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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지난 2월 21일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가 발표한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 중 주요 추진계획 66가지를 평가하고 3단계로 등급을 붙여 발표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결과에 의하면, 인수위가 발표한 주요 추진계획 중 "괜찮은 것"은 19개, "부족한 것"은 27개, "걱정되거나 나쁜 것"은 20개로 드러났다. 공약 중에 일부 또는 전체가 추진과제로 채택되지 않거나 후퇴, 변질된 경우가 무려 47개라는 것이다. 특히 가장 대표적인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는 국정과제에서 누락되는 등 후퇴 조짐을 보인 지 오래라는 평가다.

대통령 당선 후 100일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민생정부'를 표방한 것이 민망하게도, 민생과 직결된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공약부터 상당수 표류하고 있다. 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보장" 공약이 대표적이다. 이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야당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나 이정희 후보의 공공의료 보장성 확대 공약을 "지속가능하지 않은 비현실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하면서 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4대 중증질환 진료비 100% 보장" 공약은 인수위를 거치며 간병비,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등 이른바 "3대 비급여 항목"을 제외하는 것으로 슬그머니 변질되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2010년 진료비 실태조사'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암 환자가 부담하는 병원비의 70.4%는 건강보험에서 보장되며 8.3%는 건강보험 적용에 따른 환자 본인부담금이었다. 나머지 21.3%가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이른바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등의 '비급여 진료비'다.

이른바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그리고 간병비 등은 실제 병실이나 치료 환경 등을 감안한다면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성격의 비용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환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택해야만 하는 비용'이라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들 "3대 비급여 항목"이 보장되지 않으면 실제 환자 부담을 공약대로 무료에 가깝게 줄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 비용을 슬그머니 제외해버린 것은 환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 비판받을 만하다.

사라져버린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 

박근혜 새누리당 당시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인천 부평역광장 유세에서 연설을 하는 가운데 '암 진료비 국가부담 100%!'라고 쓰인 손피켓이 놓여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당시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인천 부평역광장 유세에서 연설을 하는 가운데 '암 진료비 국가부담 100%!'라고 쓰인 손피켓이 놓여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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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하여 서울대병원 이종구 대외정책실장은 최근 '대외정책실 뉴스레터'에서 "이들 3대 비급여 항목을 보장하지 않고는 환자 병원비 부담을 공약대로 무료에 가깝게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4대 중증질환자가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부터 찾아 제공하는 것이 원래 공약의 취지를 지키는 일"이라 비판하였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집권 새누리당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는 3월 6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선거에서는 캠페인처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이라고 쓴 것이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해"라고 발언해 야당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질병과 의료비 부담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는 국민들을 우롱한 것이다.

65세 이상 노년계층에게 2012년 기준 월 9만4600원에 불과한 기초연금을 20만 원 정도로 인상하겠다는 공약도 대폭 후퇴했다. 이 공약은 인수위원회에서 선정한 주요 국정과제에서 "국민연금 가입여부와 기간, 소득수준별로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크게 후퇴하였다.

또 다른 대표 공약인 '0~2세 양육비 전면 지급 사업'도 시행 첫 달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일부 가정에 양육비가 지급되지 못한 것이다. 양육비 지급 파행과 관련한 <머니투데이> 3월 26일 보도에 의하면, 한 동사무소 직원은 "예산이 없어서 (돈이)제 날짜에 못나갔다"면서 항의전화를 "하루 종일 받고" 있다고 하소연하였다. 이 공약은 MB정부가 파행적으로 시행했던 0~2세 보육사업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진보당 이정희 후보 역시 제시한 바 있는 대표적인 여야 공통 대선 공약이다.

매년 50개소 국공립 신축, 기존 시설 100개소 국공립 전환 공약은 인수위를 거치면서 아예 목표치를 없애버리는 '꼼수'를 부렸다. 맞벌이 부부대상 무료 돌봄 교실 운영방안은 아예 백지화되었다. 이런 식으로 후퇴한 취약계층 복지공약은 이 외에도 수두룩하다.

국민행복기금? 은행행복기금!

