의 아픔을 더 잘 달래고 보듬는 미덕이 있다. 타인의 아픔을 달래고 보듬는 건 인권의 정의와 통한다. 따라서 여성의 미덕이 여성대통령인 박 당선인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안경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펴낸 <좌우지간 인권이다>(살림터)
 안경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펴낸 <좌우지간 인권이다>(살림터)
ⓒ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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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 영역에서 박 당선인의 과제는 무엇일까.
"국제사회에서 실추된 한국의 인권 수준을 만회해야 한다. 이 정부에서의 인권 수준 후퇴는 국제사회의 평가를 통해 드러났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방한한 예가 대표적이다. 유엔에서 특별보고관이 방한하는 이유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이 이를 만회하면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노동 현안 문제 역시 국제사회에서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다. 이 정부 들어 사회적 약자를 둘러싼 문제를 풀고자 성의 있게 대화하며 풀어가는 능력이 약해졌다. 옆을 보며 처진 사람들과 같이 가는 게 아니라 앞만 보며 가는 모습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법을 위반한다' '억지를 부린다'고 인식했다.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려는 국력에 비해 미흡한 게 사실이다. 복지 예산만 봐도 그렇다. 지금 우리나라 복지 예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거의 꼴찌다. OECD 국가 평균 수준에 훨씬 밑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나라 정부 역시 처진 사람들을 보살피며 같이 가야 한다. 박 당선인이 복지를 내세우는 것은 좋은 신호다. 이제는 복지를 통한 사회권 신장이 시대적 추세가 됐다. 박 당선인이 노동 현안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박 당선인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한 역대 대통령들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보다 국내 정치적 지지를 더 신경 쓰는 경향을 띠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비중 있는 국가가 되면서, 국제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가 됐다. 이제는 한국 인권 수준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가 국내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박 당선인이 유신시대의 정치관이나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을 극복하고, 경제와 인권이 상극이 아니라 상생의 가치임을 인식했으면 한다.

박 당선인의 지지층은 주로 나이든 사람들이다. 과거 세대가 권력을 준 것이다. 그러나 박 당선인이 다스려야 할 나라는 미래다. 젊은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미래여야 한다. 책에서도 말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비운의 왕녀에 머무르지 않길 바란다. 지친 젊은이를 토닥이고 이끌어주는 '국민 누님' '국민 어머니'가 되기를 간절히 빈다."


태그:#안경환, #인권위, #이명박,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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