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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대동맥 고속도로가 이 땅에 건설 된 지도 어언 반세기가 다돼 간다. 1968년 서울 인천간 경인고속도로를 시작으로 1970년엔 대한민국의 대동맥이라고 일컫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 이후 동서남북을 잇는 고속도로의 연이은 개통으로 고속도로의 총 길이는 현재 5000km를 넘어서고 있다.

시원스럽게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목적지에 도달하면 톨게이트 직원의 친절한(지역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인사를 받으며 요금을 내고 나가는 고속도로 시스템에 새로운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무인판매기를 사용한다는 안내판이 고속도로 출구에 서 있다.
▲ 무인판매 안내판 무인판매기를 사용한다는 안내판이 고속도로 출구에 서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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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15일을 기점으로 현재 362개의 고속도로 톨게이트(민자 포함) 가운데 8곳에 사람 대신 표를 받고 정산해주는 무인기계가 도입됐다. 아직은 지극히 적은 숫자라 전 국민이 느끼기엔 미약하지만, 향후 더욱 확대될 전망이라 그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1월1일 개통된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 7개 톨게이트 가운데 회인, 화서 두 곳에 무인기계가 설치되었고, 전국적으로 이용 차량 대수가 적은 8개 지역에 무인판매 시스템이 시범적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경북 상주 화서면으로 귀농한 2007년, 그 해 11월 28일 청원 상주 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화서에 IC가 생기고, 서울 가는 길이 근 1시간 가량 절약되었다. 더디지만 구불구불 국도를 달리면서 감상하던 봄, 가을의 풍경은 추억이 됐다. 귀농한 시골에 고속도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인판매기 옆에서 끙끙거리다 겨우 통과

많은 고속도로를 다니며 톨게이트를 통과했지만 화서 영업소 출구 여직원들의 친절도와 서비스는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할 정도였다. 여직원의 상냥함과 미소, 깍듯한 인사에 화서에 들어오면 기분까지 좋아진다는 이들이 많았다.

친절한 사람의 안내 대신 고속도로 이용 고객을 맞이하는 무인판매기
▲ 무인판매기 친절한 사람의 안내 대신 고속도로 이용 고객을 맞이하는 무인판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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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지난해 11월, 화서 IC 출구에 무인영업시스템 운영이란 표지판이 보이면서 통행권을 받아주는 상냥한 음성의 직원은 사라지고 거대한 자판기 같은 기계가 출구를 통제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무인판매기를 이용해야 했지만 익숙치 못한 탓에 상당한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우선  통행권을 기계에 투입해야 하는데 차를 적정위치에 세우지 못해 팔이 닿질 않았다. 차를 후진했다 다시 기계 옆에 바짝 붙여야 했고, 바람이 불어 구겨진 1000원 짜리는 투입구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도로공사 직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출구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갑자기 왜 직원이 사라지고 이런 기계로 대체를 했는지... 황당스럽고 불쾌했다.

"아니 왜 갑자기 직원이 없어지고 이게 뭡니까? 너무 불편합니다."
"저희도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 뭐라 할 말이 없네요."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지역주민들 역시 한결 같이 불편하다는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건비 절감도 좋지만 고속도로 이용 고객에게 불편을 준다는 자체가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작년 11월 15일 전국 8개 영업소 시범 운영... 점차 확대

청원 상주간 고속도로를 관리하는 보은지사 관계자와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고 담당자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무인영업소 운영에 대해 이용객들이 불편을 호소해, 주간 고객 도우미 1명을 배치해 운영한단다. 또 3월 1일부터 5천원을 서비스로 충전시킨 전자카드를 무인 영업소 당 200매씩 할당해 단골고객과 지역주민 등을 대상으로 선별하여 지급하고, 향후 단골 고객 2명에게 단말기를 지급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했다.

무인판매기 상세 이용 안내판이 출구 앞에 서 있다.
▲ 무인판매기 이용 안내판 무인판매기 상세 이용 안내판이 출구 앞에 서 있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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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몇 명의 직원을 정리했냐'고 묻자 화서 영업소(현재 도로공사는 전국의 영업소를 외주 발주해 운영)의 경우 15명이 근무하는데, 2명이 정리됐다고 했다. 2명이 정리되면서 남은 직원들의 계약기간이 연장됐고 이중 한 명은 인근의 남상주 영업소에 자리가 비면서 우선 배치됐다고 전해주었다.

