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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2012년 12월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세를 하던 중 안철수 전 후보가 예정에 없이 깜짝 등장해 자신에 매고 있던 노란 목도리를 문 후보에게 둘러주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2012년 12월 1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유세를 하던 중 안철수 전 후보가 예정에 없이 깜짝 등장해 자신에 매고 있던 노란 목도리를 문 후보에게 둘러주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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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후보를 정말 믿고 훌륭하게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상처가 되는 일이 제발 없기를 바란다."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 8일 한상진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장을 만나서 한 말이다. 9일 대선평가보고서를 발표한 한 위원장은 "문 전 후보가 '당의 공식 조직인 대선평가위원회를 안 만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면서 면담 요청에 응했다"고 밝혔다.

대선평가위는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문재인 전 후보의 유약한 결단력과 계파 패권주의 등을 지적한 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앞서 당사자인 문 전 후보에게 사전 설명을 한 셈이다. 그러나 문 전 후보는 4·24 재보선 서울 노원병에 출마한 안철수 후보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는 대선 패배에 대한 안 후보의 공동책임론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책임론', '안철수 책임론', '문재인-안철수 공동책임론'

한상진 위원장에 따르면, 문 전 후보는 "보고서가 객관성을 갖기 위해 사실을 사실대로 공개는 하겠지만, 보고서로 인해 (재보궐 선거를 치르고 있는 안 후보에게)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문 전 후보는 또 "안철수 후보 개인에 대해서 신뢰와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한 위원장은 안철수 후보에게도 면담을 요청했지만 재보선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 위원장은 "안 후보는 선거 중이라서 부담이 컸을 것"이라며 "저한테 '사생결단의 자세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청을 했고, 저도 충분히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한 위원장이 이날 문재인 전 후보와의 면담 사실이나 안철수 후보와의 면담 요청 사실 등을 공개한 것은 기자들로부터 '대선 패배 공동책임론'에 대한 추가 설명을 요청 받고서다. 한 위원장은 "저희들이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단순히 대선 평가 문제가 아니라, 현실 정치를 하는 분에게 대단히 예민하고 파장이 어떻게 갈지 모르는 문제"라며 곤혹스러워 했다.

그러면서도 한 위원장은 "안철수 후보에게 공동책임이 있다는 점에 대해 국민 일반이 생각하는 것보다 민주당 내부의 동의율이 훨씬 높다"며 "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도 단일화 협상 과정 중이나, 또 후보 사퇴 이전에 민주당이 안 후보에게 대했던 태도가 잘했다는 의견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평가위가 민주당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치의식조사2013' 결과, 응답자의 72.3%가 '안철수 후보도 대선 패배에 공동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동의했다. '안철수 후보의 미숙한 사퇴 방식으로 지지자들의 정서적 통합에 장애가 됐다'는 주장에도 72.3%가 동의했고, '안철수 후보가 사퇴 2주 후 지지 행보를 시작한 것도 문재인 후보의 본선 행보에 제약이 됐다'는 주장 역시 71.5%가 동의했다.

평가위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의식조사2013'에서도 '안철수 후보도 대선 패배에 공동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 53.8%가 동의했으며, '후보직 사퇴 후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했다'는 주장에 동의한 응답자는 24.2%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대선패배 책임론은 '민주당 책임론'과 '안철수 책임론'으로도 나뉜다. 전자는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민주당의 패착 때문에 졌다는 것이고, 후자는 지난 선거가 애당초 이기기 힘든 '기울어진 운동장' 선거였으며, 민주당은 최선을 다 했지만, 안 후보가 잘못했기 때문에 졌다는 논리다. 평가위는 이에 대해 "18대 대선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득표의 45%는 안철수 지지자"

평가위는 보고서에서 지난 대선 때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 간 '아름다운 단일화'에 실패한 이유에 대해 "협상의 상황과 조건은 충분히 좋았으나 승리주의적 태도 때문에 실패했다"며 "결과적으로 협상에서 쌍방이 무능력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한상진 위원장은 "(아름다운 단일화) 실패의 원인이 이것 하나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놀라운 것은, 협상을 하면서 상호 소통이 안됐다는 사실"이라며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김재홍 대선평가위 간사는 "예측불허의 협상안을 가지고 해야 국민 감동을 줄 수 있는데, 양쪽 모두 승리주의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전 후보가 얻은 득표의 45%가 안철수 후보 지지자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근거해, "안철수 지지자의 65.2%는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음이 확인됐으며 21.2%는 박근혜 후보에게로 갔고, 11.7%는 기권했다"며 "이것은 문재인 후보가 얻은 득표의 45%가 안철수 지지자로부터 온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이는 문 후보가 안 후보와 그 지지자들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정치적 책임, 한명숙-이해찬-박지원-문재인-문성근 순서

