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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문득 외로웠습니다. 요즘 저는 사는 일이 매듭이 보이지 않는 공중그네를 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집을 나서 곧바로 생라면 한 개를 샀습니다. 봉지를 뜯어 분말스프를 살짝 뿌리고 걸으며 먹었습니다. 버스를 타서도 먹었습니다. 바삭바삭 생라면의 맛은 '명랑'입니다. 우울할 때 먹는 간식입니다.

오늘 목적지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입니다. 내 일상에서 멀어지는 여행은 타자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이지요. 그래서 지금껏 만난 낯선 길들이 친근하고도 애처러웠을까요?

그림처럼 예쁘기로 유명한 부산 감천문화마을 전경
 그림처럼 예쁘기로 유명한 부산 감천문화마을 전경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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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오기 전 봤던 여러 장 사진 속 그것과 같이 예뻤습니다. 안내서에 실린 사진이나 영상 속 장소를 직접 찾았을 때 크게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요. 하지만 이곳 마을은 멀리서 전체를 봐도, 굽이굽이 골목길 돌며 가까이서 봐도 예뻤습니다. 겉도 미인인데 속을 알수록 더 아름다운 여인 같습니다. 

사연이 많은 동네라고 들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청동기시대 유물도 발견됐으며, 조선시대에는 부산항과 감천항, 다대포 등 열린 물길을 통해 왜구들이 노략질을 일삼았다고요. 일본강점기에는 아예 왜군이 주둔했고 해방 이후엔 국방경비대가 머물렀으며 한국전쟁이 터지자 영국군과 더불어 전국 각지 피란민이 집결했답니다.

감천마을은 긴 세월 여러 번 폐촌의 위기를 겪으며 모진 풍파를 견뎌왔습니다.
 감천마을은 긴 세월 여러 번 폐촌의 위기를 겪으며 모진 풍파를 견뎌왔습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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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지난 삶을 알고 마을을 다시 보면 새삼 더 애틋하고 정겹습니다. 선 자리에서 정면 멀리 바다가 보이고 왼편으로 개나리 덤성덤성 핀 옥녀봉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저 아래 평지로부터 산꼭대기까지 알록달록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계단모양으로 겹겹이 자리 잡았습니다.

약탈과 죽음에의 두려움,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상실감을 안고 이 낯설고 먼 곳까지 기어오른 사람들은 얼마나 힘겨웠을까요? 그 고생을 해서 이 가파르고 험한 땅에 작디 작은 안식처를 마련했지만 또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몇 번이나 폐촌 위기를 맞았던 마을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건 2000년도 넘어서였답니다. 가장 큰 전환점은 1964년 준공한 김천화력발전소가 무연탄과 중유를 혼합한 연료 대신 천연가스를 사용하기 시작한 2004년 같습니다. 그 전까진 주민들이 극식한 그을음과 공해로 고통을 당했다 합니다.

현재 감천마을의 다채로운 모습
 현재 감천마을의 다채로운 모습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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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9년부터 마을미술 프로젝트, 관광협력사업, 골목길 프로젝트 등이 진행되면서 오늘의 '그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집 안팎에 그림을 그려 집 하나가, 마을 전체가 그림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업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요. 어떤 마을들은 그것이 실생활, 주변풍경과 하나되지 못해 되레 추해진 경우도 봤습니다.

지도를 보며 정해진 지점에서 스탬프를 찍는 테마여행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여행할 때 마음 따라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리기 일쑤지만 오늘은 왠지 순응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네 번째 스탬프를 찍는 '평화의 집' 앞에서 이웃과 얘기 나누던 아주머니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 뭐가 볼 게 있다고 이래들 오노."

그 전에 만난 할아버지도 앞에 보이는 바다 이름이 뭐냐 물었더니 무뚝뚝하게 한 마디 던졌습니다.

"(그냥)바다지. 여는(여기는) 감천이고."

무안하면서 한편으로 송구스러웠습니다. 제가 누군가의 치열한 삶터에 서 있음을 체감했습니다. 편리한 이동을 위해 마을 곳곳엔 깜찍한 물고기 모양의 이정표가 많습니다. 페인트로 그린 화살표도 있고요. 그리고 이곳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실제 주민들의 거주공간이므로 주의를 요하는 입간판도 여러곳에서 봤습니다. 

그제서야 일요일 한낮 부스스한 모습으로 대문 밖에 나섰다 관광객과 마주하는 이곳 사람들, 집이 좁아 길목에 속옷을 널어둔 이곳 사람들, 공중변소를 이용하고 뒤돌아서 나오다 역시 낯선 이들을 봐야 하는 이곳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은 관광지이기에 앞서 파란만장 긴 세월 속 수많은 이들의 실제 삶터이지요.
 감천문화마을은 관광지이기에 앞서 파란만장 긴 세월 속 수많은 이들의 실제 삶터이지요.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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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다 돌고 나니 배가 고팠습니다. 몇 곳에선가 라면이든 샌드위치든 사먹으려 했지만 돌아서길 몇 번. 갓 당도했을 땐 못 본 '바다하우스'란 분식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떡볶이, 오뎅, 고추튀김, 계란튀김, 김밥튀김, 메뉴도 푸짐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설탕 발린 못난이 도넛이 구미를 당겼습니다. 역시 못 생긴 게 맛은 좋았습니다.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오는 동안 도넛이 자극한 위장이 '여전히 배고프다' 아우성이었습니다. 음식점 몇 곳을 기웃거리다 근처 괴정골목시장이 궁금해졌습니다. 막상 들어가니 썰렁한 입구와는 달리 규모가 상당하고 이용객도 많았습니다. 고민 끝에 옥수수 한 개와 잡채국수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각각 일천 원, 삼천오백 원. 시장이 좋은 이유입니다.

오늘 만난 감천문화마을은 '그 모진 세월을 살아내고도 어찌 이리 고울까' 싶은 마음 좋은 할머니 같았습니다. 구불구불 좁은 길은 할머니의 주름살 같았고요. 그곳에서 머문 시간 동안 당신이 직접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들은 기분입니다. 그리고 괜스레 쓸쓸했던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잘 견뎌줘서, 여전히 곁에 있어줘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달달한 못난이 도넛, 쫀득한 찰옥수수, 별미 잡채국수까지 점심식사 5200원.
 달달한 못난이 도넛, 쫀득한 찰옥수수, 별미 잡채국수까지 점심식사 5200원.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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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감천문화마을 지도(왼쪽), 괴정골목시장 입구
 감천문화마을 지도(왼쪽), 괴정골목시장 입구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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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문화마을 지도 2000원. 수익금은 마을을 가꾸는 데 쓰이며 8코스 스탬프란을 모두 채우면 사진엽서 또는 직접 찍은 사진 한 장을 무료로 출력해 드립니다.

지하철 '괴정역' 앞 괴정골목시장. 규모가 크고 이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다채로운 볼거리, 맛있고 저렴한 먹을거리 가득하니 꼭 들려보시길.

감천문화마을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많은 주민들의 실제 거주공간입니다.
 감천문화마을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많은 주민들의 실제 거주공간입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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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마세요!"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서른다섯 살이던 지난해 '진짜로 원하는 삶'을 살고자 결심, 현재는 고향에서 작은 여행자의 집을 운영하며 생계형 알바, 여행, 글쓰기, 그림 그리기 등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facebook /2012activist)



태그:#부산명소, #감천문화마을, #부산먹거리, #잡채국수, #GAM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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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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