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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2013년 mbc 신인 개그맨 공채 1차 시험 현장 많은 사람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이홍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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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실내, 군데군데 켜진 조명이 실내를 겨우 비추고 있었다. 부족한 빛에 반해 소리는 실내를 가득 메웠다. 총 여덟 군데의 부스에서 갖가지 소리가 흘러나왔다. 비명과 괴성, 웃음소리, 누군가의 번호를 부르는 소리.

지난 23일, 4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린 2013년 MBC 개그맨 공채 현장, 1차 시험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부스의 오른쪽 끝에서 한 남성이 다리를 절며 걸어 나왔다. 얼마 정도 걷다가 방청객 출입구 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방송국 관계자 치고는 조금 나이가 들어보였고, 지원자라고 하기에는 많이 나이가 들어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의 오른쪽 가슴에는 수험표가 달려 있었다.

1차 시험이 모두 끝나자 현장 관계자는 모두 밖으로 나가달라고 했다. 발걸음이 닿은 곳은 MBC 건물 남측 편 광장이었다. 1차 합격자 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오전 11시 40분께, 아까 그 할아버지는 늦겨울 햇볕을 쬐며 앉아 있었다.

개그맨 시험장서 명심보감 읽은 이 남자

그는 개그 연기를 하기 전에 이 대본을 심사위원들에게 내밀었다.
▲ 박만웅 씨의 대본 그는 개그 연기를 하기 전에 이 대본을 심사위원들에게 내밀었다.
ⓒ 이홍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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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 잘 하셨어요?
"몰라요. 그냥 웃더라고요."

- 연기 뭐 하셨는데요?
"가서 시 한 수 외우고, 명심보감도 좀 읊고, 노래도 부르고, 그랬습니다."

- 명심보감을요? 중간에 끊지 않던가요?
"제가 먼저 심사위원들에게 가서 대본을 보여주고 '이것 이것 할 것'이라 말하니 중간에 끊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내게 보여줬다. 거기에는 평소 외우고 있는 시와 부를 수 있는 노래 그리고 명심보감 구절이 적혀 있었다. 올해로 만 64세, 박만욱씨는 TV에 출연하기 위해 그동안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

"몇 년 전에, MBC, 그 뭐냐, 이순재 선생님. 아, 하이킥. 제가 거기 엑스트라로도 출연했습니다. 그런데 기획사에서 자주 안 불러줘서 그 기획사를 나왔습니다. 그 전에는 아마추어 가수 했어요. 프로는 아니고 아마추어. 원래 제 노래를 하나 만들려고 했는데,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작사·작곡가만 꾸려도 돈이 천(만원)에서 오천(만원)이 들어가요. 그래서 나훈아 선생님하고 안치환씨 노래 리메이크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추어 신세를 벗어나고자 이전에도 수많은 오디션에 응시했단다.

"가수가 되고 싶어서 전국노래자랑에도 여러 차례 응시했는데, 항상 커트(cut) 당했습니다. 만날 그렇게 커트 당해 시간을 충분히 달라고 말했지만, 안 들어 주더라고요. 그 사람들도 빨리빨리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아무튼 그게 기분 나빠서 안 나가기로 했어요. 요새는 iTV 방송국 가요 프로그램에 매번 나갑니다. 그래서 박수도 쳐주고요... 아, 가수 강진이라고 아시죠? 그 사람이 고향 후배입니다. 그분도 고생 많이 했죠. 그래도 지금은 나훈아 리메이크 곡으로 잘 나가더라고요."

하지만 그가 젊은 시절부터 연예계 진출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은 아니다.

"법무부 교정직에서 33년 근무하다가 퇴직했습니다. 야근도 잦고 고생 정말 많이 했습니다. 거기가 30년 근무하면 한 6개월은 징역살이나 다름없어요. 그때도 텔레비전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천 쪽에 주로 근무했고, 소년 교도소에 있을 때 담당 교도관이었는데 그때 <인간극장>에도 잠깐 출연했습니다."

노년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는 그.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는지 궁금했다.

"가족들이 반대하죠. 그래서 오늘도 말 안하고 나왔어요. 그래도 우리 집안이 기독교라 제가 대충 이런 거 하는 거 알고 있으니까 기도는 많이 해줍니다. 제가 마라톤 많이 해서 다리가 지금 이런데 가족들이 많이 걱정합니다."

그래도 그는 연예인이 되기에 스스로 생각하는 강점이 있기에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제가 대본 암기력이 뛰어납니다. 명심보감 이런 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고요. 여하튼 외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다 외웁니다."

"개그에서도 정치·사회 문제 다뤘으면..."

그는 올해 KBS 개그맨 공채에도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 박만웅 씨(만 64세) 그는 올해 KBS 개그맨 공채에도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 이홍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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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지막으로 요즘 연예계에 대한 평가와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요즘 가수들은 늘 사랑과 이별에 대한 노래만 부릅니다. 저는 안치환씨럼 현실적이고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개그도 그냥 웃긴 거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정치·사회 문제도 다뤘으면 하는데 말입니다. 그게 다 젊은 사람들이 책을 안 봐서 그래요. 명심보감 같은 책들은 항상 소지하고 있어야 됩니다. 논어랑 맹자는 좀 어렵고, 명심보감은 괜찮지요."

인터뷰를 하는 사이 20여 분의 시간이 지났다. 그는 가방을 만지작거리더니 집에서 가져온 삶은 오리알을 건넸다. 목이 막힐까봐 배즙도 꺼냈다. 그리고 1차 합격자 발표 시각인 낮 12시가 됐다. 그는 "조금 있다가 상암동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데, 여기 떨어지면 거기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남측 광장으로 몰려들었고, 그도 천천히 그쪽으로 이동했다. 초봄의 햇볕을 맞으며.


태그:#박만웅, #MBC개그맨 공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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