2012년 4월13일 오후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민주통합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11 총선 패배에 따른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2012년 4월13일 오후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민주통합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11 총선 패배에 따른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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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평가위는 이날 공개한 보고서에서 대선 패배의 9대 요인으로 ▲ 대선전략 부재 ▲ 계파갈등 ▲ 두뇌기능 미흡 ▲ 취약한 리더십 ▲ 평상시 정당 활동의 부재 ▲ 방만한 선대위 ▲ 당내 협력문화 부진 ▲ 정책 부족 ▲ 후보 문제 등을 꼽았다.

평가위는 특히 문재인 전 후보에 대해 "당 지도부의 전면퇴진론이나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과 같은 중요한 국면에서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대위 체제로 개편하지 못한 채 별 변화 없이 그대로 굴러갔다"고 지적했다. 또 "참모진 운영에서도 특히 후보 비서실은 청와대 출신들의 '재회장소' 같았다는 비판을 살 정도로 사적 인맥이 공조직을 통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비판했다.

평가위는 "당 지도부는 시대상황에 비해 안일했으며 중대 국면에서도 의사결정을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며 "민주당은 평상시 활동하지 않는 '휴면정당'으로 국민 신뢰를 받지 못했고 수권정당과 정반대의 이미지를 고착시켰다"고 평가했다. 계파 패권주의에 대해서는 "일찍이 민주당이 계파 문제 때문에 이렇게 위기상황에 처한 적은 없고, 계파 패권주의가 도를 넘은 것은 확실하다"며 "계파정치 청산은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평가위는 당내 설문조사를 토대로 주요 인사들의 정치적 책임을 수치화한 결과도 공개했다. 4·11 총선 당시 한명숙 전 대표가 100점 만점에 76.3점으로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고, 대선 당시 이해찬 전 대표가 72.3점이었다. 다음으로 '이박(이해찬-박지원) 담합'의 당사자였던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67.2점, 문재인 전 후보가 66.9점, 문성근 전 대표 권한대행이 64.6점을 각각 받았다.

평가위는 "민주당에는 정치적 책임윤리가 거의 빈사상태에 있다, 지도부가 자신의 책임을 깊이 성찰하고 공개적으로 '내 탓이오' 하고 모범을 보이는 것이 시급하다"며 책임지는 모습을 요구했다.

특히 이해찬 전 대표에 대해 "후보단일화 필승론을 과신한 나머지 과학적 정세분석과 유권자 지형변화의 청취를 소홀히 한 면이 있다"며 "책임을 지는 새로운 정치풍토의 조성을 위해 고결한 책임윤리의 품성을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문 전 후보에 대해서도 "선거과정에는 통상의 이저저러한 의사소통의 장애가 생긴다 해도 이번의 시행착오는 매우 심각한 결함이었다"며 "문 전 후보의 (캠프 구성) 결정이 가져온 심각한 부작용에 대해 성찰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상진 위원장은 전날 문 전 후보를 만나, 대선평가 작업에 대한 설명과 결론 등을 전달한 뒤, "정치적 책임윤리라는 의미에서 저희들이 갖고 있는 기대도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문 전 후보는 그동안 평가위원회에 대해 가졌던 느낌을 가감 없이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 평가위원회가 문 전 후보의 의원직 사퇴를 주장하는 것으로 보도했던 점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위원장은 이날 "평가위원회에서 특정인사에 대해 의원직 사퇴를 논의하거나 요구한 적이 전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제는 평가위가 대선 패배의 책임 당사자들로 지목한 인사들이 문 전 후보를 비롯해 친노(무현)계가 대부분이어서 향후 평가위의 결론에 대한 친노 진영의 반발과 함께 당내 주류·비주류 간에도 거센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이번 보고서가 문 전 후보를 비롯한 당내 주류세력의 책임론으로 부각될 경우, 다음달 4일 열리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일부 후보들이 반발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다.

실제 범주류측 후보로 분류되는 신계륜 의원은 이날 오전 KBS 라디오에 출연해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선평가보고서를) 발표하는 것은 어떤 정치적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며 "너무 늦은 것 같기도 하고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태그:#문재인, #안철수, #대선평가, #한상진, #후보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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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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