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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켜는 아들.
 가야금 켜는 아들.
ⓒ 이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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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큰 아이의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가 있었다. 운영위원과 학부모 대표 등을 뽑는 자리였다. 나는 전임 학부모회장이었기에 반드시 참석해야만 했다. 그리고 간단한 뒤풀이를 갔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안산에서 작은놈 학교의 학부모 모임도 있었다. 둘 다 3학년이라(고3, 중3) 대충 모임의 성격이나 방식 등에 익숙해 있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학부모님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던 터라 꼭 참석하고 싶었다. 그러나 뒤풀이가 끝난 시간은 이미 저녁 8시가 넘었고, 강화에서 안산까지의 거리가 만만찮았다. 운전대를 잡은 마누라는 "당신이 뒤풀이 자리에서 조금만 일찍 일어났어도 가려고 했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며 안산행을 거부했다. 할 수 없이 전화했더니 큰아이 때부터 알았던 한 학부모가 농담 삼아 이렇게 말한다.

"둘째 애, 학교에 보내신 것 맞아요? 저는 그냥 내팽개쳐 놓은 줄 알았어요. 큰 애 때는 그렇게 열심히 학교 행사에 참석하시더니 둘째한테는 너무 하신 것 아닌가요?"

웃자고 한 이야기였지만, 실제가 그렇다는 걸 솔직히 인정치 않을 수 없다. 학부모 행사가 열리는 시기가 대체로 겹쳤기 때문에 입학식 때는 집사람과 내가 따로 떨어져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큰아이가 다녔던 중학교를 다시 다니는 둘째 아이에게 그만큼 소홀했음도 사실이다. 경험의 축적이 주는 안일함이랄까. 아무튼, 모든 면에서 첫 경험이 되는 큰 녀석에게 그만큼 신경이 더 쓰였던 것 같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큰놈은 항상 불만이었다. 다른 학부모의 입을 빌려 듣게 된 불만의 요지는 우리가 작은놈만 예뻐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를 부를 때는 부드러운 톤이었던 목소리가 자신을 부를 때는 격해지고 높아지는 것이 구체적인 예라는 것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무언가 이유가 있어 작은 애를 조금 더 챙기는 기색이라도 보일라치면 큰놈이 득달같이 비판과 경계의 목소리를 낸다.

"이거 봐 이것 봐! 이 새끼만 챙기잖아!"

집히는 구석이 있기는 하다.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뽀얗고 하얀 피부에 작고 조그마한 체구, 동그란 눈 등등 나를 닮지 않아 '귀티'가 흘렀던 둘째 칭찬에 엄마와 아부지의 침이 말랐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두 녀석을 차별했던 적은 결단코 없다. 오히려 '첫 경험'의 짜릿함에 모든 수혜는 큰 아이가 독차지했다고 하는 편이 옳은 이야기일 듯. 그러나 한창 감수성 예민했던 어린 시절, 그때의 그 기억이 아마도 큰 아이의 뇌리에 각인된 탓은 아닐까?

그런 큰 애가 이제 고3이 되었다. 대학도 가겠다고 한다.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를 만나 공부도 제법 열심히 한다. 뿌듯하다. 그런데 지난주던가 오랜만에 집에 와 밥 먹는 자리에서 불쑥 "가야금을 배우겠다!"고 한다. 지나가는 소리로 들었었는데 이젠 구체적으로 학교에 강좌를 신청해 개설까지 끝냈다고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금액도 얼마 안 한다며 가야금을 사 달란다. 30만 원이란다. 30만 원이 얼마 안 하는 것이냐며 집사람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는 것을 제지하며 시원하게 말했다.

"알았어. 사 줄께!"

가야금이든 무엇이든 새롭게 배운다는 것, 열정과 의욕을 갖고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 할 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19살, 소극적이었던 큰 아이가 자신의 의지로 추진한 첫 번째 사업이 바로 이것이다.

그 용기에 대한 값이 30만 원이고(실제로 들어간 돈은 43만 원임!) 아버지인 내가 아직 미성년자인 아들을 위해 대신 그 대가를 지급해 줄 능력 있음은 차라리 행복한 일이다. 그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일에 당당한 한 인간으로 잘 자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비록 가야금을 배우겠다는 지금 이 시기가 대학에 가기를 원하는 고3의 입장이지만, 말이다.

"아들아! 보아라! 큰아들아! 보아라! 엄마 아부지는 너를 차별한 적이 없단다. 이렇듯 네 의견을 존중하고 있잖니!

너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키워 보면 알겠지만 열 손가락 중 깨물어 안 아픈 놈 없단다! 너에게는 네 뜻을 이해하고 지원해 주는 든든한 엄마 아부지가 있고 동생에게는 없는 어여쁜 여친도 있지 않니! 그러니 이젠 제발 동생에 대한 그 의미 없는 열등감일랑 던져 버리고 네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 오르렴!

고3 아들의 가야금 입문을 축하하며 엄마 아부지 쓴다."


태그:#가야금, #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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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분야는 역사분야, 여행관련, 시사분야 등입니다. 참고로 저의 홈페이지를 소개합니다. http://www.refdo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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