무인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고속도로 이용 고객들이 느끼는 불편에 비해 정리된 직원의 숫자는 의외로 적었다. 고작 2명의 인건비 절감을 위해 사람 대신 차가운 기계를 갖다놓고 고객에게 불편함을 준다니... 아무래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런 방침이 본사에서 정해진 것이냐'는 질문에 "제도 개선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 제안을 통해 수렴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결국 도로공사 내부에서 나온 운영개선의 일환이라는 설명이었다.

"통행량이 더 많아지면 무인시스템에서 다시 이전처럼 사람이 근무하는 시스템으로 복구될 수 있는가?"
"이미 시행되고 있는 시스템으로 불편 해소를 위한 다양한 개선은 있을지 몰라도 무인시스템은 향후 더 확대될 방침이다."

개선을 위한 변화가 도리어 불편을 야기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선인지, 개악인지 흔쾌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무인판매는 인건비 절감보다는 시스템의 선진화... 누구를 위한?

그저 지방의 조그만 영업소에 해당되는 개별 사안이 아니라 고속도로 톨게이트 시스템의 중대한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 성남 판교에 위치한 도로공사 본사 관계자와 전화 인터뷰를 시도했다.

본사의 무인영업소 담당을 맡고 있는 관계자는 "현재 속사, 나주, 서부여, 남제천, 대왕판교, 춘장대, 화서, 회인 영업소 8개소의 시범운영에서 올해 12개소를 확대 운영할 계획"이라며 "무인영업시스템은 도로공사의 재정이나 인건비 예산 절감의 차원보다는 지하철 무인 판매 같은 '시스템의 진화 과정'이다"라고 밝혔다.

'선진국 일본에서도 30% 정도 무인판매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스마트폰이 2G, 3G, 4G로 진화해가는 과정'이라고 비유하는 관계자의 견해에 "스마트폰의 진화는 고객의 편리함을 위해 진화하는데, 무인시스템은 고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냐?"고 질문하자 "스마트폰은 가격이 비싸지질 않는가? 대신 우리는 현금 사용하는 고객에게 요금 할인 등의 계획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차가운 기계보다는 따듯한 사람의 가치에 대해서도 인정은 하지만 시스템의 변화 차원에서, 다만 고객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면서 점진적으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인정(人情) 또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 가치

해질 무렵 화서 톨게이트 앞에 가서 무인시스템을 통해 출구를 나온 고객을 직접 인터뷰했다.

무인판매기에 지폐를 넣고 있다. 바람이 불거나 구겨진 지폐는 아주 애를 먹는다.
▲ 무인판매기 이용 무인판매기에 지폐를 넣고 있다. 바람이 불거나 구겨진 지폐는 아주 애를 먹는다.
ⓒ 이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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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일 때문에 가끔 화서에 온다는 40대 초반의 남자 고객은 처음에는 인터뷰에 고개를 젓다가 무인 시스템에 대해 무조건 불편하다는 얘기를 서너 차례 하면서 "통행권 집어넣는 거리 맞추기가 어렵다"며 "누구를 위한 시스템의 진화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 가족과 함께 출구를 나온 화서면에 사는 30대 부부는 "국가에서 하이패스 단말기를 지급해주고 이런 시스템을 운영해야지, 말만 안 했지, 단말기 사서 쓰라는 것 같아 기분이 아주 나쁘다"면서 "기계값도 고가 일 텐데 그 돈으로 직원 인건비를 주는 게 더 낫지 않겠냐? 고속도로를 어쩔 수없이 자주 이용하는데 특히 겨울에는 너무 불편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참고로 무인정산 기계의 가격은 대략 3억 원 정도로 일제부품을 수입해 제조해 만들었다고 했다.

바람찬 봄날 저녁, 무인기계를 통해 출구를 나온 고객들의 반응과 불편한 고객을 위해 대기하는 도우미 직원들의 분위기는 날씨보다 더 스산하게 느껴졌다.

고속도로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다시 예전처럼 사람이 근무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도 한 명의 일자리라도 더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국가, 공기업, 사기업 할 것 없이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대다.

약간의 물질적 혜택과 다양한 해소 방안이 나온다 해도 반가운 인사와 상냥한 음성으로 맞이해주는 도로공사 직원의 정산 시스템만큼 더 좋은 시스템의 선진화가 있을까? 하는 생각과, 출구에서 상냥한 인사로 맞이해주는 인정의 가치가 과연 그렇게 기계로 대치될 만큼 불필요한 시스템이었나 하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도로공사가 지금이라도 더 많은 고객들의 현장소리를 수렴하여 고개의 입장에서 시스템의 선진화를 펼쳐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태그:#고속도로, #무인판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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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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