참여연대 소속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국민 기만 복지공약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밝힐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참여연대, '박근혜 대통령 국민 기만 규탄 기자회견' 참여연대 소속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국민 기만 복지공약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밝힐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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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가 3월 25일 발표한 '국민행복기금' 대책도 발표 직후부터 채무자들의 지탄 대상으로 전락했다. '국민행복기금'은 심각한 가계부채 대책의 일환으로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정부 발표 방안에 의하면 먼저 기금 규모가 18조 원에서 1조5000억 원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10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재원이다. 정부가 332만 명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기금 대상자'는 10분의 1 수준인 32만 명으로 줄어들고 말았다. 32만 명은 '6개월 이상 장기 연체자 112만4711명(전국은행연합회 자료)'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정부의 방안에 의하면 신용문제로 대부업체까지 내몰린 심각한 서민층의 부채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채무조정협약에 참여한 회사 중 대부업체는 대부금융협회에 가입한 54개에 불과하여 전체 등록대부업체 9170여 개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도 넉 달 뒤인 7월에야 채무 재조정이 가능하다. 실효성 논란이 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채권처리 방식도 문제다. 정부는 "올해 2월 말 현재 연체 기간 6개월 이상, 대출금 1억 원 이하며 연소득이 4000만 원 이하인 사람"의 부실채권을 일괄 처리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 방식은 무분별한 가계대출을 남발한 은행권에게 '채무탕감을 위한 자구 노력'을 강조하는 대신 오히려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정부 발표 방안은 은행들의 부실채권만 손쉽게 해결해주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아예 6개월 이상 연체된 신용 대출의 매입가격을 원가의 8~10% 수준으로 높게 잡고 있다. 금융소비자협회에 따르면 6개월 이상 연체된 신용 대출의 매입가격은 일반적으로 원가의 5%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3월 초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4~8% 수준에서도 대폭 상향조정된 것이다. 부실채권 매입가격을 이처럼 높게 책정한 것은 결과적으로 정부가 나서서 은행의 이익을 챙겨주는 꼴이 된다.

이와 더불어 정부의 가계부채대책은 대부업체가 회수를 단념한 부실채권까지 정부가 사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 대부업체가 '체념'하는 연체 채권 기준은 통상 180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6개월 이상 연체 채권을 정부가 일괄 매수해주는 것이다. 대부업체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이런 악성 채권까지 정부에 떠넘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국민행복기금'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출현한 박근혜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은 서민들의 부채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금융권 수익사업'으로 전락한 부실대책이 되고 있다. 오히려 '채권자 도덕적 해이'를 더 염려해야 할 상황이다.

'민생정부'가 아님을 스스로 입증하는 박근혜정부

박근혜 새누리당 당시 대선후보가 지난해 11월 1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7대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박 후보는 최대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대선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새누리당 당시 대선후보가 지난해 11월 11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7대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박 후보는 최대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대선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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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비정규직 등 노동관련 민생정책들도 누더기로 전락했다. "공공부문부터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던 공약은 전환완료 목표시점이 쏙 빠져버려 실제 집행될지 의문이다.

2013년 기준 월급여 130만 원 미만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서 "고용보험·국민연금 보험료를 100% 정부가 지원하여 사회보험 적용 확대"하겠다던 공약도 "지원대상과 수준 확대"라고만 언급하여 누더기 공약이 되었다. "반복해서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지급하는 사업주에 대해서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 공약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뉴스타파> 3월 22일 보도에 의하면 시민단체와 복지관련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이른바 상위 1%를 위한 수구 보수 정책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된다고 밝혔다. 이른바 "민생정부"를 표방했던 박근혜정부가 어째서 출범 한 달 만에 민생과 직결된 복지, 가계부채, 노동현안들을 '한결같이' 외면하는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진보진영이 제기했던 '경제민주화'와 '민생 복지' 담론 등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명박정부 5년 동안 피폐해진 민심의 요구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성난 민심의 흐름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돌리는 한편, 진보개혁진영의 공약들을 수용하여 정책적 차별성을 흐려놓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수용한 진보개혁진영의 정책들은 근본적으로 '선별적 복지'를 원하는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층의 의사와 배치된다. 대표적인 공약이 바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노인 기초연금 확대', '양육비 보장',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등 전형적인 '보편적 복지' 정책이었다.

'증세' 피하려 술·담배·경범죄 벌금까지 손대나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지원 및 서민의 과다채무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국민행복기금이 공식 출범한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자산관리공사 국민행복기금 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 국민행복기금 상담 받는 시민들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지원 및 서민의 과다채무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국민행복기금이 공식 출범한 2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자산관리공사 국민행복기금 창구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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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마련에 실패한 것도 커다란 원인으로 분석된다. 정부 재정이 최소한 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대되어야 함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끝까지 '증세'에 반대하고 있다. 대신 박근혜정부는 손쉽게 세원을 확보할 수 있는 담배, 술 등을 이용하려 하고 있으며, 나아가 시대착오적인 경범죄 벌금 강화 조치까지 발표한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부동산 경기부양을 핑계로 세금규제 완화까지 추진하려니,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 마련은 난망한 실정이다.

'선별적인 복지'를 추구했던 새누리당이 부동산 세제 등 '부자 감세' 기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보편적 복지' 정책을 실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였다. 박근혜정부가 이른바 "지하경제"를 "발본색원"하여 세금을 마련해보겠다고 하지만 이는 정부 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보조적인 수단일 뿐 근본 대책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미 최창우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사기죄와 허위 사실 공표죄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고 한다. 그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고발한 이유에 대하여 "박근혜 후보가 유권자의 표심을 훔치기 위해 거짓 공약으로 국민을 속여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라면서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지층과 공약의 괴리, 그리고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마련 실패라는 구조적 원인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은 시간이 갈수록 '대선 공약 불이행 논란'에 한층 깊숙이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정부가 표방했던 "민생정부"는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어려워 보인다.

덧붙이는 글 | 김성훈 기자는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이 글은 우리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근혜 , #새누리당, #민생, #복지,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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